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집중분석

문재인 대 트럼프 ‘통상 포커게임’

“협상 판돈 대는 수출기업들 허리만 휜다”

  • 입력2018-03-1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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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文 대북 압박 비협조…트럼프 경제 보복”

    • “철강 받고 WTO 제소 지르고…한미 갈등 판돈 키워”

    • 文 ‘엄살’ vs 트럼프 ‘허풍’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결연히 대응하라”고 말했다.(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일 백악관에서 철강·알루미늄 업계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동아DB,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월 1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그는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결연히 대응하라”고 말했다.(왼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일 백악관에서 철강·알루미늄 업계 관계자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동아DB,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일견,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 중재외교가 성과를 낸 결과로 비친다. ‘코리아 패싱’을 극복하면서 ‘한반도 운전자’로 나아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까?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모르지만, 북한과 미국에 연속적으로 특별사절단을 보내기로 한 것은 문 대통령 측으로선 묘수였다. 북한과 미국의 중간에서 나름의 역할을 찾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지난해 후반부터 미국은 북한과 대화에 나설 태세였다. 강경 일변도에서 변화할 조짐을 보였다. 2017년 12월 12일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전제 조건 없이 기꺼이 북한과 첫 만남을 가질 것이다. 그냥 만나자. 당신이 원한다면 날씨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당신’은 김정은 위원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 사이에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 이뤄졌다. 2017년 11월 5일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누구와도 마주 앉을 수 있다.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그것’은 김정은과의 만남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는 단서를 달긴 했다. 

    1월 1일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대표단 파견을 제안했다. 연이어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렸다. 그즈음 트럼프 대통령은 더 과감하게 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1월 10일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적절한 시기, 적절한 상황에서 미국과 북한 간 회담을 여는 데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CNN은 ‘리틀 로켓맨’에게 대화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준 것으로 분석했다. ABC도 ‘아시아의 불량국가’와의 외교적 협상에 기꺼이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평가했다.



    공치사 요청한 불편한 관계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변화가 자신이 취해온 강력한 대북제재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 대변인은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주도로 많은 국가가 동참한 압박이 없었다면 남북 전화통화 재개도 없었을 것이다. 압박은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사용해온 자금을 차단하고 있다. 그 증거와 정보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트위터에 “내가 북한에 대해 우리의 모든 힘을 쓸 의지를 보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남북 대화가 이뤄졌겠는가?”라고 썼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대화 환경을 조성한 것을 나의 공으로 공개적으로 인정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남북 대화 성사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공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했다. 

    3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수용한 직후 문 대통령은 트위터에 영어로 이런 글을 올렸다.
    “북·미 정상회담은 역사적인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은 한국의 국민은 물론 북한과 평화를 희망하는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을 것이다.” 

    이렇게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공치사를 요청해 문 대통령이 그대로 해준 정황이 있지만, 두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편한 관계다. 이런 관계로 인해, 경제-통상 분야에서 트럼프와 문재인의 ‘강 대 강(强對强) 포커게임’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트럼프에 맞서는 문재인에게 판돈을 대야 할 처지인 한국 기업들은 허리가 휠지도 모른다.

    “미 통상 압박은 문 대통령 탓”

    트럼프 정부는 ‘안보와 경제의 결합외교’를 펴고 있다. 어떤 국가건 안보와 경제가 직결되어 있으므로 나름의 결합외교를 펴지만 트럼프 정부는 더 노골적이다. 미국 정부는 경제적 목적 달성 차원에서 안보를 활용해왔는데 이번엔 다소 극단적으로 비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제재, 방위비 분담, 무기 구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자주 결합시켜왔다. 한미동맹을 고려해 경제적 호의를 베풀어줄 만하지만, 가차 없었다. 2017년 8월 7일 북한의 계속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발사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던 중 트럼프 대통령은 불쑥 한미 FTA 개정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섰다. 

    “한국은 미국의 훌륭하고 위대한 동맹이자 동반자이며 미국은 한미동맹을 위해 막대한 국방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막대한 무역 적자를 시정하고 공정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한미 FTA 개정이 필요하다.” 

    3월 9일 한국 특사단을 맞아 북·미 정상회담을 수용하기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한국도 포함했다. 그 근거는 국가 안보에 타격이 있을 경우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무역확장법 232조다. 한국이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논리다. 미국 내에서도 우려가 없지 않다. 동맹국이 왜 안보 위협 요인이냐는 지적이다. 이를 의식해서였는지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 직후 “무역에서 우리를 가장 나쁘게 대우한 많은 나라가, 군사적으로는 우리의 동맹이었다. 우리는 단지 공정함을 원한다”고 말했다. 

