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최호열 기자의 호모에로티쿠스

‘젖은잡지’ 편집장 정두리의 ‘#Me Too’

“나를 강간한 자가 ‘미투’ 지지 운동 하는 세상”

  • 입력2018-03-25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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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의 주체적 성적 욕망 담은 ‘젖은잡지’로 페미니즘 새 장

    • 페미니즘은 여성뿐 아니라 동성애, 장애인, 어린이, 동물까지 관심

    • “성 상품화라고? ‘좋게’ ‘다르게’ 팔고 싶다”

    • 성폭행 피해 후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 자책감 시달려

    • 성소수자, 특유의 성 취향 마니아 위한 ‘큐티 섹스숍’ 오픈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몇 년 전, ‘젖은잡지’라는 무크지가 큰 화제를 모았다. 노골적으로 ‘도색잡지’를 표방할 만큼 수위는 높았지만, 흔히 보던 남성용 야한 잡지와는 결이 달랐다. 여성의 성욕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그러나 새로운 시각으로 드러낸 것은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다. 한국 페미니즘의 새로운 장을 연 셈이다. 

    ‘젖은잡지’ 만큼이나 편집장 정두리(28) 씨의 행보도 화제였다.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면서 ‘여성의 성 상품화’를 조장한다는 비난을 받던 성인 남성지의 모델 콘테스트에 지원, 당당히 1등을 한 것. 그런가 하면 그 남성 잡지가 여성 살인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표지로 사용한 것을 문제 삼으면서 정작 자신은 ‘젖은잡지’에서 남자를 학대하는 이미지의 화보를 실어 ‘이중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뭘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당시 인터뷰를 요청했었다.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던 그는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유를 묻는 e메일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 무슨 일인지 그 후 어느 매체에서도 그를 볼 수 없었다. 

    2년 6개월여 만인 지난 2월 말,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저간의 사정을 담은 장문의 편지였다. 편지엔 20대 여성으로서 말하기 힘든 아픈 상처와, 상처를 딛고 다시 굳건하게 일어서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3월 말 마포구 당인동에 섹스숍을 열며 다시 세상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디딜 준비를 하고 있는 그를 사무실에서 만났다. ‘은교를 넘는 최강 섹시녀’라는 젊은 네티즌들의 찬사처럼 청순한 얼굴에 육감적인 몸매가 돋보였다. 이런 찬사가 페미니스트에게는 예의에 어긋나는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리카TV BJ 활동

    여성과 성소수자의 다양한 주체적 성 욕망을 다룬 ‘젖은잡지’는 페미니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해윤 기자]

    여성과 성소수자의 다양한 주체적 성 욕망을 다룬 ‘젖은잡지’는 페미니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해윤 기자]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우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려서부터 미술을 전공해 예고에 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미술이 재미없어졌다. 왜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다 대안학교로 옮겼는데, 거기서 정은영 선생을 만났다. 그분이 보여준 페미니즘 작품들을 보며 감동을 느꼈고, 이런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쁘게만 만드는 게 예술이 아니라 내용, 개념이 중요하단 걸 깨닫게 되었다.” 

    현실에서 여성 차별을 느끼며 페미니즘을 알게 된 게 아니라, 그림을 통해 배운 것인가. 

    “현실 속 여성 문제는 늘 느끼던 문제다. 이를 바꾸기 위해 여성운동을 할 수도 있고, 법조계에서 일할 수도 있다. 나는 예술로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전공이 회화 쪽? 

    “미디어아트다. 영상이나 퍼포먼스 등 역동적인 방식이 좋았다. 그래서 작업의 일환으로 2009년쯤 아프리카TV에서 6개월 정도 BJ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당시 아프리카TV에서는 별풍선을 매개로 여성은 보여주고 남성은 관음하는 식의 일인 미디어가 성행했다. ‘별창’(별풍선 창녀의 줄임말로, 여성 BJ를 비하하는 말)이란 단어까지 생겨났다. 

    “거기서는 여자들이 애교를 떨거나 노출을 하면 남자들이 별풍선을 준다. 나도 처음엔 보통 여자 BJ의 방식을 똑같이 답습했다. 남자들이 생각하는 순수한 소녀의 모습으로 청순하게 애교를 부린 것이다. 그러다 별풍선이 쏟아질 때 갑자기 욕을 한다거나 남자친구가 등장하는 식으로 남자들이 기대하던 코드들을 하나씩 배신하며 비틀어버렸다.” 

