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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향한 열정과 도전 | 송상현 회고록

半나체 우간다 女人의 무언극… “반군이 우리를 약탈·강간했다”

  • | 송상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장·제2대 국제형사재판소장

半나체 우간다 女人의 무언극… “반군이 우리를 약탈·강간했다”

  • 우간다 루코디 마을 주민들이 무언극을 준비했다. 반군이 쳐들어와 어떻게 주민을 죽였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줬다. 나이가 제각각인 부녀자가 무기와 장신구를 들고 나와 괴성을 지르면서 춤을 췄다. 옷을 벗다시피 한 두 여자가 그중에 섞여 있다. 늙은 여자는 아랫도리를 짚으로 엮은 치마로, 가슴을 검은 브래지어로 가리고 춤을 췄으며 젊은 여자는 검은 브래지어와 비키니 아랫도리를 입었다. 원래는 장례식을 위한 가무인데 장례를 하도 많이 치르다 보니 이제는 축하의 춤이 됐다고 한다. 참으로 역설적이고 슬프다.
2010년 2월 9일 라오스를 방문하고자 암스테르담을 출발해 KLM 878편으로 방콕으로 날아갔다. 방콕 공항에서 6시간을 기다린 후 80인승 프로펠러 비행기로 갈아타고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중국이 지어준 돈 찬 팰리스 호텔 9층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니 이 지역 여러 나라가 젖줄로 삼고 있는 메콩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이튿날 라오스 법무부 장관을 만났는데 국제형사재판소가 원조 기관인 줄 아는지 도움을 계속 요청했다. 그는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다. 예습이나 준비도 없이 나를 만나러 나온 것이다.


‘헌법’은 있으나 ‘민법’은 없다?

2010년 2월 11일 만난 통룬 시술릿(오른쪽) 라오스 부총리.

2010년 2월 11일 만난 통룬 시술릿(오른쪽) 라오스 부총리.

통룬 시술릿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영어를 다소 해독하는 것 같았으나 내 영어는 통역을 거치지 않은 채 듣고 자신이 하는 라오스어는 통역을 시켜 나에게 전했다. 그가 내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는지 의문이다. 그는 공산당 정치국 서열 8번이라고 했다. 

의사소통과 관련해 이 같은 얼치기 행태가 국제 무대에서 사태를 그르치곤 한다. 잘 알아듣지 못했으면서도 체면상 잘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이가 적지 않다. 한국에서도 결정권을 가진 지도자 중 그런 부류가 있다. 

통룬 시술릿에 이어 면담한 다봉 방비치트는 라오스 국회 법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고 했다. 민법을 전공한 교수 출신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헌법은 1990년대 초 제정됐고 민법은 아직 없다고 말하면서 연말쯤 형법을 개정해 국제형사재판소가 규정한 범죄 조항을 포함해 다스릴 예정이라고 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말을 믿을까. 

라오스는 1975년 좌파 단체 파테트 라오(Pathet Lao)가 정권을 잡았다. ‘파테트 라오’는 라오스어로 ‘라오스의 나라’라는 뜻이다. 파테트 라오 공산군이 오랜 내전에서 승리해 왕정을 폐지하고 25년가량 통치한 2010년 시점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00달러 수준이다. 

라오스는 방글라데시보다는 거리가 깨끗하고 정돈이 잘돼 있다. 평화로우며 아주 안전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라오스 사람들은 이상스러우리만큼 긴장감 없이 편안하다. 경쟁이 없어 느슨하며 보고 듣는 것이 별로 없으니 동기가 유발되거나 욕심을 낼 일이 별로 없다. 매사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의식(衣食)을 해결하면서 평화롭게 지낸다. 정부와 의회 지도자를 만나도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보겠다는 계획이나 의지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라오스 체류 마지막 날인 2월 13일 호텔에서 조우한 캄보디아 법무부 장관이 살갑게 알은체를 한다. ‘웬 친한 척?’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취직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어느 나라나 자식 걱정하는 부모 마음은 다 마찬가지인가.


