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호

“장타 욕심 버리고 ‘심플 스타일’ 도전”

‘변신의 달인’ 김지현

  • 글 | 엄상현 기자 | gangpen@donga.com 사진 | 박해윤 기자 | land6@donga.com

    입력2015-08-21 16: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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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타 욕심 버리고 ‘심플 스타일’ 도전”
    지난해 11월 인천 잭니클라우스GC에서 치러진 KLPGA 시즌 마지막 경기 ‘조선일보-포스코 챔피언십’. 김지현(24·CJ오쇼핑)에겐 프로 데뷔 이후 가장 아쉬운 경기로 남았다.

    경기 마지막 날. 김지현은 2라운드까지 6언더파를 기록하며 전인지 등과 함께 공동 2위로 최종 3라운드에 나섰다. 1위는 3타차인 9언더파 허윤경. 그 어느 때보다 몸 상태가 좋았던 김지현은 우승 욕심까지 났다.

    전반 홀에 1타를 줄이는 데 그쳤지만, 후반 들어 다시 샷 감각이 살아났다. 12번, 14번, 15번 홀까지 이어진 버디로 3타를 더 줄여 한순간에 10언더파까지 타수를 끌어내렸다. 2타를 줄여 11언더파를 기록한 허윤경과는 이제 1타차.

    그때 복병이 나타났다. 공동 2위이던 전인지가 10번 홀에서 샷 이글을 기록한 뒤 15번 홀까지 버디 2개를 추가하면서 공동 1위로 올라섰다. 남은 홀은 세 홀. 1타차 박빙 승부가 이어졌다.

    17번 파3홀. 김지현의 티샷 볼이 홀 컵에 붙었다. ‘버디 찬스!’. 평소 같으면 충분히 넣을 수 있는 거리였다. 이것만 넣으면 공동 1위.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일까. 공은 무심히도 홀 컵을 살짝 비켜가고 말았다.



    잠시 후 전인지는 같은 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면서 단독 1위로 치고 올라갔다. 18번 마지막 한 홀을 남겨두고 김지현은 전인지에 2타를 뒤진 것. 연장승부로 가려면 경우의 수는 한 가지뿐. 김지현은 1타를 줄이고, 전인지는 실수를 범해 1타를 잃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행운 같은 우연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전인지는 역전 우승에 성공했고, 허윤경 2위, 김지현 3위로 경기는 끝났다. 역전을 허용한 허윤경은 우승을 눈앞에서 놓친 아쉬움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지현 역시 그동안 치러온 수많은 경기 중 그 순간이 가장 아쉽다.

    “마지막 17번, 18번 홀에서 두 번의 (버디) 찬스가 있었는데 그걸 못 넣었어요. 특히 17번 홀을 놓친 순간은 지금도 생생해요. 그것만 넣었어도….”

    2009년 프로 무대에 데뷔할 때만 해도 김지현은 주목받는 신인이었다. 고교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힐 정도로 성적도 좋았고, 특히 드라이브 비거리가 250~260야드에 달할 정도로 장타였다. 시원시원한 그의 드라이버 샷 매력에 빠진 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10년 상금랭킹 73위까지 밀려난 데다, 그해 시드전에서 247위를 기록하는 최악의 성적으로 2011년 시즌 출전권(1부 리그)을 잃어버렸다. KLPGA 규정상 상금랭킹 50위까지만(내년부터 60위까지로 확대) 자동적으로 다음 해 시드권이 주어진다.

    비거리 대신 ‘코스 관리’

    “장타 욕심 버리고 ‘심플 스타일’ 도전”
    이후 2013년까지 매년 시드전에 출전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시드전은 시즌 중에 벌어지는 일반 대회와는 달리 순위가 곧 출전 자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부담이 큰 만큼 선수 대부분이무척 꺼린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김지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상위권인 20위권에 오른 게 11차례, 프로 입문 이후 처음으로 총상금액이 2억 원을 넘어서면서 상금랭킹도 22위까지 올랐다. 덕분에 지난 연말에는 시드전에 출전하지 않아도 됐다.

    올 들어서도 시즌 첫 대회인 ‘현대차 중국여자오픈’에서 4위를 기록한 이후 ‘삼천리 투게더 오픈’ 3위, ‘넥센-세인트나인 마스터즈’ 7위, ‘두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5위 등 좋은 기록을 이어갔다. 어쩌면 그만큼 생애 첫 우승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7월 말 현재 KLPGA 상금랭킹은 13위. 과연 무엇이 김지현을 달라지게 한 것일까.

    매주 이어지는 대회 중간에 잠시 쉬는 틈을 타 그를 만났다.

    ▼ 지난해부터 성적이 오르기 시작해 올해 성적이 매우 좋은데, 뭔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쇼트 게임과 샷이 많이 안정됐어요. 게임을 최대한 편하게 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좋아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자꾸 잘 치려고 욕심을 내다보니 더 안됐던 것 같아요. 플레이도 너무 공격적으로 하고.”

    ▼ 어떤 부분에서 공격적이었다는 뜻이죠?

    “제가 비거리가 좀 나갔거든요. 드라이브 비거리가 평균 250야드를 넘었으니까요. 그렇다보니 코스를 좀 과감하게 공략하는 편이었죠. 하지만 요즘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최대한 안전하게 치려고 하고, 코스 관리도 예전보다 신경을 많이 써요. 또 스윙을 교정하고 전반적으로 많이 좋아졌어요.”

