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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기다려 ‘곗돈’(2인자 자리) 받은 ‘은둔의 킹메이커’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 허만섭 기자│mshue@donga.com

15년 기다려 ‘곗돈’(2인자 자리) 받은 ‘은둔의 킹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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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가 코치할 때 가장 화려”

15년 기다려 ‘곗돈’(2인자 자리) 받은 ‘은둔의 킹메이커’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이 3월 1일 중동 순방차 출국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환송하러 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이 실장의 인연은 6공화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박근혜 육영재단 이사장을 청와대로 초대할 때 이병기 의전수석이 박 이사장을 안내했다. 이후 이 수석이 노 대통령 대신 박 이사장에게 가끔씩 안부를 전하면서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고 한다. 여권 인사 B씨에게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 박근혜 의원은 한나라당 대표가 되고 나서 이병기 실장을 챙기기 시작했죠. 2005년 5월 그를 당 여의도연구소 고문으로 임명했고요.

“재미있는 게, 당 대표에서 물러난 뒤에도 한 사람을 꼭 챙겼는데, 그게 이병기 씨였죠. 그가 월 300만~400만 원 받는 연구소 고문으로 계속 일하게 했죠. 생활비로 쓰라는 배려였죠. 2007년 박근혜 후보가 경선 캠프 차릴 때 홍사덕 부의장이 캠프 좌장이었고 이병기 고문과 김무성·유승민 의원은 넘버2로 통했어요.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그보다 한참 밑에 있었고.”

▼ 박 대통령이 오랫동안 이 실장을 챙겼군요.



“당시 내가 박근혜 경선 캠프의 이병기 씨 방에서 잡담한 적이 있어요. 이씨가 서랍에서 캠프 월 운영예산 3000여만 원의 내역이 담긴 서류를 꺼내 보이며 ‘뭔 돈이 이리 드는지…’ 하더라고요. ‘아, 돈줄을 쥐고 있는 이 양반이 박근혜의 핵심 측근이구나’ 생각했죠.”

새누리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실장은 ‘불리한 판을 뒤엎는 은둔의 킹메이커’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1987년 노태우 당선, ‘6공 황태자’ 박철언에서 김영삼으로의 권력 이동, 2004년 총선 때 ‘노무현 탄핵 역풍’을 잠재운 천막당사 이벤트,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수렁 탈출 같은 정치사의 전환점마다 이 실장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는 것. 여의도연구소 출신 당 관계자 C씨는 “이병기가 가까이에서 코치할 때 박근혜의 플레이가 가장 화려했다고 보면 된다. 천막당사 기획도 내부에선 ‘코미디’라고 생각했는데 대박이 났고…”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1987년 노태우 민정당 총재의 6·29선언 때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태우 총재 보좌역인 그가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태우 총재가 6·29선언을 발표하기 하루 전 내가 동아·조선·중앙·한국 4군데 기자들을 불렀다. ‘내일 발표하니 호외 내달라’고. 내가 친필로 (선언문을) 직접 썼다. 노 총재가 잘 알아볼 수 있게 정리했다.

내가 연희동 노 총재 자택에 도착한 후 안현태 대통령경호실장이 전화로 노 총재를 찾았다. 발표하기 전에 청와대에 들어오라는 거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노 총재를 만났다는 증거를 만들어 자신이 6·29선언을 주도한 것처럼 모양새를 갖추려는 의도 같았다. 노 총재는 ‘지금 밖에 기자들이 쫙 깔렸어. 집에서 못 나가’ 하면서 전화를 딱 끊더라. 노 총재는 정치감각이 있었다.

