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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볼티모어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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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인 그림 수집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500여 점의 마티스 작품을 볼티모어 미술관에 기증한 콘 자매.

거트루드와 오빠 레오는 당시 파리의 최고 미술상이던 볼라르(Vallard)의 화랑에서 많은 그림을 구입했다. 주로 고갱, 고흐, 세잔, 르누아르, 마티스, 피카소 등의 작품이었다. 이들 작품은 지금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을 정도의 걸작이지만, 당시는 무명 화가의 그림에 불과했다. 거트루드의 이러한 그림 수집에 동참했던 이들이 바로 콘 자매다.

콘 자매는 1901년부터 거의 매년 유럽 여행을 떠났다. 1905년부터는 파리에 머물며 거트루드와 자주 만났다. 이때 동생 에타는 거트루드로부터 피카소를 소개 받았고, 1년 뒤에는 마티스를 소개받았다. 에타는 곧 마티스에 빠졌고, 한평생 마티스 그림을 수집했다. 당시만 해도 마티스는 유명 화가가 아니어서 에타는 그를 도와주는 차원에서 그림을 사줬다. 더러는 거트루드를 통해 싼 가격에 구입하기도 했다. 피카소 스튜디오에서는 내버려진 드로잉을 한 점당 2~3달러에 사기도 했다. 요즘 기준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다.

콘 자매는 거트루드의 자문에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견문을 쌓아가면서 그림 수집에 나섰고 강한 개성을 발휘했다. 언니 클라리벨도 구매에 공격적이었다. 마음에 들면 거액도 기꺼이 내놨다. 마티스의 ‘블루 누드(Blue Nude)’를 12만 프랑에 구입했고, 세잔의 ‘생빅토아르 산(Mont Sainte-Victoire seen from the Bibemus Quarry)’은 41만 프랑에 구입했다.

에타는 언니보다는 보수적이었다. 주로 1만 프랑 안팎의 작품을 구입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티스의 작품에도 언니처럼 큰 금액을 지불하진 않았다. 1929년 언니가 사망한 뒤에는 에타도 공격적으로 그림 구매에 나섰다. 1935년에는 마티스의 ‘누워 있는 큰 누드(Large Reclining Nude)’를 구입했다.



마티스를 사랑한 미국 여인들의 유산

마티스의 ‘블루 누드’ (Blue Nude, 1907).

기증작 가치 1조 원 넘어

마티스는 남프랑스 지중해 연안 니스에서 많은 작품을 그렸는데, 콘 자매는 니스 시절의 마티스 작품을 특히 좋아했다. 니스에는 마티스의 작업실이 기념관으로 보존돼 있다. 하지만 필자가 2008년 방문했을 때는 관광객도 잘 찾지 않는 다소 쓸쓸한 장소로 보였다. 마티스 작품도 몇 점 없었다. 대개 작가의 기념관에는 그 작가의 작품이 많지 않다. 좋은 작품은 이미 다른 사람들 손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콘 자매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독신녀 비율이 약 10%에 불과하던 시절에 자매 둘 다 결혼하지 않은 것이다. 에타는 한때 거트루드의 오빠 레오와 연인 사이였다고도 하는데 결혼은 하지 않았다.

콘 자매가 구입한 작품들은 볼티모어에 있는 그들의 아파트에 빼곡하게 전시됐다. 에타는 때때로 소장품을 볼티모어 미술관에 빌려줘 전시하게 했다. 클라리벨은 동생에게 자기 소장 작품들을 물려주며 볼티모어 미술관이 현대 작품을 평가할 만큼 수준이 높아지면 기증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1940년부터 미국의 여러 미술관이 콘 자매의 수집품을 기증받으려고 서로 경쟁했다. 그러나 1949년 에타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클라리벨의 유언에 따라 콘 자매의 수집품 3000여 점은 볼티모어 미술관에 기증됐다. 오늘날의 가치로 따지자면 10억 달러(약 1조1000억 원)가 넘는다고 한다. 1957년부터는 미술관 내에 ‘콘 전시관’이 따로 마련됐다. 전 세계 유명 미술관들이 이 작품들을 빌려가서 전시하기도 한다.

콘 자매의 소장품 중엔 마티스를 비롯해 피카소, 세잔, 고갱 등의 작품이 많다. 마티스 작품은 500여 점에 달하고, 피카소 작품도 100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콘 자매는 그림 외에 카펫, 보석, 가구 등도 다수 수집했고 아시아 작품, 이집트나 아프리카 조각품, 중동 카펫, 인도 금속공예, 일본 판화 등도 수집했다. 이들 수집품도 대부분 볼티모어 미술관에 기증됐다.

볼티모어 미술관과 인연이 깊은 또 다른 자매가 있으니 메이 자매다. 세이디 메이(Saidie Adler May·1879~1951)와 블란체 메이(Blanche Adler May·1877~1941)는 독일에서 볼티모어로 이민 온 유대계 독일인의 딸들로 콘 자매의 인척이기도 했다. 메이 자매의 아버지는 볼티모어에서 구두 제조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메이 자매는 명문 사립학교를 다니면서 유복하게 자랐다. 사업차 자주 독일을 방문하는 아버지 덕에 메이 자매도 함께 유럽을 여행하며 당시 앞서가는 유럽 문명에 익숙해졌다. 세이디는 결혼해 주부로 지내다 남편과 이혼하고 미술 작품 수집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세이디는 언니 블란체와 함께 프랑스를 자주 여행하며 당시 인상파 등 전위예술가들과 친분을 맺었다. 이들은 인상파 후원자로 그림을 많이 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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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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