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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기념 인터뷰

정통 케인시안 정운찬 전 국무총리

“소득주도성장이 소득 줄일 수도” “장하성의 근거 없는 낙관, 걱정돼”

  •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정통 케인시안 정운찬 전 국무총리

  • ● 투자 부진, 심히 우려할 상황
    ● 가계 부채 많아 ‘소득↑→소비↑’ 미지수
    ● 소득성장, 양극화 해소에 득 안 돼
    ● 인권정책으로는 경제 못 살려
    ● 홍장표 속한 학현학파, 성장보다 분배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10월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집무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10월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집무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경제가 절벽에 섰다. 설비 투자는 반년 넘게 역주행했다. 21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전후 10개월 연속 감소한 뒤 최장기간 마이너스 행진이다. 고용은 얼어붙었다. 1월부터 8월까지 지급된 실업급여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 늘었다. 성장률은 뒷걸음질 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IMF는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0%에서 각각 2.7%, 2.8%로 수정했다. 경세제민(經世濟民)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꿈은 풍등처럼 어디로 날아가버렸나. 

먹고사는 데 별걱정 없는 이에게 경제는 흔하디흔한 ‘시사상식’ 같은 대상이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여당 대표라면 상황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월 9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경제 문제는 언제나 어렵다.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를 지금까지 공직 생활하면서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정부·여당에 죽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운찬(71) 전 국무총리를 만난 건 그런 이유에서다. 정 전 총리는 1976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교수로 일했다. 귀국 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총장, 한국경제학회장을 지냈다. 2009년 국무총리에 취임했고, 이후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금은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과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로 일하고 있다. 정 전 총리의 죽비 소리를 듣기 위해 10월 8일 오후 KBO 총재 집무실을 찾았다.


“대기업 돈 중소기업으로 흘러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 거시경제에 좋지 않은 신호가 연이어 켜졌습니다. 야구경기로 치면 타자가 병살타 위험에 처한 꼴이라고 해야 할 상황인데요. 

“투자 부진은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저성장과 양극화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심히 우려할 상황이죠. 투자는 미래에 대한 지출인데, 지난 20년간 아주 부진했어요.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투자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해요. 첫째, 투자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돈이 있어야겠죠. 마지막으로 ‘신남’이 있어야 해요. 케인스가 ‘일반이론’에 투자를 두고 ‘야성적 충동의 함수’라고 써놨는데, 그게 바로 ‘신남’입니다. 

10대 그룹은 450조 원, 30대 그룹은 650조 원의 유보금을 갖고 있습니다. ‘신남’은 둘째치고, 대기업이 돈은 있는데 정작 투자 대상이 없어요. 반대로 중소기업은 투자 대상은 많은데 돈이 없고요. 이 문제를 풀어야 투자가 활성화됩니다.” 

- 어떤 방식이 있을까요? 

“대기업으로 흐를 돈이 합법적이고 ‘스무스(smooth)’하게 중소기업으로 흐르도록 해야 합니다.” 

- 이익공유제 말씀이시군요. 

“맞아요. 동반성장 단기 3정책이 필요합니다. 이익을 공유하고, 중소기업적합업종을 정하고, 정부가 구매 활동을 할 때 가능하면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과 거래하자는 겁니다. 이익공유제 두고 논란이 많았잖아요.” 

2010년 3월 10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서울 용산구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기업가 집안에서 자라 경제학 공부를 해왔으나, 이익공유제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고 이해도 안 간다.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할리우드에서도 ‘러닝개런티’를 선지급하고 대박 나면 더 줄게’라는 방식을 쓰지 않나. 그게 바로 이익 공유(profit sharing)”라면서 “그 후 롤스로이스, 크라이슬러, 캐리어도 써온 방식”이라고 반박했다. 

