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호

특집 | 촛불정부 원년, ‘나라다운 나라’ 어떻게?

운동권·촛불세력 권력기관 장악

“진문(眞文·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 17명 위에 문 대통령 얹혀져”

  • 입력2017-12-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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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0월 10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CDB]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0월 10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CDB]

    2017년 5·9 조기 대통령선거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뒤 7개월 동안 우리 사회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주류 세력의 교체’였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을 거쳐 진보정권이 다시 집권한 만큼 당연한 과정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 기간 없이 바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인적 교체를 속속 단행했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게 느껴졌다. 

    특히 국정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와 내각에서, 그리고 검찰과 국정원 같은 권력기관에서 인적 물갈이가 폭넓고 빠르게 일어났다. 문재인 정부의 1호 국정과제인 ‘적폐청산’을 입안하고 실행할 중추 기관인 까닭이다. 

    이제 국정을 이끌어가는 핵심 기관과 부서의 인적 재배치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그렇다고 다 끝난 건 아니다. 지금부터 공공기관장과 임원들에 대한 교체가 시작된다. 전체 330개 공공기관을 전수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61개 기관은 기관장이 공석이다. 현 정부 들어 임명된 30명의 공공기관장 가운데 23명이 ‘캠코더’(대선 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로 분류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공공기관도 순차적으로 문재인 정부 색깔로 바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정부에서도 새로 정권을 잡으면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요직에 앉아서 국정을 이끌어갔다. 대선 캠프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논공행상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다만 문재인 정부에선 역대 정부와 조금 다른 점이 발견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촛불민심으로 탄생한 정권인 만큼 이른바 ‘촛불세력’이 새 정부의 인물 공급처, 인재 풀이라는 점이다.

    ‘어공’ 압도적 증가

    촛불세력의 개념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조직은 전국 1500여 개 단체로 결성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었다. 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뿐만 아니라 재야 법조계, 문화예술계, 언론계 등 각계를 총망라했다. 각 시도에도 지부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범(汎)촛불세력의 범위는 매우 넓다. 이들은 이해단체별로 각종 요구를 쏟아내기도 한다. 



    촛불집회엔 학생운동권 출신을 중심으로 야당 정치인들도 대거 참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경실련, 참여연대 같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단체들도 적극적이었다. 촛불세력 중에서도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인적 뼈대를 형성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의 경우 과거 정권에선 정부 부처에서 파견되는 정식 공무원인 ‘늘공’(늘 공무원)과 정치권에서 들어가는 별정직 공무원인 ‘어공’(어쩌다 공무원)의 비율이 반반 정도로 시작했다. 그러다 정권 후반기에 ‘어공’들은 빠져나오고 그 자리를 ‘늘공’이 채우는 게 일반적이었다. 

    문재인 정부에선 사정이 조금 다르다. 종합적으로 보면, 정치권에서 들어간 어공이 과거 정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그중에서도 학생운동권 출신이 주축을 이룬다. 

    현재 청와대 참모진(비서실·정책실·안보실)은 실장 3명(장관급), 수석 및 보좌관(차관급) 13명, 비서관(1급) 47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 아래에 2, 3급 행정관 등이 있다.

    ‘진문’의 태동

    이 중 1급 비서관 이상 63명 가운데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과 대학 총학생회장단, 진보 시민사회단체 출신이 22명이다. 특히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인 임종석 비서실장이 관장하는 비서실의 비서관급 이상 30명만을 놓고 보면 17명이 범(汎)운동권에 해당한다. 

    전병헌 정무수석이 비리 연루혐의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되면서 사퇴하자 그 자리로 수직 승진한 한병도 정무비서관도 전대협 3기 출신이다. 

    여권 인사 몇몇은 “임 실장을 중심으로 하는 학생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 17명은 ‘진문(眞文·진짜 문재인계)’으로 통한다. ‘진문’이 문 대통령을 포위하면서 정부의 핵심 친위그룹을 구축하는 것으로 알려진다”고 말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의 ‘진박(진짜 박근혜계)’은 나중에 지탄의 대상이 됐다. ‘진문’은 어떨지 모르겠다. 

    청와대 참모뿐 아니라 권력기관, 사정기관에도 운동권 출신들이 대거 유입됐다. 범촛불세력이 국정운영의 주체가 된 상황에 대해선 정치권과 관료사회의 평가가 엇갈린다. 

    김중권 전 청와대 비서실장(김대중 정부)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가 전문가와 정치인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점과 운동권 출신 참모들이 문 대통령과 진정으로 코드가 맞지 않는 점을 우려했다. 

    첫 진보정권인 김대중 정부 청와대 참모진의 구성은 어땠습니까? 

    “저는 청와대 참모들이 갖춰야 할 조건과 자세로 늘 두 가지를 생각했어요, 첫째, 전문가와 테크노크라트가 청와대에서 일해야 한다는 원칙이었죠. 청와대는 일을 배우는 곳이 아닙니다. 가장 우수한 사람이 청와대에 가서 당장 일을 할 수 있어야지요. 둘째,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과 코드가 맞아야 해요. 저는 당시 ‘대통령과 혼이 닮을 수 있어야 한다’는 표현을 썼죠.” 

