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호

포커스

여권 가덕도 신공항 정치셈법

“부산 텃밭 만들고 대구·경북 왕따시키기”

  • 입력2018-08-0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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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기 총선 부산 압승 카드”

    • “영남 남북 분열에 호재”

    • 부·울·경에서 울·경 이탈?

    • 여권 내분 불씨?

    • “무산 시 부산도 이탈할 것”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당선인은 6월 26일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부·울·경 공동 TF’ 구성 등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당선인은 6월 26일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위한 부·울·경 공동 TF’ 구성 등 상생 협약을 체결했다.

    6·13 지방선거가 끝나고 2주 만인 6월 26일 동남권 광역단체장 당선자 3인방이 뭉쳤다. 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인,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인, 김경수 경남도지사 당선인은 울산도시공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간담회에서 ‘동남권 상생 협약’을 맺었다. 

    나라다운 나라 건설, 문재인 정부의 성공, 균형발전, 자치분권의 가치를 실현하겠다는 취지다. 6개 항의 합의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가덕도 신공항 관련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 사항인 동남권 관문공항에 걸맞은 신공항 건설을 위해 부·울·경(부산·울산·경남)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여권이 가덕도 신공항 건설 문제를 들고 나온 셈법은 무엇일까?

    文·吳 ‘동남권 공항’ 공약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대통령선거 때 부산 지역 공약 가운데 하나로 동남권 관문공항과 공항복합도시 건설을 내걸었다. 그 결과인지는 몰라도 그는 이 지역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31.98%)보다 많은 38.71%의 득표율을 올렸다. 전통적 약세 지역에서 반전에 성공한 것이다. 부산은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접전 지역이었다. 민주당은 만약 부산시장까지 당선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다음 총선 즈음에는 텃밭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오거돈 부산시장을 만들어냈다. 

    오 시장은 민주당 후보로 결정되자마자 문재인 따라 하기에 나섰다. 동남권 관문공항 공약을 전면에 내건 것이다. 예감은 적중했고 부산시장 선거는 첫 토론회 자리에서부터 신공항 문제로 달아올랐다. 직전 부산시장인 서병수 자유한국당 후보는 투표일 직전인 6월 11일 오 후보가 주장하는 가덕도 신공항이 지역 갈등과 시민 분열을 불러온다며 부디 그 고집을 막아달라는 호소문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 없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문 대통령과 오 시장 당선을 거치면서 ‘실화’가 되어가는 중이다.

    적진 분열 조장?

    부산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 [동아DB]

    부산 가덕도 신공항 조감도. [동아DB]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해 서병수 전 부산시장은 반대했지만, 한국당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유기준 한국당 의원이 6월 27일 찬성하고 나섰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신공항 문제는 정치적 의도나 목적에서 벗어나 오로지 부산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논의되고 추진돼야 한다. 공항 수요의 적정성이나 경제성, 국제 경쟁력을 감안할 때 가덕도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근혜 정부는 가덕도 신공항을 폐기하고 김해 신공항 건설을 결정했다. 유 의원은 친박근혜계 중진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홍준표 전 대표의 측근이었지만 서병수 전 시장 전략공천 방침에 반발해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이종혁 전 한국당 최고위원도 선거과정에서 “부산을 비롯한 영남권의 백년대계를 위해 정부의 김해공항 확장 결정을 백지화하고 가덕도 신공항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선 부산지역 보수진영 내에서도 찬성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여권이 적진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쟁점인 것이다. 최선의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하자’고 공세를 펴면 펼수록 보수진영의 수비전력은 분산될 수밖에 없다. 

    물론 진보진영에서도 반대론은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민주당 소속 허성곤 김해시장은 “김해시가 제시한 김해 신공항 소음과 안전 대책을 충분히 검토한 후 제3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해 신공항이 추진 중인 상황에서, 해당 지역 단체장이 가덕도 신공항을 노골적으로 찬성하고 나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염장 지르기에 충분”

    대구국제공항은 지난해 국제 노선이 늘면서 연간 이용객이 350만 명을 넘어섰다. [동아DB]

    대구국제공항은 지난해 국제 노선이 늘면서 연간 이용객이 350만 명을 넘어섰다. [동아DB]

    보수진영 내에서도 반발이 가장 센 곳은 대구·경북이다. 한국당 대구시당은 6월 28일 공동성명에서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기를 잡지 못한 대구·경북 지역을 겁박하거나 지역 갈등을 조장하려는 정략적 행보가 아닌지 우려스럽다” “국론 분열, 영남권 갈등, 정쟁을 유발하는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 꼼수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한국당의 이 지역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 밀양 신공항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이후 김해공항 확장과 함께 대구공항 통합 이전 결정이 내려졌다. 대구·경북은 대체로 대구공항 이전 확장에 찬성하는 편이다. 그런데 정권 교체 후 여권 단체장들이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하겠다고 나서니 긴장하게 된 것이다. 

    민주당은 대구·경북을 ‘왕따’시키는 것일까? 한 여의도 정치권 인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한국당에 광역단체장을 내준 곳은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유일하다. 또한 앞으로도 이 지역 선거에서 여당이 승리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가질 만하다. 대신 영남을 남북으로 분열시켜 부산 등 영남의 남쪽을 빼앗아올 수 있다. 또한 의도적으로 대구·경북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이 지역에서 지지를 유도하려 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가덕도 신공항 이슈는 지역 주민의 염장을 지르기에 충분하다.” 

