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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편과 희생이 큰 변화 이끈다” 믿음 줘야

소비자 불매운동, 한국에선 용두사미

  • 김건희 객원기자 | kkh4792@hanmail.net

“작은 불편과 희생이 큰 변화 이끈다” 믿음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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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편과 희생이 큰 변화 이끈다” 믿음 줘야

2013년 5월 서울 동소문동의 한 편의점에서 사장이 남양유업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소상공인들이 ‘유통 공룡’ 롯데와 맞서 전방위 불매운동을 벌이는 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불매운동이 롯데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일어난 불매운동은 대부분 기업의 의미 있는 변화 조짐을 이끌어내기도 전에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2007년 벌어진 홈에버(현 홈플러스테스코) 불매운동을 떠올려보자. 이 불매운동은 비정규직 노동자 부당해고에서 비롯됐다. 소비자와 직원들이 불매운동을 선언하고 나섰지만 노동자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난 2월, 주인이 바뀐 홈플러스가 돈을 받고 고객 정보를 팔아넘겨 또 한 차례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다. 홈플러스 전·현직 임원 7명은 보험사로부터 231억 원을 받고 2400만여 건의 고객 개인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홈플러스가 이처럼 거듭 불매운동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전 불매운동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남양유업의 경우

물론 모든 불매운동이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2013년 5월 남양유업 전직 영업사원의 ‘물량 밀어내기’로 촉발된 불매운동은 일부 성과를 냈다. 전국편의점가맹점사업단체협의회 등이 불매운동을 벌인 결과 남양유업의 2013년 2분기 영업이익이 26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111억 원) 대비 77% 넘게 감소했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140억 원에서 49억 원으로 65%가량 하락했다. 실적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남양유업은 2013년 3분기 이후 적자 전환했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회사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20여 년 만에 처음”이라며 “실적 하락 요인은 다양하지만, 불매운동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기업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도 촉발시켰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물량 밀어내기 관행 조사에 착수했고, 검찰은 남양유업 경영진을 소환했다. 국회는 남양유업 사태가 다른 기업에 교훈이 되도록 법안을 마련하겠다며 불매운동에 힘을 실어줬다.



결국 남양유업은 손을 들었다. 5월 9일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당시 김웅 남양유업 대표는 눈물을 흘리며 “부당행위에 대해 일벌백계하겠다”고 밝혔다. 재발 방지 방안으로 ‘남양 예절학교’를 설립하고, 600억 원의 상생기금을 출연해 대리점주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부 언론은 남양유업 매출 하락, 대리점주와의 협상 등을 근거로 ‘무서운 소비자’ ‘불매운동의 힘’이라고 평가했다. 세간의 평처럼 남양유업 불매운동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매운동의 한계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남양유업은 불매운동이 무색할 만큼 시장에서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이 회사의 2013년 상반기 커피믹스 시장점유율은 전년(12.5%)보다 0.9% 상승한 13.4%를 기록했다. 사건이 불거진 그해 5월 출시한 프리미엄 대용량 컵커피는 출시 1년 만에 매출 220억 원을 달성했다.

제미경 인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매운동에도 불구하고 남양유업의 일부 제품 매출이 오히려 늘어난 것은 소비자가 이해관계에 따라 불매운동에 제한적으로 참여했음을 뜻한다”며 “남양유업 사태는 이물질 파동 등으로 촉발된 것이 아니기에 소비자가 평소 애용하던 제품을 즉각 바꿀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낮잠 자는 ‘갑을관계 개선법’

결론적으로 남양유업 불매운동은 남양유업의 진정성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회사 대표가 사태를 진화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대상은 피해를 본 대리점주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국민이었다. 대리점피해자협의회 관계자는 “우리가 회사에 요구한 것은 손해배상과 강매 근절, 진심 어린 사과였다”며 “하지만 회사는 현직 대리점주를 주축으로 한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발족을 부추기며 피해자협의회(전직 대리점주의 모임)를 무력화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처벌도 용두사미로 끝났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징금 123억 원을 부과했지만, 남양유업은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며 맞섰다. 결국 지난 1월 대법원은 119억 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검찰 조사에서 물량 떠넘기기의 책임자로 지목된 김웅 전 대표는 상생기금 출연 등을 통해 피해자와 합의를 보려 노력했다는 이유로 지난 7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남양유업으로선 약간의 벌금을 내고 명예를 회복한 셈이다.

남양유업 사태가 재계에 의미 있는 교훈을 남겼다고 보기도 어렵다. 남양유업 사태 이후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위메프 ‘채용 갑질’ 논란, 해피랜드 대리점 갑질 논란 등 약자에 대한 기업들의 횡포가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은 기업을 변화시키기는커녕 기업의 불공정행위조차 제대로 처벌하지 못했다.

한편 갑을(甲乙) 논란을 방지할 법안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발의한 갑을관계 개선법(일명 ‘남양유업 방지법’)은 2년이 넘도록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국의 불매운동은 왜 이렇듯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 한국인 특유의 냄비근성 때문일까. 소비자가 불매운동의 목적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기업의 비도덕적인 측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난 1월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센터는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갑질 문화에 대한 국민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국민들은 갑질이 가장 심각한 집단으로 ‘재벌’(64%)과 ‘정치인 및 고위공직자’(57%)를 꼽았다. 국민의 95%는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갑질 문제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소비자들이 갑의 횡포로 비롯된 사회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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