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부자와 미술관

나폴레옹의 ‘착오’가 낳은 美 내륙의 ‘보석’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나폴레옹의 ‘착오’가 낳은 美 내륙의 ‘보석’

1/3
  • 미국은 미시시피 강 서쪽 땅을 프랑스로부터 에이커당 42센트라는 헐값에 사들였다. 이렇게 사들인 땅의 가장 큰 도시는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 이곳에선 독일 표현주의의 대가 막스 베크만의 작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한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나폴레옹의 ‘착오’가 낳은 美 내륙의 ‘보석’

세인트루이스 포레스트 공원에 자리한 세인트루이스 미술관.

미국 중부에는 캐나다 국경 부근에서 발원해 미국을 동서로 나누며 남북으로 흐르는 커다란 강이 있다. 세계에서 4번째로 긴 미시시피 강이다. 강은 미국의 10개 주를 통과하며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을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내륙 중간쯤에 자리한 미주리 주의 세인트루이스(St. Louis)다. 도시 서쪽 끝 드넓은 녹지대 포레스트 공원(Forest Park)에 소담스러운 대리석 건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세인트루이스 미술관(Saint Louis Art Museum)이다.

세인트루이스는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도시로, 인구는 인근 지역과 합쳐 300만 명에 조금 못 미친다. 1673년 서양인이 처음 찾아들었고, 프랑스인들이 미시시피 강을 탐험하다 이곳을 발견해 자연스럽게 프랑스 지배령이 됐다. 1764년 프랑스인들이 마을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정식 행정구역으로 승격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인 1822년이다.

세인트루이스 미술관은 미국 전역의 도시에 미술관 설립 붐이 일던 1879년 만들어졌지만, 당시엔 예술학교 부속기관에 불과했다. 예술학교는 1881년 별도의 조직으로 독립했고, 미술관은 따로 남아 워싱턴대(Washington University) 부속기관으로 넘어갔다. 미술관 건물은 시내에 있었는데 그저 미술관 흉내를 내는 수준에 그쳤다.

‘루이지애나 매입 사건’

그 후 20여 년이 지나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세계박람회가 열렸는데, 이를 계기로 미술관은 지금의 포레스트 공원으로 옮겨와 제대로 된 미술관으로 정식 출범했다. 1909년에는 워싱턴대와도 완전히 분리돼 간판도 시립미술관(City Art Museum)으로 바꿔 달았다. 1912년에는 미술관을 관장할 재단도 생겼다. 지금의 이름은 1972년에 붙여졌다.

미술관은 3만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관람객은 연간 50만 명 이상. 미주리 주는 미국 대륙 중앙에 자리한 내륙 대평원인데, 이 미술관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미술관이다. 미 중부 내륙의 빛나는 보석이라 하겠다.

1803년 미 중부에서는 국토의 ‘틀’이 잡히는 대사건이 벌어졌다.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 사건’으로 알려진 일이다.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루이지애나를 포함한 미시시피 강 서쪽 땅을 사들였다. 당시 캘리포니아와 미시시피 강 사이 땅은 대부분 프랑스령이었다. 오늘날 미국 영토의 23%에 해당하는 땅을 사들인 값은 2011년 화폐가치로 2억2000만 달러(약 2300억 원). 1에이커(약 1200평)당 42센트다. 코미디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일을 해낸 사람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땅을 판 사람은 나폴레옹이다. 유럽에서 영토 확장을 위해 그 많은 전쟁을 감행한 사람이 미국에서는 자신이 점령한 땅보다 훨씬 넓은 땅을 싼값에 팔아넘겼다. 나폴레옹은 이 ‘거래’를 승인하며 “영국도 이제는 미국 때문에 골치깨나 썩고 조만간 콧대가 꺾일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때 나폴레옹에겐 미국을 이용해 영국을 견제하겠다는 얄팍한 심보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미국으로 팔린 땅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세인트루이스에서 루이지애나 매입 사건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박람회를 유치한 것이다. 행사는 더 크게 할 목적으로 1년 연기돼 1904년에 열렸다. 박람회의 정식 명칭은 ‘루이지애나 매입 기념 박람회(Louisiana Purchase Exposition)’. 포레스트 공원과 인근 워싱턴대에서 개최됐고, 당시까지 세계 최대 박람회였다. 이 박람회를 위해 예술궁전(The Palace of Fine Art)을 지었고, 현재 세인트루이스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같은 해에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제3회 하계 올림픽도 열렸다. 원래 올림픽 개최지는 시카고였는데, 박람회 조직위원회가 행사의 일환으로 별도의 스포츠 행사를 계획하자 근대 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이 시카고 올림픽이 박람회 스포츠 행사로 무력화할 것을 걱정한 끝에 올림픽 개최지를 세인트루이스로 바꿔버렸다. 당시 올림픽은 이제 막 시작된 터라 최고의 국제행사인 박람회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올림픽도 포레스트 공원에서 열렸다. 1876년 만들어진 이 공원은 200만 평 규모로 미술관뿐만 아니라 골프장, 자연사박물관, 동물원, 과학관, 각종 스포츠 시설과 호수 등을 갖춰 오늘날에도 세인트루이스 시민들의 여유로운 휴식 공간이 되고 있다. 세계 최고의 테니스 대회인 ‘데이비스컵’을 만든 데이비스 가문, 저널리즘 분야의 최고상인 ‘퓰리처상’을 만든 퓰리처 가문은 모두 세인트루이스 출신이자 세인트루이스 미술관의 강력한 후원자였다.

나폴레옹의 ‘착오’가 낳은 美 내륙의 ‘보석’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대형 그림 3점이 걸린 전시실.

1/3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목록 닫기

나폴레옹의 ‘착오’가 낳은 美 내륙의 ‘보석’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