“한국의 수출 대기업들은 중소기업들로부터 자재를 납품받아 조립해 제품 만들어 팔고 있잖아요. 이 과정에서 수출 단가 낮추고 원가 절감해야 한다는 이유로 납품가 후려치기를 계속하는 거죠. 사회가 이를 묵인해준 겁니다. 수출을 잘해야 경제가 산다는 명분으로 말입니다. 이제는 수출 대기업이 이익을 많이 냈으면 후려치기를 당한 중소기업에 보상적 차원에서 나눠주라는 거예요.” 

유럽연합(EU) 공식 통계기구인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연구개발) 지출은 4.23%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큰돈을 연구개발비에 쓰니 앞으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그러나 정 전 총리는 “대기업의 첨단 핵심 기술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 거대한 간극을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R&D 지출이 과다 계상돼 있어요. R&D에 지출한다고 하면 세금 깎아주잖아요. 또 연구(R) 지출은 얼마 없고 주로 개발(D) 지출이 많습니다. 그러니 전국에 번쩍번쩍한 세계적 공장만 많은 거죠. R이라고 하는 것도 리서치(research)가 아니라 리파인먼트(refinement)에 불과해요. 대기업들이 첨단 핵심 기술을 확보하려면 D에서 R, 리파인먼트에서 리서치로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정 전 총리가 다양하게 변주해가며 써낸 경제 진단서는 공히 종국에는 투자로 귀결됐다. 정부가 필요한 물품을 중소기업에서 사야 할 까닭도 투자를 위해서다. 비슷한 품질이면 중소기업에 발주하자는 뜻. 중소기업이 2·3차 벤더 노릇을 해 수수료를 떼이니 다른 출구를 열어주자는 주장이다. 그는 ““돈이 흐르면 중소기업은 투자를 할 거고, 생산이 늘 거고, 고용도 늘리겠죠. 그러면 중소기업 노동자의 소득이 늘지 않겠어요?”라고 반문하고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 임금이 낮잖아요. 동반성장 단기 3정책으로 이분들 소득이 늘어야 양극화 해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겁니다”라고 했다. 소득과 소비라는 단어를 접하니, 아무래도 소득주도성장이 떠오른다.


“소득이 과연 늘어날지…”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8월 26일 경제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저성장의 이유로 “투자만이 성장을 견인한다는 생각에서 경제성장의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인 국내 수요, 즉 소비의 중요성을 간과해왔다”는 점을 들면서 “경제성장의 성과 중 가계소득으로 분배되는 몫이 크게 줄었다”고 문제 삼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득주도성장의 당위성이 잉태했다. 가계소득을 높여 총 수요기반을 넓히자는 것. 

- 투자정책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모델은 소득으로 시작하는데요. 

“요새는 소주성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 말이 나올 만큼 소득주도성장은 설명이 너무 길어요. 방향을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속도가 문제지요. ‘동일 노동에 대해 왜 정규직·비정규직 나누느냐, 정규직화하자. 한 사람이 왜 70~80시간이나 일하느냐, 주52시간 일하고 일자리 나누자’ 같은 문제의식도 이해는 갑니다. 그렇게 해서도 모자라면 정부가 직접 고용해 소득 올려주자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저는 그것을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게 해주자는 인권정책이라고 봐요.” 

- 경제정책이 아니라 인권정책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소득주도성장을 경제정책으로 이해한다면, 결국 소득을 늘리면 소비가 일어나 경제가 활성화할 거라는 논리거든요. 하지만 첫째, 소득이 과연 늘어날지 따져봐야 합니다. 고용을 유지하는 사람들이야 소득이 늘겠죠. 하지만 최저임금 올릴 때 자영업자나 중소상공인들이 고용을 줄이면 임금노동자 전체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 수 있습니다. 둘째, 소득이 늘어난다 치더라도 그 효과를 따져봐야 해요. 가계 부채가 1500조 원을 넘었습니다. 인구 5000만 명이 각자 3000만 원씩 빚지고 있는 겁니다. 소득이 올라야 얼마나 오르겠어요? 빚을 안고 있기 때문에 소득이 다소 오르더라도 소비로 연결되기 힘듭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다른 정책이 필요해요. 인권과 경제 활성화를 다 잡을 ‘일석이조’ 정책은 없습니다.” 

