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호

“수도의 중심에 역사와 문화를 입힌다”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

  • 배수강 기자 | bsk@donga.com

    입력2015-10-20 15: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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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 재주, ‘빽’ 없는 3無 공무원”
    • “쇼핑 관광객으론 한계…역사문화도시로 승부”
    • “서울역 고가 공원화? 서울 사랑하기에 반대”
    • 63개 호텔 허가하면서 중구민 우선 취업 전략
    “수도의 중심에 역사와 문화를 입힌다”
    서울 중구는 수도 서울의 중심이다. 많은 도시 기능이 강남으로 옮겨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금융, 유통, 교통, 패션,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중추 기능을 한다. 상주인구는 12만6000여 명이지만, 상주근로자는 39만 명, 하루 유동인구는 무려 350만 명이다. 주간(晝間) 인구지수도 강남의 2배다. 그래서 최창식(63) 중구청장은 도시 중심 기능 외에 다른 측면을 주목한다. 바로 문화다.

    “중구는 620년 된 도시라 곳곳에 역사·문화 자원이 가득하다. 서소문성지, 충무공 생가터, 광희문, 주자소터, 혜민서터, 성곽길, 서애 유성룡 고택터 등 하나같이 역사적 가치와 스토리를 겸비한 자원이다. 이런 자원을 관광명소로 개발하는 ‘1동 1명소 사업’을 추진해 도시에 스토리를 입히면 중구와 서울의 품격이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최 구청장은 성균관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국가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한 뒤 서울시 도시계획국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냈고, 지난해 중구청장 재선에 성공했다.

    공직생활 대부분을 지하철건설본부장, 뉴타운사업본부장, 건설안전본부장 등으로 일하며 서울 개발을 진두지휘했다. 개포·양재지구 개발, 청계천 복원공사, 버스중앙차로제 도입,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건설, 올림픽대로·동부간선도로 건설 등 굵직한 사업은 대부분 그의 손을 탔다. 그가 ‘서울시 토건(土建) 선생’으로 불리는 이유다. 도시공학박사이자 도시계획 전문가인 그가 구청장이 돼서는 ‘도시에 문화를 입힌다’고 나서니 연유가 궁금하다.

    1동 1명소, 정동야행…



    “서울을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 77.6%가 중구를 찾는다. 그런데 대부분은 명동이나 동대문에서 쇼핑하는 게 목적이다. 당장은 외국인과 외지인들이 쇼핑하러 오는 게 좋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계가 있다. 늘어나는 관광 수요에 대비하고 재방문율을 높이려면 중구의 역사·문화 가치를 활용한 볼거리를 많이 만들고, 관광객이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쇼핑을 하면서 한국 역사도 배우고, 저녁에는 우리나라 최대 건어물 시장인 중부-신중부시장에 마련된 ‘호프광장’에서 노가리와 오징어를 곁들여 한잔씩 할 수 있도록 하는 거다.”

    ▼ 5월 ‘정동야행(夜行)’도 그 일환인가. 밤길을 걸으며 역사·문화시설을 둘러보고 전통체험 프로그램을 즐기는 축제라 호응이 컸다.

    “중구는 개항 이후 각국 공사관이 들어오면서 외교 중심지가 됐고, 서양인들은 근대 교회와 학교를 세웠다. 덕수궁 석조전, 제일교회,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이화여고박물관, 배재학당 등은 근대문화유산의 보고(寶庫)다. 야간 조명이 멋진 덕수궁 중명전에서 사진을 찍고, 중화전에서 연주를 들으며 한국의 밤 정취를 만끽하면 얼마나 멋있을까 생각했다. 우리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활용한 야간관광 프로그램을 만들어 우리 문화를 알리고 싶었다. 문화재해설사들의 설명을 듣다보면 역사 공부도 절로 된다.”

    ▼ 미국대사관저를 처음 개방해 관심을 끌었는데.

