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충격 르포

“이 지옥 같은 나라 내게 죽창을 달라!”

젊은 층 파고드는 ‘헬조선’(한국 혐오) 신드롬

  • 유설희 | 자유기고가 zorba8251@daum.net

“이 지옥 같은 나라 내게 죽창을 달라!”

1/3
  • ● “문화, 국민성, ‘금수저 계급’ 다 혐오스러워”
  • ● “하라는 대로 했는데 돌아온 건 좌절뿐”
  • ● “세상은 하층민만 두들겨 팬다”
  • ● “아직 열정, 에너지 남아 있다는 뜻”
“이 지옥 같은 나라 내게 죽창을 달라!”
대통령, 여 · 야, 보수 · 진보, 재벌 비난은 인터넷에서 흔히 목격된다. 그러나 ‘헬조선’ 신드롬은 대한민국 자체를 비방한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이 나라는 지옥”이라고 선언한다. 입시, 취업, 결혼에서 연거푸 좌절을 겪는 많은 젊은이가 “맞아, 맞아” 하면서 동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죽창을 들자”라는 등 아슬아슬한 수위까지 나아간다.

헬조선은 말 그대로 ‘지옥(hell) 같은 한국(조선)’이라는 의미다. 헬조선 관련 내용은 여러 사이트의 게시판에 활발하게 올라온다. 그러다 최근 ‘한국 비하의 허브’를 자임하는 인터넷 사이트 ‘헬조선’이 개설되면서 열기가 더 뜨거워졌다.

초기에 누리꾼들은 헬조선이 ‘일본풍’ 같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지금은 별다른 저항 없이 수용한다. 한 네티즌은 커뮤니티 ‘MLB파크’에서 “무슨 일만 나면 네이버에서 헬조선 운운하는 것들이 있어 보기 싫었다. 그러나 최근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하층민 두들겨 패면서 가는 거니까 최악인 듯. 진짜 헬조선 아닌가”라고 했다.

헬조선의 유사어로 ‘불지옥반도(혹은 ‘지옥불반도’)’도 자주 사용된다. 불지옥반도는 ‘디아블로’라는 온라인 게임에 등장하는 ‘불지옥’과 한반도의 ‘반도’를 합친 말이다. 디아블로 게임의 난이도는 일반, 악몽, 지옥, 불지옥의 4단계로 나뉘는데 불지옥은 거의 게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이 밖에도 대한민국의 ‘대’를 ‘개’로 바꾼 ‘개한민국’, 김치와 나라를 뜻하는 ‘스탄’을 합성한 ‘김치스탄’, 한국 탈출을 뜻하는 ‘탈조선’, 메르스 사태를 비꼰 ‘동방역병지국’ 등이 자주 쓰인다.

헬조선 담론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로 젊은 층으로, 이들은 우리 사회를 다섯 계급으로 나눈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똥수저다. 한 네티즌은 최상류층 계급인 금수저와 저소득 서민계급인 똥수저의 일생을 이렇게 비교한다.

금수저 vs 똥수저

“유치원 시절 금수저는 영어유치원을 다니지만, 똥수저는 어린이집에서 교사에게 폭행당한다. 초 · 중 · 고교 시절 금수저는 어학연수를 떠나지만, 똥수저는 PC방에서 게임을 한다. 대학 시절 금수저는 화려한 파티를 즐기지만, 똥수저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대학 졸업 후 금수저는 낙하산으로 좋은 직장에 취업하지만, 똥수저는 면접관에게 ‘90도 폴더 인사’만 한다. 은퇴 후 금수저는 해외여행하면서 노후를 즐기지만, 똥수저는 판잣집에서 쓸쓸히 늙는다.”

또 다른 네티즌은 ‘디스위키’에서 탈조선을 언급하면서 “금수저는 비행기로 탈출하지만, 흙수저는 한강으로 탈출한다”고 냉소했다. 헬조선을 지지하는 청년들은 “우리는 똥수저다. 똥수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국가와 기성세대가 하라는 대로 다 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이 나라는 똥수저에게 지옥이다”라고 말한다.

금수저와 똥수저의 양극화를 비교하는 내용엔 어김없이 ‘죽창을 달라’는 댓글이 달린다. 죽창은 동학혁명 때 사용된 빈자(貧者)의 무기인데, 이를 국가와 금수저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형상화하는 것. 그런데 ‘죽창운동’은 자학적으로 흐른다. 청년들은 “죽창으로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 서로 찌르자”고 한다. 다 같이 ‘평등하게’ 죽자는 것이다. 이들은 “기성세대에 복수하기 위해 애를 낳지 않겠다” “자살해야 우리의 아픔을 알아줄 것”이라는 자학성 발언을 자주 한다. 이 역시 죽창운동의 연장선으로 비친다.

“지독한 자기파괴적 포기”

최근 생겨난 인터넷 커뮤니티 ‘헬조선’은 우리나라를 비하하는 게시물만 전문적으로 다룬다. 필자는 헬조선 운영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얼마 뒤 응하겠다는 답신이 왔다. 운영자 김모(30) 씨는 “광고회사에 다니면서 이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 헬조선 커뮤니티를 만든 계기는.

“이미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말해왔다. 그런데 이들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정치적 기준으로 한국을 평가한 측면이 있다. 정치적 측면을 배제하고 한국의 현실을 바라보자는 목적으로 헬조선을 열었다. 5월 27일 공식 오픈 했는데 매주 10~20%씩 방문자가 늘고 있다. 현실의 부조리를 느낄 수 있는 게시물을 주로 업로드한다.”

▼ 헬조선 같은 자학적 표현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다른 나라에도 어느 정도 있는 문제를 너무 과장하는 건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날 노력을 안 한 죄 말고 다른 죄가 있나. 이런 상황에서 냉소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면 폐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사실 헬조선에 대한 비판은 기득권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것밖엔 안 된다. 기득권자들은 원정출산, 이중국적 취득, 국적 포기를 선도하며 국부 유출에 힘쓰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에겐 ‘너희는 열심히 굴러라’라고 말한다.”

▼ 죽창운동은 어떤 취지에서 벌이는 건가.

“‘죽창을 달라’는 불평등을 토로하는 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청년들은 불평등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죽창을 달라고 한다. 이는 지독할 정도로 자기파괴적인 포기 선언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구성원들에 의한 사회의 공멸, 그 모든 상징이 ‘죽창을 달라’는 메타포(metaphor, 비유)에 녹아 있다고 보면 된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포기하게 만들었는지는,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3
유설희 | 자유기고가 zorba8251@daum.net
목록 닫기

“이 지옥 같은 나라 내게 죽창을 달라!”

댓글 창 닫기

2018/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