- 가계 빚이 많으니 가계소득을 올려줘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대기업은 투자할 곳이 없고 ‘비 오는 날에 대비’도 해야 하니 번 돈을 은행에 유보해두겠죠. 은행은 그 돈 받아 ‘돈 장사’ 해야 하니 어딘가에 꿔줘야 할 것 아니겠어요? 결국 중소기업과 가계밖에 더 있겠습니까. 다만 은행 입장에서는 중소기업의 성공 가능성이 불명확하니 가계에 빌려주는 거죠. 그러니 가계 빚이 이만큼 늘어난 거예요. 대기업 돈이 은행을 경유해 가계로 가는 꼴인데, 이제는 중소기업으로 흘러가도록 하자는 겁니다.” 

- 하지만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가계 이자 부담이 커져 내수가 더 침체될 거라는 우려도 있는데요. 

“총리와 장관이 중앙은행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아요. 중앙은행 독립성은 아주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러나 오죽했으면 그랬겠어요? 너무 오랫동안 기준금리를 경직적으로 운영해왔습니다. 시장에서 경제가 너무 나쁘다는 이유로 저금리를 원하는 흐름이 있었던 겁니다. 중앙은행은 시장과 독립적이어야 하는 데도 말입니다. 한국 경제는 아직도 소규모인데다 국제화가 많이 돼 있어요.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우리도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유연하게 상향 조정하는 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최저임금이 2년간 29% 올랐습니다. 말씀대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지불능력이 떨어지는데, 그 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돈을 늘려놓은 꼴이니 투자도 안 되고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도리어 더 벌린 셈 아닌가요? 

“그럴 수 있죠. 문재인 정부는 기업 돈이 가계로 흘러가도록 길을 터주겠다는 목적을 갖고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결과가 어떻습니까. 대기업은 최저임금 올라도 별 어려움 없어요. 이미 다 인건비가 높지 않습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인상 탓에) 중소기업에 있는 돈이 가계에 들어가고 있는 거잖아요. 중소기업이 당연히 힘들지 않겠어요? 양극화 해소에도 별 도움이 안 됩니다.” 

- 내각을 이끌어보셨는데,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증원은 어떻게 보세요? 

“일자리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창출하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일자리가 너무 없을 때 공공일자리를 만든다고 하는 게 이해는 갑니다. 일자리정부를 표방했지만 고용 사정이 좋지 않으니까요. 다만 한번 공공일자리를 만들면 되돌릴 수가 없어요. 재정경직성으로 인한 재정적자가 나타날까 봐 걱정됩니다.”


기업소득, 세밀한 구분 필요

장하성 실장이 가장 빈번히 활용하는 구도는 ‘기업소득 vs 가계소득’이다. 그의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의 제3장 제목은 ‘부자기업, 가난한 가계’다. 같은 책 182쪽에는 ‘기업은 살고, 가계는 죽어가고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기업이 만들어낸 부가가치 중 임금·이자·배당과 같은 가계소득으로 분배돼야 할 몫이 줄고 기업소득의 몫이 늘었다는 의미”(69쪽)라는 게 장 실장의 진단. 역시 소득주도성장의 당위성을 지탱해주는 논리인 셈. 마침 정 전 총리의 집무실 책장에 ‘왜 분노해야 하는가’가 꽂혀 있어 기회를 엿보다 물어봤다. 

- 책장에 장하성 실장의 책이 있네요. 

“문재인 대통령이 책을 읽고 감명받았다고 하대요.(웃음)” 

- 설명하신 대로라면 기업소득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해야 하고 은행과 가계의 존재도 유심히 살펴야 하는데, 장하성 실장과 청와대 경제팀은 ‘기업소득과 가계소득’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경제를 보고 있는 것이군요. 