태국에 빼앗긴 ‘에메랄드 붓다’

라오스 정부가 나를 위해 투어를 준비했다. 라오스 외무부의 조약국 부국장 등 3명이 나를 안내했다. 노란빛 외관의 대통령궁에서 시작해 시원스레 펼쳐진 깨끗한 중심도로를 달렸다. 1960년 지어진 기념탑과 놋쇠로 만든 평화의 징을 구경한 후 습지를 메워 건설했다는 광장에 도착했다. 1566년 라오스 왕이 건설한 스투파(동양식 종교 건조물)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건물 외관에 도금을 해 황금빛으로 빛났다.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돼 있다고 해 이 나라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기념탑이다. 

이윽고 시사켓 사원을 관람했다. 이 절은 1818년 건설됐는데 태국의 공격에도 파괴되지 않았다. 비엔티안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원인 동시에 수도원이다. 벽면에 독립적으로 안치된 부처님만 684기인데 벽에 홈을 파고 봉안된 작은 부처님을 합하면 1만 기가 넘는다고 한다. 부처님은 잔 곱슬머리에 이마에는 일자(一字)로 줄이 그어져 있다. 미간이 넓은 부처님은 라오스 식이고 머리칼이 굵은 곱슬머리이면서 이마에 두개의 초승달이 그려진 얼굴은 태국이나 캄보디아식이라고 한다. 

호르 파케우 사원은 1565년 지어진 곳이다. 19세기 라오스를 침공한 태국군이 반출하기 전까지 그 유명한 ‘에메랄드 붓다’를 모시던 곳이다. 태국에서 본 그 문화재가 원래 라오스의 것인데 태국이 가져가버렸다니! 나라마다 문화재와 관련해 가슴 아픈 역사가 있는 것 같다. 

연도에 낡은 주택과 상점이 늘어서 있다. 국기 옆에 망치와 낫을 그려 넣은 붉은색의 공산당기가 펄럭인다. 나라는 가난하지만 길은 깨끗하다. 

메콩강 상류로 올라가 배 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국에서 신선로를 담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그릇에서 국을 뜨는 모습, 해초부각을 즐기는 것, 쌀밥과 쇠고기 육포를 먹는 것 등 우리와 식문화가 흡사한 점도 있었으나 음식은 대체로 매웠다. 

라오스가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의 모태인 로마조약에 신속하게 가입하기를 바라면서 이 나라를 떠났다.


각국 대사 만나 지지 호소

2010년 3월 19~25일 뉴욕 출장을 다녀왔다. 국제형사재판소 소장이 된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뉴욕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간다. 

국제형사재판소에 비판적인 아프리카 회원국 대사들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대사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다독거리는 일정이 산처럼 쌓여 있다. 힘들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뉴욕에 도착한 후 각 나라 대사를 만나 목이 쉬도록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이해와 협조를 당부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면담했다. 반 총장이 평화와 정의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소견을 밝힌 게 기억에 남아 있다. 생전 처음 뉴욕의 국제회의에 참석한 수행원 1명이 너무나 좋아 표정 관리를 못한다. 뉴욕 지리도 모르는 사람을 수행원이라고 데리고 다니는 일이 참 힘들다. 유능한 젊은이인데 전문 분야에서는 펄펄 날아도 국제 무대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에는 서툴 수밖에 없다. 

3월 25일 뉴욕을 떠나기에 앞서 유엔에서 평화유지군을 담당하는 알랭 르 로아 사무차장과 회담을 했다. 프랑스 출신 외교관이다. 

르 로아 사무차장을 만난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아주 호의적인 사람이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걱정 마세요” “안녕히 가세요” 등을 연발해 나를 웃음 짓게 한다. 그는 우간다에서 열리는 국제형사재판소 리뷰 콘퍼런스 기간 중 유엔의 비행기와 헬리콥터로 회원국 대표들을 현장 사무소(Field Office)로 운송하는 일을 무조건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반기문 총장과 나의 관계를 알기에 알아서 기는 모습이다. 

