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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리얼해서 슬픈 게임 ‘내 꿈은 정규직’ 대박 이진포 퀵터틀 대표

  • 강지남 기자 | layra@donga.com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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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써 19번째 권고사직이다. 업무에 바빠 상사 호출을 놓쳤다가, 하루 접속 안 해 ‘무단결근’으로, 진짜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가 망해서…. 제목부터 슬픈데 직접 해보면 더 슬픈 모바일게임, ‘내 꿈은 정규직’ 얘기다. 이 게임의 목표는 인턴으로 시작해 계약직, 정규직을 거쳐 사장이 되는 것. 입소문을 타고 한 달 만에 50만 다운로드를 돌파, 인디게임 업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게임 개발자 이진포 퀵터틀(Quick Turtle) 대표는 “엉금엉금 기었더니 생각외로 빨리 유명세를 타게 됐다”고 말한다.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이진포(28) 씨는 게임 및 인터넷 회사가 즐비한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에 산다. 요즘도 거의 매일 밤새워 패치(patch·게임의 일부 파일이나 소스코드 등을 수정하는 것) 작업을 한다는 그를 4월 30일 이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게임을 출시한 지 정확히 한 달 되던 날이다.

# “TV에 내 게임이 나오네…?”

“지금도 이게 꿈이 아닐까, 잠에서 깨면 다 사라지는 것 아닌가 걱정해요. 몇 억씩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은 게임도 성공하기 힘든 게 요즘이거든요.”

이씨는 자취방에서 여자친구와 둘이서 ‘내 꿈은 정규직’을 만들었다. 두 달간 이씨가 기획, 스토리, 디자인 등 모든 리소스를 준비했고, 한 달간 프로그래머인 여자친구가 코딩을 했다. 자영업 수준도 안 되니 마케팅 여력이 있을 리 없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드나들던 게임 정보 웹사이트에 “처음 게임을 만들어봤다”고 글을 올렸다. ‘응원한다’는 답글이 1시간 만에 60여 개 달렸다. 이후 다운로드 숫자가 쑥쑥 올라가고 사용자 문의가 쇄도했다. 일주일이 지나자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왔고, 2주차에 구글스토어 무료게임 인기순위 8위에 올랐다. 가장 황당한 경험은 자취방에서 저녁밥 먹으며 TV 뉴스를 보는데, “청년실업 세태를 다룬 게임이 나왔다”며 ‘내 꿈은 정규직’이 등장한 거다. “‘헉’ 했죠. 대구에 계신 부모님께 아직 게임 사업 시작했단 얘기도 안 했는데….”

# 시작은 ‘개복치’

2014년 12월 31일, 이씨는 회사 인근 횡단보도 앞에서 상자 하나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조금 전 권고사직을 받고 짐을 챙겨 나온 참이었다. 벌써 세 번째 권고사직. 그는 2010년부터 게임회사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부침(浮沈)이 심한 업계 특성상 회사가 폐업하거나 팀 자체가 없어지는 바람에 반복해서 ‘짤리는’ 신세가 됐다.

“다른 업종도 그런가요? ‘애니팡’이 뜨니까 애니팡 같은 게임을 만들래요. ‘이게 뭔가’ 싶지만 어쩌겠어요. 주말도 없이 일해야죠. 그러다 경영 사정이 어려워지면 회사는 모질어지고 직원들은 괴로워져요. 누가 봐도 일 잘하는 직원을 불러다놓고 욕도 하고 화도 내다가 ‘너 나가!’ 하는 사장도 봤어요.”

# ‘슬로 터틀’ 인생

“나는 왜 자꾸 짤리나 그게 궁금했다”

이진포 씨는 3개월 만에 게임을 완성했디. ‘버틸’ 돈이 딱 3개월치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그는 문득 당시 유행하던 일본 게임 ‘살아남아라! 개복치’를 떠올렸다. 게임 속 개복치는 플랑크톤을 먹으면서 쑥쑥 자라나다가 어느 순간 갖가지 이유로 돌연사한다. ‘내 처지가 개복치와 다를 게 뭔가’ 곱씹던 중 반짝 아이디어가 떠오르며 ‘느낌이 왔다’. 별의별 이유로 권고사직 당하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사장이 되는 것이 목표인 게임. 이씨는 바로 다음 날인 2015년 새해 첫날부터 게임 개발에 돌입했다.

이씨는 ‘요즘 보기 드문 청년’이다. 인턴 경력도, 해외연수 경험도, 심지어 그 ‘흔한’ 대학졸업장도 없다. 어려서부터 게임이 좋아 게임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가정형편 탓에 남서울대 애니메이션학과를 1년 다니고 중퇴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 입대했고, 전역 후 다시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 동시에 두세 개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가장 벌이가 좋았던 건 병원 물리치료실에서 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들어 나르는 일. 그렇게 제대 1년 만에 300만 원을 모았다.

“그 돈을 종잣돈 삼아 집에 틀어박혀 1년간 그림만 그렸어요.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다섯 군데 면접을 본 끝에 회사에 처음 들어갔지요.”

이씨는 늘 직접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어깨너머로 게임 기획, 개발 등을 배웠고, 월급에서 매달 10만~20만 원을 떼 모은 돈으로 맥(Mac) 컴퓨터 본체, 모니터, 게임 개발용 소프트웨어 등을 하나씩 사 모았다.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고 집에 오니 그렇게 모아온 ‘장비’가 구색을 갖췄고, 통장 잔고는 300만 원이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살려면 알뜰하게 생활한다는 전제하에 방세 포함 월 1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그는 딱 석 달 동안 미친 듯이 게임을 개발해보고, 안 되면 다시 취직하든 고향에 내려가든 하자고 맘먹었다. 이때까진 ‘퀵 터틀’이 아니라 ‘슬로 터틀’이었다.

기자는 직장생활 14년차다. 그런데 ‘내 꿈은 정규직’ 게임에선 수도 없이 권고사직 당하며 ‘인턴’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성실한 직장인의 표본은 이런 것 아니겠나’ 하며 상사들이 일을 주면 재빨리 받아왔다. 그런데 밀린 업무가 많아 더는 일을 받아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호출이 쏟아졌다. ‘나 보고 어쩌라고…’를 되뇌다가 권고사직 당했다. 사유는 ‘근무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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