    “구청 과장들과 성공회, 러시아대사관 등을 수없이 방문했다. 처음엔 대부분 반응이 시큰둥했다. 선뜻 문을 열겠다고 나선 곳도 5곳뿐이었다. 지난한 설득 과정이 있었다. 결국 미국대사관저를 최초로 개방하면서 화제가 됐고, 축제 이튿날에는 마크 리퍼트 대사가 대사관저 정원에 깜짝 등장해 관람객을 맞기도 했다. 이틀간 9만여 명이 다녀갔고, 개방한 시설들도 평소의 8~10배를 웃도는 방문객이 몰려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관광객을 위해 야간에 상점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을 때 손사래를 치던 상점 주인들도 ‘대박’을 터뜨렸다. 그래서 가을에는 축제 기간을 하루 늘렸다. 축제라는 게 첫 회에 실패하면 실패다. 첫 회부터 확실히 성공해야 입소문을 타고 다시 찾는다.”

    정동야행은 9월 21일 미국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피너클 어워드에서 새 프로그램 부문 은상을 수상했다. 피너클 어워드는 세계축제협회가 매년 전 세계의 축제 중 우수 축제를 선정해 시상하는 것으로 ‘축제의 오스카상’이라 불린다.

    ▼ 올해 가을 축제는 언제 하나.

    “10월 29~31일이다. 가수 이용이 부르는 ‘10월의 마지막 밤을…’(‘잊혀진 계절’) 노래가 들리면 정동야행을 떠올리기 바란다(웃음). 이번에는 5월 첫 축제 성공에 힘입어 다양한 공연·체험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영국·캐나다대사관과 정동의 숨은 보석인 성공회성가수녀원 등 27개 시설이 축제에 참가한다. 어제(10월 6일) 27개 시설 관리자들과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정해진 시간에 방문하는 만큼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박정희 사저 공원화 논란

    ▼ 서소문역사공원은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후 크게 알려졌다. 이곳도 명소사업이 진행 중인데.

    “서소문 성지는 천주교 성인 44인과 복자 27인이 순교한 역사 현장인데, 일반인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용산 새남터 순교성지, 당고개 순교성지, 마포 절두산 순교성지처럼 이곳도 천주교 성지로 만들려고 한다. 이곳과 명동성당, 한국천주교회 창설 주역인 이벽 생가터(을지로), 좌포도청과 의금부터 등을 이으면 한국의 천주교 성지순례지가 생긴다. 금속활자를 만들던 주자소터는 인쇄 전문박물관으로,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는 기념 공간으로, 동국대 인근 서애길은 대학문화거리로 재탄생한다.”

    ▼ 신당동 박정희 기념공원 조성사업은 찬반 논쟁이 치열했다. 기초단체 사업이 일간지에 대서특필된 보기 드문 사례였다.

    “그런가(웃음). 신당동 박정희 전 대통령 옛 사저 주변엔 5층 건물과 주차장이 있다. 건물을 사들이고 주차장을 지하화하면 1000평(3305㎡) 정도의 부지가 나온다. 이곳 지하에 전시실을 만들고 공원화하자는 거다. 구의회가 반대하지만 주민들은 찬성한다.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오는 동남아 각국 공무원들은 버스를 대절해 박 전 대통령의 경북 구미 생가를 방문하는데….”

    ▼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데다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이다보니 야권 등에서 반발이 심하다.

    “신당동 사저는 5·16 군사정변을 모의·결의한 역사적인 장소다. 서울시 등록문화재 412호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장소인데 덮을 필요가 있을까.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평가는 관람객이 하면 된다. 박 전 대통령이 5000년 역사에서 우리나라가 처음 자급자족할 수 있게 만들고, 전쟁의 잿더미에서 경제대국을 만든 건 사실 아닌가. 예산이 많이 든다고 하는데, 전체 예산 300억 원 중 구 예산은 6% 정도다. 본뜻과 달리 정치적으로 해석되니 답답하다. 그래도 꾸준히 대화하고 있다.”

    ▼ 역사를 입히는 사업도 중요하지만 을지로 구도심은 수십 년째 그대로다. 구도심 활성화 대책도 필요하다.

    “옳은 지적이다. 구시가지 활성화는 리모델링이나 대수선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게 맞다.