2010년 4월 취임 1주년이 다가오자 직원들이 1주년 파티 운운하면서 떠벌리기 시작했다. 내가 선수를 쳐 ‘타이 프래시’라는 식당에서 개인 비용으로 만찬을 주관했다. 소장실 직원만 초대했는데 그 수가 17명이다. 직원들을 하나하나 크게 칭찬하면서 사기를 올려줬다. 잘 먹고 유쾌하게 놀았다. 

인턴을 포함해 소장실에 근무하는 젊은 직원들은 모두가 참으로 유능하고 서로 화합하며 나를 잘 따랐다. 취임 직후에는 동양에서 온 새로운 보스가 어떤 사람일지 의구심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전임 소장의 조언을 받아들여 멤버를 그대로 물려받으면서 직원들을 웃음으로 대하고 칭찬하면서 점진적 개혁을 한 것이 그들의 마음을 샀다고나 할까. 조그마한 사유라도 있으면 칭찬해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

2009년 10월 30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나.

2009년 10월 30일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는 나.

독일 출신 한스-페터 카울 국제형사재판소 부소장은 당선 직후 소장단의 권한을 분명하게 나누자고 요구하면서 이런 뜻을 반영해 자기 나름대로 작성한 합의문에 서명하라고 나에게 덤비던 인물이다. 그런 그도 내가 1년 만에 확고하게 내 지지자로 만들었다. 어쩔 수 없이 짜증스러운 순간이 있기는 했지만 소장으로서 일한 첫해는 긴 신혼여행처럼 느껴졌다. 사안은 늘 신선했으며 수많은 도전은 언제나 극복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 비정부기구(NGO)나 언론도 우리를 못살게 굴지 않았다. 오히려 우호적이었다.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을 가진 기분이었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일찍 출근해 늦게 퇴근했다. 아내가 서울에서 노모를 잘 모시고 아이들을 건사하니 한국에 있는 가족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보다 행운아인 동시에 업무에 집중하기도 수월했다고나 할까. 아내에게 무한히 고맙기만 하다. 나는 신설 재판소 소장의 권위와 정위치를 확립하고자 필요한 일련의 조치를 취했으며 검찰부나 행정처(Registry)와 협동해 이른바 하나의 법원 원칙(One Court Principle)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로마조약 가입국을 늘리기 위해 각국의 국가원수나 외무 또는 법무장관을 방문하거나 접견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국제형사재판소가 수단 대통령 오마르 알 바시르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다음부터 격렬해진 일부 아프리카 나라들의 비판을 잠재우고자 해당 국가들을 찾아 정면 돌파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왕이건 대통령이건 총리건 다 만나려 했다. 탄자니아의 음리쇼 키크웨테 대통령과 보츠와나의 이안 카마 대통령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도 특이한 분이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최후의 보루’

4월 하순 반기문 총장의 요청으로 다시 뉴욕을 찾았다. 2010년으로 예정된 국제형사재판소 리뷰 콘퍼런스 준비를 위한 국제회의를 유엔 총회장에서 하는데 이 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바쁜 와중에 연설 하나를 위해 뉴욕을 다녀오는 것은 무리였지만 반 총장의 부탁이어서 응했다. 수행원 없이 혼자 출장을 떠났다. 

4월 29일 아침 일찍 뉴욕의 한국 식당까지 혼자 걸어가 설렁탕을 먹고 숙소로 되돌아왔다. 운동을 하지 않아 혈당이 조금 높았는데 1만 보 넘게 걸었더니 혈당치가 떨어졌다. 

