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위기의 ‘중국몽’

신동아-미래연 연중기획 중·국·통 | 이태환 세종硏 명예연구위원 |

“新플라자합의? 中은 日처럼 당하지 않을 것”

  • 입력2018-08-26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무역전쟁? 美경제 워낙 좋아 中 버티기 어려워

    • 中공산당 위기의식이 ‘시진핑으로의 권력집중’ 불러와

    • 소프트 파워로 미국 견제하는 ‘연성 균형’ 추구

    • ‘투키디데스 함정’은 일부의 우려일 뿐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이태환(65)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은 6월 25일 퇴임식 및 기념강연을 했다. 정년을 맞으면서 직함에 ‘수석’ 대신 ‘명예’가 붙었다. 중국 연구 40년 이력과 중국 학계와 형성한 탄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연구 활동을 계속해 학자로서의 황혼(黃昏)을 빛내려고 한다. 

    그는 2세대 중국통(中國通)으로서 3세대의 문을 열었다. 광복군으로 활동한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을 1세대로 보면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 정종욱 서울대 명예교수가 2세대다. 2세대는 서진영·정종욱 명예교수처럼 서구에서 사회과학 훈련을 받은 이들과 대만에서 자료를 다룬 이들로 나뉜다. 

    3세대는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중국을 실제로 경험하면서 중국어 텍스트로 공부한, 1980년대 전후로 대학에 들어간 세대와 1980년대 중후반 학번을 포함한다. 4세대는 영어·중국어에 능하고 정보 홍수 속에서 공부하나 현대사의 뿌리로부터 결과 떨림을 느끼는 데는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비공식 1호’ 베이징대 방문 학자

    그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플래처국제관계대학원에서 국제외교학 석사, 남캘리포니아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중수교 이전인 1990년 중국에서 연구했다. 한국인 ‘비공식 1호’ 베이징대 방문 학자다. 현대중국학회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으로 일했다. 한중 학계를 연결하는 한중싱크넷 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중국의 국내정치와 대외정책’(2007) ‘미중관계와 한반도의 미래’(2013) 등 저서와 ‘동북아 삼각협력체제 : 한·미·중, 한·중·일 협력’(2011) ‘중국 동북3성과 한반도의 미래’(2012) ‘동아시아 경제와 안보 : 미중패권경쟁과 대응전략’(2012) ‘한국의 국가전략 2030’(2016) 등 편저, ‘중국과 한반도 통일문제-한국의 시각’ ‘김준엽과 중국’(2012) 등 공저가 있다. 



    8월 6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그를 만나 중국의 대외정책과 요동치는 미·중관계를 중심으로 대담했다.

    인류운명공동체 vs 미국우선주의

    시진핑(習近平) 집권 이후 ‘당중앙’으로 권력 집중이 심화합니다.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중국 내부에서도 나오더군요. 

    “단순 권력 다툼에서 비롯한 장기 집권욕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마오쩌둥 시대와는 모든 게 다릅니다. 시진핑이 당 주석에 오르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으나 그것까지는 아닙니다. 종신 집권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는 보도도 나왔죠. 밖에서 보는 간접적 분석이겠으나 권력 집중은 1인 장기집권체제를 만들겠다는 목적보다는 중국공산당의 위기의식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봅니다. 

    마오쩌둥, 덩샤오핑은 국가를 건설한 혁명 1세대로서 부인할 수 없는 정통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는 원로 세대의 뒷받침을 받았고요. 시진핑은 태자당 출신으로 혁명 2세대에 해당합니다. 향후 공산당의 정통성은 혁명 1세대보다 더욱 경제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이 당면한 난제에 맞서 경제발전을 이어가려면 국내 정치 안정과 우호적 대외환경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강력한 권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시진핑은 태자당으로서 상하이방과 공청단 세력을 제치고 권력의 정점에 올랐으며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2위라는, 세계 속 중국의 위상이 달라진 시기에 권력을 잡았습니다.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제 정치·경제의 변화가 중국 경제의 구조 변화를 요구하는 대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시진핑을 포함한 공산당 지도자들은 고속성장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 중속성장으로 경제 발전 방식의 전환을 이룩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이제까지와는 다른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긴장감을 가졌을 겁니다.” 

    위기의식이 권력 집중을 추동했다? 

