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과거와 현재로 본 한국GM의 미래

"GM은 부도내고 한국 떠나라"

김창곤 2001년 대우차 노조 쟁의부장(현재 한국GM 부평공장 근무)

  • 입력2018-03-1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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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M에 한 푼도 지원해선 안 된다”

    • “DJ, 외자유치 성사에만 골몰…닥칠 재앙 외면”

    • “한시적 공기업 됐으면 우리가 2008년 GM 인수”

    • “文정부 휘둘리지 않고 잘 대응…제대로 실사해야”

    • GM에 매달리지 말고 국민기업으로 만들어야

    김창곤 2001년 대우차 노조 쟁의부장. [홍태식 기자]

    김창곤 2001년 대우차 노조 쟁의부장. [홍태식 기자]

    지난 2월 13일 한국GM(제너럴모터스)이 전격적으로 군산공장 폐쇄 결정을 발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에 ‘자금지원’과 ‘외국인투자지역 지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한국 철수 가능성을 암시하며 압박하고 있다. 

    한국GM은 부평, 군산, 창원, 보령 공장을 갖고 있다. 직접 고용한 임직원만 1만6000여 명에 달한다. 부품협력사 14만 명을 합치면 한국GM에 생계가 걸린 사람만 15만6000명이다. 이미 군산공장을 비롯해 직원을 상대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다. 비정규직도 대규모 계약 해지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GM의 전신은 대우자동차다. 대우자동차는 김대중(DJ) 정부의 외자유치 정책에 의해 2002년 12억 달러에 GM으로 매각됐다. 이후 GM은 15년 동안 9200억 원을 투자하고 약 3조5000억 원을 본사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먹튀’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한국GM 노동자 김창곤(53) 씨는 2001년 대우자동차 해외매각 반대투쟁 때 쟁의부장으로 파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시 그를 비롯해 1750여 명이 해직됐다. 2004년 복직한 그는 2015년부터 3년간 민주노총 인천지역본부장을 지낸 후 올해 1월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한국GM노조의 산증인이다.

    혹독한 대가

    3월 9일 한국GM 부평공장에서 만난 그는 “GM의 한국 철수는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며 “GM이 한국에서 단물을 다 빼먹고 철수하려고 하는 지금 사태의 근본 원인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문”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나도 한국GM에서 일하고 있지만 정부는 지금 GM이 내건 조건으로는 한 푼도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 GM사태에 대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대우자동차가 부도난 것까지는 김우중 회장 책임이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 학계 등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을 무시하고 해외 매각만 추진했다. 외자유치 성사에만 골몰한 나머지 나중에 닥칠 재앙을 외면했다. 지금 그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때 이미 글로벌 기업들의 폐해를 알고 있었다. 특히 ‘먹튀’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GM이었다. 그냥 먹고 튀는 정도가 아니라 초토화하고 나가기도 했다. 그래서 GM에 매각하는 걸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다.” 

    해외 매각 외에 대안이 있었나. 

    “우리가 주장했던 것은 한시적 공기업이었다. 정부가 투자해 책임 경영을 하며 시간을 갖고 정상화한 후 국내 제3자에게 제값을 받고 매각하자는 것이었다. 그 기간에 우리 노동자도 회사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제안했다. 또한 무급 순환 휴직을 통해 고통을 분담할 테니 무리하게 정리해고를 하지 말라고 제안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 GM도 대우차처럼 부도가 났다. 미국 정부는 우리가 요구했던 방식으로 GM을 일시적 국유화한 후 경영이 정상화하자 매각했다. 그래서 GM이 살아날 수 있었다. 만약 김대중 정부가 우리 요구대로 대우차를 일시적 공기업화해서 회생시켰다면 2008년에 거꾸로 대우자동차가 GM을 인수했을지도 모른다.”

    꼬리로 몸통을 흔들다

    당시 정부의 반응은 어땠나. 

    “당시 법정관리인으로 온 이종대 회장도 우리 제안에 대해 ‘참 훌륭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거부했다. 무조건 정리해고에 동의하라는 거였다. 청와대 사람들이 수시로 와서 협박했다. 이거 안 받아들이면 다 죽으니까 협조하라고. 당시 정부와 여당은 모든 포커스를 해외 매각에 맞춰놓고 있었다. 이를 위해 (DJ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직후 노동자에 대해 무지막지한 폭력까지 자행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GM이 들어와 한국 경제에 기여했다면 좋았겠지만, 우리 예상대로 오늘과 같은 사달을 만들었다. 당시 정권 채권단 관료들은 역사의 죄인들이다.” 

    당시 정부는 대우자동차를 살릴 여유가 없지 않았나. 

