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호

‘식물 보수’를 위한 제언

[르포] 경북 구미는 진정 박정희를 버렸나

“우리 좀 먹고살게 해달라는 아우성일 뿐”

  • 입력2018-07-18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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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고향’ ‘보수의 성지’에서 민주당 시장 당선

    • 새마을테마공원 취소는 역사차별 지역차별?

    • 오후 7시 넘은 공단엔 어둠과 정적만이

    • 연 수출 367억 달러에서 246억 달러로 추락

    • 인구 42만 도시에 백화점, KTX, 여성회관도 없어

    • “마수걸이도 못하고 문 닫는 날도”

    장세용 새 구미시장(왼쪽), 박정희 시절 만들어진 구미시청 건물과 박정희 동상.

    장세용 새 구미시장(왼쪽), 박정희 시절 만들어진 구미시청 건물과 박정희 동상.

    경북 구미가 뒤집혔다. 지방자치제 실시 23년 만에 대구·경북(TK)에서 처음으로 보수정당이 아닌 민주당 소속 시장이 탄생했다. TK에서 자유한국당이 패배한 것도 놀랍지만, 구미라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다. 구미가 어떤 곳인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으로 ‘보수의 성지(聖地)’ 아닌가. 당선된 장세용 구미시장 본인조차 첫 당선 소감이 “당선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했을 정도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장 시장이 선거 과정에서부터 ‘박정희 흔적 지우기’를 공약으로 내걸었음에도 구미 유권자들은 그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구미가 박정희를 버렸다’는 뜻이다. 왜?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구미로 향했다.

    텅 빈 박정희 생가

    7월 4일 오후, 구미톨게이트를 지나 박정희 생가로 향했다. 박정희 생가 앞 주차장은 자동차로 가득했지만 사람들로 북적이지는 않았다. 동네 주민들이 이곳에 주차한 듯 보였다. 관광버스 2대가 있었지만 며칠 된 듯 먼지가 살짝 앉아 있었다. 

    대형 박정희 동상이 있는 공원, 박정희 생가, 민족중흥관을 둘러보는 동안 초여름 이른 더위 때문인지 관람객은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 몇 명이 눈에 띄었는데, 장세용 신임 구미시장이 조금 전 이곳을 방문하고 떠났다고 한다. 

    박정희 생가는 연간 50만 명 이상이 찾는 보수의 성지였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첫해엔 100만 명 넘게 다녀갔다. 민족중흥관에 근무하는 직원에 따르면 요즘은 관람객이 줄어 주말 200~300명 수준이고 평일에는 거의 없다고 한다. 



    민족중흥관 옆에 보릿고개체험장이란 이름의 음식점이 눈에 띈다. 1970년대식 인테리어에 막걸리와 옛날 음식을 팔고 있었다. 막걸리에 보리개떡, 두부 등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는 무리에게 말을 걸었다. 선거 이야기가 나오자 40대로 보이는 남성은 “그동안 너무 못해서 바꾼 거다. 대통령도 바뀌었는데 시장도 바뀔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옆에 있던 여성은 “대통령과 같은 당 사람이 시장이 되면 그래도 구미 경제가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전에는 민주당을 찍을 이유가 없었는데, 사람들이 이번에 그 이유를 찾은 듯하다. 어르신들도 많이 바뀌었다. 주위에서 민주당 찍었다는 어르신 여럿 봤다”는 말도 했다. 그러자 다른 자리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노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고마운 분인지를 몰라. 우리가 어떻게 이만큼 배불리 먹고살 수 있게 됐는데…. 나라가 망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쯧쯧.” 

    경상북도와 구미시는 2006년부터 생가 인근에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과 ‘새마을운동테마공원’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관련 유물을 전시할 ‘역사자료관’은 철제 가림막이 쳐져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공사가 중단된 듯 보였다. 장 시장이 선거 과정에서 사업 재검토 의사를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관리하는 인부에게 공사 진행 여부를 묻자 “모르겠다”며 말을 아꼈다.

