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메르스式 ‘각개전투’로 ‘신흥 안보’ 위협 못 막는다

국가 재난 시스템의 ‘재난’

  • 박지영 |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jp292@skku.edu

    입력2015-06-23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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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율적 정부’ ‘재난관리자’ ‘국민교육’ 3無
    • ‘각개전투 대응’에서 ‘협력적 재난 거버넌스’로
    • 국민안전처는 ‘조정자’…통합대응시스템으로 가야
    • 증가하는 ‘신흥 안보’…재난피해 평가 시스템도 필요
    메르스式 ‘각개전투’로 ‘신흥 안보’ 위협 못 막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 8일 정부서울청사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 상황실을 방문해 메르스 방역대응과 방역지원 상황을 점검했다.

    우리는 산업화와 인구 증가에 따른 다양한 재난 위험에 노출돼 있다. 고도화한 산업과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사회 기반시설은 필연적으로 대규모 위험을 수반한다. 산업 발전과 초고밀도의 인구분포는 질병과 환경오염의 전파와 확산에 취약한 사회구조적 문제점을 야기한다.

    2002년 사스(SARS ·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 그리고 이번 메르스(MERS · 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도 초고밀도 사회의 질병 감염 전파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확진환자 중 3차 감염을 통한 환자가 늘고 있고, 의심환자의 일반인 접촉 빈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확산 범위를 종잡기 어렵다. 감염자가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데다 연령층도 다양해지면서 기존 메르스와 달리 한 명의 환자가 다수를 감염시키는 ‘코르스(KORS · 한국판 메르스)’가 새롭게 출현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더욱이 보건당국의 안이한 초기 대응과 미흡한 후속조치로 인해, 적절한 대응이 가능했던 질병관리 차원의 단계를 넘어 범국가적인 사회재난의 양상을 띠게 됐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안전처를 신설하는 등 요란을 떨었지만, 외양간을 고치고도 또 소를 잃는 답답한 재난 대응 시스템이 반복됐다. 왜 이런 상황이 빚어졌을까.

    우선 대응 매뉴얼을 갖춰놨어도 실제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이러한 매뉴얼을 적시에 활용하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정부 조직의 비효율적 운영에서 비롯된 문제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절실한 재난 상황에도 정부 조직이 경직되고 관료화해 있다보니 필연적으로 초기대응 실패를 야기하는 것이다.

    경직되고 관료화한 정부



    메르스式 ‘각개전투’로 ‘신흥 안보’ 위협 못 막는다

    6월 11일 서울 성동구보건소 관계자들이 메르스 감염 예방을 위해 왕십리역 일대를 소독하고 있다.

    가령 이번 메르스 확산 때도 교육부는 학교 휴업을 권장한 반면 보건복지부는 휴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놔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재난의 형태는 다르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 부처들이 보인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정부 시스템으로는 다양한 유형으로 발생하는 재난에 대비하기 어렵다.

    초기 대응 실패와 관련해 또 하나 지적해야 할 것은 정부 재난 관리자들의 실행력 부재다. 재난 관리자들이 매뉴얼을 숙지하고 유사시 이를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육(training)과 훈련(exercises)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제3조 5의 2호는 ‘재난관리 주관기관은 재난 및 각종 사고에 대해 전체 업무를 주관하여 수행하는 중앙행정기관’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모든 중앙행정기관은 재난의 예방, 대비, 대응 및 복구를 수행할 인력을 배치하고, 발생 가능한 재난에 따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재난관리 전반에 걸친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메르스 사태 때도 재난 상황에 따른 1차 대응이 중요했지만, 유관부처들의 전문적인 재난관리 인력 및 교육과 훈련 부재가 초기 대응 실패로 이어진 듯하다. 재난이라는 특수 상황에 대한 정부 조직의 유기적 리더십을 고양하려면 재난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적 재난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정보 비공개’로 대표되는 당국의 수동적 방어기제 행태와 국민행동요령에 대한 평생교육 시스템 부재도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추락하고 정부 또한 국민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 정부는 이 때문에 한동안 ‘메르스 병원 정보 미공개’라는 수동적 방어기제로 대응한 것 같다. 이는 국가위기 시 재난관리 측면의 대응(response)과 관련된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민방위훈련을 봐도 그런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연간 5회의 민방위훈련(민방공 대피훈련 1회, 재난 대비훈련 2회, 민방위 시범훈련 1회, 민방위 종합훈련 1회)이 실시되지만, 이는 ‘20~40세 남성’에게만 국한된 훈련이다. 실제 훈련 내용도 ‘보여주기식’에 가까워 실효성이 의문스럽다.

    management → governance

    더 이상 소를 잃지 않으려면 외양간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먼저 재난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관리 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출범시켜 국가적 재난관리와 안전 컨트롤타워 기능을 맡겼다. 국민의 기대도 컸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 와중에 국민안전처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물론 메르스는 질병관리본부 차원에서 초기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의 이해하기 힘든 대응은 우리 사회 구조 시스템의 현주소를 드러냈다. 최초 감염자와 담당 의사가 메르스 검사 및 격리 요청을 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감염자에 대한 후속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아 사회적 재난으로 확대되고 말았다. 역병을 막아야 할 당국이 역병을 키웠다고 해도 반박할 여지가 없다.

