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호

난임전문의 이성구의 ‘수태이야기’

세상의 모든 여성은 잠재적 어머니

  • 입력2018-04-0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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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나라가 성범죄 피해 사실을 밝히고 심각성을 알리는 미투(#Me Too) 캠페인으로 시끌벅적하다. 서로 간의 대화에서 “그래, 나도 좋아”로 소통되던 “me too”가 “나도 당했다”의 상징적 표현이 되다니 끔찍하다. 

    꽃으로도 때려선 안 되는 대상이 있다면 아이와 여성이다. 이 둘은 생명 잉태의 원천이자 미래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에게 함부로 할 수 있다는 마초의 자세는 금물이다. 

    ‘여성은 약하지만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이 있다. 약한 여성에게는 함부로 해도 되는가. 절대로 안 된다. 세상의 모든 여성은 미래의 잠재적 어머니다. 더욱이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낼 위대한 존재이기에 그 어떤 이유로든 신체와 마음이 보호되어야 한다. 여성은 생명 잉태를 위해서 설계된 가장 위대한 피조물이라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가족이거나 연인·부부가 아니더라도 소중히 다뤄야 할 책임과 의무가 남성에게는 있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생물학적으로 역할이 얼마나 미비하고 열등한지 알게 된다면 놀라거나 믿지 않을 것이다. 새발의 피를 나타내는 조족지혈이 딱 어울리는 표현일 성싶다. 간단한 예로 한 번의 성관계에서 3억 마리 이상의 정자가 사정(射精)된다한들 정자만으로는 생명은 고사하고 살과 피를 만들 수 없다. 난자에게만 있는 미토콘드리아와 세포질의 은혜를 입고서야 정자에 담긴 DNA 50%라도 후손에게 대물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화론에서는 남성이 그토록 성교에 목을 매는 걸 두고 ‘가능한 한 많은 자손을 낳기 위한 본능’이라고 설명한다.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눈살을 찌푸리겠지만 사람의 행동에는 교육을 거스르는 무의식의 본능이란 게 있다. 여성이 배우자를 선택할 때 변변치 못한 남성보다 능력 있는 남성을 더 선호하는 것도 진화론에서는 안정적 육아와 교육을 위한 본능적 선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 전국으로 일파만파가 되고 있는 미투 운동을 보면서 또 한 번 여성들의 용기에 놀랐다. 그러고 보면 여성은 항상 용감했다. 그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여성은 강했다. 남성과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관(이념 등)에 목숨을 내걸지 않고 오로지 자식 키우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저력이 여성에게는 있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의 산업화에 숨은 주역은 다름 아닌 어머니들이 아닐까 싶다. 그녀들이 키운 자식이, 그 자식의 자식이 바로 지금의 젊은이들이 아닌가 말이다. 

    여성에게 자식은 무엇일까? 인간이 오르가슴을 느낄 때 급격하게 상승하는 호르몬은 옥시토신이다. 일명 사랑의 호르몬(love hormone)이라고 한다. 남성에 비해 여성이 옥시토신에 훨씬 민감하다. 불현듯 바람이 난 여인이 자식이 부여잡은 옷고름을 끊어버리고 끝끝내 떠나는 걸 연상할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여성은 모성에서 옥시토신의 최절정을 만끽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실제로 옥시토신은 출산과 수유할 때 방출되는 자궁수축 호르몬인데 분만 때, 자식에게 젖을 물릴 때, 자식과 포옹하며 깊은 사랑을 느낄 때 다량 분비된다. 그래서 어머니가 되면 그 어떤 가치보다 내 자식을 더 소중하게 느끼며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녀들의 거룩한 모성 덕분에 우리 모두가 태어났고 자랄 수 있었다. 

    자궁이 있는 한 누구라도 어머니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젊고 건강한 여성일지라도 극도의 심리적인 충격을 받으면 배란장애 혹은 배란이 장기간 멈춰지거나 부정출혈로 고생하기도 한다. 여성의 몸에서 뇌 시상하부는 자율신경계뿐 아니라 배란과 임신을 위한 생식 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사령탑인데,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조절 능력을 잃게 되어 수태력이 저하될 수 있다. 공포와 두려움에서는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천연 각성제)과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올라가지만 불쾌한 기억으로 인한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장기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글루타메이트(glutamate)라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로 연결되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명을 품어야 하는 여성의 신체는 그 어떤 이유에서든 보호되어야 한다. 필자는 난임의사로서 제아무리 사랑이 절절한 연인이거나 부부라도 해도 생리 중에 성관계를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귀띔하고 있다. 여성의 자궁경부는 배란기를 제외하고는 생식기 건강을 위해 락토바실러스라는 세균으로 철저하게 보호된다. 하지만 생리가 시작되면 혈을 내보내기 위해서 무장해제가 된다. 이때에 공중목욕탕에 가거나 성관계를 하다가 균이 침범할 수 있고 때마침 면역 기능이 좋지 않으면 각종 생식기 질환의 원인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소파수술(중절수술)을 쉽게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충동적 성관계를 격정 멜로의 영웅담으로 포장한다면 무모한 남성이다. 자칫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이어진다면 여성으로서는 씻을 수 없는 충격과 고통으로 남게 된다. 중절수술로 인해 자궁내막에 염증이 생기거나 기저층이 손상된다면 아무리 건강한 수정란이 내려와도 착상을 시킬 수 없는 자궁이 되기 십상이다. ‘사랑해서 지켜줬다’는 말이 용기 없는 남성의 변명이 아니라 사랑 앞에 기꺼이 절제를 택하는 상남자의 도(道)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물며 사랑하는 연인관계이거나 부부관계에서도 이토록 절제와 배려가 필요한데, 사회적 남녀관계에서는 오죽하겠는가. 

    난임의사로서 한 가지 걱정의 마음이 생긴다. 작금의 미투 운동이 성추문 논란을 없애려고 여성과의 교류를 끊는 ‘펜스 룰’로 번져, 자칫 ‘사랑의 밀당’도 오해와 선입견으로 점철돼 급기야 ‘연애 기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가뜩이나 우리 사회에 1인 가구가 늘고 있고 혼밥 혼술 문화가 확산돼 결혼을 기피하고 급기야 저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최근의 미투 사건에 충격을 받은 젊은이들이 사랑을 꽃피워야 하는 시기에 마음을 닫고 ‘나 혼자만의 인생이 가장 속 편한 행복’이라고 결론지으면 어떡하나…. 필자를 찾아오는 나이차 많은 난임 부부의 상당수는 따지고 보면 학교와 사회생활에서 만난 선후배 사이인 경우이기에 더욱 그런 걱정이 앞선다.


    이성구
    ● 1961년 대구 출생
    ● 서울대 의대 졸업
    ●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 대구마리아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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