    “장타 욕심 버리고 ‘심플 스타일’ 도전”
    “올해 목표는 톱10”

    “장타 욕심 버리고 ‘심플 스타일’ 도전”
    프로 데뷔 초 김지현의 드라이브 평균 비거리는 255야드로 국내 프로여자 선수 중 세 번째로 장타였다. 그러던 것이 올해 평균 비거리는 241야드로 무려 14야드나 줄고, 순위도 37위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만큼 안정적으로 경기를 치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 그렇게 달라진 이유가 뭔가요.

    “2년 전쯤, 안성현 (코칭)프로를 만나고 많이 좋아졌어요. 플레이 스타일도 많이 바뀌고. 예전 프로들은 주로 대회 끝나고 연습장에서 스윙 교정에 집중했는데, 안 프로는 대회가 있으면 미리 현장에 나와서 그날 컨디션이라든지 샷도 봐주고, 코스 공략법도 많이 조언해줘요. 그게 큰 도움이 되죠. 요즘 뜨는 이정민(3승, 상금랭킹 3위)과 조윤지(1승, 상금랭킹 2위) 등이 안 프로한테 저랑 같이 배우고 있어요.”

    ▼ 김 프로도 올해 우승 한번 해야죠.

    “시즌 초반에 샷이 좋았다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조금 흔들렸어요. 다행히 요즘에 다시 안정적으로 잡혔는데, 우승하면 좋겠지만 그게 제 마음대로 되나요. 남은 대회에서 최대한 열심히 해서 톱10 안에 드는 게 올해 제 목표예요.”

    ▼ 동명이인 김지현(24·롯데) 프로는 벌써 두 번이나 우승했는데,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겠어요.

    “가끔 축하받은 적도 있고, 사진이 잘못 나간 적도 있어요. 동명이인이 있어서 좋은 점도 있어요. 둘 중에 한 명이라도 잘 치면 제 이름이 나가니까요, 하하. 스트레스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제가 원래 좀 털털한 스타일이라 그렇게 많이 받지는 않았어요. 경기가 잘될 듯하다가도 잘 안 풀린 게 오히려 더 스트레스였죠. 특히 프로 생활 초반, 대기 시드에 있을 때는 경기 나갈 때마다 잘 쳐야 시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 부담감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요즘엔 조바심 갖지 않고 웬만하면 즐겁고 편하게 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시합 중에 코스 안에서 말도 더 많이 하려고 하고. 그러니까 오히려 성적도 더 좋아진 것 같아요.”

    ▼ 가장 취약한 점이라면.

    “샷에 비해서 쇼트게임이 많이 부족해요. 어프로치나 퍼팅 같은.”

    멘털, 자기관리, 휴식

    “장타 욕심 버리고 ‘심플 스타일’ 도전”
    ▼ 골프는 언제 시작했나요.

    “중학교 1학년 때요. 세미프로이던 사촌오빠와 언니가 엄마한테 저 골프 한번 시켜보라고 권유해서 하게 됐죠. 엄마도 골프를 좋아했거든요.”

    ▼ 운동을 좋아했나봐요.

    “바이올린, 피아노, 수영, 스케이트 등 어릴 때 안 해본 예체능이 없어요. 제일 잘했던 게 스케이트였는데 7세 때부터 골프를 시작하기 전까지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했죠. 초등부 선수로 출전해서 금메달도 따고, 출전하면 무조건 메달은 땄어요.”

    ▼ 그런데 왜 그만뒀어요?

    “여자가 하기에는 좀 위험하더라고요. 부모님도 골프를 권하고 그래서 전향하게 된 거죠.”

    ▼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골프 성적이 어땠어요?

    “중상위권 정도? 종종 3위도 하고 그랬죠. 고등학교 때는 성적이 더 좋아서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히기도 했고.”

    ▼ 국가대표 대신 프로로 바로 전향한 이유는.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남자들이야 군대 문제도 있으니까 국가대표를 하려고 하는데, 여자들은 굳이 욕심을 내지 않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적이 좋아서 그냥 한번에 술술 다 잘 풀렸어요. 별 무리 없이 프로골퍼 자격 따고, 시드전에서도 성적이 괜찮아서 곧바로 1부 리그로 진출하게 됐죠. 그런데 그 이후에 잘 안됐어요. 환경도 낯설고,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너무 많았고.”

    ▼ 중도에 골프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 없어요?

    “아뇨, 그런 적은 없어요. 경기가 잘 안 풀리면 연습을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합니까.

    “물론 멘털(정신력)이죠. 그다음, 자기관리도 중요해요.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든 운동이기 때문에 연습만큼 휴식도 중요해요. 컨디션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성적도 좌우하거든요.”

    ▼ 요즘 후배들이 우승하는 것을 보면 어떤가요.

    “누가 우승하든 별로 신경 안 써요. 골프라는 건 자기 혼자와의 싸움이거든요. 다른 사람 치는 것까지 신경 쓰면 밑도 끝도 없어요. 저만 잘 치면 되죠.”

    쉽고 단순하게

    ▼ 어떤 골프 선수가 되고 싶나요.

    “어릴 적에는 소렌스탐, 요즘엔 최나연 언니 같은 선수요. 경기 스타일이 심플하잖아요. 쉽고 단순하게 쳐야 선수 생활을 길게 할 수 있거든요. 스타일을 배우고 싶어서 저 나름대로 연구도 하고 연습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 앞으로의 목표는.

    “물론 가장 큰 목표는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무대에 진출해서 우승하는 거지만, 당분간은 국내 무대에 집중할 생각이에요. 그리고 골프는 체력이 될 때까지는 할 겁니다.”



    Lady G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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