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호

“靑 실세들, 국정원에 ‘국내 문제 개입’ 요구했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전쟁’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입력2015-04-22 16:1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왜 국정원은 ‘권력의 시녀’가 됐나
    • 인사권 없는 국정원장, 개혁할 수 있나
    • 북한 붕괴 공작은 레짐 체인지→민주화운동 順
    • ‘과거 실적의 저주’ 퍼붓는 권력, ‘먹튀’ 하는 야당
    “靑 실세들, 국정원에 ‘국내 문제 개입’ 요구했다”

    3월 18일 이병호 신임 국정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박근혜 대통령.

    지난 2월, 청와대 측근 3인방 비호로 여론이 좋지 않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장 이병기 씨를 대통령비서실장에, 19년 전 안기부 2차장으로 물러난 이병호 씨를 국정원장에 지명했다. 올드보이를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인데, 뜻밖에도 “인사를 아주 잘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권력과 국가정보의 생리를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박 대통령이 한 인사 가운데 이번 것이 최고”라는 찬사도 나왔다.

    국정원은 크게 국내와 해외(북한 포함) 파트로 나뉘는데, 이 중 ‘절대적으로’ 중시돼온 것은 국내 파트다. 대통령이 직면하는 많은 모순을 이 파트가 해결해왔기 때문이다. 군사정부 시절 이 파트는 ‘총선에서 여당이 누구를 공천하면 이길 수 있는지’까지 조사해 보고했다. 정치에 관여한 것이 아니라 아예 정치를 했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실명제법을 어기고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가 갖고 있던 대통령선거 잔금을 관리해주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제1차 남북정상회담 직전 제3국을 통해 ‘정부 돈’ 1억 달러를 몰래 북한에 보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기에 미 재무성과 CIA는 북한으로 가는 자금을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고 우리도 협조해왔다. 그런데 당시 국정원은 미국의 눈을 속여가며 ‘우리 국민이 낸 세금’을 북한으로 보내는 ‘친북’ 활동을 했다.

    그때 국정원이 활용한 것이 대공(對共)수사권과 보안감사권 등이다. 국정원은 관련법이 보장한 이 권한을 확대 적용해 대통령 관심 사항을 해결했다. 그러니 무소불위(無所不爲)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반(反)작용으로 나온 것이 ‘정치개입’ 시비다. 이 시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계속됐는데, 이는 어떤 세력이 집권해도 국정원은 대통령의 관심 사항을 해결하는 ‘권력의 시녀’로 활동해왔다는 뜻이 된다.

    ‘시녀’를 잘 부리기 위해 역대 권력은 모두 국정원장에 대통령의 측근을 임명했다. 정보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국정원에서 예산을 다루는 직책은 기조실장이 맡는데, 기획조정실장도 항상 권력이 지명했다. 국정원 수뇌부에는, 국정원 본연의 업무보다는 권력의 생리를 더 잘 아는 이들이 ‘날아든’ 것이다. 그러니 국정원은 국익을 위한 공작을 제대로 이행하기 어려웠다.



    국내 파트에 치이는 해외 파트

    해외공작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전문 영역이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낙하산을 타고 들어간 이들은 ‘결재’하는 것으로만 이 분야를 이해한다. 해외공작은 기조실장이 공작비를 배정함으로써 시작되니, 기조실장과 원장 등은 그 정도로만 공작을 이해하고 지내는 것이다.

    그러다 대통령이 해결을 요구하는 큰 문제가 일어나면, 그일에 몰두한다. 순차적으로 해야 하는 해외공작의 집행과 예산 승인 등은 지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해외 파트는 일손을 놓고 국내 문제가 해결되길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국익을 위한 공작은 일관성 있게 진행되지 못하고, 엇박자를 내게 된다.

    권력이 국가정보기관을 접수해야 하는 이유로 에드거 후버 전 미 FBI 국장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에드거 후버는 인사권을 비롯한 FBI의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8명의 대통령이 재임한 48년 동안(1924~1972) FBI 국장으로 있으면서 대통령들을 ‘요리’할 수 있었다.

    국내에 많은 ‘촉수’를 가진 FBI는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여성 편력이 어떠했는지 등을 추적할 수 있었던 것. 후버는 그것을 이용해 대통령을 슬쩍 ‘위협’하고, 대통령이 원하는 것을 ‘해결’해주고 생색을 냄으로써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했다. 후버 국장 사례는 한 사람이 국내 정보기관을 독점하면 대통령도 꼼짝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두렵기에 권력은, 정보기관 안에서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도록 인사를 한다. 국정원장뿐만 아니라 기조실장, 국내 차장, 주요 국장을 직접 임명해 원장의 정보 독점을 막는 것이다. 이 체제에서는 진급을 기대하는 하급자가 원장 등을 견제하는 정권의 ‘빨대’가 될 수 있다. ‘충성경쟁’이 일어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국정원은 더욱 충성스러운 ‘정권의 시녀’가 돼버린다. 이것이 국정원의 국내파트를 비대하게 만들고 왜곡시킨 핵심 요인이다.