    그때는 DJP 공동정권이었는데, 두 번째 원칙을 지키기 쉽지 않았겠군요. 


    “JP(김종필 전 총리)의 자민련에서 내각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참모진도 반분하자는 요구가 있었죠. 당시 자민련의 강창희 사무총장이 주장했는데, 저는 청와대는 자리를 나누는 곳이 돼선 안 된다. 바로 일할 수 있는 사람, 대통령과 혼이 닮을 수 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면서 거부했어요.”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들은 어떻습니까. 

    “일단 그 사람들이 대통령과 호흡을 같이하고, 대통령과 혼이 닮은 사람이라면 괜찮겠죠. 그러나 운동권에 몸담았었다고 모두 문 대통령과 호흡이 맞는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문 대통령은 운동권이 아니잖아요. 호흡을 같이하기 위해서 굳이 운동권 사람들로 포진할 필요는 없는 거죠. 혼이 닮고 국정운영을 같이할 사람은 운동권이 아니라도 문 대통령 주변에 많을 겁니다. 그런 측면에서 운동권 출신을 대거 청와대 참모진에 참여시킨 건 좋은 인사가 아니라고 봐요.”

    “집단사고에 빠질 우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동아DB]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동아DB]

    문재인 정부에선 운동권 출신의 비율이 많아지다 보니 과거 정부와 달리 전문 관료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같은데요. 

    “그렇죠. 보통 비(非)정무 부서에 테크노크라트(전문 관료)를 집중 배치하고 정무 부서에 정치하는 사람을 포진하면 되죠. 김대중 정부 청와대에선 여당과의 협조 차원에서 당료들을 참모진으로 활용했지만 비정치적인 분야는 거의 테크노크라트에게 맡겼어요. 당에서 밀고 들어오려고 해도 다 막았죠. 그래서 여당과 좀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런 요구를 다 들어주면 청와대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아요. 지금 청와대는 두 가지 원칙에서 다 어긋나 있는 상황 같아요.” 

    문 대통령도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지냈다. 지금 운동권 출신 위주로 짜인 1기 참모진을 운영하면서 득실을 따지고 있을 법하다. 2018년 지방선거를 전후한 즈음 청와대 개편이 이뤄진다면 2기 참모진이 어떤 색채를 띨지도 관심사다. 

    이명박 정부 시절 특임장관을, 박근혜 정부 때 대통령정무특보를 지낸 주호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촛불 세력의 권력기관 장악 기류를 비판했다. 

    주 의원은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전체 국민의 대통령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인재를 골고루 등용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청와대 수석이나 비서관 중에 전대협, 민주당, 노무현 정부 출신이 너무 많다. 그들이 아니면 아무것도 못 할 것처럼 인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촛불 세력이 권력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양상인데 국정운영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집단사고에 빠질 우려가 있죠. 나아가 국가관 같은 것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많아요. 가령 ‘전대협’식 사고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전문성이 있는지, 이런 점을 살펴봐야 해요.”

    “임종석 실장, ‘전대협 강령’ 답변해야”

    2017년 11월 6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비서실 국정감사에선 ‘주사파’(주체사상파), ‘전대협’ 논란이 벌어졌다. 

    “청와대 내부는 심각하다. 주사파, 전대협이 장악했다. 전대협 강령을 보면 미국을 반대하고 민중에 근거한 진보적 민주주의 구현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에 들어가 있는 전대협 인사들이 이런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증거도 없다.” (전희경 한국당 의원) 

    “5공, 6공 때 정치군인이 광주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의원님이 어떻게 사셨는지 살펴보진 않았다. 그러나 의원님이 거론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을 걸고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는데, 의원님께서 그렇게 말할 정도로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 (임종석 실장) 

    아마 보수 성향 사람 중 상당수는 문 대통령을 지지하면서도 전대협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권 출신이 청와대 참모진의 중추를 이루는 것에 대해선 전 의원 말처럼 우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비서실장을 지낸 이석우 자유한국당 디지털정당위원회 위원장은 “임 실장을 비롯해서 국정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들은 전대협 강령을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공개적으로 답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자유민주체제 대한민국의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비서실장은 당연히 그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답을 못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의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부드럽고 참모가 강성이라 걱정”

    한 야당 중진 의원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대통령이 운동권 출신 참모들 위에 얹혀버린다는 분석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밑에서 결정하면 대통령이 그대로 따르는 결과를 낳는 거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잘 아는 고위 인사도 그런 걱정을 하더라.” 

    문재인 대통령과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 문 대통령을 잘 안다는 한 인사는 “문 대통령의 성격이 너무 부드럽다. 강성 참모들에게 휘둘릴 수도 있어 걱정”이라는 취지의 말을 주변에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수는 “촛불 세력의 국정 참여엔 긍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 문 대통령은 촛불민심으로 당선됐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본인도 피플 파워로 대통령이 됐다고 직접 얘기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청와대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 자체가 피플 파워의 연장선에 있으니 그 위주로 참모진을 짜서 국정을 운영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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