    물론 이 전략에는 위험성이 따른다. 선거에서 대구·경북 지역으로부터 지지를 얻기가 영원히 불가능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 주민들이 더 이상 불이익을 받을 수 없다며 여권 지지로 돌아서는 극적인 반전을 기대할 수 있지만 정당에서 이런 요행을 기대하며 전략을 짜는 이는 거의 없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여당이 대구·경북 따돌리기에 나섰다는 것은 한국당의 프레임에 불과하다. 한국당이 그렇게 몰아가고 싶은 것이지 민주당이나 문 대통령이 부러 그렇게 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가덕도 신공항 문제와 관련해, 여권 내부에서 확연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부·울·경 광역단체장 협약 체결 직후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중앙당에서 공식 협의된 것이 아니라면서 당 차원에서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발언에 대해 여권의 어떤 이들은 결국 부산시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해석한 반면, 어떤 이들은 거리를 둔 것이라고 본다.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적극 찬성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도 6월 28일 “(김해 신공항 건설이) 지난 정부에서 이뤄진 결정이지만 그 결정에 중대한 어떤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한 현재로서는 영남권 신공항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며 가덕도 신공항에 유보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어떤 생각일까? 공약을 내걸 때만큼 열의를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더욱이 ‘문재인의 친구’로 알려진 송철호 울산시장이 최근 대열에서 이탈했다. 6월 26일 오거돈 부산시장, 김경수 경남지사와 뜻을 함께했던 그다. 하지만 7월 2일 취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이렇게 언급했다. 

    “울산시민이 과거 동남권 신공항을 정할 때 현재의 김해 신공항 선호도가 높았다. 시민의 뜻을 존중하는 것이 우선이다.” 나아가 쐐기까지 박았다. “변경을 해야 한다면 특별한 사정(사정 변경의 원칙이 적용될 만한)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정이 있는지 모르겠다.” 울산시민의 뜻을 받든다는 것을 이유로 내걸었지만, 그것이 전부였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로 인해 부·울·경에서 울·경이 이탈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물론이고 김경수 경남지사도 시간이 지나면서 가덕도 신공항에 대해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 역시 지역 여론을 의식해서라는 해석이 나온다. 

    경남지역 정치권 인사는 “가덕도공항은 김해공항에 비해 울산과 경남에서의 접근성이 나쁘다. 울산과 경남 지역민 중 상당수는 원래부터 가덕도공항을 반대해왔다. 여권의 부·울·경이 단일대오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文, 가덕도에서 김해로 선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혁중 동아일보 기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부·울·경 광역단체장 협약 전날인 6월 25일 취임 1년을 맞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미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오 당선자가 후보 시절부터 언급한 부분이라 내부적으로 검토했으나 현재로선 위치 변경은 검토하지 않는 것으로 진행하고 있다.” 

    김 장관은 대표적인 친문재인계 의원이다. 국토부는 8월 김해 신공항 기본계획을 내놓을 예정이다. 문 대통령 공약 사업이기 때문에 국토부는 지난 1년 간 청와대와 충분한 논의를 거쳤을 것이다. 그래도 김해 신공항으로 결론 내렸다면, 공약을 일단 접은 것으로 봐야 한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와 마찬가지로 공약으로 내걸긴 했지만 문 대통령으로서는 집권 후 부담스러운 이슈였는데, 박근혜 정부가 미리 해결한 까닭에 부담을 크게 덜었다는 후문도 들린다. 더욱이 대구·경북에서 반대한다면, 굳이 밀어붙일 이유가 없다. 

    한국당 주장과 달리 문 대통령이 대구경북을 고립시킬 이유도 없다. 오히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이 지역에서 가능성을 봤다. 졌지만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 선거에서 선전했을 뿐만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보수의 심장인 구미시에서 시장을 배출했다. 구미시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도 민주당은 44.33%를 얻어 한국당(41.26%)을 능가했다. 한 여권 인사는 “대구·경북을 포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권이 이렇게 가덕도 신공항 애드벌룬만 띄워놓고 결국 포기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한다면 부산도 이탈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가덕도 신공항 이슈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울·경 지역에서는 여전히 먹히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김해 신공항 건설이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이 이슈가 소멸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그래도 가덕도 신공항 이슈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문 대통령이 ‘관문공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은 차기 총선은 물론 차기 대선에서 허브공항으로 포장돼 재등장할 수 있다.

    계속 보약? 독?

    지방선거에서 가덕도 신공항 이슈는 여권에 보약이 됐다. 여권이 차기 총선·대선에서 “김해 신공항 증설도 추진한다. 가덕도 신공항도 장기 과제로 추진한다”고 공약을 내걸면 지역 민심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를지 모른다.
     
    반면, 여의도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김해 신공항 건설에 나서서 가덕도 신공항을 무산시키는 상황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또 총선·대선 이슈로 꺼낸다면 국민이 여권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이 띄우는 가덕도 신공항 이슈가 여권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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