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외국 국적자도 준엄한 심판” 北, ‘중국계 간첩’ 검거 열풍

  • 김승재 YTN 기자 | sjkim@ytn.co.kr

    입력2015-06-24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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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교, 조선족 등 중국인 20명 간첩혐의 체포
    • 中 압박하며 투먼에서 北 노동자 150명 철수
    • 외신기자 집단구타…“폭력으로 막아라”
    “외국 국적자도 준엄한 심판” 北, ‘중국계 간첩’ 검거 열풍

    중국 지린성 투먼에서 본 북한 남양.

    필자는 ‘신동아’ 4월호에서 “북한 근로자 2500여 명이 파견된 북-중 접경도시 투먼의 공업단지에서 북한이 중국 측에 근로자 식당 운영권을 요구해 중국이 난감해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북한은 지난해 봄과 여름 잇달아 발생한 집단 식중독 사고를 빌미로 “우리 근로자가 먹는 음식은 우리가 직접 만들겠다”며 조선족(중국 동포)이 관리하던 식당 운영권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취재 결과 북한은 ‘근로자 철수’라는 초강수를 뒀고, 투먼 당국과 기업들이 부랴부랴 북측 요구를 들어준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북한이 투먼에서 식당 운영권을 계속 고집하는 속내를 떠보면 돈 때문이다. 중국 지린성의 대북소식통은 북한이 식당을 직접 운영할 경우 근로자 한 명당 하루에 3위안(약 540원) 정도를 남길 수 있다고 필자에게 귀띔했다. 3000명이 일하는 공장이라면 한 달에 27만 위안, 우리 돈 4860만 원에 해당하는 수익을 챙기는 것이다.

    북측은 식당과 더불어 기숙사 운영권도 요구했다. 북한 근로자가 이용하는 시설이니 자신들이 책임지고 관리하겠다는 뜻. 이에 대해 투먼 측이 침묵으로 일관하던 4월 하순 어느 날. 투먼에는 새로 도착한 북한 근로자 150명이 현장 투입에 앞서 신체검사를 기다렸다. 그런데 북측이 돌연 폭탄선언을 했다. “투먼 측이 우리 요구사항을 계속 무시하니 여기서 일할 이유가 없다. 앞으로 투먼에서 일하는 우리 근로자는 전원 철수하겠다. 막 도착한 근로자 150명부터 데려가겠다”고 한 것이다.

    北 압박에 굴복한 中 기업

    4월 말, 북한이 행동에 나섰다. 근로자 150명을 버스에 태워 북한으로 돌려보낸 것. 근로자가 철수하면서 북측은 투먼 당국에 “식당과 기숙사는 우리가 관리한다. 누구도 간섭하지 못한다. 우리가 원하는 조건에 맞지 않으면 모두 떠난다. 150명 철수는 본보기다.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원 철수하겠다”고 거듭 위협했다. 중국 업체 대표는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갑자기 이러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북측은 “어쩔 수 없다. 누군가 희생해야지”라며 철수를 강행했다. 북측은 그 무렵 투먼 지방정부와 계약한 북한 근로자 2000명에 대해서도 비자가 나온 상태지만 중국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근로자 150명 철수 현장엔 랴오닝성 선양 주재 북한영사관 서기도 나타나 북한 근로자 관리 간부들에게 호통을 쳤다. “반동 같은 XX들…. 오지 말라니까 왜 와가지고서니….” 북한 당국은 식당 운영권을 받기 전까지는 근로자를 투먼으로 내보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투먼 측에서 왜 계약을 이행하지 않느냐고 항의하자 북한 인력 업체는 계약된 근로자를 보냈다. 북한 영사관 서기의 분노는 식당 운영권을 완전히 받아내기 전까지는 근로자를 투먼으로 보내지 말라고 지시했는데 왜 말을 안 들어 일을 번거롭게 하느냐는 질타였다.

    북측의 돌발행동에 골치가 아프게 된 투먼 당국은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한발 뺐다. 북한이 실제로 근로자 철수를 단행하자 공업단지 내 기업들은 깜짝 놀라며 북측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북한 근로자를 고용한 업체들이 근로자용 식당 건물을 지어주고 운영권을 북한에 주기로 한 것이다. 기업마다 북한 근로자 식당을 짓는 작업에 착수해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근로자 400명 기준으로 식당 하나 건설하는 데 우리돈 1억 원 이상이 들어가니 기업들로서는 한숨이 나오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북한이 근로자를 철수하면 인력 충원이 불가능해 공장 가동을 중지해야 한다. 북한이 인력난이 극심한 중국 제조업 현실을 잘 알기에 배짱을 부린 것이다.

