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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여파 ‘문센족’ 급증

난 ‘문화센터’로 퇴근한다!

  •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주 52시간’ 여파 ‘문센족’ 급증

  • ● 2030 직장인 “디제잉·요리 배우며 워라밸”
    ● 백화점 문센, 가을학기 직장인 수강생 50% 증가
    ● ‘스타 강사’ 모시기 혈안
    ● “문센 강의, 한번 빠져들면 헤어날 수 없어”
한 남성 직장인이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선물하기 좋은 떡’ 강좌에서 열심히 떡을 만들고 있다. 드로잉·드럼 수업을 듣고 있는 젊은 직장인 수강생들(시계방향순). [사진제공·롯데백화점]

한 남성 직장인이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선물하기 좋은 떡’ 강좌에서 열심히 떡을 만들고 있다. 드로잉·드럼 수업을 듣고 있는 젊은 직장인 수강생들(시계방향순). [사진제공·롯데백화점]

“자, 오늘 만들 떡은 아이들 간식으로 제격이에요. 퇴근하고 바로 오셔서 다들 시장하시죠? ‘야채설기’랑 ‘코코넛초코경단’은 따뜻할 때 먹어야 제맛이니까, 얼른 만들어서 맛있게 먹자고요.” 

해는 졌지만 도심 속 열기는 여전히 뜨거운 8월 8일 오후 7시.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선물하기 좋은 떡’ 강의실에는 젊은 20·30대 남녀 수강생이 제법 눈에 띄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백화점에서 가까운 광화문·종로 소재 직장인들이다. 회사와 먼데도 떡 만들기 수업을 들으려고 퇴근 후 1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달려온 수강생도 있었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조리대 앞에서 열심히 강사의 손놀림을 따라 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묻어났다.


‘워라밸 테마’ 강좌 150% 이상 증가

IT 대기업에 다니는 임효진(29) 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덕분에 저녁에 뭔가를 배울 수 있게 돼 신난다. 퇴근 후 남는 시간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우선은 소소한 취미 생활부터 하면 좋을 것 같아 문화센터를 선택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떡을 가지고 가니까 엄마가 무척 좋아하신다”며 웃었다. 

이날 문화센터에서는 ‘선물하기 좋은 떡’ 강의 외에도 ‘내 손으로 만드는 통가죽 공예’ ‘캘리그래피’ ‘기초부터 배우는 포크기타’ ‘나를 브랜드화시키는 말 스피치 교실’ ‘발레핏 스트레칭’ ‘몸치탈출 &클럽댄스’ 등 직장인을 겨냥한 수업이 여러 개 진행됐다. 

가죽공예 수업을 듣는 이지연(38) 씨는 강의가 종료된 뒤에도 30분 정도 더 남아 수업 중 다 하지 못한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씨는 “통가죽을 이용해 가방을 만들고 있는데, 1시간 반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다. 가죽 냄새를 맡으며 재단과 바느질에 몰두하다 보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부터 통기타를 배우는 50대 남성 직장인 최모 씨도 뒤늦게 ‘저녁이 있는 삶’을 찾은 것이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처음 며칠은 술 마시는 거 말고는 할 게 없어 난감했는데 아내가 문화센터를 권하더라고요. 젊어서부터 배우고 싶었던 기타를 지금이라도 배울 수 있게 돼 좋아요. 취미나 여가 활동을 겸하는 게 직장 생활에도 한결 도움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어요.” 

7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퇴근 후 문화센터로 출근하는 직장인 ‘문센족’이 늘고 있다. 그동안 백화점·대형마트 문화센터는 전업주부나 영유아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최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보편화하면서 직장인 비중이 대폭 높아지고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는 직장인 수강생이 지난해보다 40% 가까이 늘었다. 특히 남성 직장인 수강생이 30% 이상 늘어 눈길을 끈다. 이들은 주로 육아, 쿠킹, 재테크, 어학 강좌를 듣는데, 강좌 개설 하루 만에 등록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직장인 수요가 늘면서 7월 27일부터 선착순으로 모집한 가을학기(9~11월) 강좌에는 저녁시간대 강좌, 즉 ‘워라밸 강좌’가 대폭 늘어났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관계자는 “특히 가을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힐링’ ‘자기계발’ 등의 욕구가 늘어나는 시기인 데다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더 많은 수강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에 비하면 워라밸 테마 강좌가 150%, 지난 봄·여름 학기에 비하면 5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강좌는 젊은 20~30대 직장인을 위한 ‘디제잉 스쿨’이다. 최근 클럽 파티 문화가 확대되면서 디제잉을 배워보려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센터는 휴대용 디제잉 기기 ‘Monster GODJ’를 활용한 디제잉 수업을 선보인다. 

예술·문화와 관련된 강좌도 늘렸다. 전 영국 런던미술관 전문 가이드를 초청해 일상 속에서 예술적 안목을 키울 수 있는 ‘현대미술 인사이트’ 강좌를 비롯해, 작가들이 직접 설명하는 ‘고전 인문학 강좌’도 눈에 띈다. 직장인을 위한 ‘스피치 클리닉’, 이미지 컨설턴트들이 알려주는 ‘퍼스널 이미지 브랜딩’ ‘5가지 호감의 기술’ 등도 직장인 수강생들에게 인기다.