    “GM이 실제 투자한 돈이 얼마인지 아나? 4000억여 원밖에 안 된다. 수조 원 가치의 대우자동차를 12억 달러라는 헐값에 팔았다. 그나마도 4000억여 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은 정부에서 보증해주고 은행권이 지원해줬다. 정부에서 의지만 있으면 해외 매각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 

    정부에서 조금만 지원했으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대우자동차 부도의 근본 원인은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였다. 나는 당시 대우자동차가 갖고 있던 글로벌 네트워크를 잘 활용했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고 본다. 자동차 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이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워낙에 크기 때문에 정책 결정을 신중하게 했어야 했다.” 

    김대중 정부는 그렇다 치고, 노무현 정부는 GM 인수 뒤인 2003년에 출범했는데 잘못을 따질 게 있나. 

    “2002년엔 GM이 군산공장과 창원공장만 인수했고, 본사였던 부평공장을 인수한 게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이다. 인원도 부평공장이 훨씬 많아 군산과 창원을 합쳐도 여기 절반도 안 됐다.” 

    부평공장은 2006년까지 어떤 상태였나. 

    “위탁 생산을 했다. 본사였던 공장이 하도급을 받아 일한 것이다. 그러면서 GM은 수만 가지 요구를 하면서 흔들었다. 한마디로 GM은 대우자동차의 꼬리를 인수해 마음대로 몸통을 흔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그런 현실을 외면했다. 당시는 IMF 외환위기에서 어느 정도 회복된 시기였다. 그때 제대로 협상했어야 했다.”

    2017년 10월 16일

    김창곤 씨가 한국GM 부평공장에서 계약 해지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농성장을 찾아 격려하고 있다. [홍태식 기자]

    김창곤 씨가 한국GM 부평공장에서 계약 해지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농성장을 찾아 격려하고 있다. [홍태식 기자]

    그는 GM이 적은 자본을 투입해 최대의 이익을 챙긴 후 ‘먹튀’를 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어떤 게 ‘먹튀’라는 건가. 

    “언론에 나온 그대로다. 연구개발비·용역비·기술로열티 등의 명목으로 돈을 회수해갔다. 우리나라 은행에서 훨씬 싼 이자에 빌릴 수 있는데도 GM 본사에서 빌리며 높은 이자를 줘야 했다. 심지어 우리 협력업체에서 싸게 만들 수 있는 부품도 외국에서 비싸게 수입해야 했다. 매출원가가 현대는 84% 정도 되는데 우리는 94%에 이르는 구조다. 팔아도 돈이 안 되는 정책을 고수해온 것이다.” 

    차가 안 팔려서 그런 것 아닌가. 

    “시장점유율을 확대할 생각이 없었다. 동급 경쟁 모델보다 최소한 가격이 같거나 더 싸야 하는데 오히려 더 비싸게 책정한다. 사업을 시장에서 철수하는 데 가장 유리한 시장점유율이 10%대라고 한다. 15%를 넘어가면 도망갈 수가 없다. GM은 늘 8~10%대를 유지했다. 이런 걸 보면 GM이 하는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기획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 시장을 떠나려는 시나리오라는 건가. 

    “한국GM은 2002년에 15년 동안 자산의 20%에 해당하는 지분을 매각할 경우 주주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조건에 합의했다. 그 만기가 2017년 10월 16일이었다. 이후엔 GM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 GM은 수년 전부터 이 상황을 준비해온 듯하다. 당연히 우리 정부도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데도 안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문재인 정부도 그 부분에서 초기 대응이 아쉽다. 그나마 지금 GM에 휘둘리지 않고 잘 대응하고 있다고 본다.” 

    그는 “GM과 산업은행이 2002년과 2012년에 체결한 양해각서가 있다”며 그 내용이 무엇인지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GM도 산업은행도 그 내용을 공개 안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때 당선되면 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서면 약속했는데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 한국GM 태스크포스 위원장인 홍영표 의원은 내용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규정상 발설할 수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불합리한 지점이 있다면 국민을 위해 밝히는 게 국회의원이 할 일 아닐까 싶다.” 

    그는 홍영표 의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노조가 양보하라는 생각을 갖고 있더라. 홍 의원은 옛날에 소위 위장취업으로 대우자동차에 들어왔다 김우중 회장이 유럽에 있는 자동차연구소에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2001년 구조조정 시기에 사표 내고 나갔다고 한다. 당시 우리와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대우자동차에 몸담았던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비공개 양해각서

    군산 공장 5월 폐쇄는 결정된 건가. 

    “그렇게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GM이 정말 한국 시장에 잔류할 마음이 있다면 폐쇄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 GM이 군산공장 폐쇄를 이야기하는 것은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 완전 철수하기 위한 단계로 진짜 폐쇄할 수도 있고, 한국 정부와 협상하면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전략으로 폐쇄설을 흘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에 ‘외국인 투자 지역 지정’이라는 특혜를 요구하면서 군산 공장은 빼놓았더라.” 

    GM과 산업은행이 한국GM 정상화를 위한 협상에 들어간다. 

