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정여울의 책갈피 속 마음여행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함께 이야기 나눌 순 없을까요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함께 이야기 나눌 순 없을까요

1/2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함께 이야기 나눌 순 없을까요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정혜신 · 진은영 지음, 창비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석 달쯤 후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그 친구는 오랫동안 아픈 딸을 건사하느라 자신의 꿈도 당분간 접어둔 상태였다. 쌍둥이 중 하나가 태어날 때부터 많이 아파 지금도 걸음걸이가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의 딸 이야기를 들으면 나부터 눈시울이 뜨거워져 그 친구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니 그 친구가 더 많이 그리워졌다.

그녀의 딸을 그날 처음 만났는데, 총명하고 사랑스럽게 잘 자란 아이를 보니 내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그런데 그 친구가 세월호 이야기를 하면서 뜻밖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동안 나는 애들 키우느라 내 살림 챙기느라 내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막상 이런 일이 일어나니 이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이 내 탓인 것 같아. 나만 생각하고, 내 가족만 생각한 마음들이 모여서,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이 아닐까 싶어.”

친구의 고백을 들으며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커다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나 또한 남몰래 그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세월호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지만 멀리서, 그리고 혼자서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을 여럿 만났다.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자신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어도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의 존재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녀린 희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는 바로 그렇게 멀리서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책이다. ‘거리의 의사’ 정혜신과 ‘문학과 정치를 사유하는 시인’ 진은영이 만나 함께 한 대담집 속에는 세월호 유족들 이야기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트라우마 이후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절절한 이야기가 담겼다.

치유 공동체, ‘이웃’의 발견

이 책은 아직도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뼈아픈 분노와 죄책감을 잠시만이라도 내려놓고, ‘지성’과 ‘성찰’이라는 차분한 프리즘으로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게 만든다. 이 책이 내게 준 커다란 인식의 전환 중 하나는 ‘세월호 피로도’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세월호 인양을 반대하거나 세월호의 ‘세’자만 나와도 강한 반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우리의 적’이 아님을 깨우쳐주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솔직히 그들이 너무도 ‘야박하고 무정하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세월호 피로도를 내세우며 그 이야기로부터 도피하려는 사람들 또한 일종의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 이야기 자체를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 또한 더는 상처 받기 싫은 마음 때문에 일종의 방어기제를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정혜신 박사와 진은영 시인이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싸움이 아니라 피해자 내부의 분열이다. 사건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눈도 꿈쩍 안 하는데, 사건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면, 이 싸움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초래할 것이다.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 사건 이후 안산으로 이주해 ‘이웃’이라는 치유 공동체를 마련하고 우선 유족들에게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사고로 떠나간 자식들 생각에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제대로 못 넘기던 유족들은 이곳에 와서 바깥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조금씩 치유한다. 정혜신 박사가 마련한 치유 공동체 ‘이웃’에는 국민 성금으로 지원되는 소박한 집밥의 따스함, 세월호 사고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이 함께 뜨개질하며 서로 위로하는 모습, 저 하늘의 반짝이는 별이 된 아이들을 위한 생일잔치를 열어주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있다.

사회적 치유가 먼저다

재난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한국 사회가 보여온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 재난의 아픔을 결국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린다는 점이다. 분명히 사회적 관심과 국가적 책임이 필요한 일임에도 지배계층은 결국 ‘당신의 상처는 당신이 알아서 처리하라’는 식으로 대처해왔다.

정혜신 박사는 9·11테러나 동일본 대지진, 스웨덴 대형 여객선 침몰 같은 사례와 비교해볼 때 우리나라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바로 이 ‘사회적 치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제주 4·3 피해자들, 광주 5·18 피해자들, 그리고 쌍용차, 용산, 밀양, 강정, 씨랜드, 천안함 등 셀 수 없이 많은 피해자가 ‘사회적 치유’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1/2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목록 닫기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함께 이야기 나눌 순 없을까요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