유엔 주재 각국 대사들과 면담하면서 국제형사재판소 리뷰 콘퍼런스가 성공하려면 회원국들로부터 구체적 약속(concrete pledges)을 받는 행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뉴질랜드 총리를 지낸 헬렌 클라크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를 만나 국제형사재판소의 성과를 살피고 문제점을 검토하는 리뷰 콘퍼런스에 대해 설명했다. 클라크 총재는 단박에 알아듣고 UNDP도 회의에 참석해 보충성 원리를 다루는 패널(Panel on Complementarity)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클라크 총재는 뉴질랜드가 국제형사재판소에 재판관을 진출시킬 방안을 함께 연구해보자고 넌지시 말했다. 여성으로서 정치 감각과 야심이 있는 인물이었다. 

보충성 원리는 국제형사재판소 운영의 기본이다. 국제형사재판소가 다루는 범죄는 기본적으로 회원국의 사법기관이 직접 수사 및 처벌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회원국의 국내 사법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수사 및 처벌할 의사가 없는 경우에 한해 최후적으로 국제형사재판소가 개입한다. 다시 말해 대량 학살 등 반인도적 범죄가 발생했다고 해서 이를 국제형사재판소에 곧바로 자동적으로 제소하는 것이 아니라 1차적으로는 해당국 내 사법기관이 제대로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요컨대 국제형사재판소는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남의 땅에서 발생한 범죄에 대해 국제사법기관이 왜 간섭하느냐며 사법 주권 침해를 강조하는 것은 보충성 원리를 모르거나 오해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반인도적 범죄를 수사, 처벌할 책무를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부족한 회원국의 사법기관이 있다면 그 기관의 의지와 능력 배양을 위한 국제적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때 프로그램을 가동할 기관은 국제형사재판소보다는 UNDP와 같은 국제적 지원 기구가 적절하다. 클라크 총재가 이 같은 대목을 곧바로 간파한 것이다. 

5월 우간다에서 열리는 리뷰 콘퍼런스에 클라크 총재를 초청하기로 했다. 리뷰 콘퍼런스는 로마조약에 따라 7년마다 반드시 개최해야 하는 대규모 국제회의다. 4월 30일 유엔에서 리뷰 콘퍼런스 준비를 위한 국제회의의 기조연설을 했다. 반기문 총장과 긴밀한 협조를 해왔지만 나란히 앉아 회의를 함께 주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아름다운 도시, 캄팔라

2010년 5월 30일 내전 피해가 큰 우간다 루코디 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대화했다.

2010년 5월 30일 내전 피해가 큰 우간다 루코디 마을을 찾아 주민들과 대화했다.

5월 26일 국제형사재판소 리뷰 콘퍼런스가 열리는 우간다에 도착했다. 우간다의 관문 엔테베 공항은 1976년 7월 3일 이스라엘 공군특공대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들이 공중 납치한 인질을 구출해낸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2009년 12월 콩고민주공화국 방문 때 이 공항을 거쳐 간 일이 있다. 공항 청사에 게시된 ‘아프리카의 진주(Pearl of Africa)’라는 슬로건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는데, 윈스턴 처질이 주변의 다른 나라보다 낫다는 의미로 그 말을 사용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가 있다. 

국제형사재판소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공항 귀빈실로 들어갔다. 우간다 외교부 의전장이 ‘사라’라고 이름을 밝히면서 웃는다. 아이가 둘이 있다고 했다. 사라 외에는 영접하러 나온 사람이 전무하다. 물 한 잔 대접하지 않는다. 짐을 찾아오는 데만 1시간 넘게 걸려 귀빈실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국제형사재판소 경호부 총책임자가 와서 인사하고 경호 체계를 설명한다. 우간다에서 ‘릭키’라는 이름의 현지 경호원도 붙여줬다. 28세의 건장한 청년이다. 아내에게는 북한에서 태권도 훈련을 받은 경호원이 배치됐다. 손님 대접은 낙제 수준이었으며 경호는 지나쳤다. 사람들의 행동이 느리고 시간관념도 철저하지 못했다. 

