2015년 3월호

계급 굴복이 합의? 여군 격리가 해법?

참을 수 없는 ‘性 갑질’의 뻔뻔함

  • 남성원 |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전 국방부 검찰단 검찰부장

    입력2015-02-25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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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군에게 문제가 있으니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편리한 인식.
    • 여군 격리를 대책이라고 내놓은, 단순하고 황당한 발상.
    • ‘그들만의 리그’에선 여전히 헛발질만 이어진다.
    요즘 우리 군이 왜 이렇게 시끄러운지 모르겠다. 전투 준비라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각종 사고 및 추문성 사건을 관리하고 대처하는 일에 몰두해야 하는 처지인 것 같아 답답하다.

    임 병장 사건, 윤 일병 사건 등으로 군 관련 부정적 보도가 언론매체를 장식하던 중 불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군 엘리트 장교들에 의한 부하 여군 성추행 사건이 잇따라 터져 나오자, 군을 보는 국민의 시선이 차갑기만 하다. 여기에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군 수뇌부의 공감할 수 없는 발언이 부각되면서, 군 엘리트 장교 집단의 상황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012년 3월 대표적인 군 실세로 꼽히던 특전사령관 모 중장이 사단장 시절 공관에서 여군 하사와 부적절한 성적 관계를 맺어온 일이 드러나 해임되고 전역한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연이어 그다음 달인 4월 강원도 육군 모 부대의 한 준장이 부하들과 회식을 하고 노래방에 가서 새로 전입한 여군 하사를 강제로 껴안는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여군 하사의 고소로 군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성추행 혐의를 받은 준장은 다른 부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전방사단에 근무하던 여군 오모 대위가 직속상관인 노모 소령의 집요한 성관계 요구 및 성추행과 모욕, 구타 등 가혹행위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이 알려지면서 세상이 떠들썩했다. 당시에도 군은 대책을 쏟아낸 바 있다. 그러한 대책은 모두 공염불이 돼버린 것일까.

    계급 굴복이 합의? 여군 격리가 해법?

    강원도 철원군 청성부대 일반전방소초(GOP) 장병들이 눈 덮인 철책에서 야간 경계근무를 한다.

    합의와 굴복 사이



    지난해 10월, 육사 동기생 중 선두 그룹의 일원이던 17사단장 모 소장이 집무실에서 여군 하사를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는 등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해당 사단장은 이미 다른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였던 여군 하사를 위로하기 위해 집무실로 부른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여군 하사를 다섯 차례나 불러 위로했다는 사단장의 변명은 여군 하사가 법원에 제출한 녹취록에 의해 거짓임이 드러났다. 녹취록에는 사단장이 여군 하사를 이성으로 대한 정황이 담겼다.

    피해자인 여군 하사는 이미 모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피해자로서 보호받는 차원에서 사단장 직속 부서로 자리를 옮겨 병영 상담관의 집중 관리를 받는 상태였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사단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것이라 하니 뭐라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다. 그리고 해당 사단장은 재판 과정에서 또 다른 여군 하사에 대한 추행 사실이 추가돼 실형 6개월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올해 1월에는 전방 1군단 예하 기갑부대에서 또다시 여군 하사를 상대로 한 고위 장교의 성추행 사건이 불거졌다. 여단 지휘관인 대령이 여군 하사를 성폭행한 혐의로 긴급체포된 것이다. 과거 국방부 장관 부관을 지낸 그는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에서 파견 근무한 엘리트 장교였다.

    이 사건의 발단은 다른 여군의 성추행 사건이었다. 군 수사기관이 같은 부대에서 발생한 모 여군 하사의 성추행 사건을 수사하던 중 피해자의 제보로 여단장의 성폭행 혐의를 포착했다. 여단장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변명했다. 하지만 부하에게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성관계를 가질 것을 압박하는 내용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확인되면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상하관계에서 계급과 직급에 굴복한 것이 그에게는 ‘상호 합의’로 여겨진 것일까.

    더 큰 문제는 이에 대처하는 군 수뇌부의 시각과 자세가 국민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군에 대한 국민의 염려가 더욱 깊어진다는 점이다. 가해 장교들이 아예 그런 행위가 없다고 부인하는 것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누구나 자기 범죄를 부인할 권한이 있으니, 이해할 만하다고 접어두자.

    그러나 여군 하사와 합의해 성관계를 가졌으니 강제성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지하게 항변할 때면 듣는 사람이 낯이 뜨거워질 지경이다. 불륜일지언정 황혼의 로맨스였다는 걸 자랑하고 싶었던 걸까. 20대 초반의 여군 하사가 아버지 뻘인 40~50대 유부남 지휘관과 무엇 때문에 합의해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일까.

