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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정상회담;北의 숨은 그림 찾기

김정은 앞에 놓인 10갈래 길

핵 버려도 과학자·기술 남아 再핵무장 가능 先경제발전·後핵무장으로 노선 전환?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김정은 앞에 놓인 10갈래 길

김정은 앞에 놓인 10갈래 길
여기, 닮은 듯 다른 10갈래의 길이 있다. 운명의 시각이 다가온다. 평양은 어느 길을 걸을 것인가.

➊파키스탄 모델 : 북한이 추구해온 것으로 한국과 미국이 허용할 수 없는 길이다. 파키스탄은 북한과 똑같이 6차례 핵실험을 했다. 1998년 핵실험 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았으나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격을 지원하며 제재에서 벗어났다.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파키스탄은 현재 반미친중(反美親中) 국가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터라 중동으로의 핵 확산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김정은의 대화 시도가 시간 벌기용 사기극이라면 평양이 아직도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하는 것이다. 

➋리비아 모델 :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강조해온 해법이다. 선(先) 핵 포기, 후(後) 보상이 원칙이다. 국제사회 압박에 핵을 포기한 무아마르 카다피는 서방과 관계 개선에도 나섰으나 리비아 모델은 핵을 포기한 지 8년 만에 극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2011년 ‘아랍의 봄’ 소용돌이가 일어난 가운데 서방의 공습에 직면한 카다피는 미국이 지원한 민중봉기에 의해 살해됐다. 서방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집단에 구타당하는 카다피의 운명을 지켜본 북한이 리비아 모델을 수용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카다피의 길, 로하니의 길

➌이라크 모델 : 북·미 대화가 어그러진 후 미국이 군사적 수단으로 강제 사찰에 나설 수 있다. 이라크는 1970~80년대 적극적으로 핵 개발을 추진했으나 핵실험 단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한 후 7000여 곳을 사찰했으나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흔적을 찾지 못했다. 사담 후세인은 미군에 체포돼 2006년 교수형을 당했다. 북한이 이라크와 다른 점은 핵무력 완성 단계에 진입했다는 것이다. 미국을 타격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신뢰성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한국·일본에 대한 핵 공격 능력은 확보했다. 

➍우크라이나 모델 : 우크라이나는 한때 세계 3위 핵무기 보유국이었다. 소련 붕괴 후 독립하면서 모스크바가 배치한 핵무기를 확보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을 확보하고자 핵을 보유하려고 했으나 미국, 러시아가 경제 제재를 경고하면서 핵 폐기를 압박했다. 결국 미·러와 리스본 의정서를 체결하고 핵무기를 폐기한 후 미국의 경제 지원을 받았다. 핵무기 보유를 포기한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에 크림반도를 찬탈당한다. 우크라이나는 직접 핵을 개발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에서 북한과 구분된다. 

➎남아프리카공화국 모델 : 자발적으로 핵 개발을 중단한 사례다. 북한이 남아공처럼 제 발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련의 지원을 받은 주변 국가들이 안보를 위협한 게 남아공의 핵 개발 이유였다. 남아공은 소련이 붕괴한 후 안보 위협이 사라지면서 핵 개발을 접었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탓에 핵 개발을 했다고 주장한다. 경제적으로 강성했으며 재래식 전력에서 북한보다 앞선 한국으로의 흡수도 북한 정권이 가진 불안 요소다. 한반도 주변 정세가 변화해 평양이 우려하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사라질 수 있을까.


先동결 後비핵화 ‘이란식 협상’

➏베트남 모델 : 베트남은 핵 개발에 나서지 않았으나 북한이 향후 베트남의 길을 걸을 수도 있다. 미국과 전쟁을 벌인 베트남은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미국과 가장 협력적인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3월 미국 항공모함 전단이 다낭항에 기항하자 베트남 국민들은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북·미 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북·미, 북·일 수교가 이뤄지고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선다. 김정은은 핵을 폐기한 후 친미 정책을 펴는 게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내린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친미비중(親美非中) 국가가 된다. 미국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우군을 얻고 북한은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나진항에 미국 항공모함이 기항하는 모습은 생경하지만 국제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아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른다. 

➐이란 모델 : 비핵화를 선언하고 핵 개발을 멈추면 제재를 푸는 방식이다. 미국은 제재 그물망을 촘촘하게 짜 충실하게 집행하면서 이란을 굴복시켰다. 북한이 제재를 견디지 못하고 군사 옵션에도 두려움을 느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한 것이라면 현재 상황은 이란 모델을 닮아가는 측면이 있다. 2015년 이란은 핵 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제재를 해제하는 것에 합의했다. ‘P5’(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와 독일이 협상에 참여했다. 이른바 P5+1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온건한 성향도 합의에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미국과 포괄적 합의를 이룬 후 핵 포기를 단계적으로 진행하기를 선호할 것이다. 4자 혹은 6자 틀로 이뤄진 다자회담에서 핵 포기와 체제 보장 등을 맞바꾸는 과정에서 단계별로 보상을 받고자 할 것이다. 선(先) 동결, 후(後) 비핵화가 그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방식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미국은 현재 이란과의 핵 협정 폐기 카드도 만지작거린다. 이란 모델은 6자회담 실패의 전철을 밟을 수 있으며 북한은 핵무력 완성 단계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이란과 다르다.


北 ‘정상국가’ 될까

지금껏 일곱 가지 전례를 살펴봤다. 어느 길을 걷든 ‘북한 모델’로 결론이 난다. 

➑북한 모델 I :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 제재가 풀려 경제 발전에 나선다. 북·미, 북·일 수교가 이뤄진다. 북·일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식민지 배상금으로 받은 돈이 경제 발전 종잣돈 구실을 한다. 다자 틀의 안전 보장으로 체제 불안도 사라진다. 핵무기와 관련 시설을 폐기했으나 과학자와 기술은 남았기에 짧은 기간에 핵무장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것도 뒷배로 작용한다. 김정은은 ‘북한판 덩샤오핑’을 지향한다. ‘정상국가’가 되면서 정권 선진화(Regime Evolution)가 일어난다. 한반도에 평화 공존의 시대가 열린다. 

➒북한 모델 II : 핵 포기 과정이나 포기 후 내부 갈등이 불거져 쿠데타나 민중봉기 형식의 급변사태가 벌어진다. 한미연합군이 북한에 진출한다. 김정은 추종 세력은 산악으로 들어가 게릴라전에 나선다. 중국 인민해방군도 북중 국경을 넘어 함흥-청진 이북에 주둔한다.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두고 협상에 나선다. 중국이 한국 주도 통일을 용인하는 것으로 상황은 일단락됐으나 게릴라 세력이 남아 혼란이 계속된다. 이 같은 사태를 감당할 능력이 부족한 한국 경제가 휘청거린다. 

➓북한 모델 III : 한미동맹을 이간하는 북한의 전술이 성공한다. 핵 동결과 ICBM 폐기 수준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합의가 이뤄진다. 한미동맹 파기를 이뤄낸 평양은 한반도 통일을 추구하겠다는 공격적 의도를 현실화한다. 김정은의 통일대전은 재래 전력을 활용해 한국을 강점하는 게 골자다. 핵 개발은 동결했으나 기왕의 핵무기는 남았으므로 경우에 따라 핵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 북한 주도 통일을 더는 망상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환경이 된다.


신동아 2018년 5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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