    그때마다 ‘찬밥’이 되는 해외파트는, 국내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공간에서 활동한다. 국내 파트가 ‘슈퍼 갑(甲)’의 처지에서 대통령의 고민을 풀어준다면, 해외 파트는 ‘절대 을(乙)’의 처지에서 움직인다. 해외에서는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으니 국정원이 가진 대공수사권과 보안감사권 등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거꾸로 주재국의 정보수사기관이 이 권한을 갖고 감시하니 해외 파트 요원들은 위축된다.

    국정원의 국내 파트 요원이라면 영남이나 호남처럼 지방색이 강한 곳 출신이 유리할 수 있다. 그래야 그곳 출신이 권력을 잡았을 때 출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호 원장은 지역 유대감이 약한 경기 김포 출신이다. 육사 19기(1963년 임관)로 임관해 위관 장교 때 서울대 영문과에서 위탁교육을 받았다.

    정치 색깔 없는 이병호

    “靑 실세들, 국정원에 ‘국내 문제 개입’ 요구했다”

    1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측근 3인방을 변호해 논란을 일으켰다.

    소령으로 전역한 그는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에 ‘경력’으로 들어와(1970년), 유창한 영어를 바탕으로 1996년 해외차장(2차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해외 파트에서 근무했다. 퇴임 후에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인 말레이시아 주재 대사를 지냈는데, 이는 국정원 해외 파트 활동을 이어간 것이라 하겠다. 국정원에서 보낸 세월이 30년에 이르기에 공채 출신은 아니지만 그는 순수 국정원 출신으로 인정받는다.

    국정원 출신으로 처음 국정원장이 된 이는 김만복 씨다. 김씨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여러 번 고개를 숙인 일로 호된 비난을 받았다. 2007년 경기도 성남 분당샘물교회의 목사와 신도 23명이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를 갔다가 탈레반에 붙잡혀 2명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국정원은 탈레반에 상당한 자금을 주고 교섭해 21명을 구해냈다.

    그때 김 원장은 선글라스만 씌운 소스(source, 비밀공작 요원을 가리키는 정보 세계 용어)를 대동하고 카메라 앞에 나와 구출 경위를 설명했다. 정보기관의 비밀공작 요원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노출돼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을 어긴 것이다. 그래서 국정원 직원들은 그를 ‘날아온’ 국정원장보다 못한 이로 여긴다. 그는 국내 파트 출신이다.

    해외 파트는 그러한 실수를 하지 않는다. 해외 파트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정원장이 됐다는 점, 그리고 정치세력과 연결될 만한 배경이 없다는 점 때문에 ‘이병호 씨가 국정원장이 된 것은 잘된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덧붙여 “전임 국정원장인 이병기 씨가 대통령비서실장에 임명됐기에 더 잘된 인사”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병호 씨를 국정원장에 임명한 인사만으로는 30% 정도 잘된 일인데, 이병기 씨가 비서실장에 임명됐기에 100% 잘한 인사라는 것이다.

    이 평가는 이병호 원장이 박 대통령과 별다른 인연이 없는 데서 나온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 박근혜 후보 검증 토론회가 열렸을 때 패널로 참여해 박 후보에게 질의한 인연밖에 없다. 박근혜 수첩에 이름을 올린 것도 아니고, 박근혜 캠프에서 특보 등으로 뛴 적도 없는 그가 국정원장에 임명된 데는 이병기 비서실장의 천거가 있다는 시각이 많다.

    이병기 실장은 박 대통령과 끈끈한 인연이 있다. 외교관 출신(외시 8회)인 이 실장의 최대 장점은 인품이다. 그는 5공 초기 노태우 민정당 대표와 인연을 맺어 그의 측근으로 활동하다, 그가 대통령이 되자 의전수석을 했다. 노태우맨인데도 그는 김영삼 대통령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후 잠시 외교안보연구원에 가 있던 그는 전두환 · 노태우씨 등이 내란 혐의로 법정에 설 때 안기부장 특보를 맡았다. 그리고 이병호 씨에 이어 김영삼 정부가 끝나는 날까지 해외차장을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한나라당에서 활동한 이 실장은 이회창 총재를 돕다가 이명박·박근혜가 대선 후보를 놓고 경쟁하자 박근혜 선대위 부위원장을 맡았다. 박 대통령도 그의 인품에 매료됐다고 한다. 그 때문에 조각(組閣)을 할 때 중책을 맡기려 했으나 고사해 주일대사에 임명했다. 그러나 그를 잊지 않은 박 대통령은, 국정원장을 거쳐 비서실장으로 불러들였다.