    그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아마 성관계 당시 여군 하사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 깔려 있는지 모른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대놓고 저항할 수 없는 을의 처지는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평가하는 데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닌 것 같다. 참으로 편리한 사고방식이다.

    ‘아가씨’ ‘섹스’…

    계급 굴복이 합의? 여군 격리가 해법?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이 1월 29일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하사 아가씨” 등 자신의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가해 당사자에게서만 확인되는 게 아니다. 군 당국이나 지휘부의 언행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지난해 오 대위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자, 군은 가해 소령의 성적 괴롭힘을 농담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면서 성폭력과 자살의 상관성을 부정하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식으로 오 대위 유가족에게 집요하게 합의를 종용하는 바람에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여단장 성추행 사건이 터진 직후인 1월 27일 성폭력 대책을 주제로 한 육군 지휘관 화상회의가 열렸다. 육군참모총장과 각 군사령관을 비롯한 장성들이 참석한 이 회의를 영관·위관급 장교 수천 명이 지켜봤다. 이 자리에서 1군사령관은 부하 여군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여단장 사건과 관련해 “처음에 잘못된 것을 본인이 인지했으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명확한 의사표시를 했어야 했고” 따위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군 하사가 명확한 거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으니 그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뜻으로 이해될 만했다.

    이틀 뒤엔 피해 여군의 처지는 전혀 안중에 없고 가해 장교를 두둔하는 취지의 공식 발언이 군 출신 국회의원에게서 나와 다시 한번 국민을 놀라게 했다.

    육사 출신으로 3성 장군에 기무사령관까지 지낸 송영근 의원은 병영문화 혁신 특별위원회 공개회의에서 “여단장이 40대 중반인데 성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는 측면을 우리가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전국의 지휘관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정상적으로 나가야 할 외박을 제때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그래서 가정관리가 안 되고, 그런 섹스 문제를 포함해 관리가 안 되는 것들이 이런 문제(성폭행)를 야기한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피해자인 여군 하사를 가리켜 ‘아가씨’라고 호칭한 것도 논란이 됐다. ‘40대 중반인 유부남 지휘관이 외박을 나가지 못해 한 아가씨를 통해 섹스 문제를 해결한 사건이니 이해해줘야 한다’는 뜻인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발언이었다.

    이를 취재한 기자들은 일부 장교들로부터 “국방부 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이 여성 대통령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엘리트 장교를 제물로 삼는 것 아니냐” “피해 여군이 꼬리를 쳐서” “전방에서 외롭고 무료해서” “부하를 너무 사랑해서” 등 가해자의 처지를 적극 옹호하는 발언을 어렵지 않게 들었다고 한다. 가해 지휘관, 군사령관, 군 고위직 출신 국회의원과 궤를 같이하는 인식이다.

    연약한 슈퍼 乙, 여군 하사

    여군은 병사로는 근무할 수 없고, 장교 또는 부사관으로 근무하게 된다. 장교로 임관하게 되면 임관 출신별로 복무기간이 정해지고, 부사관의 경우는 3년간 영내생활을 해야 하는 의무복무기간을 마친 이후 장기복무자로 선발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이는 남성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3년 동안은 임시직으로 있다가 정규직으로 선발되는 구조다. 여성이 3년간 영내생활을 해야 하는 의무복무만을 위해 꽃다운 나이에 입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직업으로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고, 장기복무자로 선발되는 데 목을 매는 것이 현실이다.

    2010년부터 2014년 8월까지 발생한 군내 성폭력 피해자 183명을 조사한 결과 장기복무 선발 심사를 받을 처지에 놓였던 여군 하사가 109명(59.5%)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대위(20명), 중사(13명), 중위(12명) 순이었다. 가해자의 계급별 분포를 보면, 장기복무 심사와 인사고과 등 인사권의 실무를 틀어쥔 영관급이 42.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여군 장교의 경우는 영관급으로의 진급 여부가 향후 군생활의 관건이 된다. 그래서인지 대위 계급인 여군의 피해가 많았던 점이 눈에 띈다.

    군인은 진급에 목숨을 걸고 진급을 위한 보직에 모든 것을 내던진다고 한다. ‘무덤에 가서도 그해 진급 발표는 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그리고 진급자나 장기복무자 선발이 낙오자를 걸러내는 작업이 아니라 소수를 선발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진급권자니 실무 담당자의 말 한마디 혹은 어떤 요구는 진급이나 장기복무 선발 대상자에게 모든 것에 앞서는 최우선 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군 관계자도 “여성 부사관의 장기복무와 진급을 빌미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군 부사관의 장기복무 신청 경쟁률이 수십 대 1이 넘는 상황을 악용한 부대 인사권자들의 성적 횡포를 근절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그의 지적에 공감이 간다. 상급자의 인사고과가 승진이나 장기복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불합리한 인사 제도를 이번에는 확실히 개혁해야 한다.

