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 그런 자식도 참고 산다!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걱정도 습관이다’ 저자 artppper@hanmail.net

    입력2015-06-25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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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 사랑하는 것의 10분의 1만이라도 배우자를 사랑해보라.
    • 결혼생활이 확 달라진다. 부모가 행복하게 살면 자식도 부모를 사랑한다.
    • 부모가 사이 좋아야 자식도 마음이 편하다. 진정 자식을 사랑한다면 부부부터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 그런 자식도 참고 산다!

    일러스트• 김영민

    심각한 이혼 위기를 겪으면서 센터를 찾는 분들에게 역으로 왜 참고 사는지 물어보곤 한다. 대부분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고들 한다. 자식 앞길을 막고 싶지 않다고도 한다.

    그렇게 말하는 부모들을 보면 실제로 자식이 어느 정도 성공한 경우가 많다. 자식이 의대에 들어가면 의사가 될 때까지, 자식이 법대에 들어가면 변호사가 될 때까지,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면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할 때까지는 참고 산다. 좋은 집안에 장가 혹은 시집을 보내고 싶은데, 부모가 이혼하면 장애물이 된다고 여긴다. 그러면서 자식이 성공한 것이 서로 자기 덕분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자기 머리를 닮아서 자식이 성공했다 하고, 어머니는 자기가 사교육을 잘 시켜서 자식이 성공했다고 한다.

    자식의 인생이 안 풀리면 부모는 서로 상대방 탓을 한다. 아들이 회사를 꾸준히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기를 반복한 경우가 있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아들을 때려가며 엄하게 대했다. 어머니는 주눅이 든 아들을 과보호했다. 남편은 아내가 아들을 일일이 챙겨줬기 때문에 독립심을 키우지 못해 아들이 저 모양이 됐다고 비난했다. 아내는 남편이 아들을 억압적으로 대하는 바람에 소심해서 사회생활을 못하게 됐다고 비난했다. 부부 사이는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정관·난관 되살리는 부부들

    그렇다면 ‘무자식’이 ‘상팔자’일까. 하지만 아이가 없는 것도 문제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나면서 남편은 아이를 갖고 싶은데 아내는 출산을 미루는 커플이 많다. 결혼한 지 꽤 됐는데도 아내는 직장에서 승진해 과장 정도는 된 뒤에 아이를 가지려 한다. 그때쯤이면 아내는 30대 중반이 될 것이다. 남편은 그때 아이를 갖는 건 너무 늦지 않으냐고 말을 꺼낸다. 태아의 건강을 고려해 조금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대학에 들어갈 무렵 자신들이 몇 살이 되는지 계산해보고 한숨을 내쉰다.



    아내는 “내가 아이 낳는 기계냐”면서 따진다. 그러던 중 시댁에서 언제 아이를 가질 거냐는 타박을 듣는다. 아내는 “당신이 아이를 늦게 갖겠다고 시부모님께 얘기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출산을 미루는 것으로 오해받는다”며 또 남편에게 따진다. 남편은 ‘네가 미루는 게 맞잖아’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꾹 참는다.

    사실 남편은 당장 아이를 갖고 싶다. 남편은 점점 결혼생활이 지루해진다. 아내와 이렇게 둘이서만 사는 게 권태롭다. 직장 핑계로 출산을 미루고 살림도 제대로 하지 않는 아내가 점점 미워진다.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약속하고 결혼하는 남자도 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행복한 기억이 없다. 부모의 냉담, 무시, 학대만 떠오른다. 그래서 자신이 아빠가 된다는 게 부담스럽다. 결혼하더라도 아이는 갖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여자는 남자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하면 대개 망설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여성도 있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자신의 아이가 이 ‘괴로운 세상’을 살아간다는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하지만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약속했더라도 남성이 정관수술을 받거나 여성이 난관을 묶지 않는 이상 약속은 생각처럼 잘 지켜지지 않는다. 같이 살다보면 충동적으로 관계를 갖게 되고, 그러다보면 임신할 수도 있다. 자녀를 갖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고 한쪽이 불임수술을 한 경우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아이를 가지려고 늦은 나이에 정관·난관 복원수술을 받는 부부가 적지 않다. 수술로 묶은 정관이나 난관이 저절로 풀려서 의도하지 않은 임신이 이뤄지기도 한다.

