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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보수’를 위한 제언

노동일 전 경북대 총장의 TK 민심論

“TK, 한국당 버렸지 보수 버린 게 아니다”

  •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노동일 전 경북대 총장의 TK 민심論

  • ● 대구 기초의원 87(한국당):13(민주당)에서 62:50으로 지각변동
    ● 보수, 말로만 하는 자기반성 아닌 자기희생 보여야
    ● 대구發 보수 정풍운동 움직임 일어날 것
    ● 박근혜 승리 이끌었던 ‘따뜻한 보수’ 여전히 유효
    ● 중도? 새에게 가운데 날개는 없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보수정당은 말 그대로 참패했다. 자유한국당은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고, 바른미래당은 외면받았다. 그나마 ‘대한민국 보수의 고향’이라 할 TK(대구·경북)에서만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이번 지방선거에 나타난 TK 민심의 저변은 무엇인지, TK가 바라는 보수의 진로는 무엇인지 듣기 위해 노동일(70) 전 경북대 총장을 7월 4일 대구 2·28민주운동기념회관에서 만났다. 

노동일 전 총장은 TK에서 보수는 물론 진보까지 아우르는 대표적 지성으로 손꼽힌다. 대구 출신으로 30년 넘게 경북대에 몸담으며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대구·경북 지역의 학계, 지도층 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았기 때문이다. 여기엔 197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으로 당시 학생운동을 이끌었는가 하면, YS(김영삼) 대통령 시절엔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보수층과도 깊은 인연을 맺는 등 진보와 보수를 두루 경험한 개인사도 한몫했다. 노 전 총장은 2015년 2월부터 (사)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기념사업회 이야기부터 화제에 올렸다.


국가기념일 지정된 2·28민주운동

국민에게 2·28민주운동은 아직 생소하다. 

“1960년 2월 28일에 대구에서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이던 장면 박사 유세가 예정돼 있었다. 일요일이었음에도 정부가 고등학생들이 유세장에 가는 걸 막기 위해 ‘토끼사냥’이니, ‘시험’이니 하는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내세워 등교를 지시했다. 그래서 당시 대구지역 고등학교 학생 2000여 명이 이날 이승만 정부의 불의와 관권 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기성세대도 무서워 입 다물고 있을 때 대구지역 학생들이 처음으로 항거를 한 거다. 이를 계기로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뒤이어 전국적으로 4·19혁명이 일어났으니 2·28민주운동이 4·19혁명의 첫출발이자, 전쟁 후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3·15, 4·19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데 비해 2·28은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2000년에 기념식에 참석해 대구에서만 기념할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기념하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 후 역대 대통령들이 기념 메시지를 보내고 축사를 보내왔지만 그에 걸맞은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서 2년 전부터 우리 기념사업회 주도로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100만 명 서명운동을 벌여 마침내 올해부터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대구가 우리나라 민주화의 발상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발상지라고까지는 말하기 뭣해도 최초로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곳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지금은 대구를 ‘보수의 상징’ ‘보수의 심장’이라고 하지만, 그때는 진보세가 강했다. 1956년 대선 때 이승만 대통령이 전국적으로 70%의 지지를 받았는데, 대구는 진보정치인이던 조봉암 선생에게 72%가 넘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이곳과는 아무런 지역적 연관성이 없는데도.”


3선개헌 반대 운동 주도

경북대는 2008년 노동일 총장 당시 상주대와 통합하는 등 대학 경쟁력을 높였다. [동아DB]

경북대는 2008년 노동일 총장 당시 상주대와 통합하는 등 대학 경쟁력을 높였다. [동아DB]

본인도 학생운동을 하는 등 진보 성향 아니었나. 

“1969년에 3선 개헌, 197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시절엔 학원탄압규탄집회 개최 등 시위를 주도했다. 그로 인해 남산(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일주일 동안 두드려 맞기도 했다.” 

노동운동도 하지 않았나. 

“노동 현장까지 가진 않았고, 대학생으로서 관심 가졌다. 당시(1970년 말) 전태일 분신 사건도 있었고…. 그래서 노동 현장을 눈으로 보고 도울 일이 있으면 돕는 수준이었다.” 

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취직이 안 됐다. 신원조회에 걸려 합격이 취소되기 일쑤였다. 경북대 교수 임용도 포기하고 있었는데, 사람의 앞일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연찮게 임용돼 정년까지 재직하게 되었다.” 

보수와 가까워지게 된 것은. 

