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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비자금 신고 ‘불처벌’이 ‘증세 없는 복지’ 묘책?

국세청 vs 검찰청 조세전쟁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해외 비자금 신고 ‘불처벌’이 ‘증세 없는 복지’ 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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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세금·과태료만 추징하자”(국세청)
  • ● “소득원 추적, 형사처벌해야”(검찰청)
  • ● ‘택스 헤이븐’ 무력화하려는 CIA 비밀공작
  • ● 유럽 15개국에서 실시하는 ‘앰네스티 조치’
  • ● 해외 은닉 880조 유입 시 단숨에 세수적자 해소
올해 초 연말정산 때 적잖은 봉급생활자들은 속이 쓰렸다. 과거엔 돌려받았는데, 올해는 토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증세 없이 복지를 강화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이것이었느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유리지갑을 가진 월급쟁이를 지하경제의 구성원으로 보겠다는 것이냐”란 비난도 터져 나왔다.

여론이 나빠지자 정부와 국회는 연말정산 추가 납부금을 분납할 수 있도록 소득세법을 개정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가. 세금이 기대한 만큼 걷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금 탈루자가 많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이제는 한국도 상당히 투명해졌기에, 재주껏 절세(節稅)는 해도 탈세(脫稅)하기는 어렵다. 탈세자가 적은데도 세수(稅收)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는 것은 경제가 나빠졌다는 뜻이다.

봉급생활자나 영세한 자영업자가 내는 세금은 국가 차원에서 보면 비중이 크지 않다. 큰 세금은 대기업이 법인세 등으로 내줘야 한다. 경기가 좋으면 대기업은 이익을 많이 내고 세금도 많이 납부한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기업이 내는 세금이 줄어든다. 그러면 정부는 경기 침체로 고용까지 불안해진 봉급생활자로부터 더 많은 소득세를 뽑아내려 그들의 유리지갑을 뒤지는 ‘치사한’ 조치를 하게 된다.

2월 3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에 대해 “증세 없는 복지는 국민을 속이는 것”이라고 토로하고 협조를 구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바로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증세 없는 복지를 실현하겠다”며 김 대표의 의견을 ‘콱’ 막아버렸다. 박 대통령은 어떤 묘안이 있기에 급제동을 건 것일까.

증세와 복지 문제는 우리만 당면한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같은 문제에 직면했지만 잘 돌파한 나라들이 있다. 그 나라들이 ‘증세 없는 복지 강화’와 ‘증세 없는 경제 부흥’을 이룩한 비결을 알아보자.

해외 비자금 신고 ‘불처벌’이 ‘증세 없는 복지’ 묘책?

2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증세 없는 복지 공약 이행을 거듭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 앰네스티 조치의 시행 여부가 그의 공약 이행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택스 헤이븐(Tax Haven)

국세청은 강력히 부인하겠지만 한국은 세율이 매우 높은 나라에 속한다. 그런데도 무역고 1조 달러를 돌파해 세계 14위의 경제규모를 갖춘 것은 막대한 세금을 부담해온 기업들의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제조업이나 금융업, 관광업, 농업 등을 발전시켜 부를 일군 나라는 대부분 고율의 세금을 부과해 복지 정책과 부흥 정책을 펼친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한국 등이 여기에 속한다.

쿠웨이트나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자원이 많아 초저율의 세금을 부과하고도 국민에게 많은 혜택을 준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렇다 할 산업과 자원이 없는데도 잘사는 나라가 있다. 스위스가 대표적이다. 지금의 스위스는 알프스라는 관광자원이 있어 잘살지만, 관광이 보편화하지 못한 옛날에는 산맥에 둘러싸인 벽지(僻地)국가에 불과했다.

유럽 대륙의 양대 강국은 독일과 프랑스인데, 1870년 두 나라가 전쟁에 들어갔다(보불전쟁). 전쟁의 뒤끝은 약탈로 이어지고, 가진 자들은 피아(彼我)를 가리지 않고 첫 번째 약탈 대상이 된다. 그러나 더 당하는 것은 ‘지키는 힘’이 약한 서민이다. 그래서 빈부를 막론하고 재산을 숨기게 된다. 스위스는 그 점에 주목해 ‘박해받는 이들의 재산을 지켜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만들어낸 것이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 제도다. 이를 위해서 무기명(無記名) 방식을 도입했다. 계좌 개설자가 신분을 밝히지 않고 은행과 자신만 아는 암호로 계좌를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대신 이자는 거의 지급하지 않는다. 스위스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돈놀이’를 해, 먹고살아보려고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평생 모은 돈을 전쟁이나 정쟁(政爭)으로 하루아침에 잃는 것을 본 이들이 앞다퉈 스위스 은행에 돈을 맡긴 것이다. 덕분에 경제가 좋아지자 스위스는 1815년부터 주장해온 영세중립국의 지위를 강화했다. 싸우는 양쪽으로부터 모두 돈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등 이렇다 할 산업과 자원이 없는 소국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와 비슷한 제도를 만든 나라가 ‘자본주의 종주국’이라는 영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다. 세계 도처에 식민지와 보호령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그마한 식민지와 보호령은 본토인 영국이나 큰 식민지와 달리 먹고살 것이 적었다. 그래서 스위스를 따라 돈을 유치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우리말로는 조세피난처, 영어로는 ‘택스 헤이븐(Tax Haven·조세피난처)’제도를 만든 것. 그곳에서는 형식적으로 회사를 세울 수 있다. 내야 하는 세금(법인세)도 아주 적다. 그러니 사무실도 없는 ‘서류상의 회사(paper company)’가 많이 생겨났다. 물론 무기명 통장 제도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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