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호

인터뷰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최저임금 인상, 시장 이해 모자랐다”

  • 입력2018-03-0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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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 중심’ 슬로건 만든 문재인의 ‘경제 멘토’

    •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2022년으로 미뤄야”

    • 부동산 대책, “거꾸로 가는 측면 있다”

    • 매각 불발 대우건설, “어쨌든 하루빨리 민간에 넘겨야”

    • 정부·국회·기업 회의체 가동…“공개된 자리 허심탄회 소통할 것”

    • 유일한 헌법상 자문기구…“비상근인데 상근하는 중”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사람 중심’은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슬로건이다. 지난해 장미 대선 때 주로 경제 정책 앞에 이 표현이 붙었지만, 새 정부 출범 후엔 거의 모든 분야의 정책을 수식하는 데 이 슬로건이 쓰이고 있다. 현 정부의 철학이자 기조를 대변하는 ‘사람 중심’ 슬로건을 만든 당사자는 보수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김광두(71)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김 부의장은 한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렸다. 박 전 대통령의 ‘줄푸세’ 공약도 그가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박 전 대통령 측과 결별했다. 3,4년 전 김 부의장은 기자에게 “(박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 몇 가지를 했는데, 그 이후로 연락이 없더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마음껏 쓴소리를 하고 있을까. 2월 9일 오전 서울 광화문 KT빌딩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그를 만났다.

    일자리 줄지 않는다는 ‘전제’

    명색이 부의장 집무실인데 소파조차 없네요(부의장실엔 책상과 책장, 회의용 테이블이 전부였다). 

    “국민경제자문회의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헌법상 기구지만 부의장은 비상근직입니다. 제가 일 욕심이 나서 거의 상근하다시피 하고 있지만요. 수당이 150만 원이니까 최저임금도 못 받는 셈인가요?(웃음).” 

    김 부의장은 자신이 설립한 민간 싱크탱크 국가미래연구원 원장이자 서강대 석좌교수다. 하지만 지난해 5월 자문회의 부의장에 취임하면서 원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대학 강의도 중단했다. “경제 정책 자문 역할에 전념하겠다는 각오”에서다. 

    자문회의가 지난 연말에야 비로소 늦깎이 출범을 했습니다. 

    “23명의 민간위원을 구성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특히 여성 쿼터를 30% 이상으로 만드는 데 애를 좀 먹었어요. 한편으로는 자문회의 내실을 다지는 노력을 했습니다. 자문회의 지원단 인력을 기존 19명에서 39명으로 늘렸어요. 정부 각 부처와 정부 출연 연구기관 등에서 파견하는 인원을 받는데, 이번에 외교부와 행정안전부에서 처음으로 인력을 파견해줬습니다. 한국은행에서는 박사 두 분을 모셔왔고요.” 

    현재 최대 경제 현안은 최저임금 인상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 드라이브에 따라 올해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역대 최대 폭(16.4%)으로 오르면서 그 작용과 반작용에 대한 논란이 크다. 장하성 정책실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김밥가게 등으로 출동해 영세상인의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일자리안정자금을 홍보하는 등 ‘열일’에 나섰다. 김 부의장은 지난해부터 꾸준하게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폭이 과했다고 보십니까. 

    “정책이라는 것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지금 하면 임팩트가 크고, 나중에 이런저런 것을 잘 알고 나서 하면 임팩트가 떨어져요. 정부가 지난해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기로 한 것은 임팩트를 노린 건데, 시장을 잘 모르고 한 결정이었어요. 고용을 줄여야겠다는 중소영세기업들의 움직임이 아주 많습니다. 일자리안정자금도 요건이 복잡하고 현실에 맞지 않는 점들이 있고요. 사람 중심 경제 패러다임 속에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삶의 기본권을 보장하고자 최저임금을 인상한 겁니다. 여기엔 일자리가 줄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어요. 그런데 취지에 맞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니 속도를 조절하고 제도를 보완해야죠.” 

    업종별, 지역별 최저임금 차등화가 거론됩니다. 

    “그럴 필요가 있어요. 업종별로 근무 사정이 다릅니다. 식당 종업원들은 개장 준비부터 문 닫을 때까지 11~12시간을 일하는 게 보통입니다. 최저임금을 받아도 월 급여가 190만 원이 넘어가서 정부 지원을 받을 수가 없어요. 최근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기준을 190만 원에서 210만 원으로 상향하는 안을 검토하겠다고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 입니다. 

    또 지역별로 생산하는 상품의 부가가치가 다르고 생활비가 다릅니다. 그걸 반영해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다르게 가야 합니다. 해외 사례를 보면 타 지역보다 임금이 저렴하다는 점을 내세워 공장을 유치하기도 합니다. 지역별 차등 최저임금제로 지역 발전을 꾀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근로자 입장에선 생활비가 저렴하므로 (상대적으로 낮은 최저임금을) 수용할 만하고요.” 