“가까운 지인들은, 굳이 분류한다면 진보 쪽이 많다. 그런데 1990년 보수정당과 3당 합당을 한 YS가 집권 후 내게 출마를 권유했다. 정치학과를 간 것은 정치를 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공천을 받고 출마했다. 사람은 지조가 중요하다.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면 한번 몸담은 곳에 있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 내 가치관도 개혁보수와 가깝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나오니까 사람들이 먹고사는 민생 문제 해결이 최대의 국가적 과제로 인식됐다. 민생과 안보를 해결하는 민주주의, 이것이 개혁보수의 핵심이다.”


진보도시가 보수도시로

총장은 그렇다 해도, 진보 성향이 강했던 대구는 어쩌다 보수의 상징으로 불리게 된 건가. 

“보수와 진보는 저마다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 보수는 평등보다는 자유를, 분배보다는 성장을, 복지보다는 안보를, 대중보다는 엘리트를, 이상보다는 현실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한다. 한국의 경우 보수 진보 분류는 특정 권력자(정당)를 보수, 진보로 분류해놓고 어느 쪽을 지지했는지로 판단한다. 이 맥락에서 보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는 보수 지도자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은 진보적인 지도자인 셈이다. 그래서 보수 지도자를 지지한 대구·경북은 보수 지역이, 진보 지도자를 지지한 호남은 진보 지역이 되는 거다. 

대구를 보수와 결부할 때 여기서 박정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63년 선거에서는 박정희에 대한 지지가 대구·경북(55%)보다 광주·전남(57%)에서 조금 더 높았다. 대구를 보수로, 광주를 진보로 규정짓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와 김대중이 맞붙은 1971년 선거였다. 대구·경북 유권자의 61%가 박정희를 지지했고 광주·전남은 76%가 김대중을 지지했다. 이후 한국의 정치 사회에 불어닥친 지역주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구는 특정 정당을 지속적으로 지지하게 되었고, 그들이 계속 집권하니까 어느새 대구가 보수의 상징이 돼버렸다.” 

집권 세력이 만든 지역주의에 대구시민들이 이용당했다는 건가. 

“이 문제는 좀 더 심층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할 땐 그 나름의 명분이 있다. 단순히 우리 지역 사람이라고 표를 주는 것은 아니다. 박정희의 모토였던 ‘조국 근대화’와 ‘자주 국방’은 당시 그를 지지한 명분이었다. 대구는 물론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호응을 받았다. 박정희 이후 보수 정권은 기본적으로 박정희를 계승해 자주 국방과 산업화를 통한 선진국 진입이라는 방향을 추구했다. 대구가 보수정권을 지속적으로 지지한 것은 앞에서 말한 지역주의 소용돌이와 더불어 국가 운영 방향에 대한 이러한 지지가 아울러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예뻐서 찍은 게 아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대구와 경북은 다른 지역과 달리 광역시장과 도지사, 교육감은 물론 구청장과 시장 대부분을 자유한국당이 휩쓸었다. 보수정당에 대한 심판에서 비켜간 느낌이다. 하지만 노동일 전 총장은 이런 해석에 손을 가로저었다. 

“이번에 한국당을 찍은 대구·경북 보수 유권자들도 그들이 예뻐서 찍은 게 아니다. 민주당이 전국 시도지사를 100% 싹쓸이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래도 대한민국이 건강하려면 어딘가는 보수를 받쳐줘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강했다. 물론 김부겸 장관이 나왔다면 대구도 뒤집혔을 것이다. 이번 선거를 보면 대구 역시 밑바닥은 완전히 바뀌었다. 광역시의원까지는 한국당이 30명 중에서 25명으로 압도했지만 밑바닥은 다르다. 4년 전 자유한국당 소속 기초의원은 87명이었는데 이번에는 62명으로 줄었다. 4년 전 13명이던 민주당 소속 기초의원은 50명으로 대폭 늘었다.” 

대구·경북에서 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사라진 건가. 

“전에는 민주당은 DJ(김대중)당이라는 거부감이 컸다. 그런데 DJ 집권 후 대구에서도 DJ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늘었다. 편 가르기 하지 않고, 박정희까지 끌어안았으니까.” 

앞으로도 대구·경북에서 보수정당 지지가 이어질 것으로 보나. 

“알 수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우리(TK)가 보수를 지켜주고 키워줘야 한다는 인식은 강하지만, 지금 한국당 모습에는 계파 이익과 분열만 보인다. TK가 한국당을 버려도 그건 보수를 버리는 게 아니다. 한국당이 계속 정신 못 차리면, 다시 말해 보수의 도덕성과 원칙에 벗어난 배신을 한다면 아무리 지역 연고가 있다 하더라도 다음은 없다.”


