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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있는 풍경

흔적도 추억도 사라진 곳 나는 왜 거기에 갔을까

은방울자매 ‘마포종점’

  • 글·김동률 |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석재현 | 대구미래대 교수, 사진작가 | 동아일보

흔적도 추억도 사라진 곳 나는 왜 거기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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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시대적, 정서적 상징

흔적도 추억도 사라진 곳 나는 왜 거기에 갔을까
종점. 기차든 버스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내려서야 하는 곳. 그것은 비약하자면 인간의 삶에도 해당되는 무섭고 소름끼치는 단어다. 그래서 종점을 포함하는 단어는 대개 퇴폐적이고도 말세적인 느낌을 준다. 종점에 있는 다방에선 촌스러운 다방 아가씨가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은 달달한 값싼 커피를 내올 것 같고, 종점 한구석의 주점에선 덕지덕지 지분(脂粉) 냄새 풍기는 늙은 작부가 대폿잔을 따를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가.

그래서 어느 시인은 ‘종점다방’이란 제목의 시에서 종점을 ‘퇴화를 꿈꾸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며 성긴 삶들이 커피 한잔, 대포 한잔에 의지하는 곳이 종점 다방, 종점 주점의 풍경쯤 된다. 종점은 낱말이 안기는 묘한 슬픔 때문에 여러 비극적인 얘기의 단골 제목으로 등장한다. 영화 제목도 있거니와 잊힐 만하면 ‘종점’이 들어간 제목의 주말 드라마가 나온다.

마포종점은 서울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협궤전차의 서쪽 끝이다. 지금 불교방송이 있는 마포대교 북단 어디쯤엔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기념표지석을 만들고 조그만 공원을 조성해놓았다. 그 시절, 이른 새벽 마포 종점에선 가난한 승객들이 하루벌이를 위해 전차를 기다렸을 것이다. 산업화의 열매를 맛보기 훨씬 이전, 모두들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었다. 고만고만하게 살았다는 것은, 세 끼는 굶지 않되 삼시 세끼에 쌀밥 대신 수제비나 국수가 한두 번 섞여 있었다는, 그런 얘기다. 그래서 그런 세월을 살아온 서울 시민, 나아가 한국인에게 마포종점은 지리적 상징이자 시대적, 정서적 상징이 된다.

사실 클래식이나 재즈 등 마니아층에게 집중되는 장르의 음악과 달리 가요가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이유는 강한 공감 능력에 있다. 누구나 겪음직한 사랑과 이별, 아픔, 삶의 기쁨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노랫말은 사람들을 교감하게 하며 하나로 묶어준다. 그래서 덕수궁 돌담길이나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진 돌아가는 삼각지, (안개 낀) 장충단공원, 한계령, 부용산, 박달재, 고모령, 미아리고개 같은 지명은 노랫말이 갖는 공감의 힘을 더 높여주는 효과적인 장치다. 현명한 작사자들은 그래서 노랫말에 구체적인 지명을 집어넣었을까. 구체적 지명이 들어간 노래는 실재성이 부여돼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마포종점’도 이런 논리에 딱 들어맞는다.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 여의도 비행장엔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한들 무엇하나/ 궂은 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흔적도 추억도 사라진 곳 나는 왜 거기에 갔을까
고단한 삶들이 똬리 틀고 살던 곳

이 노래를 듣는 많은 이는 저마다 서울의 옛 모습을 떠올린다. 지금은 거대한 빌딩숲과 아파트촌으로 변한 여의도에 비행장이 있었다는 노랫말은 한 시대가 훌쩍 지났음을 현실감 넘치게 보여준다.

‘서울화력발전소’로 문패를 바꿔 단 노랫말 속 당인리발전소는 한국 근현대사의 생생한 증거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한강변 마포언덕에 세워진 국내 최초의 화력발전소다. 매연과 소음으로 인한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자 폐쇄까지 고려하다 지하화라는 대안을 선택했다. 지금은 지하화 공사가 대부분 마무리돼 예전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당인리발전소가 이곳에 세워진 데는 마포종점이 한몫했다. 세종로-서대문-마포로 이어지던 전차 노선의 종점이 마포로 결정되자, 발전소는 사고 위험 때문에 도심에서 멀어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하고 조선총독부는 1929년 마포종점 인근에 간이 발전소를 세우는데, 이것이 당인리발전소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 화력발전소는 원자력발전소가 등장한 1980년대 이후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오늘날 당인리발전소가 공급하는 전력은 서울시 소비전력의 3%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도심을 관통하는 밤차의 종착지 마포는 강 건너 영등포와 함께 1960년대만 해도 변두리였다. 살기 위해, 아니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떠밀려온 고단한 삶들이 똬리를 틀고 살던 곳. 그래서 사람들은 마포나 영등포를 생각하면 뭔가 싸고 허름한 이미지를 함께 떠올린다.

고향을 떠나온 소시민들의 정서는 개발연대 한국 대중가요의 단골 소재다. ‘59년 왕십리’도 그렇다. 객지에서 올라온 가난한 인생들은 주변에 도살장이 있어 집값이 상대적으로 싼 왕십리 일대로 몰려들었고, 도살장에서 흘러나오는 허드레 곱창과 함께 독한 소주를 쓰라린 가슴에 부어 넣으며 타향살이 외로움을 달랬다. ‘마포종점’이나 ‘59년 왕십리’를 들으면서 이 땅의 장년들은 그 시절의 서럽고 곤고하던 풍경을 어제 일처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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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동률 | 서강대 MOT 대학원 교수 yule21@empas.com 사진·석재현 | 대구미래대 교수, 사진작가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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