공항을 출발해 쉐라톤 호텔로 향하는데 경찰 호위 차량의 선도하에 중무장한 현지 경찰 5인을 태운 무개차가 내 차 앞에 섰다. 릭키는 내가 탄 차 앞자리에 앉아 밀착 경호를 했으며 다른 차에 수행원이 타고 그 뒤를 무장 경찰차가 따랐다. 한밤중인데도 교통 체증이 대단했다. 밤에 웬 차가 이리도 많은지! 

우간다 수도 캄팔라는 로마처럼 7개의 산상에 건설된 도시다. 평평하고 밋밋한 네덜란드보다 지형이 훨씬 아름다웠다. 호텔 꼭대기의 특실로 안내됐는데 별도의 거실이 붙어있어 우리 팀이 회의할 정도는 됐지만 넓다고 할 수는 없는 크기였다. 우간다는 사시사철 기온이 섭씨 19~28도 정도여서 언제나 주변이 푸르며 아주 상쾌한 곳이다.


약탈 끊이지 않은 北우간다

5월 28일 아프리카 법률구조(African Legal Aid)라는 NGO가 주최한 국제형사재판소 관련 회의에 참석했다. ALA는 아프리카의 선각적인 법률가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된 아프리카인들을 변호하고자 만들어진 모임이어서 우리에게 중요했다.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이 회의를 개막한다고 안내 책자에 인쇄돼 있으나 대통령은커녕 법무장관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프리카인을 위한 회의이니 아프리카인이 많이 와야 하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 겨우 40여 명의 아프리카인을 채울 수 있었다. 

나는 연설을 통해 과거 유럽의 식민지 지배 동안 아프리카인들이 얼마나 착취당했는지 상기시키면서 그것을 나의 일제강점기 및 6·25전쟁 경험과 연결해 그들과 일체감을 형성하고자 했다. 연설문에 식민주의를 강도 높게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걱정도 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아주 좋았다. 연설문을 달라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내 옆에 앉아 사회를 본 국제형사재판소 우간다 대표 미리암 블락 대사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의 백인 여성인데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이 게릴라 전투를 하면서 쫓길 때 결정적으로 도와준 공로가 있어 만년 우간다 대사로 일하는 특이한 분이다. 

아프리카 음식에 질려 중국음식점 ‘팡팡’에 가서 점심을 들었다. 사천식이라고 주장하나 순전히 엉터리고 수준 이하였지만 오랜만에 맛보는 별미여서 맛있게 먹었다. 의전팀에 끌려 동물원 등을 돌아본 후 해가 지기 전 호텔에 돌아왔다. 이튿날 오전 쉐라톤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캄팔라 주재 BBC 기자 등과 함께 우간다 굴루로 이동했다. 

굴루를 포함한 북(北)우간다 지역은 조지프 코니 등이 이끈 저항군이 무세베니가 이끄는 현 정권과 20년간 전쟁을 한 곳이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강간과 약탈이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도시의 모습도 과거에는 번영했으나 현재는 처참하고 피폐해진 것으로 보였다.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비슷한 노력을 해 사람들이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정확하고 철저하게 일하면 밝은 장래가 보장될 것 같은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이 위대한 나라의 미래다”

저항 세력 리더인 코니는 우간다의 불안 요소 중 하나다. ‘코니가 온다’고 하면 아기도 울음을 그칠 만큼 무서운 존재다. 국제형사재판소가 구속영장을 발부하고 추적 중인데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코니와의 내전에서 승리해 집권한 무세베니는 장기 집권 배제, 경제 부흥 등의 슬로건을 내걸고 만인의 기대 속에 집권했지만 1986년부터 현재까지 권좌에 앉아 있다. 우간다는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우간다 정부는 국제형사재판소에도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 정도다. 정권이 약속을 해봤자 제대로 지켜지는 게 하나도 없다. 거짓말로 국정을 운영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쟁 피해자 수백 명이 모여 있는 굴루의 마을회관에 갔다. 여학생 30여 명이 난데없이 들어와 나를 환영하는 합창을 했다. 강제 연습을 얼마나 했을까. 1950년대 자유당 정권 때 걸핏하면 강제로 동원되던 학창 시절이 떠올라 속으로 쓴 웃음을 지었다. 

