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총력특집 | ‘한반도의 봄’ 기회 혹은 함정 |

김정은, 美 해상차단에 무릎 꿇었다?

‘핵-미사일 포기’ 카드 꺼낼지도

  • 입력2018-03-2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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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상차단 피하려 트럼프 만남 갈망한 것”

    • ‘석유 생명줄’ 해상 밀무역 막힐 것 우려

    • ‘경제 붕괴와 민심 이반’ 시간문제

    한국 특공요원들이 2010년 10월 14일 해상차단 훈련을 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한국 특공요원들이 2010년 10월 14일 해상차단 훈련을 하고 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5월 만나기로 했다. 이 역사적 회담이 추진된 것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압박 덕분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찰스 암스트롱 교수는 특히 대북 경제제재가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2018년 1월 1일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2015년 1차례를 제외하고는 전혀 언급하지 않던 ‘제재’라는 단어를 3차례 말했다. 

    나아가, ‘더 센 녀석’이 김정은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괄적 해상차단(maritime interdiction)’이 그것이다. 몇몇 외교 소식통은 “김정은이 해상차단을 어떻게든 피해볼 심산에서 핵-미사일 추가 실험 중지라는 양보를 하면서 트럼프와의 만남을 갈망한다고 남측 특사단에 알린 것”이라고 말한다. 

    미 재무부는 중국, 싱가포르, 대만, 파나마 국적 선박 28척과 기업 27곳, 개인 1명 등 56개 대상을 대북 특별지정제재대상에 올렸다. 무기, 석유, 석탄 등 금수품목을 운송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공해에서 직접 조사하고 문제가 되면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해상차단은 북한의 밀무역을 중단시키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보여준다. 북한은 항행 중에 전원을 켜놓게 되어 있는 선박 자동식별 장치를 꺼서 선박 위치를 제3자에게 노출하지 않거나, 중국산이나 러시아산으로 생산지를 조작하거나, 선체에 인공기가 아닌 다른 나라 국기를 게양하는 수법으로 해상에서 유류 밀거래 등을 해온 것으로 의심된다. 미국은 앞으로 이러한 행위를 철저히 단속하려고 칼을 빼 든 것이다. 

    미국의 이 새로운 감시체계가 작동하면 무엇보다 밀무역을 통한 북한의 석탄 수출 길이 막힌다. 또한 해상을 통한 유류 수입도 어려워진다. 이런 조치에 북한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해상차단이 김정은을 대화의 길로 나오게 한 진정한 햇볕정책인지 알아봤다.

    숨통 조일 만큼 위력적

    북한으로 공급되는 석유가 저장돼 있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 시 외곽 ‘바싼 유류저장소’. [변영욱 동아일보 기자]

    북한으로 공급되는 석유가 저장돼 있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 시 외곽 ‘바싼 유류저장소’. [변영욱 동아일보 기자]

    북한은 석탄과 석유에 의존하던 발전을 태양광·풍력·수력발전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 북한 발전의 핵심인 수력의 경우, 최근 소수력발전소가 급증하면서 20%대에서 30%로 비율이 높아졌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성장도 눈에 띈다. 신재생에너지는 송배전 설비가 낙후한 북한에 효율적인 에너지원이다. 최근 북한의 부유한 가정은 태양광패널을 사용하고 있다. 가로등이나 비닐하우스에도 신재생에너지가 사용되고 있다. 에너지 소비자 입장에서도 비용은 들지만 불안정한 기존 전력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는 태양광발전은 매력적이다. 

    북한은 2044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용량을 500만kW로 확대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는 2014년 북한 인구의 2% 정도가 태양광패널을 입수했다고 본다. 중국은 2016년 태양광패널 46만6248개를 북한에 수출했다. 비공식적으로는 훨씬 많은 태양광패널이 북한에 보급됐을 것이다. 