    이병기 실장은 이병호 원장보다 일곱 살 아래다. 그러나 두 사람 관계는 매우 좋아서 야인 시절 이들은 국가 정보를 공부하는 모임을 유지했다. 그런 까닭에 이 실장은 이 원장이 생각하는 국가정보원 개혁안을 잘 안다고 한다. 이 실장이 이 원장을 천거해 국가정보원장으로 만들었으니, 이 원장이 국정원을 탈(脫)정치화하는 개혁을 할 때 바람막이가 돼줄 것으로 전망한다.

    반대 의견도 있다. 권력의 생리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윤회 사건 때 박 대통령은 많은 사람이 비난한 측근 3인방을 싸고돌았다. 3인방은 오로지 박 대통령 옹위만 생각하니 박 대통령은 그들을 절대적으로 신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병기라고 해도 그러한 3인방을 꺾을 수 없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다.

    “靑 실세들, 국정원에 ‘국내 문제 개입’ 요구했다”

    이병호 씨에게 국정원장을 넘겨주고 대통령비서실장이 된 이병기 씨. 그는 권력의 압박과 야당의 비난을 뚫고 국정원을 통일 추진 기관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이 지적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실패를 근거로 한 것이다. 김 전 실장은 검찰을 장악해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접근에서만큼은 3인방에 밀렸다는 지적이 많다. 국정원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세월호 침몰사건 후 희생자 유족인 유민 아빠의 단식으로 박 대통령이 곤경에 처했을 때 3인방은 ‘세월호 사건 대책을 마련하라’고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을 들볶았다고 한다. 그에 대해 남 원장은 “그것은 국내 문제이니 할 수가 없다”고 맞섰는데, 그때 김 실장은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당시 국회는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막기 위해 국정원법 등을 개정하는 개혁특위를 가동하고 있었다. 세월호 침몰 같은 안전사고는 안전행정부나 해양수산부가 맡아 해결하는 것이 법적으로도 옳다. 그런데 3인방은 대통령 옹위만을 목표로 삼았기에 불법 여부는 살피지 않고, 국정원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국정원 사람들은 이러한 요구를 ‘과거 실적의 저주’라고 부른다.

    ‘과거 실적의 저주’

    과거 국정원은 권력이 바라는 일을 해결해준 실적이 많다. 때문에 새로 들어선 권력도 그것을 원하게 되고, 국정원에서는 ‘우리는 대통령 직속기관이니 하명 사항을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정을 받아야 본연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직원이 나왔다. 그 결과 국정원은 정치 개입 시비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이 저주의 고리를 실력자들이 끊어내야 한다. 그런데 검사 출신으로 누구보다 법에 밝고 청와대 사정을 잘 아는 김기춘 전 실장은 침묵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끝내 움직이지 않은 남 원장을 경질하는 데 동참했다. 이 연장선에서 터져 나온 것이 지난해 8월의 이모 실장과 고모 국장의 인사 파문이다. ‘미운 놈’은 쳐내고 자기편 사람은 계속 두려다 말썽이 일자 덮어버렸다.

    이 사건은 이병기 당시 원장이 3인방의 간섭을 절반쯤 막아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한 그가 비서실장이 됐으니, 3인방 제어를 놓고 설왕설래 분석이 많은 것이다. 현실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병호 원장은 전임 이병기 원장이 인사 파동을 겪은 것처럼 여전히 장벽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을 순수 정보수사기관으로 바꿔놓으려면, 원장이 권력자와 통하지 않는 이들을 차장과 국장에 임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원장은 그러한 인사를 하지 못한다. 관련법이 정무직인 차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론되는 것이 인사권의 ‘위임’이다. 관련법상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더라도 위임을 하면 원장은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 청와대는 그러한 배려를 하지 않는다. 전임 원장인 이병기 씨가 비서실장이 됐는데도.

    이러한 상황에서 이병호 원장은 다음과 같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첫째, 관련법의 제정과 개정이다. 국정원 개혁특위를 가동한 국회는 지난해 말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형태로 국정원법을 개정했다.

    그때 여당과 국정원은 국정원이 해외 활동과 대공수사 등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관련 법안을 제정하고 개정해달라고 요구했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엄격히 금지하되 순수 정보수사기관으로 활동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달라고 한 것. 그에 대해 야당은 먼저 국정원법을 개정하고 다음에 관련법을 제·개정하자고 했는데, 관련법의 제·개정은 현재 ‘먹튀’가 된 상태다.

    야당의 ‘먹튀’

    통신비밀보호법은 마약이나 테러 살인 등 강력사건에 대해서는 부장판사가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만 정보수사기관의 감청을 허용한다. 그런데 감청장비를 마련해 설치하는 주체에 대한 언급이 없다. 통신회사는 자기 돈으로 그러한 장비를 마련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법은 있어도 제대로 된 감청은 하지 못한다. 국정원 등이 이 장비를 제공하는 쪽으로 이 법을 개정해줘야 가능하다.

