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호

신동아·주간동아 공동기획 | 이제는 ‘도시재생’ 시대!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

삼박자로 춤춘다 조치원이 달라졌다

  • 입력2018-03-0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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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장기(2014~2025년) 도시재생 프로젝트

    • 실행기 지나 성숙기 진입…“공동체가 회복돼가고 있다”

    • 식당, 카페, 게스트하우스… 협동조합 꾀하는 주민들

    • 성공 비결? “주민과 과감하게 정보 공유하는 행정”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일대에 대한 도시재생은 주민, 전문가, 행정의 긴밀한 협업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평리문화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충한 평리 이장과 이종현 작가, 장덕순 왕성길 경관협정추진위원회 총무, 침산리 새뜰마을 사업 활동가 박은선 씨와 세종특별자치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조동현 차장(맨 위 사진부터). [지호영 기자]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일대에 대한 도시재생은 주민, 전문가, 행정의 긴밀한 협업으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평리문화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충한 평리 이장과 이종현 작가, 장덕순 왕성길 경관협정추진위원회 총무, 침산리 새뜰마을 사업 활동가 박은선 씨와 세종특별자치시 도시재생지원센터 조동현 차장(맨 위 사진부터). [지호영 기자]

    “싹 밀고 아파트 짓자, 아니다, 그냥 살던 대로 살자…. 재개발을 놓고 이웃끼리 갈등이 엄청났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이 도시재생대학에 같이 다니면서 달라졌어요. (주변을 둘러보며) 이거 다 우리 동네 사람들 집에서 나온 물건들이에요. 노인들만 있던 동네에 요즘엔 어린 학생들이 견학을 오곤 해요. 이제 갈등은 없고, 매일같이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더 잘해볼까 궁리합니다.”(박춘희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신흥1리 이장) 

    조치원역 뒤편 신흥1리 마을회관은 ‘외딴말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인근 대동초등학교 졸업장, 삼베 짜던 기구, 다이어리식 전화기와 재봉틀 등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 옛날 물건 1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25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에 자리한 이 박물관은 2014년 재개발 추진 중단 이후 “뭐라도 해보자”는 주민들의 간절함에서 시작됐다. 박춘희 이장 등 주민들은 세종특별자치시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운영하는 도시재생대학에 ‘신흥리 마을가꾸기’ 팀을 꾸려 입소했다. ‘마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종의 생활사(生活史) 박물관을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막걸리 마시고 고스톱 치던’ 마을회관을,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청소하고 페인트 칠해가며 박물관으로 바꿔놓았다. 

    2016년 2월 개장한 외딴말박물관은 같은 해 9월 국가기록원이 주관하는 ‘기록마을사업’ 대상지로 선정됐다. 최근에는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이 다녀갔다. ‘작은 성공’은 마을에 흥을 가져다줬다. 주민들은 박물관 운영 외에도 빈터에 꽃나무를 심고 초등학교 담장에 페인트칠을 했다. 최근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마을 기업을 세우는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박 이장은 “신흥리에 지상 7층짜리 아파트형 실버주택(65세 이상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 시설)이 들어서는데, 우리 마을 사람들이 실버주택 내 편의시설의 일환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작은 성공이 흥을 부른다”

    신흥1리 마을회관에 자리한 외딴말박물관의 내외부. 주민들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동네 박물관이다. [지호영 기자]

    신흥1리 마을회관에 자리한 외딴말박물관의 내외부. 주민들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동네 박물관이다. [지호영 기자]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은 ‘역전 도시’다. 1905년 일제가 경부선 철도를 놓고 조치원역을 개설하면서 도시가 형성됐다. 1930년대 러일전쟁 때 경부선을 통한 물자 공급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조치원은 경부선의 중간 거점 역할을 하며 번성했다. 그러나 광복 후 조치원은 인근 대전, 천안과 달리 국가적 차원의 개발 대상에서 꾸준하게 제외된다. 2010년 조치원역에서 불과 4km 떨어진 오송역에 KTX가 들어오면서 타격을 입었고,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이하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또 한 번 위기를 겪는다. 상당수 인구와 상권이 정부청사와 신규 아파트단지들이 들어선 신도심 쪽으로 옮겨간 까닭이다. 

    세종시가 민선 2기 이춘희 시장의 진두지휘 하에 도시재생사업에 나선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다. 세종시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02~2010년) 조치원의 인구는 25.2% 감소했고, 사업체는 10.9% 줄었다. 20년 이상 된 노후건축물은 무려 67.2% 증가했다. 세종시 도시재생사업명은 ‘청춘조치원 프로젝트’. 2025년까지 총 사업비 1조 4500여 억 원을 들여 세종시의 모태라 할 조치원을 인구 1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젊고 활기찬 도시로 되살리는 것이 목표다. 