    별풍선을 주는 남자들의 권력을 조롱하는 콘셉트였나. 

    “그렇긴 하다. 그런데 BJ의 노출을 꼭 남자들 욕망의 관점으로만 볼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한 여성 BJ 방송을 인상 깊게 봤다. 그분은 시청자가 욕을 하니까 ‘내가 별풍선 받으면 창녀야? 그러면 나한테 주지 마’ 하며 화를 내더라. 그러고는 곧바로 수위 높은 섹시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별풍선이 쏟아졌다. 그러자 별풍선을 준 사람들을 모두 강퇴시켜버렸다. 그걸 보고 깨달았다. 보여주는 주체의 욕망이 있다는 걸.” 

    그는 그걸 보며 여성이 수동적으로 보이는 위치가 아니라 주도적으로 자신을 보여주는 위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의 전환을 했다고 한다. ‘보여주는 주체의 욕망’에 대해 더 탐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보여주는 주체의 욕망

    정두리는 ‘젖은잡지’에 직접 모델로 출연했다. [정두리 제공]

    정두리는 ‘젖은잡지’에 직접 모델로 출연했다. [정두리 제공]

    그래서 프랑스로 유학을 간 것인가. 

    “미대를 졸업하고 1년간 돈을 모아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가 추구하는 미학이 나와 맞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여성 작가도 많이 있고…. 입학할 대학이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어학원을 다니고 입학시험을 보러 다니면서도 작업을 계속했다. 그런데 동양 여성이 백인 사회에 살면서 이중적 차별과 성희롱을 겪게 됐다. 다짜고짜 ‘나는 동양의 에로티시즘을 좋아해’ 같은 소리를 듣는 게 일상이었다. 매일매일이 스트리트파이터처럼 길거리에서 나 혼자 적들을 향해 싸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영감이 떠올라 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동양 여성의 이미지, 일본 만화나 게임에 등장하는 교복 코스튬을 한 소녀 분장을 하고 남자 성기 모양의 물총을 그들에게 겨누어 쏘며 다니는 작업을 했다. 이걸 어느 학교의 교수가 매우 좋아했고, 편입에 성공했다.” 

    유학 생활은 어땠나. 

    “생각보다 학교가 아카데믹했다. 기본에 충실하려다 보니 현대 감각에 뒤떨어진 것 같고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액티브한 활동을 하고 싶었다. 지금은 고흐 같은 그림을 그려서 인정받는 시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더 영향을 끼치고, 사회적 파급력이 높은 게 잡지란 생각을 했다. 섹슈얼이란 담론을 탐구하고 있었으니까 도색잡지를 차용했다. 흔히 ‘도색잡지’하면 남자들만 보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여자들도 볼 수 있는 도색잡지가 그림보다 사람들에게 더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페미니즘 잡지와 남성 잡지

    페미니즘 시각으로 만든 야한 잡지? 

    “그렇다.” 

    페미니즘 잡지를 만들면서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남성 잡지의 모델을 한 것에 대해 ‘이중적’이란 비난이 있었다. 

    “사실 그 잡지의 성격을 잘 몰랐다. 모델 콘테스트에 사진을 보내 1차 합격만 해도 10만 원을 준다기에 응모한 거다. 그때 받은 10만 원에 내 용돈 10만 원을 더해 20만 원으로 ‘젖은잡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엔 페미니스트 포르노 배우도 있다. 남성 잡지가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왜 페미니스트는 그런 잡지의 모델을 하면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젖었지만 축축하진 않다

    ‘젖은잡지’는 이름부터 선정적이다. 어떻게 생각해냈나. 

    “남자들은 성욕이 생기면 흔히 ‘선다’고 말한다. 반면, 여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적절한 표현이 없었다.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젖는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제호 밑에 붙은 ‘우린 지금 젖었지만 축축하진 않다’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남성 시각으로 만든 야한 콘텐츠를 보며 여성도 성적 흥분을 느낄 수 있고, 젖을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좋아서 흥분되지는 않는다. 남성의 시각에 의해 젖을 수는 있지만 여성 스스로 만족할 정도의 축축한 느낌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젖은잡지’는 2013년 미성년 소녀들의 성욕 권리를 담은 1권 타부(taboo)를 시작으로 2017년 9권까지 동성애, LGBT, SM, 롤리타, 맬섭, 보이즈러브문화 등 권마다 파격적인 주제를 담아냈다. 