    “공산당이 무너질 것 같은 상황은 결코 아니나 국제정치에서 당면한 도전을 헤쳐나가려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2013년 내놓은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신형대국관계’ 구상이 미국의 견제로 잘못 흐를 수 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 미국은 신형대국관계에 시큰둥했죠. 그것이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정책으로 나타났고요. 갑자기 돈 생겼다고 중국이 국제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일에 뛰어드는 것은 미국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일대일로는 매우 야심만만한 전략입니다. 중국이 아시아를 어느 정도 컨트롤하는 것을 미국이 인정한다면 중국도 미국이 세계 질서를 이끌어가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가정이 들어간 것으로 분석됩니다. 미국은 턱도 없는 소리라고 반응했고요. 이렇듯 대외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안정적 경제성장을 지속하려면 국내 정치 안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장기 집권 구상이 나왔다고 봐요.”

    시진핑 집권 2기에 대외관계에서도 큰 변화가 있습니다. ‘중국특색 대국외교’를 공식적으로 천명하더니 이를 ‘시진핑 외교사상’이라고 일컫습니다. 

    “시진핑 집권 1기에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의 힘으로’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습니다. ‘아시아운명공동체’라고 하다가 이제는 ‘인류운명공동체’까지 나아갔습니다. ‘신형대국관계’는 ‘신형국제관계’로 슬쩍 말을 바꿨고요.” 

    시진핑이 내놓은 ‘인류운명공동체’와 트럼프가 강조하는 ‘미국우선주의’는 수사적으로 대비된다.

    일대일로 ‘5通 철학’

    중국특색 대국외교의 핵심어가 ‘인류운명공동체 실현’ ‘신형국제관계 건설’입니다. 기존의 국제정치 이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난해하고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신형국제관계는 중국 스스로도 정확하게 정의 내린 게 없습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언급한 ‘상호 존중’ ‘공평 정의’ ‘합작 공영(윈-윈)’ 개념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외부에서 관찰하기에 미국과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협력을 중시하면서 러시아·유럽연합(EU) 및 주변국과도 협력하는 국제 질서를 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웃을 강압하는 패도(覇道)가 아닌 도덕과 인의의 왕도(王道)로 국제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천명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4개의 자신감(중국특색 사회주의 노선·이론·제도·문화적 자신감)’을 강조합니다. 후안강(胡鞍鋼) 칭화대 교수는 중국의 종합국력이 2016년 미국을 뛰어넘었다고 밝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중국 내부에서 갖는 이 같은 자신감과 달리 외부 세계가 중국을 바라보는 인식은 갈수록 악화하는 추세입니다. 중국과 외부 세계 사이에 이러한 인식 격차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중국에서 만든 종합국력 지표를 사용해 이런저런 사안을 막 살펴본 후 미국을 앞섰다고 주장한 겁니다. 후안강 교수가 중국에서 엄청 두들겨 맞고 있습니다. 환상에 빠진 것 아니냐는 비판을 들어요.” 

    후안강 교수는 종합국력이라는 지표를 통해 중국이 세계 최대의 제조업 국가이자 최대 수출입국가, 최대 규모 경제국가가 됐다면서 2016년 기준으로는 종합국력이 미국의 1.36배라고 주장했다. 

    “소프트 파워에서는 중국이 내세울 만한 게 있습니다. 문화, 가치, 외교 등이 소프트 파워의 요소인데 중국어가 가진 영향력이 세계 2위권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소프트 파워를 잘못 수치화하면 왜곡이 발생할 수 있죠.” 

    신형국제관계를 통해 인류운명공동체를 만들어내겠다는 게 중국특색 대국외교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신형국제관계는 미국에 도전하는 게 아니라 안정화를 꾀하는 쪽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러시아와 협력이 어느 때보다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중, 중·일 관계도 중시하려고 합니다. 대국과의 관계뿐 아니라 주변국과의 관계도 포함하고 전 지구적 차원의 상생의 국제 질서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요.”

