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말잔치’ 남북경협

[단독취재] 中 고강도 대북압박은 美 ‘보여주기식’

불법 취업 北인력 5만 명 중 3만여 명 뒷돈 주고 남아

  • 입력2018-08-22 1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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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 제품 반입 금지하면서 “20일만 참으라”

    • 北노동자 송환 지시하고는 1만8000명만 돌려보내

    • “중국이 미국에 보여주기 위한 쇼”

    1월 9일 북·중 접경 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시 해관(세관)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기 중인 북한 여성 노동자들. [윤완준 동아일보 특파원]

    1월 9일 북·중 접경 지역인 랴오닝성 단둥시 해관(세관)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대기 중인 북한 여성 노동자들. [윤완준 동아일보 특파원]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를 어기고 북한을 지원하는 정황이 잇달아 포착되면서 미국이 중국을 강력히 비난하자 중국 당국이 이를 의식해 ‘보여주기식’ 고강도 북한 압박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은 7월 27일부터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과 압록강 일대에서 북한산 물품이 들어오는 것을 전면 금지 조치했다. 또 7월 28일까지 시한을 주고 단둥 일대의 불법 취업 북한 인력을 귀국시킬 것을 지시했다. 중국 당국은 전자와 관련해서는 “20일만 참으라”며 업체들을 달래고 있고, 후자와 관련해서는 뒷돈을 찔러주는 업체의 인력은 눈감아주고 있다는 소식이다. 

    필자는 올해 7월 ‘주간동아’ 1148호와 1149호를 통해 북·중 밀월기인데도 중국 당국이 단둥 일대에서 돌연 대북 압박 조치를 결정했다고 전했다. 불법 취업 북한 인력의 송환과 북한산 물품의 중국 반입 금지 지시를 곧 내린다는 것이었다. 

    6월 25일경 중국 당국은 단둥과 둥강(東港) 일대 북한 노동자 고용 기업주들에게 불법 취업 북한 노동자를 7월 28일까지 귀국시키라고 구두 지시를 내렸다. 지난해 8월 1일 이후 들어온 북한 인력을 대상으로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근로자 1인당 5000위안(약 84만 원)의 벌금을 물린 뒤 강제 추방하겠다”고 경고했다. 시한이 지난 이후 상황은 어떻게 됐을까? 8월 7일 통화에서 단둥의 소식통은 “불법 취업 북한 노동자 5만 명가량 가운데 1만8000명 정도가 돌아간 것으로 추정되고, 나머지는 그대로 일한다”고 전했다.

    “불법 취업 북한 노동자 7월 28일까지 귀국시켜라”

    단둥에서 불법 취업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한국인 사장은 “공안 당국에서 인력을 빨리 내보내라고 협박하더라. 그런데 이게 진짜 내보내라는 건지 아니면 뇌물을 달라는 건지 헛갈리더라”라고 말했다. 결국 이 공장은 뒷돈을 주고 인력을 남겨 지금도 공장을 잘 운영하고 있다. 많은 업체가 이처럼 공안 당국 측에 뒷돈을 건네고 북한 인력을 그대로 유지한다. 중국 공안국에 인맥이 없을 경우엔 지역 폭력배 출신 브로커를 통한다. 

    브로커는 각 업체로부터 북한 노동자 1인당 월 200위안(약 3만3000원)에서 300위안, 많으면 400위안까지 돈을 받고 북한 인력 송환을 막아주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3만 명의 인력을 돌려보내지 않았다면, 한 달에 적게는 600만 위안(약 9억9000만 원)에서 많게는 1200만 위안까지 뒷돈을 받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잔류 북한 인력이 많을수록 그만큼 수익이 늘게 된다.



    “왜 나만 잡나? 쟤네들도 불법인데…”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중국의 한 식품 공장. [윤완준 동아일보 특파원]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중국의 한 식품 공장. [윤완준 동아일보 특파원]

    중국의 소식통은 “브로커가 받은 뒷돈 중 일부는 단속 공무원에게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당국의 지시 한 번에 지역 폭력배와 단속 공무원 모두 즐거운 셈이다. 중국은 이런 식으로 뒤로 뜯어내는 것이 많으니 공무원들이 그 적은 월급 받고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 덧붙였다. 

    그런데 이 소식통은 “이번 조치로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노동자들이 쫓겨나면서 “왜 나만 잡나? 쟤네들도 불법인데…”라고 신고하는 경우가 크게 늘면서 공안 당국이 골치 아파진 것. 과거에도 이런 신고가 있긴 했지만 신고가 들어와도 공안 당국은 대부분 무시했다. 신고한들 업체와 유착돼 있는 단속 공무원들이 조사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상부인 랴오닝성 정부로부터 “문제없이 하라”는 지시가 별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돈 다 받아 챙기고 인력 봐주기로 했는데 어쩌나? 하지만 역시 궁즉통(窮則通)이다. 돈을 주고받은 공안 당국과 업체들은 전체 인력의 10%씩 북한 노동자들을 ‘솔선수범’해 귀국시키기로 했다. 공안국 입장에서는 업체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인력 송환 조치를 하고 있음을 상부에 보여줄 수 있고, 업체들 입장에서도 당국의 면(面)을 세워줄 수 있었다. 단둥에서 북한 인력 500명을 고용하고 있는 한 업체도 그래서 50명을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불법 취업 북한 인력을 붙잡아둬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현지에서 일감은 많은데 일할 사람은 귀하기 때문이다. 요즘 단둥의 북한 노동자 하루 인건비가 일반 잡부는 130위안(약 2만2000원), 봉제 기술자는 140위안 정도로 다롄(大連) 지역 중국인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단둥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잉커우(營口)의 북한 노동자 인건비가 평균 90위안이니 뚜렷하게 대비된다. 공장이 분주하게 돌아가면서 단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대부분은 자정 넘어 새벽 1, 2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북한산 물품 단속 전격 단행”

