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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취재 | 평창, 그 후 |

46년째 동계올림픽 자원 활용, 삿포로

“동네 뒷산 내려오듯 스키 타는 곳”

  • | 삿포로=이상훈 동아일보 기자·일본 와세다대 방문학자 January@donga.com

46년째 동계올림픽 자원 활용, 삿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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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 가듯 스키 타러 간다

1월 24일 오전 삿포로 데이네(手稻) 스키장. 삿포로시 중심인 삿포로역에서 자동차로 30분, 전철로도 여섯 정거장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한국에서 스키 마니아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이 스키장은 1972년 스키 알파인 남녀 대회전 경기가 열린 곳이다. 스키장 입구에는 비스듬한 모양의 성화대가 지금도 서 있다. 

이날 데이네 스키장에는 온종일 눈발이 날렸다, 삿포로 시민들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자랑하는 ‘파우더 눈’이다. 눈에 습기가 없어 차지지 않고, 바람이 불면 가루처럼 훅 날린다고 해 ‘아스피린 스노’라는 별명이 붙었다. 스키 타기엔 최상의 설질. 지난해 12월 개장 이후 정상 적설량만 275cm에 달한다.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강원 평창군 용평리조트의 2017~2018년 누적적설량이 64cm(2월 10일 기준)이니 얼마나 많은 눈이 내리는 곳인지 실감할 수 있다. 

젊은이들이 주 고객인 한국 스키장과 달리 데이네 스키장은 수업 중인 학생들로 붐빈다. 학교 이름이 새겨진 조끼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이 곳곳에서 무리를 지어 스키를 배운다. 대부분 삿포로 및 인근 지역의 초·중·고교생들. 홋카이도 학생들에게 스키는 가장 쉽고 친근하게 즐길 수 있는 생활 스포츠다. 특별히 운동부에 가입하지 않아도 겨울철이면 학교마다 ‘스키 학습일’을 잡아 데이네를 비롯한 삿포로 인근 스키장 곳곳에서 운동을 한다. 한국의 중년 아줌마가 등산을 가듯, 이곳의 백발 할머니는 장비를 짊어지고 스키장에 간다. 

이날 데이네에는 삿포로 북쪽 소도시 이시카리(石狩)시의 난센(南線)소학교 4학년 학생들이 스키장을 찾았다. 왁자지껄 떠들며 장난을 치는 모습은 한국의 초등학교 4학년생과 다를 바 없지만, 리프트에서 내려 선생님 지도를 받을 때만큼은 누구보다 진지하다. 수업은 지역 자원봉사자와 데이네 스키스쿨 강사들의 도움으로 진행됐다. 초등학생은 초보 코스인 ‘올림피아 코스’에서, 중·고교 스키 수업은 대부분 중급 이상인 ‘하이랜드 코스’에서 진행된다. 

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가 열린 곳답게 슬로프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금이 저려 내려갈 엄두를 못 내는 필자를 비웃기라도 하듯 중·고교 학생들은 깔깔대며 슬로프 한 켠에 줄지어 섰다. 용평 스키장 최상급 슬로프(레인보우1·최대 29.7도)를 가뿐히 뛰어넘는 최대 36도의 상급 슬로프에서 스키부도 아닌 일반 학생들이 ‘동네 뒷산 내려오듯’ 여유 있게 스키를 탄다.




전쟁 준비하다 스키 도입

다음 날 오전, 삿포로역에서 차로 20분 만에 도착한 곳은 ‘일본 스키점프의 상징’인 오쿠라야마(大倉山) 스키점프대. 일본에서 스키점프는 국민 스포츠로 차원이 다른 대접을 받는다. 평창올림픽에 출전한 일본 대표팀 최고 스타로 ‘한국의 김연아’에 비견되는 다카나시 사라(21), 8회 연속 올림픽에 참여하며 평창올림픽 개막식 일본팀 기수로 나온 가사이 노리아키(45) 등이 모두 스키점프 선수다. 

삿포로 올림픽의 영광을 안고 있는 올림픽박물관은 스키점프대 바로 밑에 자리한다. 일본 겨울 스포츠와 겨울올림픽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며 스키점프, 봅슬레이, 스케이팅 등을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돼 있다. 관람객이 어설픈 포즈로 스키점프 체험에 나설 때마다 박물관 직원들과 다른 관람객들이 박수를 치며 응원해준다. 매년 시내 30여 곳의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이곳을 찾아 올림픽과 스포츠에 대해 배우고 즐긴다.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프로야구팀 니혼햄 파이터스는 지난해 11월 이곳 스키점프대에서 신인선수 입단식을 열며 신인 선수들에게 가상 스키점프 체험을 하게 했다. 

1972년 삿포로 겨울올림픽은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도시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지역의 관광자원이자 도시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단지 삿포로가 일본 5대 대도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이들이 얘기하는 삿포로의 겨울스포츠 역사는 9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뿌리가 깊고 스토리가 길다. 

일본 스키는 1900년대 초반 ‘침략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조선을 차지하겠다며 러일전쟁에 나선 일본은 전쟁 준비를 위해 1902년 혼슈(本州) 최북단 아오모리 핫코다산에서 혹한기 훈련을 하다가 1개 중대 210명 중 199명이 얼어 죽는 대참사를 겪는다. 이후 일본군은 “겨울에 대비하려면 무엇보다 스키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럽에서 스키 전문가를 초빙한다. 일본 스키의 창시자 테오도르 에들러 폰 레르히(1869~1945)다. 

오스트리아 제국 중령 신분으로 일본에 온 레르히는 1911년 일본군에게 처음으로 스키 타는 법을 전수하고 이후 1년 넘게 홋카이도 등 일본 전역을 돌며 스키를 가르쳤다. 1923년 제1회 전일본 스키 선수권 대회가 열리며 스키는 일본에서 본격적인 겨울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삿포로 시민들은 1928년 2월, 히로히토 일왕의 친동생인 야스히토 친왕이 홋카이도를 방문한 것에서 자신들의 스키 역사를 찾는다. 활달한 성격에 스포츠를 즐겨 일본 국민에게 ‘스포츠의 왕자’로 불린 야스히토는 홋카이도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장래 일본에서 겨울올림픽을 개최한다면 설질이 좋고 대학도시이기도 한 삿포로가 가장 적당하다”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대형 점프대가 필요하다. 내가 점프대 건설을 도와주겠다.” 그리고 3년 뒤인 1931년, 오쿠라 점프대가 완공된다. 

제국으로 팽창하던 일본에 거칠 것은 없었다. 1938년 3월 삿포로는 도쿄와 함께 1940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예외가 없진 않았지만 당시에는 하계와 동계 올림픽을 한 나라에서 여는 게 통상적인 관례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올림픽은 취소됐고, 일본은 패전국으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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