    기왕에 신설한 국민안전처는 긴급구조기관에서 벗어나 국가적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하고 정부 조직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복잡하고 다양한 재난과 사고는 여러 부처의 영역에 걸쳐 있는 만큼 부처 간에 긴밀한 공조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긴급상황 대응공조는 신속함이 생명인데도 우리 정부 부처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각개전투식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는 세월호 사고 원인 조사결과에서도 드러난 문제다. 사고 당시 해양수산부, 해경, 소방방재청이 각자 개별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함으로써 실시간 정보공유체계가 가동되지 않는 바람에 혼선을 가중시켰다.

    메르스式 ‘각개전투’로 ‘신흥 안보’ 위협 못 막는다

    6월 10일 오후 서울 신내동 서울의료원 음압격리병실에서 의료진이 메르스 확진환자를 돌보는 영상.

    이번에도 35번째 메르스 확진 환자가 1500여 명이 모인 재개발조합 총회에 참석한 사실과 관련, 확진 시기와 참석인원 격리 필요성을 놓고 보건당국과 서울시가 갈등을 빚더니 “역학조사와 확진 권한을 중앙정부에서 지자체로 넘겨라”는 서울시의 요구로 겹겹의 갈등 양상이 빚어졌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협력적 거버넌스(governance) 도입이 절실하다. 지방정부, 시민단체, 비영리기관 등 여러 유관기관이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각 부처 간 협력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국민안전처가 조정자(coordinator)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재난 · 사고 발생 시 관련 부처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정부 조직의 재난 대응 방식이 기존의 전통적 재난관리(disaster management) 차원에서 협력적 재난 거버넌스(disaster governance) 형태로 전환돼야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이끌 수 있다.

    아울러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재난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평생교육 시스템과 연계해 모두가 긴급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후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재난 및 사고 대응 요령을 교육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고작 직장인들이 1년에 몇 차례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듣는 게 전부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과거에는 겪어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한 재난과 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이런 사태에 대처하는 실용적인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회복력’ 개념이 필요한 이유

    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 홍보와 언론보도를 통해 예방과 대응에 대한 긴급교육이 이뤄졌다. 하지만 상당 부분은 평상시에 교육했어야 하는 절차적 과정이다. 재난 대응에 대한 평생교육 시스템은 국민이 국가의 대응 절차와 방식을 신뢰하게 만든다. 재난 상황에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면 사회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부도 재난 대처에 대한 수동적 방어기제에서 벗어나 국민과 사회의 신뢰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대응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당국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재난 집행절차의 안정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적절한 국민 행동 대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

    종합적인 ‘재난피해가치 평가시스템’도 도입해야 한다. 정부는 1차적 직접조사에 국한된 피해조사와 복구계획만 가지고선 다음 단계의 대응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재난이 발생하면 언제든 2차, 3차의 직 · 간접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조사를 바탕으로 한 피해 추정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메르스 관련 병원 정보 공개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 국가적 재난에 따른 잠재적 피해 내용까지 산정해야 정보 공개로 인해 피해를 볼 수 있는 병원, 학교, 백화점, 주요 공공시설 등 다양한 시설물에 대한 지원 대책을 실효성 있게 마련할 수 있다.

    이처럼 통합적인 재난피해가치 평가시스템을 구축하려면 우선 예방, 대비, 대응, 복구라는 재난관리 조치들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 체계적인 재난관리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회복력(recapture power)’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가령 메르스 발생 이후 회복되는 기간까지, 잃어버린 실물경제를 측정하고 이것이 어느 정도까지 회복 가능한지를 산정하는 개념이다. 회복력을 활용하면 메르스로 인해 얼어붙은 지역 상권과 서비스 산업 등에 대해 적절한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사회가치적 측면에서 보면, 메르스로 인한 공포와 혼란이 심각한 정신적 피해와 정서 불안을 야기한 만큼 2차적 후유증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 정부 재난 대응과 집행에 대한 국민의 동의와 긍정적 치유가 가능하도록 하는 사회가치적 평가 ·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향후 다른 형태의 재난이 발생하더라도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메르스 첫 환자가 발생한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대응책이 나오다보니 국민들 사이에도 수동적 방어 의식이 팽배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단순 격리와 격리에 따른 1차 지원체계에서 벗어나 국민이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와 방안이 준비되고 집행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간하는 ‘글로벌 리스크 리포트(Global Risk Report)’ 2015년판은 향후 10년 안에 국가,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28개의 위험요인(기후변화, 신종전염병, 식량, 물 등 자원관리에 대한 안보, 사이버 테러에 대한 안보, 위험성과 전파력이 큰 보건 문제 등)을 적시했다. 또한 그 영향으로 인적 · 사회적 재난과 관련해 증대하는 ‘신흥 안보(emerging security)’ 문제를 새로운 미래 위험 요인으로 다뤘다.

    일상 속 ‘신흥 안보’

    이러한 신흥 안보 문제들은 특히 현대 IT 기술과 결합해 그 피해가 복합적이고 동시다발적이다. 이제는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현관문을 잠그는 순간까지 재난에 따른 위기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일상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수많은 선택과 위기관리를 해야 하고, 심지어 집안에서조차 각종 안전사고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메르스式 ‘각개전투’로 ‘신흥 안보’ 위협 못 막는다
    박 지 영

    1974년 부산 출생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졸업,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박사(도시계획학), 동 대학 국가테러·위기재난센터 겸임교수

    現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저서 : ‘테러 공격과 자연재해의 국가경제 영향 분석’ 등


    불시의 재난에 대한 위기관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수불가결한 삶의 행태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신흥 안보 문제에 초점을 맞춘 범국가적 대응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재난 피해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순환적이고 탄력적인 통합적 재난대응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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