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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현장〉 폐허 위 꽃핀 예술, 지역을 살리다

  • | LA=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가오슝=최창근 객원기자 caesare21@hanmail.net

〈해외 현장〉 폐허 위 꽃핀 예술, 지역을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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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뮤비 찍은 곳

옛 제분 공장을 재생한 상업 화랑 ‘하우저 앤드 워스’의 아트 디스트릭트 갤러리. [강지남 기자]

옛 제분 공장을 재생한 상업 화랑 ‘하우저 앤드 워스’의 아트 디스트릭트 갤러리. [강지남 기자]

그런데 ‘부활한’ 다운타운보다 더 주목받는 지역이 있다. 아트 디스트릭트(Art District)다. 다운타운에서 동쪽으로 1.5km가량 떨어진, 리틀 도쿄(Little Tyoko)와 로스앤젤레스강 사이에 위치한 동네다. “LA의 주력 상권이 다운타운에서 아트 디스트릭트로 옮겨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즘 이 지역은 LA의 대세로 통한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트 디스트릭트는 예술적 색채가 넘치는 동네다. 아트 갤러리와 예술가의 작업실, 건축·디자인 회사, 영화 및 TV 제작사 등이 집결해 있고, 잘나가는 레스토랑과 상점 또한 즐비하다. 곳곳의 건물 벽면에는 대형 뮤럴(mural·벽화)이 그려져 있어 지역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또한 아트 디스트릭트는 영화 및 TV 드라마 촬영지로도 각광받고 있어 연간 800회 이상 촬영이 이뤄진다고 한다. ‘무한도전’이 LA에서 지코(ZICO)와 함께 ‘히트다 히트’ 뮤직비디오를 찍은 곳도 바로 아트 디스트릭트다. 흥겹고 자유롭고 크리에이티브한 분위기. 아트 디스트릭트는 이러한 매력으로 LA 젊은이뿐만 아니라 여행자들도 끌어모은다. 

아트 디스트릭트의 역사는 19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31년 프랑스인 이민자 장 루이 비뉴(Jean-Louis Vignes)가 LA의 따뜻한 기후를 활용해 이 동네에서 포도 농사를 시작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의 와인 생산지가 북부 나파밸리이지만, 184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와인 생산지는 바로 오늘날의 아트 디스트릭트였다. 

19세기 후반, 이 지역에 미 대륙을 관통하는 철도가 개설되면서 공장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다. 업종은 의류, 제분, 고무, 인쇄, 기계 부품 등 다양했다. 화물기차에 실어 보내거나 받을 물건을 보관하는 대형 창고가 속속 세워졌다. 이러한 공업 발전에 힘입어 1920년대 LA는 미국에서 5번째로 크고 7번째로 부자인 도시로 성장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속도로가 기하급수적으로 건설되면서 물류의 중심은 철도에서 육상도로로 옮겨갔다. 한편 공장은 그 규모가 날로 커지면서 LA 외곽으로 이전해 나갔다. 철도에 기반을 둔 아트 디스트릭트 일대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빈 공장과 창고가 속출했다.




예술가들의 불법 거주가 출발점

LA 다운타운 못지않은 ‘우범 지구’를 살린 건 예술가들이었다. 1970년대, 할리우드와 베니스비치 등의 높은 임차료를 견디다 못한 예술가들이 아트 디스트릭트의 버려진 건물로 ‘잠입’했다. 공장, 창고 등 산업용 건물(Industrial building)이라 널찍한 실내와 높은 층고는 작품 활동을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불법적인 거주였다. 냉·난방과 수도 등 거주에 필요한 기본 시설을 갖출 수가 없었다. “여름에는 40도가 넘는 더위와, 겨울에는 집요한 냉기와 싸워야 했다”고, 이 시절 예술가들은 회상한다. 

LA 시 당국이 불법 거주를 가만둘 리 없다. 만약 시가 퇴거 명령을 내렸다면 지금의 아트 디스트릭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1년 LA 시는 그 대신 ‘아트 인 레지던스(Art-In-Residence·AIR)’라는 조례를 제정함으로써 양성화 정책을 폈다. 예술가들이 버려진 공장이나 창고를 주거 및 작업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을 합법화한 것이다. AIR 덕분에 이 지역 예술가들은 좀 더 개선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됐다. AIR은 이후 더욱 확대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AIR의 기본 취지는 버려진 건물을 재사용(reuse)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LA는 일찌감치 도시재생 정책을 편 셈이다. 지금도 아트 디스트릭트에선 20세기 초반 지어진 산업용 건물이 그대로 활용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하우저 앤드 워스(Houser & Wirth) 갤러리다. 1992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해 뉴욕,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에 갤러리를 둔 세계적인 상업화랑 하우저 앤드 워스는 제분 공장이던 폐건물을 매입해 2016년 아트 디스트릭트 갤러리를 오픈했다. 9300㎡(약 2800평) 규모의 갤러리 내부엔 1950,60년대 공장 시절 벽체가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시절 사진 자료도 게시돼 있다. 

건물 내부엔 아주 널찍한 마당이 있고, 아무나 앉아 쉴 수 있는 테이블과 벤치도 마련돼 있다. 각종 허브를 심어놓고 닭도 10여 마리 키우는 정원도 있다. 여기서 난 허브와 닭고기는 갤러리 내 레스토랑인 ‘마누엘라’의 식재료로 쓰인다. 마누엘라는 쟁쟁한 레스토랑이 몰려 있는 아트 디스트릭트에서 주목받는 인기 식당인데, 오픈 주방 안으로 서너 개의 항아리가 보여 반가웠다. 오이 피클 등을 숙성시키는 데 항아리를 사용한단다. 옛 밀가루 공장이 예술 공간으로, 그리고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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