노 총재가 DJ의 사면복권을 포함시킬지 고민하더라. 나는 그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게 빠지면 아무것도 안 된다. 대선 전략으로 DJ와 YS가 같이 나와야 한다. 단일화만 안 되면 총재님한테 승산이 있다. 일단 던지고 운명에 맡기자’고 건의했다. 채택됐다. 다음 날 노 총재는 6·29선언을 발표한 뒤 현충원에 갔다. 이어 전경들을 위문했다. 나는 이한열한테도 가봐야 한다고 했다. 노 총재는 세브란스병원으로 갔다. 이한열은 중환자실에 있어 만나지 못했다. 그의 부친이 내려오더니 인사를 하더라. ‘오늘 좋은 일 하셨습니다’라고.”

취임 후 잇달아 ‘공격 포인트’

이 실장은 1987년 대선에서 DJ-YS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게 노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여권 관계자는 “단일화 여부가 노태우 후보 당락을 결정하는 중대 변수이니 노 후보 참모로서 그렇게 노력한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이병기 의전수석을 꽤 신임한 듯싶다. 이 무렵 이 수석은 ‘실세 박철언’을 견제하면서 ‘YS 대안론’을 폈다. ‘문민(文民)’으로 가야 3당 합당 보수체제가 유지된다고 봤다. YS가 대통령이 된 뒤 노태우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지만 ‘노태우 사람’ 이병기를 안기부 2차장으로 중용한 이유다. 당시 이병기 수석이 차기 권력의 향배를 바꿔놓은 점은 박철언 전 장관의 ‘이병기 혹평’을 통해 역설적으로 확인된다.

“내가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 내각제를 둘러싼 치열한 투쟁을 벌이고 있을 때 (이병기는) 김 대표를 편들어 YS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이병기에게 몇 차례 주의를 줬다. 그러나 이병기는 어느 새 머리가 굵어져 내 얘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박철언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

국정원장과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이병기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라고 한다. 그는 국정원장 후보 청문회에서 “제 머릿속에 ‘정치관여’라는 말은 지워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2002년 대선 때 이인제 의원에게 불법자금을 전달한 것에 대해선 “가슴 깊이 후회하고 있으며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그가 사석에서 국정원에 대해 했다는 얘기가 재미있다. 그는 “(국정원을) 좀 바꿔보려고 한다. 국정원 직원들이 제임스 본드를 닮았으면 좋겠다. 당당하고 멋있게 정보활동 할 수 있다. 본드처럼 연애도 하면서. 007 영화 보면 마지막 장면에 배에서 멋지게 포옹하지 않나. 그런 정보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정보위 의원들은 그가 원장 재임 중 국정원에 대한 야당의 불신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렸다고 본다.

비서실장이 된 뒤 그는 두 측면에서 ‘공격 포인트’를 올렸다. 첫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유승민 원내대표 등과 첫 고위 당·정·청 회의를 열었다. 2007년 박근혜 경선 캠프를 옮겨놓은 듯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김기춘 실장이 김무성 대표 전화 씹던 때가 엊그제인데 격세지감’ ‘청와대가 소통한다’는 말이 나왔다.

둘째, 박 대통령이 중동 순방차 국내에 없던 사이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가 피습됐다. 가뜩이나 한미관계가 삐걱거린다는 말이 나오던 차였다. 이병기 비서실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비서실과 순방팀은 대응을 조율했다. 박 대통령의 첫 일성(一聲)에 국내외 이목이 쏠렸는데, 박 대통령은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했다. “됐네, 잘했네” 하는 평가가 나왔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이병기식 대응은 간결·명료하다. 후져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박근혜 후보가 2012년 대선 때 ‘인혁당 2개의 판결’ 발언으로 지지율이 떨어질 때에도 그는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고 가자”고 박 후보를 이끈 것으로 알려진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여권 내부에선 ‘박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 상승은 이병기 효과인가’라는 얘기가 나온다.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여권 인사 D씨는 “이병기 실장 기용은 ‘임기 말 친정체제 구축 카드’를 미리 당겨 쓴 것인데, 현재까진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고 했다. D씨는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다’는 믿음을 준다면 청와대와 내각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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