    그렇게 자녀를 갖게 되면 대부분 “내가 언제 자식 싫다고 한 적 있냐”며 아이를 물고 빨고 좋아한다. 뒤늦게 자녀를 가진 커플이 잇달아 아이를 낳아서 다산 가족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식 없어서 다행?

    일부러 자식을 안 가지려는 부부보다는 뭔가 문제가 있어 불임인 경우를 더 자주 보게 된다. 불임의 40%는 원인이 남성에게 있다. 정자 수가 모자란 경우도 있고, 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항생제가 발달해서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과거에는 남성이 임질 같은 성병에 걸렸을 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불임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어려서 볼거리를 앓은 후유증으로 불임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남성 불임이 증가하고 있지만 시댁에서는 대개 며느리를 탓한다.

    아이가 안 생기면 아내보다는 남편이 먼저 검사를 받아보는 게 중요하다. 며느리에게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시댁에서는 그제야 아들에게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 남편은 미루고 미루다가 검사를 받는다. 자신에게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가 팍 죽는다.

    남편에게 문제가 있어 시험관 아이를 갖게 되면 아내가 남편을 감싸주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내에게 문제가 있다고 밝혀지면 시댁과 남편은 아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 여성은 ‘아이를 갖지 못하면 끝’이라는 위기감마저 갖게 된다.

    과거에는 자녀가 없는 부부에게 시댁에서 이혼을 종용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불임시술이 보편화하기 전에는 남편이 다른 여성에게서 얻은 자녀를 데리고 들어와 키우는 경우도 있었다. 남편이 그 여성과 연분이 생겨 결국 ‘씨받이’가 안방을 차지했다는 사연도 심심치 않게 전해졌다.

    불임시술을 통해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는데도 자녀가 안 생기면 부부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 결국 이혼에 이르는 사례도 있지만 드러내놓고 ‘자녀가 없어서’라고 말하진 않는다. 이런 경우 남자가 이혼하자마자 가임 연령의 젊은 여성과 결혼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사는 남자들이 더러 있다. 이혼할 때는 “그나마 자식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하지만, 어찌 보면 자식이 없기 때문에 이혼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자식이 있고 없고는 결혼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논다

    장애아를 돌보는 부모의 눈물겨운 사연이 TV에 종종 소개된다. 어떤 부부는 장애아를 입양하기도 한다. 부부라면 어떻게든 함께 노력해 극복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이 꼭 그렇지는 않다. 자녀가 장애를 지닌 게 남편 혹은 아내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는 안다. 하지만 ‘가슴’ 속 본능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출산한 남편은 다시 장애아가 생길까 두렵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두려워 서로 성관계를 피한다. 장애아를 둔 가정의 이혼율이 높은데, 자녀 양육에 따른 스트레스, 경제적 곤란뿐 아니라 이런 본능적인 두려움도 작용한다.

    발달장애아를 둔 가정은 큰 어려움을 겪는다. 아내는 치료에 매달리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잘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혼에 이르기도 한다. 아내는 발달장애를 앓는 아이를 언젠가는 온전하게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에 치료비를 마련하느라 빚을 얻는다.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다른 자식들 생각도 하라”고 말한다. 아내는 ‘발달장애 아이는 발달장애 노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논리적으로는 인정한다. 그러니 무작정 치료에 매달리기보다 아이가 안정적으로 지내도록 경제적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안다. 다른 자녀들이 소외감을 갖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엄마는 발달장애 아이를 포기할 수 없다.

    자녀가 중병에 걸렸거나 장애가 있을 때 아내가 남편보다 아이에게 더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임신했을 때 여성은 10개월의 시간을 투자한다. 과거에는 출산할 때 사망률이 높았다. 여성은 말 그대로 죽을 각오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했다. 반면 남성은 여성을 임신시키기만 하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 자식 하나가 죽어도 또 낳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평생 세 번 이상 결혼하면서 결혼할 때마다 아이를 갖는 남성이 늘고 있다. 20대에 처음 결혼해 자녀가 성인이 되는 40대 초반에 이혼을 한다. 그러고는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과 재혼한다. 재혼한 아내와 낳은 자녀가 성인이 되는 60대 초반에 또 이혼을 한다. 충분한 경제적 능력을 갖춘 남성은 그 나이에 30대 중반~40대 초반 여성과 또 결혼해서 늦둥이를 얻는다. 이렇게 해서 죽을 때까지 많게는 10여 명의 자녀를 얻는다.