    롤리타 콤플렉스를 부추기는 게 페미니즘이냐는 비난도 있었다. 

    “롤리타 소설을 굉장히 좋아한다. 남성의 시각을 비판하는 블랙유머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어린 여자애를 좋아해서 가둬두려 하지만 여자애는 끝까지 거부하고 결국 도망간다. 어쩌면 안정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는데도 이를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찾는 주체적인 여성의 이야기인 셈이다. 수동적인 롤리타가 아닌 자기 욕망을 아는 주체적인 롤리타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 

    6권도 논란이 많았다. 본인은 2015년 한 남성 잡지의 표지를 문제 삼아 그 잡지 표지 모델 촬영을 거부했다. 당시 표지는 청테이프로 친친 감은 여성 모델의 하얀 다리와 구형 그랜저 트렁크를 배경으로 남자가 허공을 응시하며 담배를 피우는 범죄 누아르 콘셉트였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젖은잡지’에서 여성이 알몸 상태인 남성을 포박한 이미지의 화보를 실었다. ‘내로남불’ 아니냐는 비난이 있었다. 

    “당연히 다르지 않나. 현실에서 여성들이 남성에게 강간 살해를 당하고 있다.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살해한 경우가 흔한가?” 

    미러링이었던 건가. 

    “그건 아니다. 실제 남자를 컨트롤하는 데에서 쾌감을 느끼는 여성들이 있고, 컨트롤당하는 걸 좋아하는 남자들도 있다. 그동안 음지에 있던 이런 문화를 세상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여성의 주체적 성적 욕망

    정두리는 남성의 시선에 포획된 모습이 아닌 모델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멋지고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정두리 제공]

    정두리는 남성의 시선에 포획된 모습이 아닌 모델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멋지고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정두리 제공]

    ‘젖은잡지’ 만들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그전까지는 여성의 주체적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에 의미를 뒀다면 6권부터는 여자도 성을 즐길 주체라는 데 의미를 뒀다. 남자를 포박하고 성적으로 여자에게 복종하는 남자의 모습을 담았다. 이런 역할을 남자 모델에게 시켰더니 굉장히 불편해했다. 트러블도 많았다. 사전에 합의한 콘셉트도 못하겠다고 해 애를 먹었다.” 

    ‘젖은잡지’는 노출 수위는 높은데, 남성용 야한 잡지와는 달리 야하진 않다. 

    “‘야하다’ ‘섹시하다’는 느낌도 실은 학습에 의한 것이다. 정해진 코드가 있다. 그걸 일부러 생경한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었다.” 

    동성애, SM 등도 다뤘는데, 본인의 성적 취향이 반영된 것인가. 

    “굳이 밝힐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페미니즘은 여성에서 시작해 동성애 등 성소수자, 장애인, 어린이, 동물까지 관심을 갖고 연대하는 것이다.” 

    수위가 높은데도 모델로 참여하겠다는 독자가 많았다고 들었다. 

    “남성의 시선에 포획된 모습이 아닌, 진짜 자신의 멋지고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친구가 많았다. 그동안은 그런 매체가 없었으니까.” 

    결국은 성을 상품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을 것 같다. 

    “크게 괘념치 않았다. 그렇게 따지면 ‘걸그룹’ ‘보이그룹’도 일종의 성 상품 아닌가? 명화들 중에도 벌거벗은 여자 그림은 다 성을 상품화한 것인가? 성 상품이라도 ‘좋게’ ‘다르게’ 팔고 싶었다. 성인용품도 나쁜 건 아니다. 자기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는 거다.” 

    과거 페미니스트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은 재평가받는 느낌이다. 미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분이 ‘젖은잡지’로 논문을 썼다고 하더라. 페미니스트도 여러 갈래가 있고, 다양한 생각이 있는 게 당연하다.”

    두 차례 강간 피해 주장

    20대 여성으로서 야한 잡지를 만들면서 편견과의 싸움도 힘들었을 것 같다. 