    잡초 무성한 새마을운동테마공원

    텅빈 박정희 생가(왼쪽)와 용도가 불분명해진 새마을운동테마공원. [최호열 기자]

    텅빈 박정희 생가(왼쪽)와 용도가 불분명해진 새마을운동테마공원. [최호열 기자]

    907억 원을 들여 조성했다는 새마을운동테마공원은 출입구를 장애물로 막아놓은 상태였다. 걸어서 안으로 들어가니 전시관과 연수관 등은 완공된 상태였다. 건물마다 ‘개관 준비 중’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은 채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공원 안으로 걸어가자 초가집 10여 채와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건물 10여 채가 나왔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변천사를 보여주는 ‘새마을 테마촌’이다. 역시 문마다 자물쇠가 달려 있고, 마당엔 잡초가 무성했다. 근처 정원 운동기구는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장 시장은 새마을운동테마공원에 ‘경북민족독립운동기념관’(가칭)을 설립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다분히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 논란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또한 구미시청 ‘새마을과’의 명칭 변경을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장 시장은 “박정희 흔적 지우기는 아니다”라면서도 새마을운동테마공원에 대해 “문을 닫아놓으면 연간 10억 원, 개장하면 최고 60억 원의 운영비가 든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사실 새마을운동테마공원은 김대중 대통령이 처음 제안해 시작한 사업이다. 

    박정희 생가를 나와 구미 시내로 들어가던 중 시청 앞에 걸린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광주아문법(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5조8000억 원은 되고 대한의 자랑 새마을운동테마공원 취소 역사차별 지역차별’이란 문구가 쓰여 있었다. 

    2012년 대선에서 구미는 유권자 80%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2016년 말 탄핵 국면에서도 구미는 ‘보수의 성지’였다. 탄핵 반대 집회 인파가 구미역 앞 도로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반면 촛불집회가 열려도 많아야 500여 명, 대부분 100명도 채우기 힘들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당선된 시장도 놀라고 찍은 시민도 놀랐다”

    구미역 번화가에서는 빈 상점이 눈에 곧잘 띈다. 구미새마을중앙시장 장용웅 상인회장이 시장의 빈 점포들을 가리키고 있다(아래사진). [최호열 기자]

    구미역 번화가에서는 빈 상점이 눈에 곧잘 띈다. 구미새마을중앙시장 장용웅 상인회장이 시장의 빈 점포들을 가리키고 있다(아래사진). [최호열 기자]

    구미 정서에 밝은 지역언론인 황영 영남IN저널 대표는 “당선된 시장도 놀라고 시민들도 다 놀랐다”면서도 이번 선거 결과를 “그동안 한국당 지역 정치인들이 보여준 무능과 공천 실패의 합작품”이라고 단정했다. 

    “보수 후보 분열이 결정적이다. 민주당은 경선 탈락자들이 단결해 장세용 후보를 밀었는데, 한국당은 분열됐다. 1·2위 표차가 3862표였는데, 한국당 경선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한 후보가 가져간 표가 1만7337표였다. 보수가 단일 후보였으면 당연히 한국당 후보가 당선됐다.” 

    그는 전임 시장과 구미지역 한국당 국회의원들의 안일함과 무능력도 한몫했다고 비판했다. 

    “구미는 인구 42만 도시인데도 번듯한 백화점 하나 없고, KTX도 서지 않는다. KTX를 타려면 김천·구미역까지 가야 한다. 심지어 군 단위에도 있는 여성회관 하나 없다. 안동 국회의원은 조 단위로 사업 예산을 따오는데 여기 국회의원은 10억, 20억짜리 따와서 자랑한다. 구미 1년 예산이 얼마인지 아나? 1조2000억 원이다. 인구 18만 명인 안동, 14만 명인 김천과 같은 규모다. 이게 말이 되나?”