    ‘7530원 체제’가 개시된 지 한 달이 경과하자 그 효과에 대한 말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급여 증가분이 최저임금 인상분에 한참 못 미친다거나, 단기근로 근무시간이 줄었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에 대해 김 부의장은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6월까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영세기업 중엔 1월 임금을 2월에 주는 곳들도 있고 정부 보조금도 아직 지급되지 않았다. 또 정부가 여러 보완책을 내놓고 있으므로 그 효과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까. 

    “여당은 이미 속도를 좀 늦추자고 했습니다. 청와대는 좀 더 두고 보자는 것 같은데, 결국은 재검토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자리를 잃지 않으면서 소득을 올리는 거니까요.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시기를 2년가량 늦춰 2022년에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해고법 다뤄보고 싶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1987년 9차 헌법 개정에 따라 헌법에 명시된 기구지만 정권에 따라 그 위상이 매번 달라져왔다. 박근혜 정부 때는 회의가 10여 차례 소집되는 데 그쳤고, 이명박 정부에선 지원단조차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김광두 부의장을 임명하며 “자문회의가 헌법 취지대로 활성화돼야 한다”는 뜻을 피력했다. 김 부의장은 “현재 자문회의가 이전 자문회의와 차별화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경제정책회의를 신설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 정책의 실질 운용이 국정기조에 벗어난다고 판단될 때 경제정책회의를 소집해 개선 방안을 논의합니다. 대통령 주재하에 청와대 비서실장·정책실장·경제보좌관, 경제부총리, 노동부 장관, 그리고 자문회의 부의장 및 전문가 자문위원 등이 참석합니다. 이슈에 따라서는 관련 부처 장관에게 참석을 요청하고요. 첫 경제정책회의는 3월 중에 소집될 예정인데, 개인적으로는 일자리 문제를 안건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일자리가 영 늘지 않고 있어서….” 

    기업들 ‘기 살리기’는 어떻게? 

    “정부 사람과 기업 사람은 만나기가 서로 부담스럽습니다. 그래서 자문회의가 ‘사람중심경제 이니셔티브’라는 정부-국회-기업 간 소통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2월 6일에 첫 회의를 가졌는데 총리, 국무조정실장, 청와대 경제보좌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정책의장, 경총회장, 중소기업중앙회장, 기업인 여러 명이 참석했어요. 기업인들이 정책 의사 결정의 최끝단에 있는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자리입니다. 첫 회의에선 규제 문제를 다뤘고, 다음 회의에선 양대 노총 위원장들을 모셔놓고 노사 문제를 다룰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부의장은 “현재 한국은 노동 쪽에 편향된 분위기”라며 “노사관계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해고 문제가 상징적으로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해고법은 포괄적 판례 중심 해고제로 근로자 보호주의입니다. 한편 독일은 노사통합주의로 구체적인 법규 기반 해고제고, 미국은 자유원칙 기반 해고제로 자유시장주의예요. 한국은 근로자 보호에 편향돼 있어 기업의 의사 결정 유연성에 제한을 주고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립니다. 저는 한국도 독일의 노사통합주의로 변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도 근로자 보호주의가 강했는데, 슈뢰더 전 총리가 노사통합주의로 개혁한 겁니다. 데이터를 보면 독일은 연간 파업일수가 4일인 데 반해 한국은 36일이에요.” 

    김 부의장은 자문회의의 해외 네트워크 확장에도 주력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의 주요 싱크탱크들과 접촉해 카운슬링 그룹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끼리 얘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러 안건에 대해 다른 나라로부터 피드백을 받아보고자 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금 잘해야 한다”

    2015년 그가 이끌던 국가미래연구원은 경제개혁연구소(이사장 장하성),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와 함께 ‘보수와 진보 합동토론회’를 연속 개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지금은 ‘한솥밥 먹는’ 사이가 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장 실장은 안 보여서 모르겠고, 김 위원장은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공정질서 군기를 분명하게 잡고 있다는 점에서 좋게 보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학점을 매긴다면요. 

    “제가 학점 매기는 건 좀 경솔한 일이죠(웃음). 경제는 흐름 속에 있기 때문에 집권 이후 9개월을 가지고 뭐라 평가하는 것은 성급한 일입니다. 정권마다 초기엔 자신의 색깔을 강하게 드러내기 마련이에요.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완화돼가는 거고요. 다만 이번 정부는 정말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외교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주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박근혜 정부 출범 때는 ‘중국이 추격해오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은 이미 중국에 엄청 잠식당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잘해야 청년들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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