영국 성공회가 운영하는 학교의 여학생들은 노래 여러 곡을 성의껏 불렀다. 그들과 하나씩 악수하면서 “너는 이 위대한 나라의 미래다. 희망을 잃지 마라”고 말해줬다. 공포에 떠는 주민들은 언제쯤 코니 일당을 체포하느냐고 주로 물었다. 반군이 갑자기 쳐들어와 자신들을 모두 학살하면 어찌하나 하는 불안이 팽배했다. 불안에 떠는 주민들과 눈이 맑은 여학생들이 안쓰러웠으나 옆에 서 있는 배가 잔뜩 나온 행정책임자를 보고는 여러 생각이 들었다. 

굴루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방의 문짝이나 화장실 전등, 거울 하나가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일생 동안 음식 투정해본 일이 없지만 이곳의 음식은 너무나 형편없었다. 

우간다 정부가 운영하는 병원에 들렀다. 국제형사재판소 피해자신탁기금의 지원(Trust Fund for Victims)도 받는 곳이다. 손발이 강제로 잘리거나 지뢰에 의해 사지 중 일부를 잃은 사람이 많다. 귀나 코나 입술이 잘려나간 사람도 있다. 피해자 중 일부는 반군만 잔인한 짓을 한 게 아니라 정부군도 똑같이 나쁜 짓을 했는데 국제형사재판소는 왜 한쪽 편만 드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튿날 경호 차량의 호위를 받으면서 전쟁 피해가 큰 ‘루코디’라는 이름의 마을을 찾았다. 국제형사재판소가 일찍부터 도움을 준 곳이다.


장례식 가무가 ‘축하의 춤’ 되다니…

2010년 12월 아프리카 현지 경호원들이 나에게 경례하고 있다.

2010년 12월 아프리카 현지 경호원들이 나에게 경례하고 있다.

부녀자들이 울긋불긋 차려입고 기괴한 소리를 지르면서 춤을 추는데 환영의 표시라고 한다. 동네 어귀 당산나무 밑 널찍한 야외에 동네사람 500여 명이 모였다. 아이들과 부녀자가 유난히 많다. 남편을 잃은 여인 40여 명이 돌아가면서 가무를 한다. 

주민들이 무언극을 준비했다. 반군이 쳐들어와 어떻게 주민을 죽이고 강간하고 방화하고 납치했는지, 지뢰가 어떻게 폭발했는지, 어떻게 평화가 회복됐고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실감 나게 보여줬다. 

나는 이번에도 준비된 연설을 낭독하기 전 당신들이 당한 고통에 가슴이 아픈데 이것은 바로 내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에서 겪은 아픔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연대감을 일으켰다. 

동네의 나이 든 지도자, 정부 관계자, 성공회 신부 등과 함께 주민을 정성껏 위로했다. 주민들은 반군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떨었다. 하루빨리 코니를 체포해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 법정에 세울 길을 함께 찾자고 호소했다. 

무세베니 정권의 태도는 의뭉스럽기 그지없다. 안 잡는 건지, 못 잡는 건지 당최 알 수 없다. 때로는 이웃 나라의 협조를 강조했다가 때로는 미군이 도와줘야 한다는 둥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인다. 