    9·11 사건은 테러의 위험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테러 방지에 관한 법을 만들지 않고 있다. 대통령 훈령인 ‘국가 대(對)테러 활동지침’만 갖고 테러 방지 활동을 한다. 테러는 은밀하게 일어나니 정보를 가진 국정원이 중심이 돼 대응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대테러법을 만들자는 데 대해 야당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피하고 있다. 지금의 야당이 여당이었을 때는 그들이 이 법을 만들자고 하고 현재 여당이 미뤘었다. 이는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따라 국가 안보를 등한시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농협 해킹에 이어 원전이 해킹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우리나라에는 사이버 테러 방지법이 없다. 이 법 역시 여야 간 싸움으로 제정이 미뤄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범죄자금의 세탁과 외화의 불법 유출을 막기 위해 2001년 금융정보보호원을 만들었다. 이 보호원은 의심스러운 자금이 있으면 이를 추적하는데, 그 결과를 수사정보기관에 보내지 못한다. 관련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특정금융정보법을 제정해야 하는데, 구린 데가 있는지 정치권은 이 법 제정을 피하고 있다.

    해외요원을 위한 국정원직원법 개정도 시급한 과제다. 이 법은 팀장 이상 간부가 몇 년 내 진급하지 못하면 계급정년에 의해 퇴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정원의 간부 직원들은 정치권에 줄을 대며 진급 경쟁을 한다. 그런데 해외파트 요원들은 그러한 연줄을 만들기 힘든 데다, 금방 실적이 나오지 않는 장기 공작을 많이 하니 절대적으로 진급에 불리하다. 그래서 해외 파트만큼은 계급정년을 유예하는 조항을 넣는 개정을 해야 한다.

    관련법의 제·개정과 함께 이 원장은 북한 핵 위협 제거와 통일 기반 마련에 진력해야 한다. 이 일은 한꺼번에 하는 것이 아니고, 단계적인 공작으로 풀어가야 한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3대 세습을 한 북한 김씨 왕조를 붕괴시키는 것이다. 김씨 정권 붕괴를 국정원의 제1 목표로 삼아야 하는 이유는, ‘과거의 우리’를 돌아보면 쉽게 이해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과 1979년 핵무장을 추진했다. 1979년의 핵무장은 1974년의 실패가 토대가 된 데다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려 했기에 더 강력히 추진됐다. 그러한 때 스나이더 주한 미대사를 자주 만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 그리고 혼란을 겪다가 전두환 정부가 들어섰는데, 이것은 영어로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라고 하는 정권교체에 해당한다.



    레짐 체인지가 1단계 목표

    혹자들은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은 성격이 같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큰 틀에서 봤을 때만이고, 세부사항을 살피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전두환 정권은 정통성을 얻기 위해 김종필 씨 등 박정권 실세들의 재산을 빼앗는 등 많은 탄압을 했다. 정통성 확보를 위해 ‘거대한 외부’인 미국의 요구도 받아들였다. 전두환 정부는 한국원자력연구소의 핵심 인력을 다수 밀어내고 이 연구소 이름을 한국에너지연구소로 바꿔버렸다.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 것이다.

    따라서 김씨 세습 정권을 다른 정권으로 교체해야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리고 북한 정권을 교체해야 북한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먼저 정권 교체에 전력을 기울이고 그것이 성공하면 민주화 공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 중요한 것이 북한인들에 의한 민주화다. 한국이 개입한 흔적을 남기지 않고, 북한인들에 의해 혁명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전직 국정원 간부의 말이다.

    “대북공작은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국정원은 국내 파트가 가끔 그렇게 하듯, 절대로 행동 주체를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북한을 흔든다는 것을 알면, 반남(反南) 정서를 가진 누군가의 선동으로, 북한인들은 큰 불안감을 가져, ‘반남’ 정서로 똘똘 뭉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혁명은 음지에서 일하는 것에 숙달된 해외 파트가 해내야 한다. 박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면 그는 국정원이 통일을 위한 공작에 전념하도록 탈정치화하는 개혁부터 해야 한다.”

    이병호의 국정원이 할 일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출발점이 개정된 국정원법이 요구하듯 국정원의 탈정치화다. 그런데 박 대통령 주변에는 3인방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박대통령의 보호를 받으면서. 이것을 이병기 실장이 막아주어야 한다.

    야당은 야당대로 탈정치화한 국정원이 일할 수 있는 법을 만드는 데 찬성하지 않는다. 이 한계도 이병기-이병호 체제는 넘어서야 한다. 양이(兩李)는 과거 실적의 저주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