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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미술관

정·재계 거물이 빚어낸 ‘국회 옆 미술관’

내셔널 갤러리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정·재계 거물이 빚어낸 ‘국회 옆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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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은 미술관 설립을 위해 돈과 소장품 전부를 내놓았다. 건축비로 당시 돈 1000만 달러를 기부했고, 기증한 작품들은 그때 가치로 4000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그의 아들과 딸은 물론, 당시 내로라하는 부자들도 소장한 작품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웨스트 빌딩은 1941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주재로 준공식이 거행됐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멜론도, 건축을 맡은 존 포프도 1937년 타계해 이 행사를 지켜볼 수가 없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러시아 최고이자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그런데 1930년대 초에 이 미술관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중요 소장품을 비밀리에 해외로 팔아넘긴 것이다. 그것도 정부가 주도해서.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사회주의 국가가 된 러시아는 사유재산을 금지했다. 미술품도 당연히 국가 소유가 됐다. 그리고 1920년대 말에 국가 주도의 산업화를 추진한다. 그런데 이를 위한 자금이 부족하자 공산당 정권은 1928년 해외에 팔 작품 리스트를 만들라고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명령했다. 한 점에 5000루블 이상 받을 수 있는 작품 250점을 뽑아내라는 구체적인 지시였다.

에르미타주의 미술품 밀매

러시아의 미술품 매각 소문은 서유럽 미술상과 부자 수집가들 귀에 흘러들어갔다. 마침 미국대사로 영국에 나와 있던 멜론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미 미술관 건립을 구상하고 있던 그에게 솔깃한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곧 ‘작전’에 들어간 멜론은 약 670만 달러를 들여 에르미타주의 명품 21점을 확보했다. 그중에는 라파엘로의 ‘The Alba Madonna’도 포함돼 있다. 멜론은 이 작품에 116만여 달러를 지불했는데, 당시로선 단일 작품에 지불된 최고의 가격이었다고 한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이때 에르미타주 명품을 몇 점 건졌다.



러시아의 ‘그림 수출’은 1933년 11월 4일 ‘뉴욕타임스’가 폭로할 때까지 비밀리에 진행되다가 1934년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부관장이 스탈린에게 항의 편지를 보내며 끝이 났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후 러시아 의회는 러시아 소장품을 해외에 못 팔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소 잃고’가 아니라, ‘소 없는’ 외양간을 고친 꼴이다.

멜론이 에르미타주에서 입수한 21점은 모두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됐다. 이 작품들은 현재도 내셔널 갤러리의 핵심 소장품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는 오랫동안 이 작품들을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전시회에 내보내지 않았다. 러시아 정부가 되돌려주지 않을 것을 염려해서다.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에 야 러시아에 작품들을 종종 빌려주고 있는데, 2002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티치아노의 ‘Venus with a Mirror’를 에르미타주에 대여해줬다.

멜론은 마흔다섯이 돼서야 결혼했다. 신부는 스무 살의 영국 여성으로 기네스 맥주 회사(Guinness Brewing Co.) 오너의 딸이었다. 부부는 슬하에 딸 아일사(Ailsa Mellon Bruce·1901~1969), 아들 폴(Paul Mellon·1907~1999)을 뒀다.

당대 최고 재벌의 상속자인 만큼 아일사와 폴 역시 미국 최고 부자였다. 미국 경제지 ‘포춘’은 1957년부터 미국 부자 명단을 발표하고 있는데, 이 남매는 사촌 두 명과 함께 8대 부자 명단에 들었다. 최고 부자 8명 중 4명이 멜론 가문인 것이다. 이들 각자의 재산은 오늘날 화폐 가치로 34억 달러에서 59억 달러 사이라고 한다. 아일사와 폴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내셔널 갤러리에 수많은 작품과 돈을 기부했고 미술관 운영에도 직접 참여했다.

예일대 출신인 폴은 사업보다는 자선활동과 예술품 수집, 경주마 사육 등에 관심이 더 많았다. 군 생활도 오래해 소령까지 지냈다. 그는 아버지의 돈으로 지은 웨스트 빌딩과 아버지의 소장품 115점을 1941년 국가에 헌납했다. 또 40년간 미술관 이사회에 참여하며 이사, 이사장(2번), 이사회 의장, 명예이사 등을 지냈다. 1970년대 후반에는 누이 아일사와 함께 이스트 빌딩 건축을 주도했고, 수년에 걸쳐 1000점이 넘는 작품을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했다. 대부분 프랑스와 미국의 명작이다. 아일사는 1969년 사망하면서 153점의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美 대륙의 유일한 다빈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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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갤러리는 멜론이 주도해 세워졌지만, 이후에는 미국의 수많은 부자가 달려들어 오늘날의 위상으로 발전시켰다. 그중에서도 조지프 와이드너(Joseph E Widner)라는 필라델피아 부동산 재벌은 미술관 설립이 결정되자마자 2000점에 달하는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가운데는 영국의 유명한 후기 인상파 화가 오거스터스 존(Augustus John)이 그린 와이드너의 초상화도 포함돼 있다.

뉴욕 증권시장에서 활동하며 금융 재벌로 등극한 체스터 데일(Chester Dale)도 미술관 설립 초기에 많은 작품을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했다. 그는 27세 때 화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아내와 결혼하며 아내의 조언으로 미술품 수집에 눈을 떴고, 이후 사업에 성공하면서 유럽과 미국의 명작을 대량 수집했다. 처음에는 개인 미술관을 설립하려고 했으나, 생각을 바꿔 소장품을 모두 내셔널 갤러리에 기증했다. 그의 기증품에는 회화 240점 이외에도 조각과 드로잉, 1만2000여 점의 그림 카탈로그와 1500권 이상의 희귀 도서도 포함돼 있다.

거대한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는 단 한 점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이 존재한다. 바로 ‘Ginevra de´Benci’로 여기, 내셔널 갤러리의 소장품이다. 미술관은 1967년 무려 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이 그림을 사들였다. 이 거금은 아일사 멜론이 만든 멜론 브루스 펀드(Mellon Bruce Fund)에서 나왔다. 당시까지 역대 최고의 그림값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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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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