‘원데이 클래스’로 문센 맛보기

여성 직장인들이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필라테스’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현대백화점]

여성 직장인들이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필라테스’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역시 직장인 수요가 늘고 있다. 전국 15개 문화센터의 ‘2018 여름학기 강좌’를 신청한 고객 중 20~30대 직장인은 25.7%로, 이는 지난해 여름학기(13.1%)에 비해 두 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이들 중 남성 비율도 30%가량 된다. 

이번 가을학기에는 6시 이후 강좌를 여름학기 대비 10~20% 추가로 개설했다. 발레·요가·피트니스 등 건강 관련 강좌를 비롯해 여행사진·드로잉 등을 수강할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 가을학기의 워라밸 관련 강좌 비중은 10~15%가량 높아졌다. ‘와인 소믈리에 자격증 과정’ ‘베이직 드럼’ ‘1:1 필라테스’ ‘1:1 미백 에센스’ ‘친환경 비누 만들기’ 등 직장인들이 좋아하는 취미 관련 강좌는 조기 마감됐다. 지난 학기 수강생 중 20·30대는 20%로 지난해 8%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문화센터 입문자를 위한 ‘원데이 클래스’도 인기다. 현대백화점은 문화센터 강좌를 처음 시도해보는 직장인들을 겨냥해 1회 1~2시간만 수업을 진행하는 ‘원데이 특강’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맛보기 수업에 흥미를 느낀 경우에는 정규 수업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접수된 가을학기 강좌 중 평일 6시 이후 진행하는 원데이 특강 신청자 대부분은 2030 직장인들이다. 특강 클래스 수도 전년 대비 52% 늘어났다. 유통업에 종사하는 직장인 김무연(32) 씨는 최근 9월 예정돼 있는 재테크 일일 강의를 신청했다. 김씨는 “회사 다니는 것 말고는 고정적으로 뭔가 해본 적이 없어서, 우선 하루짜리 특강을 신청했다. 재테크 말고도 요리나 운동 등 다른 수업도 한 번씩 다 경험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문화센터 주말반 풍경도 바꿔놓았다. 주말 근무가 사라지자 토요일 오전 아이와 함께 문화센터에 오는 아빠들이 부쩍 는 것.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신촌점 관계자는 “아이는 발레 배우고, 엄마아빠는 필라테스를 하는 등 주말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수업을 듣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센 수강생은 백화점 ‘충성고객’

문화센터 수강생이 늘면서 백화점 업계는 스타 강사 유치로 분주하다.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10년 넘게 쿠킹클래스를 진행하고 있는 양서정(50) 강사는 “문화센터마다 다들 이름 있는 강사들을 초빙하려고 혈안이다. 특히 본점은 백화점마다 그 나름의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최고 수준의 강사진이 포진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직장인 수강생들은 큰맘 먹고, 없는 시간을 쪼개 나오는 분들이기 때문에 수업 참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이들의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처럼 백화점이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센터 활성화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문화센터 수강생 대부분이 백화점 매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충성고객’이기 때문이다. 최근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일반 고객의 백화점 월평균 방문 횟수는 1.2회인 반면, 문화센터 수강생은 월평균 8차례나 방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업만 듣는 게 아니라, 수업 전후로 매장에 들러 쇼핑을 하기 때문이다. 해당 백화점에서 연간 2000만 원 이상 사용하는 VIP 비중도 문화센터 이용자들이 일반 고객에 비해 8배가량 높다. 

특히 직장인 문센족의 증가로 2030 젊은 층의 소비도 한층 늘어났다. 온라인 쇼핑 등을 즐기며 백화점에 잘 오지 않던 2030 세대들이 다시 오프라인 매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계기가 된 셈이다. 

올 봄학기부터 저녁 시간대 백화점에서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있는 직장인 김서연(31) 씨는 최근 들어 백화점 신용카드 사용액이 급격히 늘었다. 김씨는 “예전에는 옷, 신발, 액세서리 등 생활필수품 대부분을 모바일로 샀는데, 문화센터를 다니고부터는 매장에서 물건을 직접 보고 사는 재미를 새삼 느끼고 있다. 반짝이는 쇼윈도에 걸려 있는 옷들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워킹맘 김서연(38) 씨도 문화센터를 다니고부터는 주말에 따로 장을 보지 않는다. 김씨는 “주말에 아이들과 놀다 보면 장보기도 숙제처럼 느껴지는데, 문화센터를 다니고부터는 수업 듣는 날 장도 같이 보면 되니까 한결 편하다. 대형 마트에 비해 가격이 조금씩 비싸긴 하지만 시간을 절약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센 강의, 가격 대비 만족도 높아

백화점 문화센터는 일반 학원이나 개인 레슨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쿠킹클래스의 경우 요리 전문가 개인 스튜디오에서 소수로 진행하는 수업은 하루 15만~20만 원 정도인 반면, 문화센터는 재료비까지 다 해 석 달에 30만 원 정도다. 그 밖에도 대부분의 수업이 한 달 수강료가 10만 원을 넘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다. 

벌써 3년째 문화센터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 박모 씨는 “문화센터의 매력에 한번 빠져들면 헤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가 섭렵한 강의는 요리, 사군자 그리기, 줌바댄스, 도예 등 다양하다. 

박씨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문화센터 죽순이가 돼버렸다(웃음).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 그동안은 야근 때문에 빠지는 날도 있었는데,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가 ‘PC오프제’를 실시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당당하게 퇴근해 문센으로 출근할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신동아 2018년 9월 호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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