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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 누명 벗은 北국경경비대 홍강철 상위 수기

“인민의 충복은 당 간부 아닌 국경 밀수꾼”

  • | 글 · 홍강철 전 북한군 상위, 북한이탈주민 정리·송홍근 기자

간첩 누명 벗은 北국경경비대 홍강철 상위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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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탈북 길 안내 1명당 1400만 원 받아
    ● 2세대 이산가족 피눈물 흐르는 압록강
    ● 밀수가 경제난·대북제재 극복 1등 공신
    ● 인신매매 밀수 보장…‘1만 달러 벌기 운동’
    ● 돈맛 들이면 손 못 떼는 마약 밀수
북한군 국경경비대원이 망원경으로 중국 쪽을 살피고 있다.

북한군 국경경비대원이 망원경으로 중국 쪽을 살피고 있다.

* 탈북민 홍강철 씨는 북·중 접경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장 잘 아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가 국경경비대에 관한 책을 써 출간하려고 골자를 적은 5만8000자(200자 원고지 290장) 분량 수기의 일부를 공개한다.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북한 사람들이 왜 군에 가는지부터 말하는 게 옳을 것 같다. 한국처럼 징병제인지 물어보는 이가 많은데 그때마다 답하기 곤란하다. 북한은 징병제지만 남자라면 누구나 군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국 보위는 공민의 신성한 의무”라고 말하기는 하나 다음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면 군사 복무에서 제외한다.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하면 군 복무 제외 대상이다. 북한군은 다른 나라 군대에서 보이는 안경 쓴 사람도 없다. 시력 0.6 정도로도 군 복무가 어렵다. 가족 중 노동교화소(한국의 교도소)에서 형을 사는 사람이 있으면 제외된다. 부모가 이혼해도 군에 보내지 않는다. 외아들이 군에 가는 것은 본인과 부모 의사에 따른다. 본인이 가겠다고 해도 부모가 못 보내겠다고 하면 제외한다. 

군 복무기간은 13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군에 가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면 노동당에 들어가기 힘드나 군에 가면 입당할 확률이 60%가 넘는다. 중학교(한국의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대학에 가기 힘들지만 군 복무를 마치고는 대학 입학이 수월하다. 사회 풍조도 군 복무를 해야 남자로 쳐준다. 여자가 남자를 선택하는 조건에서도 군 복무 경력이 우선시된다.


사상과 신념의 대결장

“동지들, 불빛 찬란한 강변에서 밀수와 밀수 보장의 대가로 치러지는 몇 푼의 돈이 우리의 목을 조이는 올가미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사상과 신념의 대결장, 조국의 국경을 굳건히 지킵시다!” 

내가 복무한 국경경비대 선동문 중 하나다. 저녁 근무준비검열이 끝나면 계급교양(노동자의 이익을 옹호하고 사회주의를 수호하는 계급의식으로 무장하는 활동)을 하고 선동문을 합창한다. ‘밀수 보장’은 밀수 행위를 눈감아 주고 돈을 받는 행위를 뜻한다. 

북한에서는 국경을 ‘사상과 신념의 대결장’이라고 일컫는다. 지금 시작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사상과 신념의 대결장을 지켜 선 ‘조선국경경비대’에 관한 것이다. 

압록강에는 국경경비대가 관할하지 못하는 두 개의 특수구역이 있다. 평안북도 창성군 약수리 물홈(물이 모여서 이룬 웅덩이를 가리키는 북한 말로 도강을 막고자 인위적으로 만들기도 한다.)과 평안북도 벽동군 간상 물홈이다. 약수리에는 김일성 시대부터 사용하던 특각(최고지도자 별장)이 있다. 1996년 이전에는 약수리 특각 인근도 국경경비대가 관할했다. 

어느 날 국경경비대 약수리 초소장과 대원들이 술에 취해 있을 때 특각에서 간부 하나가 초소로 찾아왔다. 

“중앙당 가족 아이들이 휴양을 왔는데 수상오토바이를 타려고 하니 국경 출입을 허용해주시오.” 

여기에서 중앙당 가족 아이들은 김정일의 자식을 가리킨다. 당시에는 약수리 특각에서도 물홈을 벗어나 압록강으로 나가려면 국경경비대 승인을 받아야 했다. 특각에서 나온 간부는 나긋한 말투로 말했으나 술에 취한 초소장이 한마디로 거절했다. 

“중앙당 가족이면 국경 출입을 마음대로 해도 됩니까? 중앙당 가족들이니 국경 질서를 더 잘 지켜야죠. 여단 참모부 승인을 받고 오시오.” 

이튿날로 국경경비대 약수리 초소는 없어지고 그곳에 호위사령부가 들어앉았다. 국경경비대가 약수리 물홈 일대를 관할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압록강의 피눈물

간상 물홈은 1970년대부터 국경이지만 국경경비대가 관할하지 못했다. 간상 물홈에는 북한 유일의 핵물질 관리부대인 509군부대 산하 부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닫긴구역’으로 부대 가족을 제외한 누구도 드나들 수 없다. 북한에서 유일하게 ‘군인증’이 아닌 ‘공민증’을 사용하는 군대로 영내에 거주하는 가족 모두가 군인이다. 공민증을 사용하면서도 군사 칭호를 수여하고 실탄을 소지하고 무장경비를 선다. 여자의 경우만 시집갈 때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있다. 시집간 딸이 사위와 함께 본가에 놀러와도 딸만 부대 영내로 들어갈 수 있으며 사위는 초대소에서 묵어야 한다. 

북한에서 평안북도 대관군, 삭주군, 창성군, 벽동군을 ‘대관 이북’(대관군 북쪽이라는 뜻) 출입통제구역으로 일컫는데 그 이유가 약수리 특각과 함께 509군부대와 같은 공개되지 않은 특수부대가 전개돼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경지역 사람들은 장날이면 중국에 다녀왔다. 반두나 투망을 갖고 중국 쪽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도 국경경비대가 가만 놔뒀다. 중국 쪽에 가서 낚시하고 음식을 끓여 먹어도 통제하지 않았다. 그러다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외교관계를 맺자 국경경비대를 증편하면서 중국 쪽으로 못 가게 통제했다. 

국경 통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수십만의 2세대 ‘이산가족’과 ‘범법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탈북민은 국제사회에서 난민으로 취급받는 데 반해 북한 법은 ‘비법월경자’로 규정한다. 

배가 고파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이들은 중국 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돌아와 재판을 받아도 정상이 참작된다. 한국에 가려고 기도하지 않고 중국에서 살기만 했다면 노동단련(한국의 구류와 비슷하나 노역을 한다) 6개월 정도의 처벌을 받는다. 한국행을 기도한 때는 노동교화형(한국의 징역형) 2~3년은 받아야 한다. 범죄를 저지르고 비법월경한 사람은 민족반역죄까지 적용해 이른바 ‘정치범 수용소’에 보내질 수 있다. 한국에서는 ‘정치범 수용소’라고 일컫지만 북한에서는 ‘◯◯호 관리소’라고 칭한다. 

일제강점기에도 많은 이들이 살길을 찾아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넜으나 간도, 시베리아로 넘어간 이들을 범법자로 잡아 가두고 노역을 살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조·중 국경’을 사상과 신념의 대결장으로 정한 오늘날의 압록강과 두만강에는 수많은 2세대 이산가족의 피와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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