    “GM이 어떤 새로운 제안을 내놓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내용으로는 안 된다. 신규 투자계획(28억 달러)은 구속력이 없다. 한국GM에 빌려준 돈(약 3조 원)을 출자전환하겠다는 제안 역시 실속이 없다. 기업을 청산할 경우 어차피 회수가 어려운 돈이었다. 결국 회수가 어려운 돈을 주식으로 바꿀 테니 한국 정부에서 추가 자금(5000억 원)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신차 2종을 배정하겠다는 것도 신뢰가 안 간다. 신차종 2개를 투입해서 연 50만 대 생산체제를 유지하겠다는데, 지금도 50만 대는 생산한다. 결국 투자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언젠가 한국에서 철수하겠다는 시그널이라고 본다.” 

    GM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3~5년 뒤 또 철수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장기적인 한국GM 발전 전망을 내놓아야 한다. 또한 지금 어려움이 생긴 이유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제대로 실사를 받아야 한다.”

    “제대로 실사해야”

    실사를 받겠다고 했다. 

    “제대로 받을지 의문이다. 철저하게 자료를 제출받아 꼼꼼히 따져 문제점을 확인하기 전에는 함부로 돈을 지원하면 안 된다. 정확한 실사를 바탕으로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GM은 무엇을 할 것이며 정부는 뭘 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노동자도 납득하고 양보할 수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노동자 양보론만 들고 나오는 것은 수긍할 수 없다.” 

    지금 한국GM의 위기 원인엔 노조의 과도한 임금인상 요구도 한몫했다는 주장도 있는데. 

    “한국GM 사업보고서를 보면 지난 2016년 기준 매출액(12조2340억 원) 대비 총급여 비중이 11.4%다. 현대자동차는 15.0%다. 정확히 말하면 노동자에게 일감을 안 준 건 회사다. 회사 귀책사유에 의한 휴무는 임금의 70%를 주게 돼 있었다. 현대 기아차는 물론 웬만한 중소기업도 그렇다. 그런데 왜 우리만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놀면서 엄청 많은 돈을 받았다고 하는데, 25년 경력인 내가 한 달 동안 주간근무만 하면 통장에 찍히는 돈이 190만 원이다. 임금이 높아 보이는 건 임원 연봉, 특히 ISP(본사 파견 외국인 임직원)들에게 들어간 비용까지 포함돼서 그렇다. 이것도 공개해야 한다.”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모르는 사람들이 일부 왜곡된 내용만 보고 떠드는 것이다. 현대차에 비해 우리가 시간당 생산성이 15% 정도 더 높다. 공장이 안 돌아가니까 전체 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여기서 일하던 젊은 노동자가 현대차나 기아차에 가면 ‘천국 같다’고 할 정도로 우리 공장 노동 강도가 세다. 그렇게 타이트하게 일하는 데도 연봉은 더 적다.” 

    기본적으로 자동차 산업이 포화 상태라며 ‘이참에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노동조합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차로 전환되는 시기에 걸맞은 매뉴얼과 대응 계획을 회사에 요구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물론 그런 요구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5,6년 전부터 한국GM의 미래 발전 전망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지만 회사는 항상 ‘노사가 노력한다’는 두루뭉실한 답변만 해왔다.”

    “GM 부도내고 떠나라”

    지금 한국GM 문제 해결책이 있다면. 

    “내 생계 문제가 걸려 있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 GM의 태도에선 정부가 한 푼도 지원하면 안 된다. 이번에 지원한다고 해도 3년, 5년 후에 반드시 이런 상황이 또다시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뿐 아니라 우리 현장 노동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회사가 망해도 좋다? 

    “GM은 차라리 부도내고 떠나라. GM이 한국 정부에 요구하는 지원 규모나 부도가 나서 실업자 된 우리에게 정부가 줘야 할 돈이나 얼마나 차이가 나겠나. 대신, 부도 후 망한 회사를 정부가 인수해 일시적 공기업화한다면 우리 노동자들도 충분히 고통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다.” 

    이 기회에 국민기업으로 만들자? 

    “그렇다. 노동자도 퇴직금 등을 회사에 투자하고, 지자체와 정부에서 투자하면 자력갱생할 수 있다. 미국 GM이 그렇게 살아났고, 아우디도 그렇게 회생했다. 우린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첨단 시설의 공장을 갖고 있다. 세계 제1의 디자인 센터 포럼도 갖고 있다. 정부와 국민이 결단만 하면 된다.” 

    가능할까. 

    “지금 당장 고통스럽더라도 후배 노동자들을 위한 일이고, 한국 자동차 산업이 살 수 있는 길이고, 우리 경제에도 장기적으로 도움되는 길이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젠 한국에 들어온 글로벌 기업에 대한 무작정 퍼주기식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외국 투자기업들은 무소불위로 경영했다. 전횡을 일삼아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젠 해외 글로벌 기업에 대한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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