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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론史論으로 본 조선왕조실록

오만방자한 내시 최한형

측근의 말을 가려들어야 한다

  • | 정영미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오만방자한 내시 최한형

공자는 “물이 서서히 스며드는 것과 같은 참소와 피부에 와 닿는 하소연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다. 그만큼 가까운 사람이 반복해서 하는 모함과 자신의 이해와 관련 있는 하소연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항상 임금의 곁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환관은 언제든지 정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였다. 고려 말 공민왕의 시해에 환관이 가담한 일을 거울삼아, 조선에서는 환관에게 권력을 주지 않았고 승진할 수 있는 품계도 제한하였다. 그런데도 환관이 관련된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고, 그때마다 조정 관원들은 작은 조짐을 키우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죄에 합당한 처벌을 하라고 왕에게 요구하였다. 

명종 6년(1551) 왕명을 전하는 내시인 승전색(承傳色) 최한형(崔漢亨)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성균관 유생들에게 시상하라는 임금의 명을 7일 동안이나 묵혀두고 승정원에 전하지 않았다. 사헌부가 왕명을 심하게 능멸한 최한형을 파직한 다음 추국하여 처벌하라고 청하자, 명종은 그저 잊어버린 일이라며 가벼운 처벌인 추고(推考)만 하고 벌도 속전(贖錢·죄를 면하기 위해 바치는 돈)으로 대신하게 하였다. 그러나 사관의 생각은 명종과 크게 달랐다. 

궁형(宮刑)을 받은 천한 자에게는 청소하는 일이나 맡겨야 한다. 그런데 환관들에게 분에 넘치는 은총을 베풀어 측근에서 보좌하는 신하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친근하게 조정의 일을 묻고 심지어 정사에 간여하게 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당시 환관의 오만방자함이 어느 때보다 심했다. 최한형이 오랫동안 왕명을 전하지 않고 방치해둔 것은 사실 평소에 임금을 업신여긴 불경한 마음에서 기인한 것이다. 죄상이 이미 드러났는데도 심문하여 처벌하지 않으니 총애를 믿고 오만방자하게 구는 버릇을 어떻게 바로잡겠는가? 

그 후에 사간원의 관원이 최한형에게 언제 주상의 비답(批答·임금이 상주문의 말미에 적는 가부의 대답)이 내려오느냐고 묻자, 최한형이 갑자기 업신여기는 마음을 먹고 곧바로 주상에게 일러바쳐 임금을 격노하게 하였다. 죄가 있는데도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에 훗날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명종실록 6년 7월 16일>


사관의 말 가운데 그 후에 최한형이 주상에게 일러바쳤다고 한 일은 무엇일까? 명종 14년(1559) 12월 29일, 임금이 승정원에 내린 전교에 그 내용이 있다.

평상시에 대간이 올린 계사(啓辭)에 대한 결정을 언제 내릴지는 위에서 판단할 일이지 승전색이 간여할 바가 아니다. 오늘 사간원의 계사가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승전색 최한형이 빨리 결정하여 내주기를 바라는 기색을 보이기에, 내가 괴상히 여겨 캐묻자, “계사를 가지고 들어오는 길에 한 서리가 성상소를 맡은 사간원 정언(正言) 이중호(李仲虎)가 오늘 아뢴 것에 대한 결정을 빨리 알고 싶어 한다고 부탁해서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사간원 서리가 중간에서 이렇게 공공연히 지껄였다고 한다면, 위에서 결정하는 일을 어찌 일개 서리가 재촉할 수 있단 말인가? 조정의 체통을 크게 잃은 것이니 경악할 만하다. 성상소에서 서리에게 시킨 것이라 해도 이 또한 전에 없던 일이다. <명종실록 14년 12월 29일>