나이가 제각각인 부녀자들이 각종 무기와 장신구를 들고 나와 괴성을 지르면서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녹색 블라우스에 갈색 얼룩무늬가 있는 스커트를 입고 그 위에 흰색 앞치마를 둘렀다. 창과 방패 또는 도끼를 들고 빙빙 돌면서 춤을 춘다. 옷을 벗다시피 한 두 여자가 그중에 섞여 있다. 늙은 여자는 아랫도리를 짚으로 엮은 치마로, 가슴을 검은 브래지어로 가리고 춤을 췄으며 젊은 여자는 검은 브래지어와 비키니 아랫도리를 입고 춤을 춘다. 원래는 장례식을 위한 가무인데 장례를 하도 많이 치르다 보니 이제는 축하의 가무가 됐다고 한다. 참으로 역설적이고 슬프다. 가슴이 먹먹하다.


외교 중심지, 아디스아바바

국제형사재판소 리뷰 콘퍼런스가 개막되는 5월 31일이다. 아침 7시 30분 반기문 총장 내외와 조찬 모임을 했다. 반 총장의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확고한 지지와 국제 형사 정의에 대한 신념은 높이 살만하다. 

이날 저녁 무세비니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 행사가 열렸다. 반 총장과 키크웨테 탄자니아 대통령 내외만 무세비니 대통령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았다. 국제형사재판소에 반감을 가진 무세비니 대통령이 나와 크리스티안 웨나위저(Christian Wenaweser) 국제형사재판소 총회 의장을 물먹인 것이다. 

이튿날 전체 토론이 열렸다. 나는 총회 중간 중간 양자 회담이 주선되는 대로 부지런히 각국 대표를 만났다. 6월 2일부터 행사가 끝날 때까지 각종 행사 참석 요청이 쇄도했다. ‘부’자가 붙은 직책이 아닌 ‘장(長)’을 찾는 게 어느 곳이든 인지상정이다. 국제형사재판소가 특히 그렇다. 12일간 한곳에 머무르는 출장은 국제형사재판소 소장으로서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국제형사재판소 리뷰 콘퍼런스를 마친 후 헤이그에 돌아오자마자 에티오피아 방문 출장이 생길지 모른다고 비서진이 귀띔했다. 

국제형사재판소를 대표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임시로 주재 중인 레소토 출신 파키소 모초초코가 교섭 중인 일이 잘된 모양이다. 아프리카연합(African Union Commission) 집행위원장인 가봉 출신의 장 핑과 면담이 성사되면 내가 가서 국제형사재판소 연락사무소 개설을 최종적으로 타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연합의 본부가 있는 아디스아바바는 아프리카의 외교 중심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수십 년 동안 인종차별 정책으로 제재를 받으면서 각종 국제기구 지역 사무소가 이곳에 설치됐다. 이곳에 연락사무소를 내는 것은 국제형사재판소 현안 중 하나다.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아프리카 정권들의 반감 탓에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느렸는데 아프리카연합 집행위원장이 나를 만나주겠다는 것이다. 

7월 8일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했다. 장 핑과의 건곤일척은 이튿날로 예정돼 있었다. 핑은 부친이 중국인, 모친이 가봉인이다. 작고한 가봉 대통령의 사위로서 정부에서 외무장관 등 요직을 역임한 후 부인과 이혼했는데 대통령인 장인이 죽어서 다행인 경우였다. 집행위원장 임기는 그해 말까지라고 했다. 반기문 총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를 언급하고는 나를 형제(Brother)라고 호칭하면서 껴안기까지 했다. 

그는 500년 역사를 오가면서 겪은 식민지 시대의 피해를 30분가량 힘주어 거론했다. ‘아하! 이 사람도 서구 식민지 시절 피해 의식을 극복하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속으로 들었다. 나는 기회를 봐 나의 일제강점기 시절, 6·25전쟁, 베트남전쟁 등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고, 내 마음도 너와 같다고 말하면서 회담의 기선을 잡았다. 

그는 국제형사재판소가 현직 대통령을 기소한 것이 부당한 데다 우리의 검사를 지목하면서 그의 강경한 언행이 국제형사재판소를 쓸데없이 증오하게 만든다고 했다. 아프리카에서는 국제형사재판소라고 하면 곧 국제형사재판소 검사를 떠올렸다. 나는 검사나 법관의 독립성으로 인해 소장이 수사와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그에게 설명했다. 또한 국제형사재판소의 대표는 검사가 아니라 소장이니 앞으로는 나와 접촉하라고 강조했다.