“대기업 소득이 가계로 더 흘러갈 방법이 있나요? 삼성에서는 이미 직원들이 돈을 많이 받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 소득이 중소기업 소득으로 흘러가게 만들어야 합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그런 고민없이 나온 겁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별하지 않는 거죠. 경제적 사고는 뭉뚱그리기보다는 세분하는 게 필요합니다.”
 
-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경제정책의 투톱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내각을 관할하는 총리로 일하면서 정책을 집행해본 경험이 있는데, 지금 두 사람이 잘하고 있다고 봅니까? 

“장하성 실장이 지금처럼 근거 없는 낙관론을 계속 펴다가 상황이 어려워지기라도 하면 국민의 실망과 분노를 가져올까 봐 걱정입니다. 김동연 부총리에 대해서도 할말 있어요. 정부 경제사령탑이 밖에 나가서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하면서 정책을 성공시킬 수 있겠습니까.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얘기 말이에요. 본인 철학이 정부와 다르면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동료들을 최대한 설득해야죠.”
 
- 경제정책을 관할하는 직책이 너무 많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청와대에 경제수석과 경제보좌관, 일자리수석이 각각 따로 있는데요. 부동산정책은 사회수석이 관할합니다. 시장에 혼선을 줄 우려는 없을까요? 


“시장이 아주 복잡해졌기 때문에 여러 자리를 둘 수는 있습니다.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서로 소통하고 누가 최종 책임을 지는지 확실하게 합의하면 충분히 그런 운영이 가능하죠. 그게 전제가 돼야 합니다.” 

정 전 총리는 청와대 경제팀과 관련해 할말이 더 있어 보였지만 끝내 말을 아꼈다.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봤다.


“김상조에게 힘 실어줘야”

- 주요 대기업 총수들이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함께했습니다. 진보진영에서는 ‘이전 정권처럼 2~3년차 되니 대기업에 손 벌리는 것’이라는 비판을 하더군요. 

“역대 모든 대통령은 취임 후 ‘재벌개혁’한다고 큰소리치다가 1~2년 지나면 전부 달라졌어요. 경제가 어려워지면 대통령으로서는 ‘역시 눈에 보이는 성과는 대기업이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죠. 그러니 대기업에 투자하라는 식으로 정책 기조를 바꾸는 게 아닐까 합니다. 결국 정부가 재벌에 양보해온 게 현실이죠.” 

- 야구로 치면, 대기업이 구원투수가 돼버린 모양새군요. 

“늘 그랬듯 경제가 어렵다는 논리를 명분 삼아 대형 구원투수처럼 불러들이는 거죠” 

- 제자인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존재감이 약해진 까닭도 그런 걸까요? 

“10년 전만 해도 김 위원장 별명이 ‘재벌 저격수’였잖아요. 지금은 재벌 쪽에서는 계속 ‘저격수’로 알고 있고, 진보 쪽에서는 ‘말랑말랑해졌다’고 말합디다. 2~3년 전쯤, 김 위원장이 교수일 때 제가 물어봤어요. ‘사람들이 김 교수 약해졌다고 비판하던데?’라고요. 그랬더니 ‘보다 현실적인 개혁 방법을 택한 겁니다’라고 답하더군요. 

김 위원장이 학생 때 제 강의를 들었고 또 박사학위 논문에도 제가 관여해서 그를 잘 압니다. 김상조의 최대 장점은 ‘알고 한다’는 거예요. 30대 재벌의 속사정에 대해 정부에 들어가기 전부터 자세히 알고 있었어요. 경제 이론에도 아주 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합리적으로 움직일 겁니다.” 

- 그간 주창해오신 동반성장정책이 시행되려면 김상조 위원장에게 힘이 더 실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집권 초기보다는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게 사실 아닌가요? 

