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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추억, 그 배롱나무

  • 김원옥 │시인, 전 인천시문화원협회장

추억, 그 배롱나무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 세심동이라 개심사일까, 개심사라 세심동일까, 아니면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일까. 아무튼 그 말은 언제나 좋고, 꼭 가봐야 할 것 같은 곳이다. 그러나 서산(瑞山)을 혹은 상왕산(象王山)을 모르지는 않았는데, 내 기억에서는 늘 그 곁을 그냥 지나치곤 한 것 같다. 그 절에 오늘 다녀왔다.

방문객이 많은 절치고는 초라하기까지 한 개심사. 절로 오르는 길, 천년의 세상사를 모두 알고 있는 소나무 우거진 오솔길 따라 그대로 놓인 듯한 돌계단. 가파르지 않은 돌계단을 천천히 오르자니 오히려 가쁜 숨이 차분해지고 그동안 허우적거렸던 나를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 디디면서 세상살이에 때 묻은 마음을 씻으라고 108계단인가보다. 경지에 놓인 다리, 너무 좁아 한 사람만 건널 수 있는 외나무다리, 무슨 말로 양보라는 것을 중생에게 가르칠까, 그거면 되는 거지.

생긴 그대로의 돌을 가져다 주춧돌로 사용하고, 자란 형상 그대로의 나무를 기둥으로 세워 지은 절, 갈라 터진 기둥은 그간의 풍상을 말해주고, 돌도 나무도 그냥 있는 그곳에 지붕을 얹은 듯한 절,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나도 그냥 그곳에 그렇게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해진다.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나도, 무성한 여름을 기다리는 아름드리나무도, 상왕산 그 코끼리(象)가 목을 축인다는 못도 모두 침묵이다. 도시의 소음도 마음의 시끄러움도 모두 침묵 속으로 흘러든다.

세심동 개심사 그리고 못(鏡池).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열고, 마음을 비쳐보고’, 잡스럽지 않은 마음 어디에도 없을 것이니 이렇게 적은 말수로 중생에게 희망을 주려 했던 것일까. 나 역시 이 말이 좋았고 그래서 오고 싶어 했으니까. 아마도 그것은 세상살이라는 것이 잡다한 균덩어리라는 것을 알게 된 어느 날부터였겠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나도 잡균으로 범벅이 되어 그토록 더러워졌을 테고, 아무튼 뭔가를 그리 씻고 싶었는지는 모르겠고, 어떤 절이기에 마음이 씻어지나 하는 생각도 들고, 꼭 한 번 가보리라 하면서도 얼른 나서지 못했던 절 세심동 개심사.

洗心洞 開心寺

추억, 그 배롱나무

일러스트 김수진

여기저기 둘러보다 발길이 멈춘 곳은 본당 정면에 있는 커다란 오래 묵은 나무였다. 뒤틀어지고 꼬인 가지들, 그래도 하늘을 향해 뻗어보는 팔, 껍질조차 없는 미끈한 알몸의 그 나무, 그 나무를 보는 순간 소리 없이 놀랐다. 아, 목백일홍이구나! 언제 보았더라 저런 나무를….

일곱 살 아니면 여덟 살쯤이었을 거다. 어디였을까. 아마 부산 근처였겠지. 6·25전쟁이 일어나고 우리 가족이 부산으로 피난을 가 3년간 살았을 당시였으니까. 그 시절 엄마는 끼니를 때우는 방편으로 나물을 무지하게 많이 뜯었다. 나는 늘 엄마를 따라다녔다. 엄마는 나물을 캐기 위해 그곳에 자주 갔었다. 그곳 논두렁 밭두렁에는 담배나물이 지천에 깔려 있었고, 그저 손으로 뜯기만 해도 되었기에 나도 열심히 뜯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물을 뜯던 그 기억은 선명하지만 그곳이 절인지 고택인지 지금에 와서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오래된, 어쩌면 한 귀퉁이가 허물어졌을지도 모를 한옥이 있었고, 그 집 가까이에 나무가 있었는데 한 그루인지 두 그루인지 잘 모르겠으나, 그 나무가 커서 주변에는 이렇다 할 무엇도 없이 그저 공터였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그 무서운 집을 등지고 서서 나는 하늘만큼이나 큰 그 나무를, 하늘을 온통 뒤덮은 그 나무를, 머리를 뒤로 한껏 젖히고서야 겨우 나무 꼭대기를 볼 수 있었다.

