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호

‘엉뚱 산수화’로 돌아온 ‘태권브이 아빠’ 김청기 애니메이션 감독

  • 글·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2015-05-22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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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엉뚱 산수화’로 돌아온 ‘태권브이 아빠’ 김청기 애니메이션 감독
    “로봇 태권브이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40, 50대가 됐어. 어린 시절이 아득하다더군. 정작 나는 태권브이 만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래서 태권브이를 더 멀리 보내버리기로 했지. 조선시대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대부 김청기(74) 감독은 요즘 산수화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화폭엔 조선의 산수뿐만 아니라 장터나 서당 등 일상의 장면이 두루 담겨 풍속화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이 ‘삶의 현장’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있으니, 바로 로봇 태권브이다. 점잖은 선비들이 거대한 태권브이를 보고 놀라 자빠지려 하고, 댕기머리 꼬마들은 ‘와’ 함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김 감독은 이 새로운 ‘장르’에 ‘엉뚱 산수화’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만화가 출신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동양화는 낯설 만도 한데 “만화를 그릴 때 서양 붓보다는 동양 모필(毛筆)을 주로 썼다”고 했다. 2008년 처음으로 태권브이가 등장한 산수화를 그려봤는데, 주변에서 재밌다고들 해 2~3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태권브이 탄생 40년이 되는 내년에 첫 개인전을 열겠다는 목표로 50점 가까이 완성했다.

    잘나가는 만화가이던 김 감독은 국산 애니메이션이 거의 없던 시절, ‘로봇 태권브이’를 크게 성공시켜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신호탄을 쐈다. 1976년 여름방학에 개봉한 ‘로봇 태권브이’를 보러 온 꼬마 손님들이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 앞 육교 건너편까지 줄을 서는 바람에 교통경찰관이 대거 출동한 일은 유명한 일화. 이후에도 ‘똘이장군’ ‘우뢰매’ 등 히트작을 연달아 내놨다.

    극장의 횡포가 한이 된 그는 ‘우뢰매’로 번 돈으로 서울 잠실에 ‘올림피아 극장’을 차렸고 ‘월간 우뢰매’라는 어린이 잡지도 창간했다. 잡지는 잘 팔렸지만 광고 유치가 안 돼 1년여 만에 접었다. “돈을 잃은 것보다 더 마음 아픈 건 자료를 모두 날린 것”이라는데, 사업이 어려워져 건물 옥상에 올려놓은 애니메이션 시놉시스, 스케치, 포스터, 신문광고 등 각종 자료가 태풍이 불어 비에 다 젖거나 날아가버렸다. 그의 “마지막 꿈은 ‘김청기 박물관’을 만드는 것. 그는 “그러려면 팬과 제자들의 소장 자료를 기증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태권브이 산수화를 그리는 이유의 하나도 박물관에 걸고 싶어서다.



    일흔을 훌쩍 넘겼지만 체력은 여전하다. 한번 붓을 잡으면 대여섯 시간씩 그린다. 20여 년 전에 시작한 ‘두 집’ 살림이 비결이라고. 경북 문경에 있는 화실 텃밭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를 주로 먹고, 문경 산자락에서 내려온 물만 마신다. 운동도 열심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스트레칭부터 한다. 하루에 1만 보 이상 걷고 금연한다. “요새 손발을 터는 모관운동이 건강에 좋다고 TV에 자주 나오던데, 내가 10년 전부터 하던 것”이란다.

    ‘엉뚱 산수화’는 ‘2015 키덜트 엑스포’에 초청돼 12점이 대중에게 처음 공개됐다. “중간평가를 받고 싶은 생각에 영화 트레일러처럼 일부만 살짝 공개했는데 반응이 좋아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내년에 첫 전시회를 연 뒤에는 두 번째 테마로 ‘국란(國亂)의 영웅, 태권브이’를 그릴까 싶단다.

    “요즘 우리 사회도 그렇고, 드라마 ‘징비록’을 봐도 그렇고…우리 민족이 정말 많은 수난을 겪었잖아. 그런 순간에 태권브이 같은 영웅이 나타나 난세를 구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

    새 애니메이션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 소년이 비밀 많은 로봇과 함께 엄마를 찾으러 중국으로 가는 내용. 그는 “한국 애니메이션이 많이 발전해 뿌듯하지만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한정됐다는 점이 아쉽다”며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엉뚱 산수화’로 돌아온 ‘태권브이 아빠’ 김청기 애니메이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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