    민주당 지지 아닌 한국당 25년 심판

    이번 선거에서 한국당은 단순히 시장만 빼앗긴 게 아니다. 4년 전엔 광역의원 6석을 싹쓸이했는데 이번엔 민주당이 절반(3명)을 가져갔다. 시의원의 경우 4년 전엔 총 23석 가운데 한국당이 19석, 민주당이 2석이었는데 이번엔 한국당이 12석, 민주당이 9석을 가져갔다. 민주당으로서는 괄목할 성공을 거둔 셈이다. 

    구미시의원회관에서 만난 안장환 구미시의원은 이번 민주당 승리의 숨은 공신이다. 4년 전 민주당으로는 유일하게 지역구에서 당선된 그는 민주당 경북도당교육연수위원장을 맡아 민주당 불모지인 경북지역에서 기초의회 후보들을 키웠다. 그 결과 4년 전 단 두 명이 출마하던 것이 이번엔 대부분 지역에서 후보를 냈다. 기초의회 의원-광역의회 의원-시장 후보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돌풍을 몰고 온 셈이다. 

    안 의원은 선거 결과에 대해 “우리가 잘해서 이겼다기보다 한국당이 지난 25년 동안 뭘 했냐는 심판 성격이 더 컸다”고 냉정하게 분석했다. 그는 “지난 석가탄신일에 추미애 대표가 구미를 방문했는데, 과거와 다른 시민들 반응을 보고 ‘이번 선거 해볼 만하다’고 느꼈다”고 회상하며 “우리는 한국당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국당 김춘남 시의원은 “끝없이 사랑을 준 대가가 이것이었냐고 말하는 시민이 많았다. 우리가 너무 안일했다. 구미 경제가 이렇게 되도록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며 “반성하고 정신 차리겠다”고 자책했다. 그는 “유권자 중에 민주당 시장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바꿔보면 한국당이 정신 차릴 것이라며 찍었다는 분을 여럿 만났다.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면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리라 믿는다”며 재기를 자신했다.

    고용·산업위기지역 지정했더라면

    구미 여론이 ‘반(反)한국당 정서’로 모인 가장 큰 요인은 경제 침체로 보인다. 시청에서 만난 공무원은 “우리 좀 먹고살게 해달라는 아우성으로 받아들였다.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단순히 샤이 진보로 불리는 젊은층만 민주당을 찍은 게 아니다. 투표율도 과거와 큰 차이가 없었고, 20년 이상 구미에 산 여론 주도층도 평소처럼 적극 투표했다. 그런데도 시장이 바뀌었다는 것은 여론 주도층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 권기용 본부장은 지금 구미의 경제 현실에 대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해 정부에서 울산, 거제, 창원, 군산, 대불공단 등 5개 지역을 고용·산업위기지역으로 지정할 때 구미도 신청을 추진했다. 지정이 되면 기업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시에서 신청을 안 했다.” 

    기자가 “그 정도로 구미 경제가 심각하냐”고 묻자 그는 “울산이나 창원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전날 박정희 생가 인근 마을에서 만난 어느 주부가 “첫째 아이 땐 없었는데,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셋째 이야기가 수업료를 못 내는 애들이 있다고 해 놀랐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황영 영남IN저널 대표는 “그동안 구미에 있던 공장들을 다 빼앗겼다. 그러니 경기가 좋을 턱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OB맥주 공장도 처음엔 구미에 있었다. 이곳은 물맛이 좋아 맥주 맛 평판도 좋았다. 구미지역 법인세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이 지역 효자였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때 광주로 옮겨갔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LG필립스가 파주로 이전했다. 2010년부터는 삼성전자가, 2013년부터는 LG디스플레이가 베트남과 파주 등으로 이전을 진행 중이다.” 

