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호

연쇄정상회담;北의 숨은 그림 찾기

‘김정은 천적’ 존 볼턴

북·미 정상회담 판도 바꾼다?

  • 입력2018-04-25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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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억압하고 찍어 누르는 포악한 성격

    • ‘안 굽히면 전쟁’ 김정은 위협

    • 구석으로 몰아넣고 극적 타협?

    [동아DB]

    [동아DB]

    2018년 3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고 그 자리에 존 볼턴을 임명했다. 국가안보보좌관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총괄 운영하면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외교안보 라인의 컨트롤타워에 해당한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외교와 안보는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국방장관이 이끌고 있다. 최근 두 달 사이에 국무장관과 안보보좌관이 거의 동시에 교체된 것은 이례적이다. 트럼프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강경파 라인을 초강경파 라인으로 바꾼 것이다. 

    존 볼턴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공화당 정권에서 활동한 네오콘(신보수주의)의 핵심이다. 그는 ‘초초강경’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의 주장이 얼마나 극단적인지는 이란, 중국, 북한에 대한 발언만으로 충분히 확인된다. 

    “이란 핵 문제의 해법은 협상이 아니다. 폭격을 가하거나 이란의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정권교체를 이뤄야 한다.” 

    “미국의 가장 큰 적은 중국이다. 중국이 더 크기 전에 전쟁을 해서라도 중국을 주저앉혀야 한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과 복교해야 하며, 오키나와에 있는 주일미군 중 일부를 대만으로 돌려야 한다.” 



    “북한에 대한 선제 폭격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당하다.”

    “같이 일하기 벅찬 사람”

    볼턴은 외교 문제에선 안하무인적 태도를 지녔다. 상대와 대화하기보다는 상대에게 미국의 의지를 밀어붙여야 한다고 본다. 그는 사적으로도 이런 성격을 표출한다. 

    국무부 근무 당시 직원들의 내부 비판을 억압하거나 찍어 눌렀고 눈에 거슬리는 직원을 내쫓은 것으로 알려진다. 볼턴의 상관이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볼턴의 자질과 관련해 “개인적으로는 물론 정책 사안에서도 같이 일하기 벅찬 사람”이라고 잘라 말했다. 

    볼턴은 2005~2006년 1년 반이 안 되는 유엔 주재 미국대사 임기 중에도 거친 언행과 극단적인 개입 정책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이란, 우크라이나, 리비아, 시리아, 예멘으로의 군사개입을 요구했다. 그는 초강경파인 딕 체니 전 부통령이나 도널드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을 능가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민주당과 진보성향 언론은 볼턴을 서슴없이 “전쟁광” “사이코”라고 비난한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볼턴 임명을 ‘최악의 실수’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왜 굳이 이런 ‘성격파탄(?) 인물’을 자신의 옆에 세워둘까. 

    미국의 외교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에 던지는 경고로 해석한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직후 대화파인 틸러슨 국무장관을 해임하고 그 자리에 강경파 CIA 국장 폼페이오를 임명했다. 

    이때 트럼프는 틸러슨 해임 카드로 북한에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오히려 중동 문제가 부각됐다. 나아가, 폼페이오는 이미 트럼프 행정부에 소속돼 있는 인물이므로 트럼프가 기대한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트럼프는 조야에 묻혀 있던 뉴 페이스인 볼턴을 불러들인 것으로 보인다. 

    볼턴의 전임자인 강경파 맥매스터는 현역 3성 장군으로 제한적 대북 선제 타격인 코피작전(Bloody Nose Strike)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 작전은 북한 내 상징적 시설을 정밀 폭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볼턴은 코피 정도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전면 공격을 공공연히 주장했다. 대화 국면에서 이런 초강경파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에게 ‘이번에 제대로 굽히고 들어와라. 그러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 이르는 과정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협상을 주도할 볼턴은 북한의 자세가 여의치 않으면 판을 뒤엎을 가능성이 있다. 볼턴은 부시 정부에서도 부시 대통령과의 충돌을 마다하지 않았다. 성격이 불같기는 트럼프도 볼턴 못지않다. 백악관의 내막을 그린 ‘화염과 분노’라는 책은 트럼프에 대해 “오늘 그를 움직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내일도 계속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결코 간단치 않다”고 말한다. 트럼프와 볼턴은 손을 맞잡고 김정은을 몰아붙일 태세다.

    폭군 vs 인간쓰레기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오른쪽)이 시진핑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다른 한편으로, 트럼프는 이번 북·미회담에서 성과를 내야 할 절박한 사정을 안고 있다. 그는 지금 중국과의 무역 전쟁, 러시아 커넥션, 섹스 스캔들 같은 만만치 않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푸틴의 당선에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미국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런 추세라면 11월 중간선거에서 패할 것이고 ‘탄핵 시계’가 째깍째깍 움직일지 모른다. 

