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호

남녀차별 현장 보고서

베타보이도 할말 많다

“여성우월 ‘코리안 페미니즘’으로 변질” “군대 2년 가는 남자 ‘취업 역차별’ 심각”

  • 입력2018-08-29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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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알파걸 절대 유리”

    • 20대 중후반 남녀 취업률 ‘역전’

    • “데이트·혼수도 남자 부담”

    • “여성차별 어머니 세대 이야기”

    요즘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 ‘혐오’라는 유령이다. 홀린 20대 남녀는 서로를 향해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는다. 이런 풍경은 실생활에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흔히 목격된다. 

    20대 남녀가 성차별 문제로 댓글 전쟁을 벌이는 양상은 이제 일상이 됐다. 남성혐오와 여성혐오는 신세대 스포츠라 할 만하다. 우리가 만난 20대 남자 중 상당수는 여성이 성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들은 “여성차별이 현세대가 아닌 어머니 세대에 있었다. 요즘엔 사회 진출 과정에서 남성이 역차별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신세대 스포츠’ 남성혐오·여성혐오

    서울시내 한 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25) 씨는 현재 우리 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페미니즘을 ‘코리안 페미니즘’이라 불렀다. 그는 “남녀평등 페미니즘이 여성우월 코리안 페미니즘으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혜화역 시위에서 ‘재기해’를 외치는 것은 충격적이다. 이는 엄연히 고인 모독”이라고 했다. 

    ‘재기해’는 남성연대 전 대표 고 성재기 씨의 이름에서 빌려온 표현이다. 성씨가 후원금 모금을 위해 한강에 몸을 던지는 이벤트를 하다 사망한 것을 빗대어 성재기처럼 자살하라는 뜻으로 쓰인다. 

    권모(26·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씨는 “여성들의 시위를 이해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여론이 흐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감을 살 수 있는 방안으로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했다.



    “발악하는 수준”

    서울 시내 한 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는 예비군들. [동아DB]

    서울 시내 한 훈련장에서 훈련을 마치고 퇴소하는 예비군들. [동아DB]

    부산대 재학생 유모(26) 씨도 “남성들에겐 오지 마라고 하면서 시위 방식은 지극히 남성적”이라고 비판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10대, 20대였다. 이전 세대 여성들이 받아온 차별까지 들먹이면서 그것에 감정이입되는 모습이 어색해 보였다. 그들만 구호를 외치고 끝나는 시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으로 비치지 않았다. 발악하는 수준의 시위였다.” 

    서울 서초구 소재 한 IT 회사에 근무하는 박모(27) 씨는 “혜화역 2차 시위 이후 여성가족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시위 대표자들에게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나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유흥인지 모르겠다. 자기들끼리 재밌으려고 하는 것 아닐까?”라고 했다. 

    모든 성차별 논쟁이 아무 논리도 없이 서로 막무가내로 헐뜯는 것은 아니다. 이들 사이에도 통용되는 룰이 있어 보인다. 그것은 바로 ‘동등한 조건에서 능력으로 평가받자는 것’이다. 

    SNS에서 남성 이용자 A씨는 “남자는 군 복무로 인해 또래 여자보다 어떤 일을 하든 2, 3년이 늦다. 그만큼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시간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했다. “하다못해 전공 공부도 2년 손 놓았다 다시 하려면 따라가기 힘들다. 해외 취업이나 유학을 알아볼 때도 동일 조건의 한국 여성이나 외국인들보다 두 살 이상 많다는 것이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우리가 접한 다른 젊은 남성들도 “남녀를 차별하는 가부장제가 지나갔다. 잔재가 일부 있지만 지금 세대는 다르다. 오히려 여성들이 특권을 내려놓고 같은 위치에서 경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대 재학생 이모(26) 씨는 “여성들이 가부장제를 반대하고 있다. 이런 여성들이 가부장제하에서 얻은 권리를 계속 누리려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연애할 때의 데이트 비용이나 결혼할 때의 집 장만 같은 혼수비용을 남자가 주로 부담하는데, 이런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경찰 채용에서 체력 선발 기준을 둘러싼 논란도 거론했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자 경찰에게 요구되는 체력 수준을 낮춰 여경을 더 많이 뽑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말이 안 된다. 경찰 직무에 요구되는 역량엔 성평등이 없다. 여경이 아니라 경찰을 뽑는 것이다.” 