전교 내용만으로 보면 승전색을 재촉한 사간원의 관원이나 서리의 행동이 백번 잘못된 것이고, 명종이 노여워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사실은 아니다. 승정원에서는 사간원 관원이 와서 이유를 아뢸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나중에 최한형이 중간에 술수를 부린 정황을 파악한 사관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환관들이 일으키는 해악이 극심하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곧바로 음흉한 술수를 부리니, 지혜로운 임금이라도 그 술수에 빠지지 않는 이가 드물다. 최한형은 왕명을 전하는 책임을 맡았으니, 마땅히 성실하고 신중하게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결정을 언제 내릴지는 주상께서 판단할 일이지만, 관서의 보고를 주상께 올리고 주상의 하교를 해당 관서에 전달하는 것이 그의 직분인데, 중간에서 늑장을 부리며 관서에 제때 알려주지 않았다. 그는 이미 예전부터 고집스럽고 오만한 실상을 보여왔기 때문에 이중호가 그 잘못을 조금 말한 것이다. 그러나 최한형은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도리어 대간에게 대항하려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표정에 바라는 바가 있음을 드러내 주상의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그에 대해 묻자 믿을 수 없는 말을 꾸며내 음흉하게 개인적인 화풀이를 한 것이다. 그런데도 최한형을 옹호하는 주상의 하교가 내려와 관원들이 모두 놀라고 당혹했으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 <명종실록 14년 12월 29일>

사헌부도 이중호는 주상의 결재를 재촉한 것이 아니라 승전색이 중간에 지체하지 못하도록 말한 것에 불과하다고 아뢰었다. 또한 승전색들이 지난날 벌을 받았는데도 반성하지 않고 교만한 짓을 자행하였다고 지적한 후, 대간을 중상모략한 최한형을 파직하여 내쫓으라고 아뢰었다. 그러나 명종은 다음과 같은 비답을 내리며 버텼다.

내가 어리석은 임금이기는 하나 어찌 환관이 참소하는 말을 믿는 지경에 이르겠는가? 마음이 몹시 편치 않다. 자고로 임금을 섬기는 신하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정직하게 아뢰어야 한다. 그러므로 최한형은 내가 묻는 말에 감히 숨기지 못하고 정직하게 아뢴 것이다. 이것이 과연 참소하려고 한 일이겠는가? …… 내가 경솔하게 말을 꺼낸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 일로 왕명을 따랐을 뿐인 내시를 탄핵하고 있으니, 나는 그 의도를 모르겠다. 최한형을 파직할 수 없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명종실록 15년 1월 3일>

사관의 붓끝은 환관이 아닌 명종을 향하였다. 

심하다, 피부에 와 닿는 하소연이여! 현혹되기는 쉬워도 깨닫기는 어렵도다. 지금 최한형이 서리의 말에 발끈하여 음해하는 술책을 썼으니 그의 교만하고 흉악한 실상이 의심할 것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마땅히 직위에서 물러나게 하여 사람들이 통쾌함을 느끼게 했어야 한다. 그러나 경솔하게 말했다는 하교와 폐단을 염려했다는 어명이 이처럼 준엄하니, 누가 다시 바른말을 하고 강경하게 논쟁하면서 그 폐단을 아뢰겠는가? 환관의 교만과 횡포는 이로부터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명종실록 15년 1월 3일>

최한형을 파직할 수 없다는 비답을 받은 사헌부 관원들은 이튿날 명종의 대처가 실망스럽다며 사헌부의 관직에서 물러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명종은 마음이 편치 않아 그리 말한 것뿐이니, 사직하지 말라며 한발 물러섰다. 다음 날 사헌부도 한발 물러서서 경솔하게 낭설을 퍼트린 사간원 정언 이중호에게도 잘못이 있으니 그의 벼슬을 갈고 최한형도 파직하라고 아뢰었다. 그제야 명종은 둘 다 잘못했다며 사헌부의 계사를 윤허하였다. 사관은 이 일도 시비(是非)와 호오(好惡)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며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이중호가 폐단을 말한 것과 최한형이 앙심을 품은 것 중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는 분명하다. 주상이 비록 사헌부의 계사에 따라 최한형을 파직하기는 하였으나, 이중호는 사심이 작용한 것이라 폄하하고 최한형은 정직했다고 옹호했다. 어찌 이렇게까지 한쪽만 편애한단 말인가? <명종실록 15년 1월 4일>

얼마 후인 5월에 명종은 최한형을 복직시키라는 명을 내렸다. 자신이 참소나 받아들이는 용렬한 임금이 아니라고 대간을 향해 언성을 높였던 명종은 이로써 환관을 옹호했다고 한 사관의 견해가 옳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였다. 끝까지 최한형을 감쌌을 뿐 아니라 곧 복직시켜 다시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였으니 말이다. 

‘대학(大學)’에서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의 단점을 알고 미워하면서도 그 사람의 장점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적다”고 하였다. 사랑이나 미움 때문에 판단을 흐리지 않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신동아 2018년 3월 호

| 정영미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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