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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충돌위기 이후 한반도

전쟁 능력 없는 北 南 ‘양보’로 죽다 살아나다

8·25 합의 정밀 복기(復棋)

  • 이정훈 편집위원 | hoon@donga.com

전쟁 능력 없는 北 南 ‘양보’로 죽다 살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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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北 제파식 공격과 작계 5027의 ‘거부작전’
  • ● 北 미사일 공격에 대응한 ‘참수작전’의 비밀
  • ● 북한의 ‘뻥쇼’, 1년치 연료 다 써버린 잠수함부대
  • ● 무사만루 기회를 1득점으로 끝낸 청와대
전쟁 능력 없는 北 南 ‘양보’로 죽다 살아나다
8월 22일 어간 전쟁이 날 뻔했다. 김정은이 사상 최초로 최후통첩과 준전시, 전시상태를 한꺼번에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 매체들이 준전시라 주장하고, 황병서와 김양건이 사태를 가라앉힘으로써 전쟁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이는 북한과 김정은의 ‘내공’을 짐작게 하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으쓱’해진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 사건을 겪고 중국 전승절 행사에까지 다녀온 박 대통령은 ‘통일외교’를 외쳤다.

그는 통일 단초를 잡아놓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 말로 하는 ‘통일대박’ ‘통일외교’ 말고, 통일에 실질적으로 다가가는 행동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겪은 일도 ‘복기(復棋)’를 해보면 새로운 면이 발견된다. 8·25 합의에 이르기 전 남북은 어디까지 달려갔고, 어디에서 회군했는가. 그리고 이 사건에서 죽다 살아난 쪽은 어디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북한의 때리고 어르기 전술

전쟁의 기운은 남북이 포격을 주고받은 직후인 8월 20일 오후 5시쯤 인민군 총참모부가 서해의 군(軍) 통신선으로 전통문을 보내오면서 감돌기 시작했다. 인민군 총참모부는 ‘8월 20일 17시부터 48시간 내 대북 심리전 방송 중지하고 모든 수단을 전면 철거할 것,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개시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해왔다.

5시 10분쯤, 이를 보고받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소집을 지시했다. 6시부터 열린 이 회의에서 최윤희 합참의장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이 북한의 도발 개요와 우리 군의 대응 태세 등을 보고하자, 박 대통령은 “북한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고 만전의 대비 태세를 유지하는 동시에 주민 안전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김정은이 이를 따라 했다. 그날 밤(북한 발표에 따르면 11시 전으로 추정됨)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한 것. 이에 대해 조선중앙방송은 “(다음 날인) 21일 17시부터 조선인민군 전선 대련합부대들이 진입이 가능한 완전무장한 전시 상태로 이전하며, 전선지대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김정은을 가리킴) 명령을 하달했다”고 보도했다.

인민군의 대량군주의적 기동전술

전선지대에는 바로 준전시임을 선포하고, 전선 대련합부대는 다음 날 오후 5시부로 전시 상태로 이전하라는 ‘이원적’ 명령을 내린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이 ‘전선 대련합부대’이다.

우리는 전선 대련합부대를 군단으로 이해하는데, 군단보다는 큰 부대다. 우리 군은 인민군 육군이 ‘대량군(大量軍)주의적 기동군 전술’을 구사한다고 본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육군이 선보인 전격전(電擊戰)에서 비롯됐다.

1차 대전 때까지의 지상전은 보병이 전선을 따라 길게 참호를 파고 그 위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싸우는 것이었다. 기관총이 불을 뿜는 한 진지는 돌파하기 어려웠다. 그때 영국 육군이 무한궤도 위에 기관총탄을 견뎌내는 강판을 두르고 역시 기관총을 쏘며 전진할 수 있는 ‘원시 전차’를 개발했다. 제1차 대전이 끝난 후 열강은 전차 개발에 매진했다.

제2차 대전이 일어나자 3호 전차를 앞세운 독일 육군은 프랑스가 국경선을 따라 구축해놓은 강력한 진지인 마지노선을 우회 돌파했다. 그리고 돌파구를 확대해 전 전선에서 공격해 들어가고, 기갑부대를 계속 돌격시켜 단시간에 전략거점(Center of Gravity)을 점령했다. 개전 35일 만에 파리를 점령한 것. 그후 전격전은 보편화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여기에 항공력을 추가해 ‘공지(空地)기동전’ ‘입체고속기동전’을 만들어냈다. 항공기와 미사일로 적을 격멸한 후 전차와 보병을 태운 장갑차를 돌격시키는 것이다.

소련군은 항공력이 부족해 공지전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병력이 월등히 많아 기갑(전차)은 물론이고 보병부대까지 대량으로 반복 돌격시켜 구멍을 내고, 그곳으로 기동부대를 진격시킨다는 개념을 세웠다. 1파, 2파, 3파의 반복된 공격으로 구멍을 내는 것을 ‘제파식(諸波式) 공격’, 뚫은 통로로 기동부대를 투입해 승기를 잡는 것을 대량군주의적 기동전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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