    북한산 물품에 대한 단속은 7월 27일부터 단둥 일대를 포함해 압록강 전역에서 전격 단행됐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조중우의교(朝中友誼橋)를 거치는 세관 통관은 물론 압록강 일대와 공해상을 통한 선박 밀수가 모두 금지됐다. 북한 공장에서 나와야 할 완성품이 나오지 않자 대북 사업가들은 난리가 났다. 업자들의 아우성에 공안 당국은 “20일만 들여오지 말고 참고 있어라”고 말했다. 

    20일만으로도 관련 업종의 타격이 적지 않다. 단둥 세관을 통관하는 트럭이 하루 평균 최소 300대이니 20일이면 6000대가 못 나온다. 트럭에는 보통 40피트 컨테이너를 싣는데 운전석까지 더하면 트럭 총 길이가 15m나 된다. 15m짜리 트럭 6000대가 늘어서면 9㎞에 달한다. 의류 제품의 경우 8월이면 겨울옷 완성품이 나올 시기인데 트럭 1대에 실리는 두꺼운 겨울옷이 5000~6000장 분량은 된다. 거대한 물량이 중국 내수용으로 사용되거나 중국산으로 둔갑해 수출용으로 나가는데 이것이 차단됐으니 당사자들은 난리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 당국은 북한산 물품의 중국 반입은 금지하면서도 중국 물건이 북한으로 나가는 것은 막지 않고, 북한을 드나드는 사람 왕래는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있다. 현지에서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수군거리면서 이번 조치가 일시적인 것이며 곧 지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7월 28일까지 단둥 일대 불법 취업 북한 인력을 쫓아내는 계획에 이어 7월 27일부터는 압록강 일대에서 북한산 물품 반입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가 이뤄졌다. 중국이 굳이 7월 말 이런 조치를 단행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단둥 현지에서는 ‘미국에 보여주기 위한 쇼’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현지에서 하는 분석은 다음과 같다.

    트럼프, ‘中, 北 비호’ 잇단 비난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중국은 겉으로는 맞대응한다며 큰소리치지만 속으로는 매우 겁을 먹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을 벌이면 미국이 더 위험하고 손해가 크다는 분석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중국 수뇌부의 판단이다. 중국이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무역전쟁으로 중국이 보는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는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북한이다. 미국은 중국이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어기고 북한을 배후에서 지원한다고 강력 비난하고 있다.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 위치여서 이러한 비난은 중국을 더욱 더 코너로 몰리게 한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인공위성 등 과학기술 도구의 발달로 중국의 대북제재 위반 증거를 하나하나 잡아내고 있다. 공해상에서 중국 군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버젓이 밀수가 진행되는 현장을 미국이 증거로 포착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을 의식해 중국이 고강도 대북 압박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정계 인사들과 언론이 한목소리로 중국이 북한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7월 31일 한 정치유세 연설에서 “미국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잘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 끼어들어 우리를 방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알아낼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6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3차 평양행이 ‘빈손 방북’이라는 논란에 휩싸이자 트럼프는 “중국은 대중(對中) 무역에 대한 우리의 태도 때문에 북·미 협상에 부정적 압력을 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길 바란다!”며 트윗을 날렸다. 또 5월 김정은 위원장의 2차 방중 이후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배후에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미국 정부는 7월 23일 국무부와 재무부, 국토안보부 등 3개 부처 합동으로 ‘대북제재 주의보’를 발령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북한의 불법적인 무역과 노동자 송출에 관여될 경우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 위반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올해 2월에도 미국 정부가 선박 간 환적 행위 등 북한의 해상 거래에 대한 주의보를 발령한 바 있다. 

    대북제재 주의보에서 미국 정부는 북한이 대북제재를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수법을 소개했다. 북한 기업이 중국 업체로부터 하도급을 받아 의류용 자수를 생산한 사례를 들면서 북한은 제3국 업체의 하도급을 받아 물품을 생산해 수출하는데,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바이어나 주문자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산 의류가 ‘중국산’으로 둔갑하는가 하면, 북한산 수산물이 제3국으로 밀수된 뒤 포장 등 가공을 거쳐 다른 나라 제품이 되는 등 ‘북한산 흔적 지우기’도 소개했다. 필자를 포함해 국내외 여러 언론에서 보도한 대북제재 회피 방법과 대체로 일치한다. 

    세계 빅2의 무역전쟁까지 발생하면서 한반도 정세는 복잡함을 더한다. 두 강대국의 파워 게임이 거셀수록 중국은 북한 카드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펼칠 것이다. 중국은 미국을 향해 7월 말 단행한 조치 등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봐라. 우리는 제재 이행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면서 뒤로는 북한과 더 은밀하게 협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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