    “中 태평양 진출 억제하는 주한·주일미군”

    7월 2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0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개막식 연설에서 “무역전쟁은 승자가 없기에 배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P=뉴시스]

    7월 2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0차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개막식 연설에서 “무역전쟁은 승자가 없기에 배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P=뉴시스]

    중국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와의 외교를 강조한 시기가 있습니다. 일종의 포용정책인데요. 그때도 ‘운명공동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 의존도가 높으니 윈-윈(win-win)할 수 있다는 개념 정도로 이해했는데 전체 인류를 대상으로 운명공동체라고 해놓으니 굉장히 난해합니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나 중국인은 ‘천하는 만인의 것(천하위공·天下為公)’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생각이 국제적으로 확장되면서 ‘인류운명공동체’라는 큰 개념이 나왔다고 봐요.” 

    중국은 일대일로를 제시하면서 정책소통(政策溝通), 인프라연통(設施聯通), 무역창통(貿易暢通), 자금융통(資金融通), 민심상통(民心相通) 5통의 핵심운영 메커니즘을 강조합니다. 

    “일대일로는 중국 혼자 할 수 없기에 정책까지도 소통한다는 얘기예요.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에서 중국을 두고 ‘돈을 좀 댔다고 전주(錢主) 노릇 하겠다는 거냐’는 의구심을 나타냅니다. 채권국-채무국 관계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것에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 보이니 중국의 발전은 주변 국가의 발전과 연결돼 함께 가는 것이라고 강조한 게 인류운명공동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수년간 아시아 국가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한국과 베트남 사례가 대표적이죠. 이런 상황에서 운명공동체 개념을 확장한 것은 아이러니합니다. 중국 외교가 공세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조급함이 발현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2012년 18차 당대회 때 중국은 해양강국으로 나아가겠다고 선포했습니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중국도 마찬가지예요. 중국은 9단선을 주장하는 등 남중국해를 중국의 내해(內海) 정도로 이해하면서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요.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것은 석유 자원을 둘러싼 해양 경계 획정과 영토 분쟁 탓인데 이에 대한 베이징의 입장은 자원의 공동 개발입니다. 동남아 국가들의 처지를 배려하려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베트남을 비롯해 미국과 밀착할 수 있는 국가를 중국 쪽으로 더 가깝게 끌어들이려고도 합니다. 

    해양강국이 되려면 해양으로 진출해야 하는데 태평양으로는 나갈 데가 없어요. 태평양 방향을 보면 주한미군·주일미군이 중국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대만과도 경제 교류는 많으나 외부 진출의 발판이 되기에는 제한된 상황이고요. 

    일대일로가 주변 국가에 얼마만큼의 이익이 되는지 숫자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중국에 대한 의심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국이 파키스탄의 과다르 항만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는데 상선이 기항하는 것이겠으나 필요시에는 군사 목적으로 쓰려고 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게 현실이죠. 중국과 파키스탄은 특수 관계이니 그렇게 보일 수도 있죠.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을 견제합니다. 중국, 인도 관계도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미국과 인도의 전략적 협력이 중국을 견제하는 수준까지 와 있지는 않습니다. 주변국들이 일대일로 전략에 어느 정도 호응한다면 중국이 경제적 벨트로 묶어낼 수 있어요.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우려하는 것처럼 중국이 군사적 차원으로까지 나아가기에는 여러 변수가 있습니다. 그전 단계로서 경제적 차원에서 협력 기제를 만드는 것은 아시아 국가에 먹힐 수 있습니다. 운명공동체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상생 발전하는 동반자 관계로 주변국을 견인하려는 의지를 가진 겁니다.”

    주판알 튕기는 美·中

    미·중 관계가 험악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인상도 전례 없는 강경 조치지만, 중국이 미국에 이처럼 정면대결을 선언한 것도 처음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양국이 타협하리라는 관측이 일반적이지만 문제는 그 이후가 아닐까요. 향후 미·중관계가 다시 협력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대결 추세가 지속되면 첨예하게 부딪칠 지점은 어디일까요. 

    “6·12 북·미 정상회담 이전인 5월 말 미·중이 타협점을 찾은 듯 보였습니다.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불균형을 시정하는 선에서 타협한 것으로 중국 내부에 알려졌는데요. 북·미 정상회담 직후 미국이 전쟁을 선포하듯 공세에 나섰습니다. 미국이 보기에 중국이 별로 양보한 게 없다는 느낌이 든 것 같아요. 중국이 값비싼 미국산 항공기를 대량 구매하면 미국의 무역적자가 크게 줄어듭니다. 그런데 실제로 주판알을 튕겨보니 주문해서 인도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실행되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일 수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 폭탄에 ‘이게 뭐지?’ 하면서 뒤통수를 맞았다는 식으로 반응했고요. 미국이 공세를 벌이자 중국 내부에서 강경하게 대처하자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됐고요.” 