    가해자에게 신고해야 하는 구조

    피해 여군들은 성폭행을 당해도 피해 사실을 쉽사리 알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필자는 군의 잘못된 고충처리 및 언로 구조가 새로운 피해를 발생시키고 확대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비단 여군 성적 피해의 경우에만 국한된 지적이 아니다. 병영 부조리 피해자인 임 병장은 왜 총기를 난사하는 극단적 방법을 택했고, 윤 일병은 왜 죽을 때까지 맞고 있었을까. 오 대위는 왜 계속되는 직근상관의 성적 괴롭힘과 모욕을 참기만 하다 결국 자살한 것일까.

    군인복무규율 25조 4항에는 ‘군인은 복무와 관련된 고충사항을 진정·집단서명 기타 법령이 정하지 않은 방법을 통해 군 외부에 그 해결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돼 있다. 또 국방홍보훈령 22조 3항에는 ‘모든 직원 및 장병은 국방정책 등 주요사안에 대해 인터뷰 요청을 받은 경우 관련 부서장에게 해당 인터뷰 내용을 사전에 검토 받아야 하며 필요시 국방부 대변인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언로 보장이 아니라 군사보안을 위해 마련해둔 규정으로 보인다.

    그러나 위의 규정들은 군사보안 사항과 전혀 관계없는 개인적인 일, 특히 군에서 발생하는 극히 사적인 피해 상황을 피해자의 가족에게 알리는 것까지 금하는 조항으로 악용되는 게 현실이다. 군인인 이상 성폭행을 당해도 가족에게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군내 부조리로 피해를 입은 한 군인으로부터 각종 규정이 자신을 옭아매는 바람에 그냥 고통을 감내하다 죽음까지도 각오하게 된다는 토로를 들은 적이 있다. 윤 일병의 경우도 온몸에 시커멓게 멍이 든 상태에서 가족과의 접촉이 일절 금지된 채 죽음을 맞이했다.

    군에서는 일단 법령이 정한 고충처리 절차를 지키라는 것이다. 위 규정에 따른 ‘법령이 정한 방법’이란 먼저 직근상관에게 보고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계통을 밟아 차례로 고충을 보고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군이 엄격한 지휘체계하에 지휘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인사고과 제도를 가진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러한 고충처리 방법은 그저 군이 내세우는 명분에 지나지 않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군단장이 여군하사를 성추행한 경우, 피해 여군은 군단장의 성추행 사실을 일단 소대장이나 중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만약 상급 지휘관에게 보고해도 해결되지 않으면 성추행한 가해 군단장을 거쳐 군사령관에게 보고하라는 뜻이다. 물론 가능한 일이 아니다. 군단장의 부하 지휘관들이 자신의 지휘관인 군단장의 성추행 사건을 해결해줄 리 없고, 가해 군단장이 군단장 이상의 지휘관에게 자신의 성추행 사건을 보고하도록 내버려둘 리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性군기’ 용어에 담긴 시각

    지난해 군 인권단체에서 여군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군의 90%가 ‘성 관련 피해를 당해도 대응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유는 ‘소용이 없어서(47.4%)’ ‘불이익 때문에(44.7%)’ ‘나쁜 평판 때문에(5.3%)’ 순이었다. 군 관계자는 “군복을 벗을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성범죄 피해 신고가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못 참으면 임 병장, 참으면 윤 일병”이라고 비꼰 이외수 씨의 일갈이 군의 현 고충처리 제도의 무용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피해 여군은 군사법 당국에 고소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현재 각계각층으로부터 개혁을 요구받는 모순된 군 사법제도 탓에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게 현실이다. 군검찰과 군사법원은 가해자 소속 군 지휘관의 휘하에 있다. 군단장의 성폭행 사건을 가해자 자신의 휘하에 있는 군검찰에서 수사하고 군사법원에서 재판하는 구조다. 물론 이러한 경우 군사령부 또는 국방부 소속 상급 군사법원에서 재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해당 군단장 휘하의 군검찰에서 일단 수사를 하고 혐의가 인정돼 사회적인 이슈가 된 후의 일이 될 것이다.

    고급 지휘관에 대한 군검찰과 군사법원의 온정주의식 처벌 수위도 문제다. 군내 성범죄 사건 중 60%가 불기소 처분되는 실정이다. 재판에 회부된 이후의 결과를 보더라도, 지난 5년간 여군 피해 성폭력 재판 사건 60건 중 실형 선고가 나온 것은 5%인 3건에 그친다.