    근로자 150명을 철수시킨 후 북한은 투먼에 추가 인력을 단 한 명도 보내지 않았다. 반면 이웃 훈춘 지역으로는 새로운 북한 근로자가 속속 도착한다. 투먼은 2012년 5월 중국 최초로 북한 인력을 합법적으로 받아들였다. 북한 근로자가 중국에 진출한 초창기만 해도 훈춘은 투먼을 부러워하면서 “우리도 북한 인력이 필요하다”고 투먼에 아쉬운 소리를 했다.

    하지만 상황이 역전됐다. 식당과 기숙사 운영권 문제로 북한은 투먼을 멀리했으며 북측 인력 송출업체와 근로자도 투먼보다 훈춘을 선호한다. 북한 인력 수입의 물꼬를 튼 투먼으로서는 이래저래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몇 푼 돈 때문에 간첩질”

    중국이 북한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는 또 있다. 북한이 이른바 ‘중국계 간첩’ 잡기에 열을 올려서다. 올해 들어 김정은 정권은 체제 유지를 위해 나라 안팎에서 ‘간첩 색출’에 혈안이 됐다.

    3월 26일 북한 매체들은 “정탐과 모략 행위를 목적으로 침입한 남조선 간첩 2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체포한 이들은 1954년생 김국기 씨와 1959년생 최춘길 씨다. 북한은 김씨와 최씨가 중국에서 국가정보원에 매수돼 북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체제를 비방하는 활동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북한 매체들은 중국에서 이들이 간첩활동을 한 증거라며 동영상을 공개했다. 중국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에게도 이와 관련한 정신교육이 실시됐다. 북한 인력 관리자들은 근로자를 전원 소집해 관련 북한 방송을 반복해 보여주며 이들의 행위를 비판하라고 지시했다. 국가안전보위부는 김씨와 최씨가 “조선족과 화교, 북한 보따리상과 접촉해 정보를 수집했다”면서 “몇 푼의 돈 때문에 간첩질을 하는 외국 국적자에게도 준엄한 심판을 내릴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보위부는 실제로 ‘중국계 간첩’ 색출에 나섰다. 중국의 대북소식통은 필자에게 “평양이 3월, 4월 두 달 동안 화교와 조선족 등 중국인 20명가량을 간첩혐의로 체포하면서 북중 접경지역이 발칵 뒤집혔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에 체포된 이들 중 한국 언론사의 요구에 따라 대가를 받고 정보를 수집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한 대북소식통은 최근 “단둥에서 일하던 조교(朝僑·북한에서 태어난 중국 화교)가 간첩혐의로 체포됐다”고 전해왔다. 이 조교는 한국 언론사와 하루 180위안, 한화 약 3만2000원에 계약을 맺고 북한 정보를 수집해왔다고 한다. 가치가 있는 사진을 확보하면 5000위안(약 90만 원) 또는 1만 위안(약 180만 원)까지 받는 조건이다.

    5월에는 투먼의 경제개발구에서 북한 동향을 수집하던 조선족 중국인 2명이 붙잡혔다. 이들은 북한 근로자가 일하는 공장에 바이어로 위장해 잠입한 뒤 근로 여건 등을 탐문하고 관련 사진을 몰래 촬영하다 중국 공안에 적발됐다. 이들 역시 한국 언론사로부터 대가를 받고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린성 정부 관계자가 직접 투먼에 와 “앞으로 접경지역에서의 불법 취재는 결코 용납하지 않고 모두 체포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북한 근로자를 고용한 중국 업체들도 비상이 걸렸다. 자신들이 고용한 직원이 간첩혐의로 잡혀 가니 힘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중국 업체들은 궁여지책으로 대처 방안을 내놓았다. 북한을 드나드는 이들이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정보 취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5월 중순 외교부는 북-중 접경지역에서 각별히 안전에 유의할 것을 당부했다.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를 통해 “동북3성의 북중 접경지역을 방문하는 여행객이나 재외국민은 안전 우려 상황을 감안해 신원 불명자와의 접촉을 자제해달라”며 “개인의 신변 안전에 더욱 유의하라”고 요청했다.

