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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볼티모어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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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티스의 그림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은 파리나 뉴욕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미국 동부의 자그마한 항구도시 볼티모어에 있다. ‘인텔리’ 콘 자매는 피카소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교유하면서 유독 마티스에 빠져 그의 작품을 무려 500여 점이나 수집, 볼티모어 미술관에 물려줬다.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볼티모어 미술관은 존스홉킨스대 캠퍼스 안에 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 1868~1954)를 흠모한다면 꼭 가봐야 할 미국 중소도시가 있다. 워싱턴DC에서 북동쪽으로 60km가량 떨어진 항구도시 볼티모어다. 볼티모어는 메릴랜드 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인구는 270만 명 정도다. 우리에겐 의과대학으로 유명한 미국의 명문 사립대 존스홉킨스 대학이 바로 이 도시에 있다. 존스홉킨스대의 넓은 숲 속에는 예쁜 석조건물 하나가 자리 잡고 있는데, 바로 볼티모어 미술관(Baltimore Museum of Art)이다. 세계에서 마티스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다.

대학 캠퍼스 내에 있지만 볼티모어 미술관은 시민들의 정성과 땀으로 세워진 공공 미술관이다. 이곳 기업과 문화인들은 10여 년간 꾸준히 노력해 1914년 미술관을 설립하게 됐다. 하지만 설립 당시엔 독립 건물도 없었고, 소장 그림도 단 한 점에 지나지 않았다. 1917년이 돼서야 존스홉킨스대로부터 현재 위치에 미술관을 지을 땅 제공을 약속받았고, 다시 10년이 지난 1927년에야 공사를 시작, 1929년에 완공했다.

개관 행사는 볼티모어 시의 큰 축제였다. 하지만 전시 작품 대부분은 이 지역 미술품 소장자들로부터 빌려온 것들이었다. 특기할 점은 이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The Thinker)’이 전시됐다는 사실. ‘생각하는 사람’을 포함해 개관 당시 빌려온 작품은 대부분 미술관에 기증됐다. 이후 소장품은 급속히 늘어났고 미술관도 계속 증축해나갔다. 2014년에는 미술관 설립 100주년을 맞아 큰 행사가 열렸다.

콘 자매와 거트루드

볼티모어는 미국의 발전과 궤를 같이해온 오래된 역사도시다. 1706년 시작된 담배 무역을 바탕으로 1729년 마을이 들어서고 1797년에 정식 행정구역이 됐다. 미국 건국 초창기엔 뉴욕 다음으로 이민자가 많이 상륙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볼티모어도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현재는 서비스업 중심으로 새로운 탈출구를 찾고 있지만 1960년대 이래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볼티모어는 흑인 인구 비중이 유난히 높다. 1950년에는 23.8%였는데 1970년에는 46.4%까지 올라갔다. 1968년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됐을 때는 폭동이 일어나 도시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2009년 기준으로 흑인 인구 비중은 63.2%에 달한다.

이러한 특성을 감안할 때 볼티모어 미술관은 볼티모어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장소다. 미술관이 볼티모어에 ‘문화도시’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미술관 개축 및 확장 프로젝트가 계속 진행 중이고, 동시대 작품(contemporary art works)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에서 마티스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이 파리나 뉴욕이 아닌 이름도 낯선 볼티모어에 있다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볼티모어 미술관은 어떻게 해서 20세기 최고 거장으로 통하는 마티스 작품을 많이 소장할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은 ‘콘(Cone)’이라는 성(姓)을 가진 자매의 이야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클라리벨 콘(Claribel Cone · 1864~1929)과 에타 콘(Etta Cone·1870~1949)은 테네시 주에서 식료품 잡화상으로 백만장자가 된 부모 슬하에 태어났다. 부모가 1871년 볼티모어로 옮겨와 사업을 했기에 콘 자매는 이 도시와 인연을 맺게 됐다. 언니 클라리벨은 의사가 됐고 동생 에타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며 언니네 가사를 도왔다. 클라리벨은 개업하는 대신, 존스홉킨스 의대 실험실에서 일했다. 자매는 단짝친구처럼 늘 함께 붙어다녔다.

그 무렵 콘 자매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한 사람이 등장한다.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1874~1964)이라는 피츠버그 태생의 여인이다. 그녀 역시 아버지가 철도회사를 경영한 대부호였는데, 부모가 일찍 타계하는 바람에 오빠가 사업을 이어받았다. 오빠는 여동생 거트루드에게 많은 재산을 떼주면서 볼티모어에 있는 외가 식구들과 함께 살도록 했다.

콘 자매는 당시 유행하던 사교 모임인 살롱을 운영했는데, 거트루드가 거기 참여하며 서로 가까워졌다. 이들은 토요일마다 만나 친목을 도모하며 세상사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부잣집 출신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신여성인 만큼 예술과 문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거트루드 역시 보스턴 명문 여자대학인 래드클리프대를 졸업하고 2년간 존스홉킨스 의대를 다닌 인텔리였다.

거트루드는 1903년 파리로 건너가 평생 거기서 살았다. 그녀는 파리에서 콘 자매의 살롱과 같은 사교 모임을 이끌었고 파리 사교계의 유명인사가 됐다. 특히 현대미술에 대한 탁월한 식견으로 명성을 날렸다. 1904년부터는 오빠 레오 스타인도 파리로 건너와 함께 현대미술 수집에 나섰다. 1913년까지 10여 년간 수집을 계속했기 때문에 이 남매는 현대미술 수집가로 명성이 높았다. 그림을 보는 거트루드의 안목은 예리했고, 곧 미국 신문에 자주 거론될 정도로 미국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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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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