    이 상황에서 그가 단기간에 얻을만한 업적은 북한 핵 문제 정도다. 그가 협상으로 핵 폐기라는 외교적 성과를 만든다면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 선거에서 승리할지 모른다. 

    따라서 트럼프가 볼턴이라는 초강경파를 내세운 것은 김정은에게 ‘제발 협상에 진지하게 임해달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자신의 책 ‘협상의 기술’에서 “상대를 구석으로 몰아넣은 다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카드를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지금 트럼프는 딱 이 공식에 따라 북한과의 협상을 진행하는 셈이다. 

    볼턴은 특히 북한과 기나긴 악연을 이어오고 있다. 2003년 볼턴은 “김정일은 북한을 지옥 같은 악몽의 나라로 만든 폭군”이라고 했고, 북한은 “볼턴은 인간쓰레기며 흡혈귀”라고 했다.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 유엔 대사인 볼턴은 북한을 완전히 봉쇄하는 대북 제재안을 꺼냈다. 이것은 트럼프의 ‘포괄적 해상차단’과 유사한 전면적 무기금수, 석유공급 원천차단, 북한과 관계한 모든 대상에 대한 금융제재를 포함한다. 

    2006년 당시 볼턴의 주장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인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대폭 완화된 제재안이 만들어졌다. 볼턴은 이 제재안이 유엔 안보리에 상정되자 “거꾸로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볼턴은 유엔대사에서 경질됐다. 

    이후 볼턴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올해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를 표명해 새 국면을 맞는 상황 속에서도 볼턴은 “북한이 결승선을 몇 미터 남겨놓고 왜 멈추겠느냐”는 말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절하했다. 

    볼턴은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공공연히 주장했다. 2월 28일 월스트리트저널에서 “북한의 핵무기가 조성하는 현재의 불가피한 일에 선제타격으로 대응하는 것은 미국에서 완전히 합법적이다”라고 했다. 북한이 미국 안보에 대한 임박한 위협이기에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는 것이다. 

    비핵화 방식에서도 볼턴은 ‘리비아식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 모델은 핵을 먼저 폐기한 다음 보상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역대 미국 정부는 6자회담의 틀 속에서 핵 동결, 핵 불능화, 핵 폐기를 단계적으로 밟아가려 했다. 그러나 볼턴은 일괄 타결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북한이 비핵화를 완료하면 북한에 대한 체제 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러한 리비아식 비핵화에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거부하고 있다. 카다피가 이걸 믿었다가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지 않았냐는 것이다.

    나비효과

    트럼프의 볼턴 임용에 당황한 북한은 쓰고 싶지 않았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회동한 것이다. 김정은은 집권 후 첫 정상회담을 미국이나 한국이 아닌 그동안 소원해진 중국과 한 셈이다. ‘트럼프에게 마냥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은 방중을 통해 ‘차이나 패싱’을 우려한 중국의 자존심을 살려줬다. 북한은 지금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 안보리 제재로 인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번 제재는 거의 모든 북한 수출상품의 구매를 금지하고 석유 관련 제품 공급을 극도로 제한한다. 대북제재에 뒷구멍을 내주던 중국도 단호하게 제재에 동참했다. 북한 대외무역의 90%가 중국과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봉쇄는 북한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김정은은 시진핑과 다시 친해짐으로써 중국을 이 제재에서 이탈시킬 기회를 잡았다. 이것은 볼턴 임명이 초래한 나비효과라 할 수 있다. 트럼프에겐 별로 반갑지 않은 일이다. 볼턴의 등장은 북·미회담이 과연 제대로 열릴 것인가 하는 일말의 의구심을 일으킨다. 

    보통 두 나라가 정상회담을 할 땐 사전에 실무진 차원에서 90% 이상 합의를 미리 도출한다. 볼턴은 이 실무진의 최고위급이다. 북·미 실무협상이 험난할 수 있으며 잘못하다간 정상회담이 취소될 수도 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트럼프는 얼마든지 정상회담을 취소할 수 있다. 김정은은 이제 과거처럼 시간을 질질 끌 수도 없는 막다른 상황에 다다른 것으로 비친다. 

    김정은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를 상대하려면 중국의 뒷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트럼프 옆에 볼턴이 서는 것을 보면서 더 기겁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은 한반도의 단계적 비핵화를 지지하고 나섰다. 러시아도 ‘쌍중단’을 제안하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하면 한국과 미국도 그에 대한 답으로 연례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볼턴을 끌어들이자 김정은은 시진핑을 끌어들여 서로 장군멍군을 한 셈이다. 그러나 ‘김정은의 천적’이자 ‘북·미 정상회담의 게임체인저’인 볼턴의 등장으로 상황은 변했다. 김정은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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