    여러 미국 언론은 “한국을 이 조치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수습책을 마련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그 핵심은 “캐나다와 일본, 한국, 독일과 같은 가까운 동맹국을 새 관세 조치로부터 면제해주는 일”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도 “중국의 과도한 생산을 줄이려면 오히려 유럽연합, 캐나다, 일본, 한국 등과 협력했어야 했다”고 보도했다. 디플로매트는 “다른 여러 국가 중 특히 한국이 제물이 되었다”면서 “한국은 법정에서 적대적으로 싸워야 하는 국가가 아니라 오래되고 소중한 미국의 동맹국”이라고 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이런 통상 압박에 시달리는 것이 문 대통령 탓이라고 지적해왔다. 안보 분야에서 문 대통령이 대북 압박전략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니까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제재를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한국에 대한 통상 압박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 부과 대상에 한국을 포함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결연히’ 같은 감정적 표현 왜 쓰나”

    한국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부과 결정이 알려진 2월 20일 충남 당진항에서 철강코일 제품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김경제 동아일보 기자]

    한국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고율 관세부과 결정이 알려진 2월 20일 충남 당진항에서 철강코일 제품이 선적을 기다리고 있다. [김경제 동아일보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해주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반면에 한국만 표적으로 삼은 것 같지는 않다. 일본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에게 들인 정성을 고려하면, 제외할 법했는데 말이다. 

    문 대통령은 안보에 이어 통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웠다. 미국 상무부는 2월 16일 한국을 포함한 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최고 53%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3일 뒤인 2월 19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미FTA 위반 여부 검토 등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나가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WTO 제소” “결연히 대응” 표현으로 인해 한미 갈등의 판이 더 커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포커 판에서 “철강 받고 WTO 제소 지르고” 하면서 판돈을 키우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미 미국에 막대한 무역 흑자를 내는 처지에서 대통령의 이런 정면대응이 역효과를 낼 것”이라는 말도 있다. 몇몇 경제인은 “WTO 제소가 실효성이 없다”고 말한다. 이들은 “문 대통령이 ‘결연히’ 같은 감정적 표현을 왜 쓰는지 모르겠다. 미국을 더 자극해 대미수출 기업을 더 어렵게 할 것 같다”고도 말한다. 

    대미 특사단은 백악관에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난 자리에서 철강 관세 부과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매티스 장관과 맥매스터 보좌관은 적극 챙기겠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진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한국의 대북정책에 불만을 품고 한국이 이를 달래기 위해 돈을 쓰는 패턴이 반복되는 듯하다. 

    2017년 9월 5일 백악관은 전날 이뤄진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 내용을 브리핑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수십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무기와 장비를 구입하는 것을 개념적으로 승인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구체적 협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라면서 “양 정상은 미국이 한국에 대해 첨단 무기 또는 기술 도입을 지원하는 것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해나간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무기 구매 의향을 간접적으로나마 내비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경제적 보복조치 해소를 주장한다. 한미동맹은 군사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도 미국에 더 중요해진 때문이다.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입은 한국의 발언권을 강화하는 또 다른 중요한 수단이다. 2006년 방위사업청 개청 이래 2016년 10월까지 한국이 도입한 미국산 무기 대금은 36조360억 원에 달한다. 한국은 미국산 무기의 세계 최대 수입국으로 알려진다.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도 이 점을 부각해야 한다는 지적이고, 실제로 그렇게 대응하고 있기도 하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 FTA 개정 협상 과정에서 무역 적자 해소 방법으로 셰일가스 수입과 미국산 무기 구매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냥 순순히 따라주면 될 일인데…”

    그러나 한 국내 통상 전문가는 “문 대통령과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압박에 그냥 순순히 따라주면 되지 않나. 문 대통령과 정부가 그렇게 안 하니까 경제 분야에서 한국이 미국의 제재와 압박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미는 더 엄청난 청구서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관계가 급진전되면 문 대통령은 운전대에서 밀려날 수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을 새로운 결합외교 카드도 받아야 한다. 북·미관계 개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내밀 것이 분명한 것은 막대한 대북 지원비용이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당시 한국은 대북 경수로 지원비용의 70%를 부담했다. 이런 상황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시 해체 비용을 우리가 떠안아야 할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포커게임은 트럼프의 임기가 끝나는 2020년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연장될지도 모른다. 짧게는 2년 8개월 길게는 4년 2개월이다. 게임 스타일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허풍이 심한 반면, 문 대통령은 엄살을 떠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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