    IT 회사 직원 박모(27) 씨도 “‘남녀가 다른 기준으로 선발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일”이라고 했다.

    “제대해 지질하게 지내는데…”

    적지 않은 20대 남성들은 ‘취업에서 남자라 역차별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었다.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난이 이어지고 있어 좋은 일자리가 가뜩이나 적은데 이마저 상당수가 군 복무를 하지 않는 또래 여성들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여긴다. 이들은 통계를 거론하기도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와 통계청 자료는 ‘2000년 이후 청년 노동시장에서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25~29세 남성 고용률 하락’을 꼽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2017년 25~29세 남성 고용률은 약 67.9%로, 2000년 대비 10%포인트나 감소했다. 반면 같은 연령대 여성 고용률은 69.6%로, 같은 기간 약 17%포인트 증가해 또래 남성 고용률을 앞질렀다. 

    상당수 20대 남성은 군 복무와 이를 전후한 휴학으로 2~3년을 보낸다. 이들은 여자 동기나 여자 후배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재학생 권모(26) 씨는 “나는 이제 갓 제대해 지질하게 지내는데 같이 술 마시던 여자 동기들은 이미 취업해 해외여행을 다닌다.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도 역차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여성들의 남성 집단구타 그림.[동아DB]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여성들의 남성 집단구타 그림.[동아DB]

    전문직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20대 남성 중 일부도 역차별을 호소한다. 약학대학원도 그중 하나다. 약대 입시를 앞둔 부산대 재학생 이모(26) 씨는 “여자 대학교에 개설된 약학대학원엔 남자가 입학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서울 소재 약대 정원의 절반 이상이 여자에게 돌아간다”며 억울해했다. “서울시내 약학대학원 8개 중 4개가 여대에 있어 남자 지원자들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는 “의학·치의학 전문대학원과 로스쿨도 마찬가지 상황이지만 들어가는 인원이 적어 공론화가 안 되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20대 남자 몇몇은 “선망하는 일자리를 얻는 것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일인데, 이런 일자리 경쟁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 있다. 성차별 담론은 난센스”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이들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때도 남자라 역차별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동국대 역사교육학과 재학생 박모(27) 씨는 “서울시내 카페 중 상당수는 종업원으로 여성만 채용한다. 공연장 안내 일도 거의 여성에게 돌아간다. 남녀를 모집한다고 해놓고 실제로 여성만 뽑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육체적으로 고된 아르바이트 자리만 남자에게 돌아가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재학생 신모(25) 씨는 여자 아르바이트생 선호 경향에 대해 “‘서비스직이 여성에게 더 어울린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20대 남녀가 요즘 서비스직 아르바이트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20대 남성이 아르바이트 자리에서 역차별을 느끼는 일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취업준비생 박모(28·부산시 대연동) 씨는 “역차별은 차별에 대한 과도한 보정으로 인해 일어난다. 나는 역차별이라고 할 만한 일을 직접 겪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대 재학생 엄모(26) 씨는 “여성의 권리가 개선될 때까진 남성은 어느 정도 역차별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며 몰래카메라를 예로 들었다.

    “자존심 스크래치 나서…”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장면을 찍어 자기만 모자이크한 채 인터넷에 올리거나 판매하는 젊은 남자들이 있었다. 또 불특정 다수 여자를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찍어 온라인에 올리는 남자들이 있었다. 여성을 쉽게 생각하는 이런 일부 남자들의 일탈이 여성의 분노를 일으켰다. 남자들도 고칠 것은 고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
    우리가 접한 20대 남성들은 ‘공격적 여성운동’이 성차별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이들은 페미니즘에 불을 붙인 존재로 단연 ‘메갈리아’를 꼽았다. 

    2016년 5월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부근 노래방 남녀공용화장실에서 30대 남자 김성민이 “평소 여성들로부터 무시당했다”면서 모르는 여성(23)을 잔인하게 살해했다. 많은 여성이 이 피해자를 추모하는 집회에 참여했다. 강남역 화장실 살해 사건은 ‘여성혐오범죄’로 규정됐다. 이후 2015년 유행한 메르스 전염병의 이름을 딴 DC인사이드 사이트의 ‘메르스 갤러리’와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벨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에 나오는 ‘이갈리아’가 합쳐져 ‘메갈리아’가 탄생했다. 이갈리아는 ‘남녀 역할이 뒤바뀐 국가’다. 