그 나무는 밑동에서 몸통이 서너 갈래로 갈라져 있었고 굉장히 굵었고 커다란 구멍이 있어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앉아보기도 했다. 나무 몸통 안에 앉아보니 퀴퀴한 냄새가 났다. 지금도 그때의 그 해묵은 냄새가 나는 듯하다. 너무 늙어서 죽을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나무는 거무스레하고 가지들이 마디마디 각을 이루며 휘어져 있었다. 온 하늘을 덮을 만큼 큰 그 나무가 숱하게 많이 뻗어낸 큰 가지 중 하나에는 꽃이 피어 있었다.

경사 있을라치면 꽃피우는 나무

붉은 꽃! 얼마나 근사했던지. 나도 모르게 예쁘다고 소리 지르며 그 나무에 기어올랐고, 그 후 나무에 오르는 버릇이 생겨 꽤 컸을 때까지 나무에 오르곤 했다. 나는 정신없이 그 꽃을 바라보고 있었고 엄마는 어느 아주머니와 무슨 말을 많이 했는데 그 나무는 목백일홍이라는 말, 고목에 꽃 핀다는 말을 들었다.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그 나무에서 꽃이 피고 다음 해에 해방이 되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해방이란 참 좋은 건가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꽃이 피지 않아도 그 나무를 아무도 베어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예부터 동네에 경사가 있을라치면 꽃을 피우는 나무이기에.

그런데 그때 거기 갔을 때 그 나무는 그렇게 꽃을 피웠던 것이다. 그것도 있는 힘을 다해 한쪽 가지에만. 그렇게라도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나무에 핀 꽃을 그때 처음 보았고 그 후에도 그곳에 갔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꽃을 더 본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그리고 휴전이 되지 않았을까. 그 후 나는 일년초 백일홍을 보면서 이건 왜 또 백일홍인가 하고 한동안 어리둥절했더랬다.

아무튼 그 거대한 나무, 뻗고 싶은 방향으로 숱한 팔을 거침없이 벌리고 있는 그 나무, 모든 것을 마치 보듬어 안고 싶어 하는 듯한 그 나무, 그러나 누구의 구속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그 자유분방한 나무, 오늘 개심사에서 보았던 것이다. 이 배롱나무도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겠지. 그때 그 목백일홍을 추억 속에서 끄집어내고 싶어 몇 십 년 후에 이곳에 오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아름답던 그 순간은 짧고 살아온 날은 길어 그때 그 시간은 지금 여기 없어도 그때 그 모습은 지금 여기 파스텔로 그린 그림처럼 차분히 떠오른다. 엄마는 떠나고, 떠난 자리에 있어야 할 추억도 야위었고, 그때의 풍경을 언제나 곁에 두어야 하는 건데 그때와 지금의 거리가 너무 멀다보니 오랫동안 잊어서 자신도 모르게 깊이 묻어두었었나 보다.

이리도 오랫동안 묻어두어 영영 캄캄하게 잊은 추억으로 두지 말고 가끔 되뇔 수 있는 삶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바람이 불어오듯 기억이 다시 살아나 오래전에 떠나온 그 길에 지금 다시 돌아가보니 흘러간 시간의 그리움이 배롱나무에 있었다.

엄마의 아늑한 온기

추억, 그 배롱나무
김원옥

1945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불문과 졸업, 성균관대 석사(불문학), 프랑스 루앙대 박사과정 수료

인천시연수문화원장, 인천광역시문화원장협회장 역임

2009년 ‘정신과 표현’으로 등단

저서 : 에세이 ‘먼 데서 오는 여인’, 시집 ‘바다의 비망록’, 역서 ‘실존주의’ ‘사랑은 이름표를 달지 않는다’ 등


엄마와 배롱나무와 함께 있던 그날 속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따뜻한 엄마의 온기가 있어 아늑해짐을 느낀다. 그곳이 어딘지, 아직 그 배롱나무는 살아 있는지, 그곳이 꿈처럼 막연한 어느 상상의 장소는 아닌지. 아무튼 잡스러움으로 부글거리던 마음이 개심사에서 잠시나마 평정심을 가지게 된 듯하다. 저 목백일홍은 언제 꽃을 피우나, 7월쯤? 그때 다시 한 번 오리라 생각하면서 한참동안 그 나무를 바라보았다.

개심사에는 지금 삼색 왕겹벚꽃이 만발하고 있다. 이 소담스러운 벚꽃잎은 빗방울처럼 연못으로 하나씩 하나씩 내려앉는다. 물고기가 꽃잎 사이로 헤엄쳐 다니고 그 물고기 위로 흰 구름 한 조각 흐르고 있다. 세월처럼.

신동아 2015년 4월 호

김원옥 │시인, 전 인천시문화원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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