    이 사업은 2014년 10월 ‘청춘조치원 프로젝트 비전 선포식’을 열고 본격 개시됐다. 사업에 돌입한 지 3년 여가 지난 현재 조치원은 도시재생을 꾀하는 전국 지자체들의 주요한 롤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조치원의 도시재생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이 지역에 전에 없던 대단한 볼거리가 생겼다거나, 관광객이 급증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조치원의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자발성’과 ‘협력’ ‘신뢰’ 등 무형의 성과가 조치원 도시재생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막상 와보니 별것 없지요?(웃음)”(장덕순 왕성길 경관협정추진위원회 총무) 

    조치원의 중심가로 중 하나인 왕성길(새내로 12길). 지난해 말 이 거리는 행정안전부 주관 ‘안전한 보행환경 조성사업’에 최우수 지구로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명성’과 달리 왕성길은 여느 상업지구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고깃집, 노래방, 휴대폰가게, 커피전문점 등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 하나 색다른 점은 일정 간격을 두고 각 점포 앞에 커다란 화분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겨울이라 화분에 핀 꽃은 볼 수 없었지만, 여름철엔 화사하겠다 싶었다. 이 거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장덕순 총무는 “처음엔 화분 갖다놓는다고 뭐가 얼마나 달라지겠냐는 시선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러한 경관 가꾸기에 참여하는 상인이 늘어 대상 거리가 50m에서 300m까지 늘어났다”고 말했다. 

    왕성길은 지금은 노래방으로 바뀐 왕성극장을 중심으로 한때 조치원의 ‘젊음의 거리’로 불릴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조치원의 중심 상권이 새로 생긴 아파트단지 인근으로 옮겨가고, 왕성길엔 어지러운 전기선과 불법 주차된 차량이 넘쳐나면서 상권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빈 점포도 속출했다. 이에 왕성길 상인들은 불법 주차를 막기 위해 화분을 갖다놓고, 매주 한 번씩 다 함께 거리를 청소했다. 공예품을 파는 ‘와글와글 목요마켓’도 연다. 경관을 해치는 일명 ‘풍선 간판’을 없애고, 불법 설치된 인형 뽑기 시설물도 철거했다. 모두 이 지역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 일이다. 장 총무는 “행안부에서 받은 예산 등을 가지고 앞으로는 전선을 지하에 묻고 CCTV 및 조명 등을 신규로 설치하는 작업에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세종시 도시재생센터에서 도시재생문화해설사 교육을 받는 조치원 주민들. 이들은 앞으로 조치원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조치원 도시재생 현장을 안내,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호영 기자]

    세종시 도시재생센터에서 도시재생문화해설사 교육을 받는 조치원 주민들. 이들은 앞으로 조치원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조치원 도시재생 현장을 안내, 설명하는 역할을 맡는다. [지호영 기자]

    이러한 성과는 왕성길 상인들끼리만 이뤄낸 것은 아니다. 행정과 전문가가 이들을 적극 지원한다. 세종시는 도시재생사업을 전담하는 부처로 균형발전국 산하 청춘조치원과를 개설했다. 청춘조치원과는 아예 조치원 현장에 상주한다. 세종시청은 신도심 쪽에 있지만, 이 부처 소속 23명의 직원은 조치원읍 내 옛 연기구청인 세종시 조치원청사에서 일한다. 

    별도의 세종시 도시재생지원센터(이하 센터)는 행정, 전문가, 주민을 연결하는 중간 조직 기능을 하며 주민들을 교육하는 도시재생대학을 운영한다. 또 주민 100인으로 구성된 조치원발전위원회와 사업별 주민협의체가 있고, 때로는 시장이 주재하는 회의가 정례적으로 열린다. 세종시 관계자는 “행정은 주도하지 않고 지원하는 역할”이라며 “지금까지 주민들이 주축이 돼 논의하고 전문가 자문을 받은 안건이 143개나 된다”고 말했다.

    강의실 밖으로 나온 ‘도시재생대학’

    도시재생사업을 벌이는 지자체마다 도시재생대학을 운영하지만, 세종시의 도시재생대학은 ‘현장 실습형’이라는 점이 색다르다. 10주간의 교육기간에 주민들은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마을에 필요한 사업 아이템을 정해 실천에 나선다. 센터는 각 사업 내용과 관련한 전문성을 가진 지도교수를 섭외해 각 팀과 연결해준다. 김동호 센터장은 “수업은 각 마을의 사업 현장에서 진행된다. 주민들이 생업에 바쁘기 때문에 밤 11시부터 수업이 열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조치원역 앞 세종전통시장(옛 조치원전통시장) 상인들로 꾸려진 팀을 맡은 오광석 한국해양대 교수는 매주 부산에서 조치원으로 출장을 온다. 오 교수는 “주민들 열의가 대단하기 때문에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세종시가 도시재생사업의 성과로 꼽는 신흥리의 외딴말박물관, 왕성길의 변신 등은 모두 도시재생대학을 통해 시도된 것들이다. 도시재생대학의 성과는 이 밖에도 많다. 새뜰마을 사업으로 노후한 주거환경을 정비한 침산리 주민들은 도시재생대학을 통해 협동조합을 만들어 마을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채비에 나섰다. 문화마을 만들기에 나서며 폐쇄된 정수장을 예술 창작 및 전시 공간으로 활용해본 평리 주민들은 올해 세종시문화재단과 협업하며 보다 본격적인 활용 방안을 연구하기로 했다. 김동호 센터장은 “자기 마을의 문제를 이웃과 합심해 스스로 풀어나가는 일에 주민들이 즐거움과 보람을 느낀다”며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훗날 행정적 지원이 종료되더라도 주민들이 자생적으로 마을을 되살려나가는 노력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월 2일 조치원역 광장에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김성수 청춘조치원과 과장이 균형발전국장으로 승진해 신도심 시청으로 근무처를 옮기게 되자, 200명에 가까운 주민이 한데 모여 송별사를 낭독하고 감사패와 꽃다발을 증정하는 행사를 연 것이다. 김 센터장은 “지난 2,3년간 조치원 도시재생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뛰어준 공무원에게 주민들이 감사의 뜻을 전하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우리는 잘될 것”