    구미는 대표적인 젊은 도시였다. 지난 4월 구미시 발표에 따르면 구미시민의 평균연령은 37.8세다. 그런데 경기 침체로 청년 인구가 줄고 있다. 올 4월 구미시 청년(만 15~39세) 인구가 15만9000여 명으로 5년 전에 비해 1만4000여 명 감소했다.

    빛바랜 산업도시의 영광

    구미는 1969년 조성된 공업도시다. 꼭 박정희 대통령 고향이어서 특혜를 받은 건 아니다. 내륙지방에서 유일하게 가뭄과 홍수가 없고, 물도 풍부해 전자산업단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구미는 10년여마다 새로운 공단을 조성하며 발전을 거듭했다. 1970∼80년대는 섬유, 1990년대는 전자제품, 2000년대는 IT 관련 산업이 구미는 물론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삼성, LG를 비롯해 많은 대기업이 구미와 함께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륙 수출 1위 도시’ 타이틀을 충남 아산에 내준 지 오래다. 2003년 11%에 달했던 수출 비중도 2017년엔 5%에 불과하다. 수출 실적은 2013년 367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후 내리막길을 걸어 2016년 247억 달러까지 떨어졌다. 원평동에서 만난 김충기 씨는 “10년 전만 해도 외지에 가서 ‘구미에서 왔다’고 하면 ‘살기 좋은 곳에서 오셨네요’라고 했는데, 지금은 ‘거기 살기 어렵다면서요’라고 한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구미 경제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좀처럼 걷힐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구미상공회의소가 실시한 ‘2018년 3분기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를 보면 전망치가 79를 기록, 전분기(112)보다 무려 33포인트나 떨어졌다. 80 아래로 떨어진 건 2014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기업들은 직원을 새로 뽑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구미가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그동안 시가 행정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을 지낸 이수태 씨는 “인근 지자체는 땅을 공짜로 주겠다며 공장을 유치하려 애쓰는데 구미는 땅값을 너무 비싸게 불러 기업들이 오지 않는다”며 혀를 찼다. 이 씨는 “이번 선거 결과는 혁명이고 시민들의 반란이다. 시민들은 죽어가는데 괜찮다고 거짓말만 한 한국당에 대한 응징이며, 민주당에 구미 경제를 살리라는 명령”이라고 말했다.

    점포 30%가 빈 재래시장

    구미1공단부터 4공단까지 차로 둘러보았다. “공단 인근 선술집촌은 불야성”이라는 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오후 6시가 되자 공장의 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하더니 7시가 되자 죽은 도시가 됐다. 택시정류소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간간이 눈에 띌 뿐 걸어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줄지어 있던 택시들도 기다림에 지쳤는지 빈 차로 떠났다. 

    최근에 번화가로 성장했다는 인동으로 향했다. 인동 유흥가 큰길에 자동차는 빼곡히 주차돼 있는데 흥청거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구시가지 중심인 구미역전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 아침, 구미역 인근을 둘러보았다. 역 앞을 지나는 구미중앙로와 광장 앞으로 난 역전로를 중심으로 상가가 밀집해 있는데, 블록마다 한두 개씩 ‘임대’라고 붙어 있는 가게가 보였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최근 2~3년 사이 빈 점포가 엄청 늘었다”고 했다. 그는 “구미역 앞 도로변은 10년 전 평당 가격이 500만 원이었는데 지금도 그대로이고, 5년 전만 해도 2억~3억 원 하던 권리금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그런데도 장사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역 맞은편에 있는 구미새마을중앙시장으로 갔다. 5일장이 열리는 날 정오가 가까워 오는데도 시장은 한산했다. 구미새마을중앙시장 상인연합회 장용웅 회장은 “구미 시내 16개 전통시장 가운데 그나마 형편이 가장 나은 곳이 이렇다”며 “노점을 포함해 860여 개 점포가 있는데, 그중 30%는 비어 있다. 250만 원 하던 임대료가 150만 원으로 떨어졌는데도 장사하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푸념했다. 