    자녀의 절반은 아버지의 정자로부터, 나머지 절반은 어머니의 난자로부터 온다.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 정자 속의 유전자와 어머니 정자 속의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자녀 1명당 내 유전자의 2분의 1이 자녀를 통해 세상에 남겨지는 셈이다. 자녀가 둘이면 ‘합계 1’의 유전자가 세상에 남겨진다. 셋이면 합계 1.5의 유전자가 세상에 전달된다. 유전자의 시각으로 보면 ‘나’는 유전자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한 도구, 즉 ‘유전자 전달체’에 불과하다.

    이기적 유전자

    그래서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라는 표현을 썼다. ‘이기적 유전자’의 처지에서 보기에 부모는 이미 그 목적을 다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자녀를 생존하게 하려 한다. 자녀가 성공해서 자식을 많이 가지면 유전자는 그만큼 번성하게 된다. 따라서 부모로 하여금 도가 넘는 희생을 하게 한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에 모든 것을 희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기적 유전자’가 획책한 계략에 넘어간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부모가 나이 들어 굶어죽건 말건 상관없다. 자식만 성공하면 자신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형편도 안 되면서 자식을 조기 유학 보내게 해 부모를 알거지로 만든다. 옛날에는 자식 유학 보낸 게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요즘은 유학 간 자식 뒷바라지하는 부모를 좀처럼 부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쌍하게 본다. 유학까지 갔다 온 자식이 취직도 못하고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기적 유전자’는 부모-자식 관계도 엉망으로 만든다. 자식이 학교에 들어가면 부모가 자식을 ‘공부하는 기계’로 보게 만든다. 자식을 대할 때 동정심이 사라지게끔 ‘공감 스위치’를 꺼버린다. 자식이 성적이 나쁘면 화가 난다. 부모는 자식에게 ‘모두 너 잘되라고 야단치는 것’이라며 합리화한다. 맞다. 부모는 다 자식(유전자)이 잘되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식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아이가 답안지를 작성할 때 한 줄 밀려 썼다고 하면 위로는커녕 “실수도 실력”이라면서 야단친다.

    자식 핑계 대지 말라

    부모는 자식이 미워서 야단치는 게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야단치는 그 순간만큼은 자식이 미운 게 맞다. 자식이 너무 예뻐서 소리 지르고 질책하고 매질하는 부모는 없다. 아무리 사교육에 돈을 퍼부어도 자식은 하나도 고마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공부기계로 여기고 다그치는 부모를 오히려 미워하게 된다. 돈은 돈대로 쓰고 자식에게는 원망만 산다. 자식이 원하는 대학에 못 가면 부모는 헛수고를 한 셈이 된다. 설혹 좋은 대학에 가더라도 자식은 고마워하지 않는다. 자기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갔다고 생각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부모로 하여금 자식에 ‘올인’하게 만든다. 자식이 잘나가면 자신이 행복하고, 자식이 못 나가면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게끔 한다. 결혼생활이 불행하면 자식 하나 바라보며 살게 된다. 자식이 성공하면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잘난 자식을 자기 쪽으로 당기려고 한다. 그런데 자식은 싸우기만 하는 부모를 멀리하고 싶다. 성공하면 할수록 부모가 창피하다. 성공한 자식이 부모를 ‘나 몰라라’ 하게 된다.

    자식이 실패하면 부모는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면서 푸념한다. 자식은 자신이 실패한 것을 부모 탓으로 몰아간다. 남편 때문에 고생한 아내는 특히 아들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아들의 이름도 부르지 않는다. 멀쩡한 이름 놔두고 “아들, 아들” 하면서 다 큰 자식에게 스킨십을 하려고 한다. 아들의 처지에선 이처럼 짜증나는 상황이 없다. 부모로부터 달아나고 싶다.

    자식 사랑하는 것의 10분의 1만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사랑해보라. 결혼생활이 확 달라진다.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자식도 부모를 사랑한다. 부모 사이가 좋아야 자식도 마음이 편하다. 진정 자식을 사랑한다면 부부부터 서로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혼을 미루면서 자식 핑계를 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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