    세종시는 그간의 조치원 도시재생사업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말 도시재생 뉴딜사업의 시범사업으로 ‘청춘조치원 ver2’가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청춘조치원 프로젝트 사업으로 총 56개 사업을 추진하는데, 이와는 별도로 추가적인 사업까지 벌이게 된 것이다. 

    뉴딜 시범사업은 올해부터 2022년까지 5년간 총 360억 원을 들여 원도심 기능회복과 다양한 지역일자리 창출에 주안점을 두고 추진된다. 조치원역과 신도심을 잇는 BRT 정류장을 조성하고, 세종전통시장을 활성화하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돼 광복 후엔 제지공장으로 쓰이다가 오랜 세월 폐공장으로 방치된 한림제지 공장을 문화 거점으로도 개발할 예정이다. 

    청춘조치원 프로젝트는 실행기(2014~17년)-성숙기(2018~22년)-정착기(2023~25년) 3단계로 나뉘어 진행된다. 첫 단계인 실행기를 막 마치고 성숙기 단계로 진입한 현재, 조치원 인구는 4만 7000여 명 수준으로 도시재생 사업 이전과 비교해 늘지도 줄지도 않은 ‘정체’ 상태다. 이것은 도시재생의 성공인가, 혹은 아쉬운 대목인가. 

    이동환 청춘조치원과장은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이후 대전 유성구 인구가 급감했다는 점과 비교해달라”며 “도시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은 조치원 일대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강조했다. 장덕순 왕성길 경관협정추진위원회 총무는 “상권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3,4년간 추진해왔는데, 그 결과로 장사가 더 잘된다고는 아직 말할 수 없다”며 “그러나 확실한 건 왕성길 상인들이 점점 더 적극적으로 각종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잘될 것’이란 확고한 자신감이 생겼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주민-전문가-행정 삼박자의 군무(群舞)가 2025년까지 어떤 춤사위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interview |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장
    “조치원을 세종시의 경제 중심축으로 만들 것”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행복도시건설청 초대 청장을 지내는 등 세종시 산파 역할을 한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구도심인 조치원에 애정을 갖는 이유는? 

    “조치원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의 구도심은 과거 원주민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개발로 쇠퇴하고 있다. 조치원은 세종시의 모태 도시다. 역사와 전통,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경제적 터전이다. 지역 자산을 기반으로 주민이 주인이 되는 도시재생을 통해 신도심과 상생하며 균형 발전을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시재생사업의 이름이 ‘청춘조치원’이다. 특별히 ‘청춘’을 강조한 이유는.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다. 봄철 햇볕이 싹을 틔우고 푸른 들판을 만들어가듯 도시재생을 통해 조치원을 예전의 활기찬 모습으로 만들어가고 싶어서 ‘청춘’이란 용어를 사용하게 됐다.” 

    도시재생 사업이 개시된 지 3년이 지났다. 중간 평가를 하자면. 

    “청춘조치원 사업은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도시 인프라를 정비해 경제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창출해 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조치원의 생활환경을 좋게 만들어 조치원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기반을 조성하는 단계였다. 아직은 그 효과가 나타나기엔 이르다. 프로젝트 완성 시기를 2025년으로 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치원 주민들은 행정에 대한 신뢰가 높더라. 

    “청춘조치원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행정 주도의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를 벗어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행정의 권한을 과감하게 주민과 공유하고, 공동체 문화 확산으로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 문화를 형성하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주민들의 신뢰를 얻은 것 같다. 주민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성취감을 얻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참으로 보람차다.” 

    조치원을 ‘세종의 경제 중심축’으로 육성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세종시 중심은 신도심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앞으로 전의·전동면 등 조치원 북부권에 산업단지를 조성한다. 이와 연계해 조치원을 경제 중심축으로 만들 것이다. 정부청사 및 공공기관이 밀집한 신도심은 행정 중심축이고.” 

    도시재생을 새로 시작하는 다른 지자체에 조언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중장기적 시계(視界)를 갖고, 주민과 과감하게 정보를 공유하며 주민 주도로 지역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주민은 지방자치의 근간이다. 이들의 의사를 현장에서 직접 풀어나갈 수 있도록 행정과 주민의 유대감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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