    이곳 상인 임정규 씨는 “시에서는 인구가 늘었다는데 거짓말 같다. 유동인구가 확 줄었다. 5년 전만 해도 시장을 찾는 사람이 하루 3000명이었다. 지금은 500명도 안 된다. 마수걸이도 못하고 문 닫을 때도 많다”며 한숨을 지었다. 장용웅 회장은 “전통시장이 안 된다는 것은 그만큼 서민 경기가 안 좋다는 뜻이다. 전통시장뿐이 아니다. 최근 대형 마트도 하나 폐업했을 정도”라고 했다.

    자연경관과 산업단지, 문화 엮은 관광벨트 만들어야

    구미의 해법은 없는 것일까. 권기용 한국산업단지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장은 “기존 대기업을 유치하는 건 사실상 힘들다. 오히려 중견기업을 잘 키워야 한다. 구미의 장점은 IT다. 기존 장점을 살려 미니 융복합 크러스터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들이 기술은 있으니까 기반만 조성해주면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권 본부장은 덧붙여 “산업1단지는 리모델링할 필요가 있다. 새 시장도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공단이 낙동강을 끼고 있는데 봄이면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등 자연경관이 좋다. 이런 자연경관과 산업단지와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위락문화시설 조성이 가능하다. 이것만으로도 지역 주민들이 먹고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미에서 출발해 서울로 돌아오는데 “몇 년 전만 해도 구미는 차가 하도 막히는 게 문제였는데 요새는 교통체증이란 말이 사라졌다”는 구미역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이 실감났다.

    interview | 김용창 전 구미상공회의소 회장
    “산업도시 오래 못 가…혁신 통해 미래먹거리 준비해야”

    김용창 신창메디칼 대표는 2009년부터 2015년까지 구미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다. 향토기업인으로 구미의 경제 변화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그에게 구미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을 들어보았다. 

    -구미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2009년 구미상공회의소 회원사가 1500개 정도였는데 지금은 2200여 개로 늘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대기업은 줄고, 3·4차 밴드기업만 늘었다. 그래서 기업 숫자는 늘고, 고용숫자는 비슷해 보여도 실제로는 저임금 노동자만 늘고 있는 셈이다.” 

    -구미 경제가 어려운 게 피부로 느껴지나. 

    “전국에 25개 르노자동차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매출이 가장 떨어지는 곳이 구미다. 5년 전만 해도 최상위권이었는데 급격히 추락했다. 이곳 현대·기아차 판매점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경기가 가라앉았다.” 

    -새 시장이 ‘박정희 흔적 지우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구미엔 박 대통령 흔적이 많다. 생가뿐 아니라 이곳 코오롱 공장엔 박 대통령 지시로 여공들이 야간에 공부할 수 있게 만든 학교의 유물이 지금도 보존돼 있다. 우리나라 산업화와 박정희를 테마로 한 관광벨트는 우리 구미만이 만들 수 있다. 이걸 버리기보다는 관광상품으로 만들면 좋지 않겠나. 금오산도 개발하고 낙동강도 관광자원화해서 박정희 관광벨트와 묶어 관광객들이 구미를 찾도록 만들어야 한다.” 

    -구미의 미래를 제안한다면. 

    “외국 사례를 봐도 산업도시는 오래 못 갔다. 미국 디트로이트도, 영국 맨체스터도 50년을 못 가고 무너졌다. 이들 도시는 금융 등 새로운 먹을거리로 회생했다. 구미도 이제부터라도 혁신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새 시장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시장이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업이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다. 기업이 잘돼야 법인세도 늘고 근로자 세금도 늘어 시 재정이 튼튼해진다. 그런 만큼 기업 친화적 마인드를 가지길 바란다. 기업 애로가 뭔지 파악하고 먼저 나서서 해결해주길 바란다. 특히 20년 넘은 토착기업을 적극 지원하고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구미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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