    ‘혐오의 미러링’의 저자 박가분에 따르면, 메갈리아의 주축은 DC인사이드에서 남성혐오 활동을 해온 이들이다. 이후 메갈리아는 ‘워마드(Womad)’로 변모했다. ‘미러링(mirroring)’이란, 거울이 사물을 반사해 보여주듯, 여성혐오 발언을 남성혐오 발언으로 되갚아주는 것이다. 

    연세대 재학생 서모(25) 씨는 처음엔 메갈리아에 대해 ‘공격적이지만 긍정적 측면도 많다’고 좋게 평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남성혐오 자체를 즐기는 것 같다고 느낀 다음부턴 지지를 철회했다고 한다. 

    ‘한남-메갈리아 워마드’ 사이트엔 이런 글들이 올라와 있다. ‘한남’은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용어다. 

    “강약약강: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한남의 졸렬함” 

    “예쁜 여자가 남혐에 걸리는 과정: 자기가 추근덕거리는 거 안 받아주면 자존심 스크래치 나서 예쁜 여자한테 지랄을 해댐.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라고 하는데 진짜 그렇게 말하면 ‘싸가지 없는 X’이라고 할 게 뻔히 보임. 그리고 자기 자존심 회복하려고 여자한테 하는 전형적인 말 ‘도도한 척 쩌네’ 예쁜 여자들이 남혐 안 한다고?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는다”

    “군 가산점 꺼내기도 힘든 분위기”

    20대 남성 몇몇은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같은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선에서 메갈리아의 역할은 끝났어야 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의 여성운동을 급진적 ‘코리안 페미니즘’으로 진단한 김모(25) 씨는 “‘여자여서 죽였다’는 말이 여성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한 정신질환자의 문제가 모든 남성의 문제로 치환됐다”고 했다. 

    일부 20대 남자들은 성평등 논의의 취지엔 동의하지만 이 논의에 남자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고 토로한다. 이들은 “‘2001년 폐지된 군필자 가산점 제도(군복무를 마친 공무원·공기업시험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제도)를 부활하자’는 이야기는 꺼내기도 힘든 분위기”라고 말한다. 부산대 재학생 이모(26) 씨는 ”여성 위주 정책이 생기면 당연히 남자들 중에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의 남녀 정책부터가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한 20대 남성은 “경찰에 따르면 2016년 범죄 피해자 185만 명 중에 여자가 45만 명, 남자가 81만 명, 성별 미상이 59만 명이다. 남성 피해자(65%)가 여성 피해자(35%)보다 더 많다”고 했다. 

    반면 부산대 재학생 유모(26) 씨는 “거리로 나온 젊은 여성들의 분노가 수그러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몰래카메라와 성폭력을 엄하게 처벌하는 쪽으로 법과 제도,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일부 20대 남성들은 “‘남자 범죄 피해자가 여자 범죄 피해자보다 더 많다’는 주장은 위험하다. 남자가 남자를 가해하는 범죄, 남자가 여자를 가해하는 범죄, 여자가 남자를 가해하는 범죄 등으로 구분해서 봐야 한다. 남자에 의해 여자가 범죄 피해를 입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우리가 접한 20대 여성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여성운동가들의 주장에 공감했다. 서울시내 한 언론사에 근무하는 송모(여·24·역삼동) 씨는 “여자라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고 말했다. “부서장이 툭하면 내 외모를 지적한다. 전날 밤늦게 자서 부은 상태로 출근했더니 ‘얼굴 상태가 안 좋다’고 핀잔을 주더라. ‘여자는 임신하면 회사에 다시 못 돌아온다’는 말도 했다.” 

    성균관대 사회학과 수료생 전모(여·24) 씨는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주로 낸다’는 주장에 대해 “요즘 데이트 비용 문제는 커플마다 다르다”고 반박했다. 전씨는 “성별보단 소득과 나이가 더 영향을 준다. 동갑 남자와 사귈 땐 반반씩 내지만, 수입이 더 많은 연상의 남자와 사귈 땐 남자가 더 낸다. 여자가 일하고 남자가 학생인 경우엔 여자가 더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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