국민은 이미 유승민에게 답을 줬다

2·28민주운동은 6·25전쟁 후 최초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4·19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올해 2월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지호영 기자]

2·28민주운동은 6·25전쟁 후 최초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으로 4·19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올해 2월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지호영 기자]

대구에서는 보수정당이 뭘 제일 잘못했다고 보나. 

“대구에서조차 폭삭 망해야 정신 차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건 대구뿐 아니라 보수를 지지한 모든 국민의 평가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해도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국민통합’ ‘국민행복’ ‘통일 대박’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그렇게 해주길 기대했고, 그럼으로써 박정희와 김대중을 뛰어넘는 대통령이 돼주길 바랐다. 

그런데 어떻게 됐나. 우리를 자랑스럽게 한 게 무엇 하나 제대로 있나. 그래서 더 실망하고 분노했다. 게다가 탄핵 전후 보수 정치인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었다. 보수의 도덕성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가진 자의 자기 헌신, 희생,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모두 남탓만 하고 당리당략과 탐욕만 팽배했다. 이번 선거도 그렇다. 국민 70%가 남북대화를 잘한 일이라고 하는데 ‘정치 쇼’라며 트집만 잡아 보수층조차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러니 보수 유권자들마저 저들에게 맡겨서는 안 되겠다고 본거다. 민심이 요동친 거다.” 

유승민의 바른미래당은 왜 실패했다고 보나. 

“이번 선거에서 존립 근거마저 무너졌다. 대구·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유승민은 보수의 대안이 되지 못했다. 정치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김무성, 유승민도 보수가 몰락하는 데 무거운 책임이 있다. 그런데 ‘내가 보수의 새로운 깃대를 잡을 테니 여기로 모이라’고? 스스로 밝힌 대로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미 국민은 유승민에게 답을 줬다고 본다.” 

바른미래당은 중도보수를 표방했다. 

“중도가 말은 좋지만 자리 잡기가 힘들다. 새에게 좌우 날개는 있어도 가운데 날개는 없다. 중도는 시기마다 좌와 우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할 뿐 스스로 세력화하기는 힘들다.”


‘따뜻한 보수’ 어젠다 여전히 유효

보수정당이 부활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역사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우선 보수가 이렇게 된 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뒤로 물러나야 한다. 남 탓해서는 안 된다. 지금 보수의 모습을 보면 반성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희생을 통한 도덕성 회복이 급선무다. 이러한 바탕 위에 갈라진 보수 정치인들이 만나 치열하게 토론해야 한다. 보수정당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국민에게 무엇을 제시할지, 새 지도자는 어떻게 낼 것인지를 놓고 대화해야 한다. 문제는 아직까지 그럴 분위기가 전혀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대위 구성해봤자 100% 실패한다. 그렇지만 만나서 토론해야 한다. 원로들끼리, 계파 실세들끼리, 초·재선끼리 만나 토론해야 한다. 토론은 정답을 찾아내는 지혜의 힘을 갖고 있다.” 

지금 보수가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기 위한 어젠다가 있을까. 

“민생과 안보다. 지금 민생도 불안하고 안보도 불안하다. 역사적으로 보수는 이 두 문제에 경쟁력이 있었다. 단순히 성장 위주의 민생, 군사적 우위의 안보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선진 민주주의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안보, 지속적 성장과 더불어 경제민주화도 담아내는 ‘따뜻한 보수’가 국민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 어젠다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지금 보수정당을 이끌어갈 리더가 보이지 않는다. 


“보수는 가치와 원칙이 분명한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이번 비대위 리더는 이러한 분 중 경륜이 있는 분이라야 한다. 아울러 계파로부터 자유롭고, 통합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중앙정치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지방자치단체장 6선의 김관용 전 경북지사 같은 분도 있다. 대신 부위원장은 참신한 젊은 사람이어야 한다.”


보수 정풍운동 기대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보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 있느냐”고 묻자 노 전 총장은 “지금 그런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보수가 무너지면 나라가 무너진다. 보수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2·28민주운동이 대구에서 일어나 마산으로, 전국으로 퍼져갔듯이 소위 보수 정풍운동이라 할까, 보수의 새출발을 대구에서 시작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구체화된 것은 아직 없지만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많아 곧 가시화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보수나 진보나 다 나라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방법이다. 상호 건강하게 경쟁해야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있다. 현재의 급변하는 국내외 안보·경제 소용돌이 속에서 보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전략이다. 보수는 보수의 원칙과 가치에 충실하면서 긴 호흡으로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진정한 민주주의, 즉 상생의 국민통합시대를 열 수 있다.”


신동아 2018년 8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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