    최근에는 중국 내부에서 ‘너무 세게 맞섰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더군요. 

    “미국 경제가 요즘 굉장히 좋아요. 미국이 힘들면 중국이 버틸 수 있는데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무역전쟁이 어떻게 마무리될까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가리라고는 보지 않아요. 중국이 날강도처럼 혜택만 누리고 미국에 돌려준 부분은 없다는 게 트럼프의 선거 캠페인 당시 인식이었습니다. ‘내가 바로잡겠다, 무역적자를 되돌려놓겠다’는 게 공약이고요. 미국 중간선거 이전까지 약속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의도를 살펴봐야 합니다.” 

    중간선거 국면이 마무리되면 미·중이 타협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중간선거 결과는 윤곽이 잡힌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 경제가 워낙 좋거든요. 트럼프가 중간선거를 넘어 다음 대선을 보는 게 아니냐? 그렇다면 중국을 계속 몰아붙일 수도 있는 겁니다. 중국이 내놓은 신형국제관계의 근간은 미·중 관계의 안정화와 협력입니다. 대결 양상으로 가는 것은 중국이 바라지 않습니다. 트럼프 역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강 대 강(强對强)으로만 나갈 수는 없고요. 트럼프에게도 재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 결과물이 나와야 합니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기성 대국과 신흥 강국 간의 패권 다툼이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투키디데스 함정’이라고 명명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기원전 4세기 역사학자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5세기 신흥 강국(아테네)이 성장하자 기존 대국(스파르타)이 불안감을 느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했다고 분석했다.

    투키디데스 함정

    독일이 제해권을 쥔 영국에 대항해 일어난 유틀란트 해전(1916), 20세기 최강으로 떠오른 미국에 신흥 국가 일본이 도전한 태평양전쟁(1941)이 투키디데스 함정의 사례다. 

    앨리슨 교수는 ‘트럼프와 시진핑은 어떻게 전쟁으로 빠져들 수 있는가’라는 제목의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최근 500년간 지배적 국가의 위치는 16번 붕괴했으며 그중 12번은 전쟁이라는 수단을 거쳤다”면서 “무역 문제 또한 미·중 전쟁을 일으킬 위험한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졌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공격적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표 격인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처럼 미·중이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고 보는 학자가 있습니다만 1970년대 미·중 데탕트를 이뤄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현실주의자이지만 미·중이 공진화(co-evolution)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습니다. 앨리슨 교수도 현실주의자지만 미어샤이머 교수와는 차이가 있지요.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공멸을 막기 위해 중국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중국에서도 견해가 엇갈립니다. 누구도 권위 있게 이렇게 될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안이죠.” 

    충돌이 일어날까요. 

    “미·중이 협력할 공간을 만들어가면 경쟁이 심화하더라도 충돌을 막을 수 있죠. 현실주의자들은 힘의 논리만을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이 힘이 아무리 강해도 우리가 불안하지 않은 것은 미국과 동맹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들의 관계는 이렇듯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됩니다. 우리가 가진 힘은 대단하지 않더라도 동맹이 가진 힘은 엄청납니다. 

    중국은 군사적으로 비동맹이 원칙입니다. 동맹이 없으므로 중국이 가진 힘은 물리적으로는 제한적이죠. 따라서 미국과 대립하지 않고 협력하면서도 소프트 파워를 중심으로 경쟁하고 견제하려는 것이죠. 군사력·경제력으로 이뤄진 하드 파워에서는 아직 미국에 못 미치니 소프트 파워를 통해 균형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연성 균형(Soft Balancing)을 도모한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중국이 협력 기제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연성 균형을 통해 국력을 신장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물리적·군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속내는 알 수 없으나 중국 사람들이 왕도와 패도를 구분해 말하지 않습니까. 패도가 아닌 왕도 정치는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 권력을 잡아도 힘으로 눌러 질서를 구축하지 않습니다. 전쟁을 안 한다는 거죠.”

    무역전쟁→환율전쟁→新플라자합의?