    북한은 풍력 발전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양강도 삼지연군에 풍력발전소가 건설됐다. 2015년 북한의 신재생에너지는 전체 발전의 약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에서 태양광패널이나 풍력 모터가 생산되진 않지만 신재생에너지는 북한의 에너지 자급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석탄을 액화시켜 석유를 만드는 석탄액화산업에도 열을 올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석유가 부족했던 독일과 일본은 석탄액화시설을 대규모로 구축했다. 당시 일본은 북한 지역 아오지 등 2곳의 액화석유 설비에서 약 5만t의 석유를 생산해 만주의 일본 관동군에 공급했다. 북한엔 현재 연간 정제 능력 200만t 규모의 승리화학연합기업소와 150만t급 규모의 봉화화학공장 등 2개 정유 시설이 있다. 이 시설을 액화 시설로 돌리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북한이 주목하는 곳은 갈탄이 많이 생산되는 함경북도다. 북한의 갈탄은 상당량의 유기화합물을 포함하고 있어 약간의 화학처리로도 석유가 된다. 북한은 길주 명천, 명간, 회령 등에 소규모 액화 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2013년부터 러시아와 접촉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공장을 돌릴 만한 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석탄액화는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북한은 세계적인 석탄 산지로 연간 3500만t 정도를 채굴한다. 영국 런던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 따르면 북한이 2015년 수입 물량에 해당하는 원유를 확보하려면 석탄 600만t이 필요하다. 액화 연료를 생산하는 데 1배럴당 95달러의 비용이 발생하고 엄청난 환경오염을 감수해야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원유 없이 버티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원유 공급을 전면 중단한다면 액화 시설은 지체 없이 가동될 것이다. 

    이렇게 북한이 빠져나갈 길이 있지만 여전히 해상차단은 북한 경제의 숨통을 조일만큼 위력적으로 비친다. 해상차단은 북한 경제의 보이지 않는 수익원인 해상 밀무역을 차단할 수 있다. 밀무역 차단의 경제적 효과는 약 1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 막대한 현금 감소는 20억~3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감소시켜 북한 경제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외환 소진 속도를 늦추고자 수입량을 줄인다면 경제 둔화로 인한 산업 생산 저하, 시장 위축, 주민 생활 악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김정은이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은, ‘을’이 된다?

    그러나 순수한 에너지 수급 관점에서 본다면 해상차단만으론 북한 경제에 치명상을 줄 순 없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가 공급하는 최소한의 원유에다 신재생에너지와 석탄액화로 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재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중국과 러시아의 원유 수출을 완전히 막고 1km에 걸쳐 있는 북한-중국 국경과 북-러시아 해상에서 이루어지는 소규모 밀무역도 전면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체제의 붕괴를 초래할 이런 조치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직접 협상에 나선 데엔 해상차단으로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로 더 경사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깔려 있을 것이다. 미국은 채찍(해상차단)과 당근(북·미대화)을 모두 들고 북한을 대하는 것이 외교 전략상 더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김정은은 해상통제가 전면화돼 북한 경제가 망가진 뒤에 미국과 협상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버틸 만한 지금 협상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성사된다면, 이 회담에서 김정은은 ‘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회담이 실패하면 트럼프는 원래 해오던 최대한의 대북 압박이나 군사적 옵션으로 되돌아가면 그만이다. 반면, 김정은은 회담 결렬 이후 본격화할 해상차단으로 인해 생명줄과 같은 석유 수급에 심각한 차질을 겪을 게 틀림이 없다. 그는 북한 경제가 서서히 붕괴되는 광경을 지켜봐야 한다. 

    또한 미국의 공습에 대한 공포가 평양 전역에 엄습할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했다고 느끼면 절대자에게 대항할 용기도 낼 수 있다. 김정은에 대한 민심이 이반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잃을 게 많은 을’은 결국 더 양보해야 한다. 해상차단은 김정은이 자신의 지갑에서 핵과 미사일까지 꺼내도록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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