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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중일언

‘가인 김병로’ 펴낸 한인섭 서울대 교수

‘독립적 지식인’, 그 한국적 전범의 재발견

  • 권재현 기자 | confetti@donga.com

‘가인 김병로’ 펴낸 한인섭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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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기간 10년, 920쪽 분량

그 가인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밝혀낸 책이 출간됐다. 920쪽 분량의 대작이다. 집필 기간도 1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저자는 한인섭(59)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장을 맡아 법조개혁의 한 축을 맡은 그가 ‘한국 사법의 창조주’라고 표현한 가인에 대한 방대한 전기를 펴냈다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한 교수는 가인의 평생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지공무사(至公無私·지극히 공정해 사사로움이 없음)’를 제시하며 ‘통합적 민족주의자’이자 ‘민주헌정의 수호자’로서 가인의 진면목을 다시 되새기자고 강조했다. 강의와 개혁안 마련, 저서 홍보로 바쁜 그를 2017년 12월 8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일제강점기 ‘항일변론의 트로이카’로 불리는 허헌, 김병로, 이인을 다룬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2012)를 펴낸 바 있다. 그런데 유독 가인에 대해서만 다시 심층적으로 인물을 탐구한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 법정 역사를 관통하는 3가지 작업의 대미를 장식하는 일이었다. 첫 번째는 홍성우 변호사와 대담을 통해 1970, 80년대 인권변호사들의 법정투쟁을 다룬 ‘인권변론 한 시대’(2011)였다. 두 번째 작업은 1920, 30년대 생생한 항일법정투쟁을 다룬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였다. 가인은 1940~60년대까지 활약한 분이란 점에서 앞의 두 작업과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인 동시에 한국 법조사에서 가장 우뚝한 존재를 종합 정리한 작업이었다.” 

이미 전기가 2권 나와 있다. 김진배의 전기와 김학준의 평전이다. 


“두 분의 책도 의미가 있지만, 언론인과 정치학자로서 접근하다 보니 정작 가인의 본령인 법률가로서 내면으로 깊숙이 파고들지 못하고 밖에서 빙빙 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그가 쓴 법리 논쟁, 법률 제정 과정과 법률조항의 미세한 차이에 초점을 맞춰 법조인으로서 가인을 온전히 규명하고 싶었다. 이를 통해 우리 사법체계의 원류를 정리하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인간으로서 가인에 흠뻑 매료돼 있음을 여러 군데서 느낄 수 있었다. 


“20세기 한국사라는 것이 참 사람이 온전하게 살기 힘든 시대였다. 식민지 경험과 광복 후 분단과 전쟁을 겪으며 훼절, 변절, 전향, 이런 압력을 견디며 심지 굳게 산다는 게 어렵잖은가. 그런 와중에서 올곧고 떳떳하게 산 삶이라는 게 드물지만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파고들면 들수록 그 인간적 면모에 자꾸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가인에 대한 ‘변호인적 이해’

가인이란 호를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뜻의 가인(佳人)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거리의 사람이란 뜻의 가인(街人)인데 이게 요즘 말로 ‘홈리스’라는 뜻이더라. 

“원래는 ‘작은 돌’이라는 뜻의 소석(小石)이란 별호를 썼다. 단구지만 강단 있는 그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호다. 하지만 망국의 설움을 겪으면서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어느 한 곳 거처할 곳 없이 거리를 방황하는 거지와 같은 사람이란 뜻에서 가인을 호로 삼은 것이니 얼마나 애절한가. 개인적으로 근현대 인물의 호 중에서 김구의 백범(白凡)과 안창호의 도산(島山)과 함께 가장 멋있는 호라고 생각한다. 백범은 천민인 백정과 평민인 범부를 합친 단어가 가장 밑바닥 인생을 돌보겠다는 뜻이 담겼고, 도산은 하와이 풍경을 보고 조국의 아름다운 ‘반도강산(半島江山)’을 떠올리며 지은 것이다.” 

가인 관련 자료를 모으고 집필한 세월이 10년이면 ‘인권변론 한 시대’와 ‘식민지 법정에서 독립을 변론하다’를 집필하는 기간과도 겹쳤다. 책에서 그 긴 세월을 가인과 동행하며 대화를 나눈 기분이라고 밝혔다. 

“1927년 잡지 ‘별건곤’이 유명 인사들에게 공통 질문을 던졌다. ‘최근 통쾌한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대부분 “통쾌할 일이 뭐 있겠느냐”는 말로 식민지 현실을 비꼬았다. 그런데 가인은 “무죄판결을 받았을 때 기뻤다”고 답했다. 1920~30년대나 1970~80년대 시국사건에선 무죄판결이 거의 없었다. 홍성우 변호사와 대담할 때 무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홍 변호사가 살인사건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는데 시국사건의 무죄판결을 받은 것만큼 기쁘다고 하더라. 가인에게 묻고 싶은 질문을 홍 변호사에게 대신 물어보며 대화를 나눈 셈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책은 평전의 형식을 취하지 않고 가인에 대해 궁금한 점을 가인의 발언이나 관련 사료를 통해 풀어가는 형식을 취했다. 

“가인에 대해 ‘변호인적 이해’를 하려고 했다. 변호인은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의뢰인의 마음을 읽어내야 하고 그의 억울함과 애환에 공감해야 한다. 그래서 섣부른 평론, 비평보다는 제대로 된 이해를 하기 위해 ‘가상의 공감적 대화’라는 방식을 택했다. 당시에 만들어진 원사료에 입각해 가인의 생각을 읽어내려고 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가인과 동행 취재를 한 셈인데 주변 인물이 계속 바뀌더라. 1920년대는 허헌·이인을 주로 만났고, 1930년대 창동 시대(가인이 전 재산을 정리하고 경기도 양주 창동 일대 4000평 농장을 사들여 자급자족하며 은인자중하던 시절)에는 함께 은둔했던 홍명희·정인보·송진우와 대화하고,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는 법전편찬위원들과 지내다가 6·25전쟁 때는 부산 피난지에서 홀로 불을 밝혀놓고 법전을 써 내려가는 작업을 지켜보며 대화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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