    이처럼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5월 31일 투먼의 북한 공업단지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남성 2명이 북한 여성 근로자들을 촬영하다가 집단구타를 당해 구급차에 실려 후송된 것. 구타당한 남성들은 기자라면서 신분증을 제시했는데 미국과 싱가포르 언론사 소속이었다고 한다. 북한은 4월 중순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들에게 외국 기자 등이 사진 촬영에 나설 경우 폭력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국 국적자도 준엄한 심판” 北, ‘중국계 간첩’ 검거 열풍

    북한 노동자가 외신기자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한 투먼 공장의 정문.



    제주도 - 백두산 직항 허용

    “외국 국적자도 준엄한 심판” 北, ‘중국계 간첩’ 검거 열풍

    북한은 백두산 관광특구 개발에 열을 올린다.

    북한은 남측 인사들과 접촉한 북측 인사에 대해서도 대대적 검열에 나섰다. 5월 16일 ‘중앙일보’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MB회고록 불똥…北, 김양건·원동연 대대적 특검’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월 발간한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과 관련해 통일전선부(남북 교류와 대남 공작 담당) 소속 고위 인사를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는 내용이다.

    5월 초순 필자 역시 대북소식통으로부터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은 이렇다. “MB 회고록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해 한 달간 집중 조사를 벌여 4월 말쯤 조사를 마쳤다. 조사 대상은 MB 정부 때 남측 인사와 만난 북측 인사 전체다. 샅샅이 조사했고, 진술서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은 남북 경제교류와 관련해 기대를 갖게 하는 제스처도 보이고 있다. 최근 백두산 관광특구 계획을 발표한 북한이 백두산과 제주도를 오가는 직항 전세기를 이용한 백두산 관광사업을 중국 기업에 허가했다(1962년 체결한 북-중 국경조약에 따라 백두산은 동서남북 주요 관광로 4곳 중 동쪽만 북한 영토다).

    중국의 대북소식통은 조선족이 대표인 톈위그룹(天宇集團)이 북한 당국으로부터 삼지연공항과 제주국제공항을 연결해 백두산을 관광하는 사업권을 따냈다고 전했다. 톈위그룹 L대표는 4월 말 방한해 5월 초까지 머물며 제주도 측 인사들과 만나 백두산-제주도 관광사업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이 사업은 통일부의 허가가 있어야 가능한데 통일부는 아직까진 부정적 태도를 보인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북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원 지사는 대북협력 5대 제안사업 추진 기본계획을 밝혔다. 5대 사업 중에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남북한 교차관광사업’도 포함됐다. 제주도는 백두산행 교통편으로 항공편과 배편을 제안했다. 제주도 측은 항공편의 경우 북한이 영공 개방의 부담 때문에 직항이 아닌 제주공항-평양 순안공항-삼지연공항의 환승항로를 허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제주공항에서 평양 순안공항까지는 우리 국적기로 가고, 순안공항에서 삼지연공항까지는 북한 국적기를 이용하는 방안이다. 삼지연공항은 공간이 협소해 200명 탑승의 소형 비행기만 이착륙이 가능하다.

    한국 ‘맞장구’ 필요한데…

    그런데 제주도의 예상과 달리 북한은 제주를 출발해 동해 공해상을 거쳐 백두산 삼지연공항에 도착하는 직항 노선을 허가했다.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가 한국 기업이 아니라 대북 사업을 오래한 중국 기업이란 점을 꼽을 수 있다. 톈위그룹은 부동산 개발을 주력으로 하는 지린성의 기업으로 그동안 북한 자원 개발과 관광 사업 등 대북 투자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전세기가 한국 비행기가 아닌 러시아 비행기라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북한은 직항 전세기로 제3국인 러시아 비행기를 이용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직항을 허가한 가장 큰 이유는 외화벌이일 것이다. 환승항로는 직항로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들기에 관광객 유치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북한은 백두산 관광 개발을 부쩍 강조한다. 4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은 삼지연군 무봉노동자구 일대에 무봉국제관광특구를 설립한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백두산선군청년발전소를 10월 노동당 창건일까지 완공하기로 했다. 삼지연공항과 혜산을 잇는 철로 건설에도 착수했다. 백두산 일대를 관광지로 활성화하고자 교통 및 전력 인프라 건설에 나선 것이다. 물론 백두산 관광은 한국이 맞장구를 치지 않으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6월 4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제43차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장관 회의가 열렸다. OSJD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비롯해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의 철도협력기구다. 6월 회의에서 한국의 OSJD 정회원 가입안이 의제로 상정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열의를 가진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를 한국 철도와 연결하는 사업이 이뤄지려면 OSJD 정회원 가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북한의 반대로 한국의 정회원 가입은 무산됐다. 남북 철도도 그렇고 백두산 관광도 그렇고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남북관계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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