    “관종(관심종자, 주목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꾸준히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하며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는지를 묻자 “늘 성희롱과 싸우고 있다. 강간도 두 차례나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젖은잡지 1권을 낸 후 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을 때였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에 꾸준히 트위터로 말을 걸던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을 에세머(SM을 즐기는 사람)이며 관련된 인터뷰를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당시엔 에세머가 매우 희귀한 줄 알았기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SM 도구들을 보여주겠다고 했고, 별 의심 없이 그의 집에 갔다. 그는 수갑을 보여줬고, 그걸 내 손에 채웠고, 나를 강간했다.” 

    그 사람은 공인인가. 

    “그 당시엔 유명하지 않았는데, 이후에 유명해졌다. 처음엔 아무에게도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다 너무 힘들어서 친구한테 얘기했다. 그 친구가 말하기를 그에게 피해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2016년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를 고소했다. 내 사건은 무죄가 나왔지만, 증거가 있는 사건들은 유죄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 일은. 

    “2014년 여름 한국에 들어왔을 때, ‘젖은잡지’에 관심이 많다며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했다. 젖은잡지는 작업자가 많으면 좋기 때문에 그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약속을 잡아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한참 동안 나를 모델로 사진을 찍던 그는 장난처럼 술잔을 내 입에 대며 마시게 했다.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배려라고 생각하고, 한 모금을 마셨다. 그런데 술에 뭔가를 탄 것 같았다. 사진을 찍던 도중 나를 강간했다. 저항하려 했지만 몸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성폭행을 당한 후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매뉴얼을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당하니까 아니더라. 우선, 내가 성폭행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알려지는 것도 싫고…. 이전의 일상을 유지하고 싶었다. 당시만 해도 이야기하더라도 여자만 더 이상해지는 시대였다. 그래서 프랑스로 돌아가 학업을 하고, ‘젖은잡지’ 더 열심히 만들고, 모델 촬영을 열심히 했다. 그러면 될 줄 알았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마음에 상처만 깊어졌다.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 하는 자책감도 들었다. 술에 약을 탔을 거란 생각은 아예 못한 채 왜 반항하지 못했을까 싶고…. ‘내가 성을 다룬 잡지를 만들어서 이런 일을 당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런 거 만드니 그런 일을 당하지’ 하는 비난을 받을까 두렵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옷을 야하게 입고 다녀서 그런 일을 당하지’라고 비난하지 않나.” 

    그런 상황에서 ‘젖은잡지’ 만들기 힘들었을 텐데. 

    “접으면 더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매달렸다. 그런데 기가 막힌 건 그가 ‘젖은잡지’를 음란물로 고소한 것이다. 경찰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겁이 났다. 내가 그의 죄상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나를 공격하는데, 내가 폭로하면 진짜 어떤 위해를 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로를 해도 한국엔 나보다는 그를 아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 내 말보다 그 사람 거짓말을 더 믿어줄 것 같았다. 그땐 어렸고 혼자였다.”

    꽃뱀 취급받는 피해자

    2016년에 고소를 했던데. 

    “음란물 고소로 인해 더 이상 ‘젖은잡지’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한 회사에서 내가 계속 만드는 걸 전제로 판권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그래서 판권을 판 돈으로 변호사 비용을 마련해 소송을 시작했다.” 

    소송 과정에서 느낀 점은. 

    “검찰의 수사 과정에 문제가 많다. 내가 피해자인데도 가해자 거주지까지 가서 진술을 해야 하는가 하면, 가해자와 대질심문까지 하게 했다. 가해자와 나 사이에 유리벽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옆에 나란히 앉아 조사를 받았다. 그 얼굴을 보고 그 목소리를 듣는 게 피해자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검찰은 모르는 듯했다. 나는 그래도 몇 년이 흘러 견딜 수 있었지만, 피해를 당한 지 얼마 안 되는 경우라면 진술은커녕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을 것이다. 내 진술을 믿어주지 않는 것도 문제였다. 어릴 때 강간 고소를 취하한 적이 있는데, 그걸 빌미 삼아 돈 때문에 고소한 꽃뱀으로 몰아가더라.” 

    어릴 때 일이라는 건. 


