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정여울의 책갈피 속 마음여행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함께 이야기 나눌 순 없을까요

  •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함께 이야기 나눌 순 없을까요

2/2
재앙의 진상 규명이 선행돼야 하고, 이를 통해 사회가 모을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끌어 모아 돕는 것이 그다음이고, 그래도 평생 씻을 수 없는 개인의 상처를 함께 치유하는 것이 맨 나중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늘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는다. 첫 단추가 끼워지지 않으니 사회적 치유도, 개인적 치유도 제대로 시작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한 희망이 바로 ‘이웃’의 공감과 연대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얼굴 한번 본 적 없어도 ‘그날 그 충격’을 함께 기억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이웃이며 사회적 치유의 주체가 될 수 있다. 우선 유족이 2차, 3차의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더 이상의 자극적인 행동을 피해야 한다. 정혜신 박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소박한 일들’을 찾아서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이 어떤 학위 없이도 훌륭한 ‘이웃 치유자’가 될 수 있다고 전한다. 어떤 자원봉사자는 ‘이웃’에 찾아와 하루 종일 청소만 하다가 간다고 한다. 그녀가 치유의 공간 구석구석을 깨끗이 청소해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깊은 위로를 느낀다.

이것이 바로 어떤 의술이나 예술 작품보다도 더 훌륭한 ‘이웃 치유자’의 역할이다. 학위가 없어도 좋다. 대단한 이론이나 약물치료 같은 것이 없어도 좋다. 그저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보살피는 따스한 마음과 작은 배려만으로도 상처 받은 사람들의 가슴은 ‘기우뚱’한다.

진은영 시인은 정혜신 박사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던진다.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의 차이’는 무엇이냐고. 정혜신 박사는 매우 명쾌하게 대답한다. 흔히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할 때 그 아픔이 스트레스라고. 하지만 트라우마는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픈 만큼 파괴되는 것이라고.

스트레스가 고부간의 갈등이나 시험 직전의 긴장감처럼 삶의 ‘부분적인 문제’라면, 트라우마는 다시는 그 이전의 삶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총체적인 재앙이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느낄 때 우리는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그 사람을 안 보면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지만, 트라우마는 그렇지 않다. 창졸지간에 자식을 잃은 슬픔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다른 엄마들을 볼 때마다, 새록새록 더 아프게 스며든다. 트라우마는 ‘그날 이전’의 삶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깊은 상처다.



우리는 더 알아야 한다

스무 살 때 성폭행을 당한 한 여성이 20년이 지나 그 가해자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왜 20년이나 지나서 그랬냐’고 수군거렸지만, 그녀에게는 그 끔찍한 성폭행의 트라우마가 마치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했다. 트라우마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바로 어제 일어난 것처럼 또렷하고, 무섭고, 아픈 것. 유족들의 달력은 여전히 4월 16일에 멈춰 있다. 365번째 4월 16일이 지났어도 여전히 꿈쩍 않는 세상에서 오직 이 상황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함께 보듬는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다.

‘세월호 피로도’를 이야기하며 더 이상 세월호 이야기를 안 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세월호 인양을 경제논리 또는 정치논리로 반대하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문을 트고 싶다.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도 그날 이후 돌이킬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같이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거부감은 당신이 상처 받았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그런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순 없을까요.

자원봉사자들이 뜨개질을 해서 유가족에게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들이 직접 뜨개질을 하는 거예요. 유가족 엄마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자꾸만 아이 생각이 나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뜨개질을 하다보면 집중하느라고 아이 생각이 덜 난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진통제와 같은 거죠. 약은 효과가 있으면 그에 따르는 부작용도 있기 마련인데, 이건 부작용이 전혀 없는 완벽한 진통제인 거예요. 그러니까 엄마들이 무척 전투적으로 뜨개질을 해요. (…) 아이에게 잘해주었던 교회 선생님에게 떠주기도 하고, 아이 친구에게 떠주기도 하고요. 아이를 기억해줘서 고맙다고 유가족이 목도리를 떠주는데 세상에 그것보다 더 감동적인 선물이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뜨개질을 매개로 해서 치유적인 관계가 자연발생적으로 이어지는 거지요.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신동아 2015년 6월호

2/2
정여울 | 문학평론가 suburbs@daum.net
목록 닫기

당신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함께 이야기 나눌 순 없을까요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