    미국은 1980년대 일본의 국력이 강화되자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 경제에 타격을 줬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이어진 후 신(新)플라자 합의로 마무리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미국이 우려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중국과 충돌하지 않고 잘 지냈는데 어느 날 보니 세계가 바뀌어 있는 겁니다. 중국 제품으로 세계가 뒤덮이고 중국어의 영향력이 강화된 거죠. 군사력은 강한데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 상황으로 가는 것을 미국이 걱정할 수 있습니다. 플라자합의가 일본에는 통했으나 중국은 그것에 대한 경계심을 벌써부터 갖고 있습니다. 금융전문가가 아니기에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중국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겁니다. 중국은 일본처럼 당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의료와 금융을 포함한 서비스 부문의 개방을 주장합니다. 금융시장 개방에 따라 해외로부터 자금이 유입되면 위안화 수요가 유발돼 중국 화폐의 강세가 전망됩니다. 위안화 약세, 달러 강세가 지속되지 않으면 대미무역 흑자를 줄이기 위해 중국이 위안화 절상 압력을 받을 이유가 줄어들겠죠. 미국은 중국과 다르게 보호무역으로 가고 있고요. 투키디데스 함정이나 신(新)플라자합의는 일부의 우려일 뿐입니다.” 

    플라자합의는 1985년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재무장관이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외환시장 개입에 의한 달러화 강세 시정에 합의한 것을 말한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중국과 관계를 빠르게 복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협상이 잘 풀리지 않는 배경으로 중국을 지목했습니다. 중국이 북·미 협상에 어깃장을 놓는 걸까요. 북·미 협상에서 중국 요인을 어떻게 보는지요. 

    “북·미 정상회담 이전까지는 중국이 개입하는 것을 미국이 원했죠.”

    “평화 프로세스에서 명확한 역할 찾으려 해”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워싱턴은 과거에 베이징이 북핵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중국 입장을 대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중국은 미국이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앞장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후 북핵 문제를 외교정책 우선순위에 두자 중국에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트럼프도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는 등 열심히 돕는다고 여러 번 언급했습니다. 트럼프의 현재 모습은 중국이 개입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여기서부터 더 나가면 ‘내가 조금 불편해’ 정도의 시그널이라고 봅니다. 미국이 원하는 중국의 역할과 개입의 범위와 한계를 알려주는 사인을 보내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아요.” 

    트럼프는 “김정은이 중국을 다녀온 후 변했다”고도 했습니다. 

    “정상회담을 석 달간 세 차례나 하는 것은 세계 교섭 역사에 없을 겁니다. 정상회담은 그렇게 빈번하게 하는 게 아니죠. 첫 번째 정상회담 때는 트럼프가 별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부터 중국이 뭔가 압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중국 처지에서 보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게 들은 얘기와 북한에서 하는 얘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었겠죠. 중국은 비핵화를 넘어 평화협정으로 가는 과정에서 국제 질서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해 큰 그림을 그려나갈 생각일 겁니다. 현재 상황은 북·미 사이에 확정된 게 없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도 로드맵을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해요.” 

    종전 선언 협상 과정에서 중국의 참여가 나쁠 것은 없으나 판을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종전 선언은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입니다. 종전 선언을 하지 않고 평화협정 1조에 종전 선언을 넣어도 그만입니다만 굳이 정치적으로 종전을 선언할 때 누가 참여하느냐는 앞으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누가 행위자가 되느냐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남·북·미 3자가 종전 선언을 한 후 두 번째 라운드에 중국 러시아 일본이 함께 들어와라? 중국은 이 같은 그림을 반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종전 선언이 애초에는 가벼운 정치적 의미였는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유엔사 해체 등 다양한 문제가 논의될 겁니다. 평화 체제 구축의 초보적 구상 수준으로 격상되면서 중국이 적극적으로 참여를 요구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중국은 신(新)질서 구축 과정의 첫 단추를 꿰는 과정에서 소외돼선 안 된다고 보는 거군요. 

    “평화협정 체결 과정을 국제 질서에서 중국의 역할을 규정하는 중대한 프로세스라고 보는 겁니다. 비핵화보다 더 큰 과정이 평화 프로세스예요. 중국의 전략적 이해가 그것에 맞물려 있습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중국의 목표는 확실합니다만 평화체제로 가는 과정이 간단치 않기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는 겁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