    “스무 살 때 강간을 당해 고소한 적이 있다. 그런데 소장이 집으로 날아와 부모님이 알게 되고, 가해자 측에서 협박하고, 2차 피해를 당하고…. 일주일을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때 내 삶이 너무 피폐해져 소를 취하해줬다. 그 경험 때문에 고소하기가 더 힘들었다.” 

    두 사건 모두 무죄가 된 건가. 

    “시일이 많이 지나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검사도 그러더라. 무죄가 되더라도 강간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란 걸 알아 달라고.” 

    항소는. 

    “당시 연예인을 성폭행으로 고발한 여성이 무고죄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변호사가 지금 사회 분위기가 가해자 편을 드는 쪽으로 흘러간다며 항소를 말렸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그가 미투 운동을 지지한다며 떠들고 다닌다는 것이다.”

    아라키 노부요시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사진작가들과 작업할 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나. 

    “성희롱, 성추행은 빈번하다. 나중에 자세히 얘기할 날이 올 것이다. 세계적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는 모델과 성관계를 하면서 사진 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모델로 하여금 성적인 흥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모델들에게 아라키 노부요시의 다큐를 보여주며 ‘이게 예술’이라며 자기와 스킨십이나 섹스를 하면서 그 감정을 작품에 담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진작가 많다. 웃기는 이야기다. 아라키 노부요시는 모델의 자발적 동의 아래 성관계를 했고, 그런 시도 자체가 현대미술에선 처음이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같은 걸 따라 하는 건 모방이지 예술이 아니다. 예술과 포르노는 한 끗 차이다. 내용과 차별성을 고민해야 하는데, 내게 섹스를 요구한 사진작가들은 그런 고민 하나 없이 자기들 욕망을 배설하려 했을 뿐이다.” 

    ‘스폰’ 제안도 있었나. 

    “많았다. 그럴 땐 내가 이걸 왜 하나 싶은 생각 정말 많이 들었다. 우울감이 심해지고 회의감만 들었다.” 

    푸시베리(puxxyberry.com)라는 성인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더라. 

    “지난해부터 하고 있다. ‘젖은잡지’ 독자이던 친구가 굿즈(goods) 상품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친구가 먼저 제안했다. 3월 말쯤엔 마포구 당인동에 섹스숍도 오픈할 예정이다.” 

    2~3년 사이에 여성 전용 섹스숍이 많이 생겼다. 어떻게 차별화할 계획인가. 

    “기존 성인용품은 대부분 촌스럽다. 최근 여성 전용이 나오긴 했지만 디자인이 여성스럽거나 패셔너블한 건 아니다. 가격도 비싸고. 우리는 저렴하면서도 예쁜, 선물하고 싶고 소장하고 싶은 제품을 판매하려 한다. 숍도 테마가 있는 카페처럼 운영할 생각이다. 다른 섹스숍들은 딜도, 바이브레이터 중심인데 우리는 액세서리, 란제리, 속옷 등 다양하게 준비했다. 무엇보다 ‘젖은잡지’처럼 성소수자, 특유의 성적 욕망이나 취향을 위한 소품 위주로 마니아층을 공략할 계획이다.”

    성인용품 쇼핑몰 푸시베리 운영

    추천 제품은 직접 사용해보고 검증한 제품들인가. 

    “동업하는 친구는 자기 여자친구와 직접 사용해보고 만족한 제품을 추천하고 있다. 나도 직접 사용하거나 착용해보고 추천한다.” 

    자체 브랜드를 가질 계획은. 

    “기구까지는 모르겠는데 의상, 게임판 같은 건 만들고 싶다. 술자리 같은 데서 뽑기 같은 게임을 할 때 사용하면 좋을 게임판을 구상 중이다. 에세머용, 레즈비언용 등 다양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미술 전공을 살릴 계획은.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이지만 당장은 생계를 해결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그리고 전시회를 하기엔 아직 작품들이 성에 차지 않는다. 올해 안으로 꼭 전시회를 하고 싶기는 하다. 해외로 나가서 작업하는 프로그램이 있어 지원하긴 했는데, 결과는 아직 모른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미투에 동참한 분들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그런데 말하기 힘든 내용을 용기 내서 얘기하는 걸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가치 있게 보도해야 하는데, 일부 언론에서 자극적으로 다루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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