    지난해 오 대위 사건 당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에서도 군사법원 1심 재판부는 가해자 소령의 성추행과 오 대위 자살 간의 인과관계를 부정하고 가해자에게 집행유예의 온정적인 판결을 내렸다. 그 판결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는 가운데, 결국 시민단체가 공개한 오 대위 일기장과 부검 결과를 토대로 항소심에서 마치 여론에 못 이기는 듯 가해자에게 실형을 선고한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계급 굴복이 합의? 여군 격리가 해법?

    육군3사관학교 여생도들이 각개전투 훈련을 받는 광경.(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계급 굴복이 합의? 여군 격리가 해법?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리허설에서 특공무술 시범을 하는 여군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군에 대한 불신이 위험지경에 이르자, 최근 국방부 장관은 성(性)군기 위반 사건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면서, “앞으로는 패가망신 정도의 처벌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관용” “패가망신” 등 다소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군에 대한 비난 여론을 잠재워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패가망신 정도의 처벌이 도대체 무엇인지 불명확하다. 또한 개별사건에서 무관용으로 처벌하는 권한이 국방부 장관에게 있는 것도 아니다. 만일 그의 말이 군판사들에게 경미한 범죄에도 중형을 선고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면 또 다른 의미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국방부 장관이라면 사건별로 군판사가 판단해야 할 처벌 수위에 대한 지침을 언급할 게 아니라, 구체적 사건에서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게 군사법 제도를 손질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육군은 최근 성범죄 근절을 내세우며 ‘성군기 관련 행동수칙’ 개정안을 내놓았다. △남녀 군인 단둘이 차량 이동 금지 △이성 군인과 접촉 시 한 손 악수만 허용 △남자 군인 혼자서 이성 관사 출입 금지 △남녀 군인 단둘이 같은 사무실에 있어서는 안 되며 부득이한 경우 출입문을 열어놓는다는 게 골자다.

    개정안을 보면, 한눈에도 여군과 여군 성추행 사건을 바라보는 군의 시각이 왜곡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군에게 군이라는 곳은 남자 군인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업무를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생계유지를 위한 봉급을 받는 직장이다. 군 당국도 여성의 정상적인 군복무 참여를 유도해왔다. 군내 여성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여군병과를 없애고 간호 및 정훈병과 등에 국한돼 있던 여군 직역을 전투 직역에까지 확대했다. 향후 ‘1만 여군시대’를 열겠다고 호언해왔다. 그런데 육군이 이번에 내놓은 ‘성군기 관련 행동수칙’ 안이 여군 발전 방향과 배치되는 게 아닌지 묻고 싶다.

    우선 ‘성군기’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본다. 군은 매사에 ‘군기’라는 단어를 넣은 합성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군인으로서의 영역이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규범을 지키는 것도 군기라고 표현한다. 일반 국민에게 적용되는 규범을 군의 특수한 규범의 영역으로 전환해 군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지휘관이 여군 하사를 상대로 성폭행한 것은 군인으로서 군기를 위반한 차원을 넘어 일반 국민으로서 범죄행위를 한 것이다.

    진단과 해법

    이번 행동수칙안의 본질적 문제는 따로 있다. 한마디로 소수인 여군을 다수인 남군으로부터 격리하자는 것이다. 직장 내에서 소수자가 다수자로부터 격리되면 다수자는 별 영향이 없으나 소수자의 업무능력 발휘는 제한을 받게 된다. 여군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군 당국의 전향적인 계획과도 배치된다. 한편으로 남군과 여군이 공동으로 근무하는 환경에서는 여군에 대한 성범죄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고 여군의 존재 자체가 성범죄의 원인을 제공하는 면이 있다는 시각을 보여주는 듯하다. 앞서 언급한 1군사령관과 송영근 의원의 발언과 맥락을 같이하는 듯해 심히 우려된다.

    최근 빈발하는 고급 장교들의 성추행 범죄의 배경에는 여군에 대한 군의 비뚤어진 시각과 아직도 잔존하는 마초이즘적인 군 문화가 있다. 그리고 군내 비리와 비행을 척결하고자 하는 군 수뇌부의 실천적 의지 부족, 모든 영역에서 자족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폐쇄적인 군내 제도 등 여러 문제점이 어우러져 있다. 실효성 있는 해결책이 나오려면 먼저 진단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진단과 해결책은 이미 언론을 통해 드러난 국민 여론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군 지휘부만 모르는 걸까. 아니, 이해를 못하는 걸까.

    바야흐로 군 지휘부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전환과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군에 대한 성범죄의 원인이 여군의 존재 자체라고 인식하고, 여군을 격리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군에 대한 국민의 근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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