“형제가 아닌 형님으로 칭해라”

그는 회담을 위한 준비도 거의 없이 나온 듯했다. 한국 같은 동방예의지국에서는 당신이 나이가 적으니 나를 형제(Brother)라고 부르면 안 되고 형님(elder brother, big brother)이라고 칭해야 한다고 점잖게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국제형사재판소가 식민주의를 방지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단독으로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를 결정할 수는 없고 아프리카연합 집행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된 만큼 충분한 협의를 거쳐 결론짓겠다고 답했다. 30분 예정이던 회담이 2시간을 넘겼다. 

그와 헤어지면서 귓속말로 다음 주에 오마르 알 바시르 수단 대통령에 대한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될 수 있다고 넌지시 말해주니 그는 겁을 먹으면서도 미리 알려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7월 12일 바시르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됐는데 언질을 줘서 그런지 아프리카연합의 반응은 비교적 조용했다. 

국제형사재판소와 아프리카연합의 역사적인 회담 이후 유럽연합(EU) 대사들이 모인 오찬 장소로 갔다. 아프리카연합에 EU 대표로 대사를 보낸 곳은 벨기에다. 벨기에 대사가 에티오피아에 주재하는 모든 EU 회원국 대사를 소집했다. 대사들과의 만남은 아주 유익했으며 모두가 국제형사재판소에 호의적이었다. 

저녁에는 일정이 없었다. 국제형사재판소를 대표해 임시로 주재 중인 파키소 모초초코가 한국 식당에 가자고 했다. 일본대사관 가는 길에서 한국 식당의 간판을 봤다는 것이다. 50세가량 된 아주머니가 주인인 듯했다. 서울에서 음식점을 하다가 한국을 떠나 2002년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아들이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 못해 새로운 기회를 줄 겸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전 주인이 거의 망해먹고 간 음식점을 인수했는데 이제는 장사가 잘된다고 했다. 

음식값은 현지 기준으로는 아주 비쌌다. 소주 한 병을 포함해 26달러가 나왔다. 30유로를 내놓으니 주인이 음식 값보다 많은 것을 알고 조그마한 백에 담은 에티오피아 커피를 선물로 줬다. 파키소에게 한 봉지 주고 내가 한 봉지를 가졌다. 파키소가 한국 음식을 잘 먹어서 좋았다. 소주도 한 병을 비웠다. 파키소가 나에게 진로 상담을 했다. 나를 믿고 개인 신상 문제를 상의하는 게 고마웠다. 국제기구에 수년간 근무한 사람은 대개 자기의 다음 커리어를 걱정한다. 

에티오피아에 다녀온 출장복명서는 파키소가 작성했다. 이를 전체 재판관들에게 보냈는데 가나 출신 동료 아쿠아 쿠엔예히아 재판관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들었다. 장 핑이란 사람이 국제형사재판소 인사를 만나준 일이 전혀 없는데 내가 처음 만나 물꼬를 텄다는 것이다. 다른 재판관들의 중론도 대성공이라는 데 모아졌다. 긴장되고 힘든 여행과 담판이었지만 칭찬에 인색한 동료 재판관으로부터 결과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으니 힘이 솟는다.


半나체 우간다 女人의 무언극… “반군이 우리를 약탈·강간했다”
송상현
● 1941년 출생
● 경기고, 서울대 법대 졸업
● 고등고시 ac행정과(14회)· 사법과(16회) 합격
● 미국 코넬대 법학박사
● 서울대 법대 교수
● 서울대 법대 학장
● 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 국제형사재판소 소장
● 現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


신동아 2018년 6월 호

| 송상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장·제2대 국제형사재판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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