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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로 본 한국GM의 미래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 김대호가 본 한국GM 사태

“한국GM 위기 아닌 ‘자동차 산업’ ‘87년체제’의 위기”

  •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 김대호가 본 한국GM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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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재가 ‘심각’하다면 미래는 ‘더욱 심각’
    ●약탈적 노조·경직된 고용 및 임금 구조
    ●현대차도 한국서 사업할 가치 못 느낄 듯
    ●한국경제와 사회의 총체적 파탄 징후
    ●‘먹튀’ ‘고리대금업’… 헛소리·괴담 넘쳐나
2월 14일 한국GM 노조가 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비판하며 군산공장 앞에서 ‘공장 폐쇄 철회를 위한 전 조합원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2월 14일 한국GM 노조가 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비판하며 군산공장 앞에서 ‘공장 폐쇄 철회를 위한 전 조합원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 자동차 산업·기업의 위기와 구조조정이 대략 20년마다 반복된다. 1980년 중화학공업 구조조정의 주요 대상이 현대·기아·동아·새한자동차였다. 1997년 외환위기 핵심 도화선 중 하나도 당시 재계 8위 기아자동차 부도 위기다. 1997~2001년 현대차를 제외한 나머지 회사(삼성차·쌍용차·대우차)가 법정관리·구조조정·피인수합병을 당했다.


483억 달러 흑자 ‘밥줄 산업’

대우차는 부도·정리해고(2001년 1752명)를 거쳐 GM에 매각돼 한국GM으로 재탄생했다. 쌍용차는 대주주인 상하이차의 철수로 인해 2009년 초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전체 인원의 37%인 2646명에 대한 구조조정안이 발표돼 격렬한 공장 점거 농성 투쟁과 유혈 진압 사태가 일어났다. 2018년 2월 한국GM 군산공장 폐쇄가 발표되고 3월에는 한국GM 철수 가능성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한국GM의 운명은 좀 더 기구하다. 1960년대부터 부평공장에 터를 잡은 회사 이름만 나열해도, 새나라자동차(도요타와 50대 50 합작)→신진자동차(GM과 50대 50 합작)→새한자동차→대우자동차(GM과 합작관계 청산)→한국GM(GM이 78% 지분) 순이다. 

자동차 산업·기업 위기 때마다 정부와 금융계 및 학계는 대체로 기술과 규모의 열세로 인한 구조적 위기론(자동차 산업 필망론)을 설파했고, 산업계 당사자들은 대체로 대세 상승기의 일회성 위기라고 항변했다. 이제 돌아보니 1980년과 2000년 전후한 시기의 위기에 관한 한 후자의 판단이 옳았다고 봐야 한다. 

한국 자동차산업은 정부와 금융계 인사의 비관을 비웃으면서 일취월장했다. 현대·기아차의 생산·판매 대수는 2000년대 초 250만 대 내외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해 2012년 이후 줄곧 연간 700만~800만 대를 유지하고 있다. 도요타, 폴크스바겐, GM, 르노닛산에 이어 세계 5위의 자동차 그룹이 됐다. 

2017년 기준 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411만5000대다. 자동차 및 부품 산업 수출은 648억 달러, 수입은 165억 달러로 무역수지 흑자 483억 달러를 안겨주는 그야말로 한국의 밥줄이 됐다. 

그렇다면 2018년을 포함한 2020년 전후한 시기의 위기는 어떨까? 아니 위기가 맞긴 맞을까? 어떤 산업, 어떤 시기에도 항상 있게 마련인 일개 부실 기업의 위기를 침소봉대해 산업 전반의 위기라고 호들갑 떠는 것은 아닐까? 이를 판단하려면 산업·기업의 성공 요인과 위기 요인을 살펴야 한다. 

2002년 탄생한 한국GM은 GM의 생산판매 네트워크를 활용해 급격히 성장했다. 2002년 완성차 29만 대, 완전분해제품(CKD·Complete Knock Down·자국의 고용 창출을 위해 완전분해제품을 들여와 조립하는 방식으로 완성차를 생산한다. 단순 가공품은 자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부품도 많기에 CKD 1키트가 완성차 1대분은 아니다) 19만 키트에서 2007년 완성차 94만 대, CKD 93만 키트로 급성장했다. 

한국GM의 급성장은 시장이 원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또는 편익) 좋은 세단형 중소형차를 GM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주효했다. 한국GM이 가진 차종과 연구개발 능력은 200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한 중국, 러시아 등 신흥국 시장에 안성맞춤이었다. 한국GM은 픽업트럭과 고급 대형차(캐딜락 등) 위주의 북미GM, 독일 오펠이 핵심인 유럽GM, 걸음마 단계인 중국GM(GM과 상하이차의 50대 50 합작 법인), 브라질GM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GM의 가치와 위기

그래서 2003년부터 2013년까지 거의 10년 동안 한국GM은 GM의 효자였다. 한국GM은 중국GM이 연간 400만 대를 생산·판매하는 업계 2위 기업으로 급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GM의 핵심인 상하이GM은 대우차가 개발한 소형차 라노스를 중국 시장에 맞게 약간 개조해 싸이오(Sail)라는 브랜드로 크게 히트를 쳤다. 준중형차 라세티는 뷰익 카이웨(Excelle)란 브랜드로 크게 히트를 쳤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으로 수출한 CKD물량은 총 349만 키트 이상이다. 

요컨대 한국GM은 GM의 대(對)중국 및 신흥국 시장의 ‘점유율 확대’ 전략의 핵심 발판이었다. 동시에 고유가 시대 미국 소비자의 중소형차 선호에 부응한 차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GM의 ‘잔치’를 가능하게 한 모든 조건이 변했다. 

무엇보다도 이미 400만 대 생산·판매 기업으로 급성장한 중국GM(상하이GM과 상하이GM울링)이 한국GM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더 이상 CKD를 가져갈 필요도 없다. 한술 더 떠 중국 전용 독자 모델을 10종 가까이 개발하고 있다. 

예측 불허한 널뛰기를 한 유가도 한국GM을 천당과 지옥을 오가게 했다. 2008년 7월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던 유가는 몇 년간의 80~100달러 시대를 거쳐, 셰일가스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2014년 중반 이후 40~60달러 수준으로 내려왔다. 고유가는 전통적으로 ‘기름 먹는 하마’인 대형차를 선호해온 북미 지역의 중소형차 수요를 늘렸다. 또한 산유국(러시아, 중동, 남미 등)의 구매력을 높여 가성비 좋은 한국GM 차 수요를 늘렸다. 그런데 저유가가 지속되자 북미와 산유국의 중소형차 수요가 급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소비자 취향이 바뀌면서 한국GM이 강점을 가진 세단형 차(Car) 수요가 줄고, 픽업트럭, 스포츠용차(SUV), 다목적용차 수요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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