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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기 교수가 말하는 ‘다가오는 현재, 병자호란’

“광해군·인조 때와 닮은꼴… 외교 사안 아전인수 말아야”

  • | 이문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한명기 교수가 말하는 ‘다가오는 현재, 병자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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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왜원조’ ‘항미원조’… 中의 한반도 인식

‘역사평설 병자호란’은 인조반정부터 삼전도의 굴욕까지 숨 가쁘게 묘파한다. [조영철 기자]

‘역사평설 병자호란’은 인조반정부터 삼전도의 굴욕까지 숨 가쁘게 묘파한다. [조영철 기자]

‘상승대국’ 중국의 부상(浮上)과 ‘기존대국’ 미국의 상대적 쇠퇴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조를 뒤흔든다. 북한은 세력 전이(Power Shift) 상황을 활용해 핵무장 완성 단계에 진입했다. 한국 외교는 어떠해야 할까. 

그는 ‘역사평설 병자호란’ 말미에 붙인 글에 이렇게 썼다. 

“병자호란의 전철을 돌아볼 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끼인 자’인 약소국이 복수의 강대국 모두와 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강대국들끼리의 관계가 계속 적대적이면 ‘끼인 자’는 결국 선택의 기로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1627년 정묘호란 이후 조선이 ‘황제의 나라’ 명, ‘형의 나라’ 후금과의 관계를 ‘모두’ 우호적으로 유지하려다가 끝내는 파국으로 내몰린 전철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2017년 12월 26일 서울 광화문 미래전략연구원에서 그를 만났다. 사전적 의미의 중국통(中國通)은 아니지만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21세기 한중관계와 세력 전이 시기 한국 외교 정책이 어떤 지향을 가져야 하는지 들여다보는 게 대담의 취지다.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 전쟁 역사에 천착하면서 ‘역사평설 병자호란’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정묘·병자호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등의 역작을 내놓았습니다. 한국사를 동아시아의 틀에서 탐구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조선시대 역사 중 정치사를 전공했습니다. 석사 논문에서 광해군을 다뤘고요. 광해군이 왜 쫓겨났는지 들여다봤는데 핵심 이유 중 하나가 외교였습니다. 광해군 집권 시기 외교는 조선이 명나라와 훗날 청나라가 되는 후금 사이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광해군 때부터 정묘·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외교 사안은 임진왜란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광해군 시기의 정치를 연구하다 자연스럽게 동아시아 전쟁사로 넘어갔습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상승 대국과 기존 대국이 벌인 패권 경쟁의 산물입니다. 

“임진왜란에 중국이 개입한 후 조선-명 관계가 이전과 다르게 바뀝니다. 조선은 재조지은(再造之恩·거의 멸망하게 된 것을 구원해 도와준 은혜)을 틀로 삼아 명과의 관계를 설정합니다. 일본은 영원히 함께할 수 없는 원수로 자리매김하고요. 이 같은 인식이 조선 사회에서 뇌관 비슷하게 작동해요. 거시적으로 보면 21세기 한국인이 중국과 일본을 보는 시각에도 당시의 인식이 영향을 미칩니다.”
 
조선은 명이 망해가는데도 재조지은을 강조하다 만주에서 굴기한 청에 국토를 유린당하고 항복하는 치욕을 맞았다. 

임진왜란의 연장선상에서 병자호란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임진왜란’이란 명칭을 두고도 논박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은 왜구들이 와서 피운 난동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을 향한 적개심과 원한이 담긴 표현이죠. ‘임진전쟁’ ‘동아시아 3국 전쟁’ ‘7년 전쟁’ 등으로 명칭을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는데 반발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침략 전쟁에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되는 거죠. 

일본에서는 ‘분로쿠게이초노에키’(文祿慶長の役·문록, 경장의 역)라고 일컫습니다. ‘분로쿠’는 1592~1595년, ‘게이초’는 1596~1614년 일왕이 사용한 연호예요. ‘문록, 경장 시기의 전쟁’이라는 중립적인 뜻을 갖지만 1910년 이후 등장한 표현입니다. 20세기 초까지 일본은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로 규정했습니다. 1910년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은 후 자국의 땅을 정벌했다는 표현이 적절치 않아 ‘문록, 경장의 역’으로 바꾼 거죠. 

중국은 임진왜란을 ‘항왜원조(抗倭援朝)’라고 합니다. 6·25전쟁은 ‘항미원조(抗美援朝)’라 하고요. 중국 시각에서는 미국에 맞서 조선을 도운 전쟁이 6·25, 일본에 맞서 조선을 도운 전쟁이 임진왜란인 거죠. 시차가 358년 벌어지는 임진왜란과 6·25전쟁을 같은 맥락으로 보는 건 한반도를 부속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중국은 항왜원조라는 명칭을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그대로인데 한국만 ‘7년 전쟁’ ‘임진전쟁’ 등으로 명칭을 바꾸면 모양이 우스워집니다. 임진왜란의 명칭과 관련된 문제는 역사 교육 보편성 차원에서 한·중·일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사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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