“위원회라는 조직이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 대통령이 수시건 정기건 위원장을 따로 만나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제가 초대 동반성장위원장을 1년 4개월 했잖아요. 그때 만약에 이명박 대통령이 ‘동반성장 잘돼야 합니다’라고 가끔 말했으면 달라졌을 거예요. 지금도 문 대통령이 정기적이건 수시건 김상조 위원장 불러다가 힘을 실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현학파, 아주 단단해”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경제 관련 보도에서 널리 쓰인 단어 중 하나가 ‘학현학파’다. 학현(學峴)은 변형윤 서울사회경제연구소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호다. 변 이사장을 따르는 제자 그룹을 그의 호를 빌려 부르는 셈. 소득주도성장 설계자인 홍장표 전 경제수석(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도 학현학파 출신이다. 일각에서 소득주도성장을 두고 ‘성장론의 외피만 둘렀다’는 평을 내놓는 건 이런 그의 배경과도 무관치 않다. 강신욱 통계청장도 학현학파에 속한다.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도 이 그룹과 가깝다고 알려져 있다. 정 전 총리는 조순 서울대 명예교수(전 부총리)의 제자다. 하지만 학현학파와 사제, 선후배지간으로 얽혀 있어 인연이 있다. 

- 홍장표 전 수석과는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교수와 학생으로 처음 만났을 텐데요, 직접 논문을 지도한 건 아니죠? 

“지도교수는 아니지만 홍 전 수석이 대학원 다닐 때 경제학과 조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접촉이 많았어요.” 

- 홍 전 수석이 동반성장위원회 실무위원으로 참여해 함께 활동한 인연도 있는데요. 

“당시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으로 일한 제자 중에 홍 전 수석과 동기생인 이기영 경기대 교수가 있었어요. 그 친구에게 ‘(초과)이익공유제 잘 아는 사람 없느냐’고 물었더니 홍장표 당시 부경대 교수가 잘 안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때 홍 전 수석한테 부탁하니 초과이익공유에 관한 자료를 제공해줬습니다. 홍 전 수석이 당시에도 하도급 연구를 많이 했어요.” 

- 하지만 오늘 한 말씀만 들어도 홍 전 수석과는 한국 경제를 보는 시각이 꽤 달라 보이는데요. 호사가들은 ‘조순학파’와 ‘학현학파’의 차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조순 선생님이 ‘조순학파는 없습니다’라고 하셨던데.(웃음) 굳이 따지자면 두 그룹 모두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중시하죠. 다만 학현학파는 ‘분배 없이는 성장 없다’를 강조하고 조순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장 없이는 분배 없다’를 더 강조하는 듯합니다. 변형윤 선생님은 저희 학생 때 ‘여러분, 지식인으로서 정부가 무슨 일 할 때 잘하는 건 침묵하면 됩니다. 가서 만세 부르지 마세요. 대신 잘못하는 건 꼭 비판하세요’라고 말씀하셨어요. 변 선생님 제자들은 주로 국내에서 공부하면서 한국 현실에 비판적인 글을 많이 썼죠. 그게 오늘날까지 연결됐어요. 아주 단단합니다.” 

정 전 총리의 분류대로라면 학현학파는 무게중심을 분배와 형평에 조금 더 싣고 있다. 반면 조순학파는 성장에 대한 관심이 좀 더 크다. 그러다 보니 스펙트럼이 넓다. 동반성장 주창자인 정 전 총리도 있지만, 보수 성향인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도 있다. 

“조순 선생님을 따르는 제자 중에는 자유주의자가 많아요.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 많죠. 시카고학파 산실인 시카고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할지라도, 미국에서 학위 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시장에 대한 믿음이 한국에서 공부한 사람보다 더 클 수밖에요. 사실 이제는 학파 따지는 게 별 실익이 없다고 봐요.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갔습니다. 실용과 동반성장이 남았을 뿐이죠.” 

- 학파로 모든 생각을 분류할 수야 없겠지만, 아무래도 현재 고위 관료가 된 학현학파 학자들에게는 그런 젊은 시절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지 않을까요? 

“당연하죠. 변형윤 선생님에게 배웠기 때문에 갖게 된 생각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또 국내에서 박사를 했으니 학생 시절부터 쭉 독재정권이라는 현실과 마주하며 공부해야 했죠. 그런 영향도 받았을 겁니다.”


신동아 2018년 11월 호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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