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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에 길을 묻다

‘외적 막기’보다 ‘내 자리 지키기’

아부의 기술, 아첨의 정치

  • 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외적 막기’보다 ‘내 자리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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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미인을…”

그러면서 초나라 왕은 장의에게 보물 등 자금을 두둑이 줬다. 왕후 남후(南后)와 초나라 왕이 총애하는 후비 정수(鄭袖)가 이 얘기를 듣고는 속으로 매우 초조해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사람을 통해 장의에게 많은 황금을 보냈다. 말로는 ‘여비에 보태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미녀를 초나라로 데려오지 말라는 간접적인 의사 표시였다. 남후와 정수는 ‘초나라에서는 귀한 존재’로 대단한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장의의 계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는 길을 떠나기 전에 초나라 왕에게 자신을 위해 술자리를 베풀어줄 것을 요청했다.

“요즘 같은 난세에 길을 떠나면 언제 다시 왕을 뵐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사오니, 아무쪼록 술자리를 한번 마련해주십시오.”

초나라 왕은 장의를 위해 송별회를 마련했다. 술자리가 거나하게 무르익을 무렵 장의가 갑자기 절을 하며 “더 이상 이런 자리는 없을 것 같사오니, 원하옵건대 왕께서 가장 아끼시고 사랑하는 분들로부터 술을 한잔 받았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왕은 이를 허락하고 곧 남후와 정수를 불러 장의에게 술을 따르게 했다. 두 여자를 본 장의는 탄성을 지르며 초나라 왕 앞에 무릎을 꿇고 또다시 넙죽 절을 했다.

“이 몸 장의, 대왕께 사죄하옵니다.”



“무슨 소리요?”

장의는 이 대목에서 또 한 차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달콤한 말을 내뱉었다.

“이 장의, 천하를 두루두루 다 돌아다녀 보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미인들은 보지 못했사옵니다. 그런데 위나라에 가서 미녀를 얻어 오겠다고 했으니, 대왕을 속인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이렇게 절세가인을 둘씩이나 거느리고 있는 초나라 왕에게 다른 나라에서 또 다른 미녀를 데리고 오겠다고 했으니 왕을 속인 죄, 죽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후비를 극찬하는 말을 들은 초나라 왕은 화를 내기는커녕 “개의치 마시오. 나 역시 천하에 저들처럼 아름다운 여인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라며 장의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남후와 정수는 일찍부터 고만고만한 칭찬에 싫증이 나던 차에, 장의와 같은 비중이 있는 인물로부터 칭찬을 듣고 보니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니었다. 장의는 이처럼 교묘한 아첨술로 초나라 궁정의 총애와 신임을 한 몸에 받았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상대의 필요한 부분을 만족시켜주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무작정 후한 예물과 아부로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부의 기술 중 가장 보편적인 것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던져준다’는 ‘투기소호(投其所好)’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주거나 비위를 맞춘다는 의미의 이 말은 겉으로 드러나는 양모(陽謀)와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음모(陰謀)를 모두 포함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외적 막기’보다 ‘내 자리 지키기’
재물 탐하다 ‘혼수품’ 신세

기원전 658년 진(晉)나라 대부 순식(荀息)은 굴지(屈地)에서 나는 좋은 말과 유명한 수극(垂棘)의 옥을 우공(虞公)에게 뇌물로 주고 우나라의 길을 빌려 괵을 멸망시킨 다음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까지 멸망시켰다. ‘투기소호’의 모략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좋은 본보기다. ‘가도벌괵(假道伐괵)’이란 고사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순식은 우공이 재물을 탐내고 이득이 생기는 일이라면 의리쯤은 헌신짝처럼 버리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에게 뇌물을 먹이는 한편 감언이설로 그를 칭송했다. 우공은 진나라가 친구의 나라이지, 다른 야심을 가진 적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우공은 궁지기(宮之奇)의 충고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결과 나라는 망하고 그 자신은 포로로 잡혀, 진나라 헌공(獻公)의 딸이 시집가는 데 딸려가는 혼수품 신세가 되고 말았다.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 노릇을 한 제나라 환공의 측근으로 수조(竪조), 역아(易牙), 개방(開方) 세 사람이 있다. 모두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숨기고 갖은 궁리를 다해 권력을 잡으려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아부, 뇌물, 부추김, 감언이설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환공의 환심과 신임을 얻는 데 사활을 걸다시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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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사학자, 중국 史記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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