    이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체의 45%가 90㎡ 미만의 영세한 토지여서 개별 재건축이 어렵다. 건물 대부분이 기준 건폐율을 초과하기에 현행 법규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을지로 3~6가 쪽 낙후된 시가지가 수십 년째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법 개정을 통해 명동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노점 실명제

    최 구청장은 을지로의 인쇄, 타일, 공구, 조명, 미싱 거리와 마장로 주방가구 거리 등을 업종별로 특화해 백화점처럼 한곳으로 모은 뒤, 카페나 문화시설 등을 갖추는 을지로 활성화 복안에 대해 설명했다. 이와 함께 9월에는 명동, 남대문시장 노점을 실명 등록하고, 노점 주인의 재산을 조회할 수 있게 하는 노점 실명제를 전격 시행했다.

    “중구에만 노점이 1700여 개 운영 중인데, 문제가 크다. 학교 통학로까지 막아 학생들의 교통안전이 우려되고, 노점 대부분이 화기(火器)를 다루지만 화재 발생 시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어 대형 재난 우려도 상존한다. 한 사람이 여러 노점을 거느리면서 자릿세를 받거나 갈취하는 사건도 빈번했다. 법질서 확립과 도심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노점 정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내년 3월부터는 남대문시장과 동대문 패션타운 일부 구간을 노점활성화구역으로 지정해 야시장을 연다. 인근 상점도 함께 문을 열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 중구에는 관광명소가 몰려 있지만 숙박시설은 많이 부족하다.

    “맞는 말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명동에서 쇼핑한 뒤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어 경기도까지 가서 여장을 푼다. 그래서 취임한 2011년부터 관내 호텔 63개(객실 1만370실)를 새로 허가했다. 숙박시설 허가와 일자리 연계전략을 통해 관광 편의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다.”

    “호텔 취업하려면 중구로”

    ▼ 호텔 허가와 일자리의 연계?

    “신규 채용할 때 중구민을 우선 채용하도록 호텔과 업무협약을 맺고 있다. 대신 각종 인허가는 원스톱으로 처리해주고 규제는 풀어주도록 노력한다. 원하는 구민에게는 호텔 객실관리 같은 전문교육을 받도록 하고 교육을 마치면 호텔 취업을 도와준다. 이미 63개 호텔에 허가를 내주면서 4000여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 이 가운데 문을 연 호텔 36곳에 1600여 명이 취업했는데, 중구민은 600여 명에 달한다.”

    ▼ 독특한 일자리 창출 방안인 것 같다.

    “중구민이 호텔에 정규직으로 채용되니까 중구여성플라자가 운영하는 호텔객실관리사 과정에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호텔에 취업하려면 중구로 이사하는 게 좋을 것이다(웃음). 호텔 외에도 대형매장과 중소기업 등과 구민 우선채용 협약을 맺어 지난 3년간 5000여 명이 일자리를 얻었다.”

    “수도의 중심에 역사와 문화를 입힌다”

    정동야행 행사장을 둘러보는 최창식 중구청장.

    ▼ 그런 일자리 창출 노력이 경주되고 있으나 중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노령화지수가 가장 높다.

    “그게 참 고민이다. 노령화지수(65세 이상 인구를 유년층 인구(0~14세)로 나눈 비율)가 164%인데, 심각한 문제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는 주요인을 살펴보니 역시 열악한 교육 여건이었다. 자녀를 공부 못하는 학교에 보내고 싶은 부모는 없지 않나. 그래서 명문학교와 중구 인재육성사업에 기대를 건다.”

    ▼ 명문학교 사업?

    “관내 초중고 4곳을 시범학교로 선정해 전국 최고 수준의 방과후 수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 결과는 곧 나타났다. 지난 3년간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10.4%에서 4.6%로 감소했고, 중구 중학생들의 평균 이상 학업성취도 비율은 12.4% 상승했다. 물론 노인이 많은 자치구인 만큼 우리에게는 ‘실버 대책’도 중요하다.”

    ▼ 어떤 실버 대책을 갖고 있나.

    “포인트는 2가지다. 풍요로운 여가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 일자리를 제공하고, 경로당 운영체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청소 공공근로 같은 일은 지양하고, 초등학교 급식도우미 같은 봉사하는 일자리 발굴에 힘쓰고 있다. 경로당 문화도 바꿨다.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경로당은 노인들을 오히려 사회와 단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측면도 있다. 경로당을 주민 공동 공간으로 개방해 취미활동, 평생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일부는 노인대학과 노인복지관으로 바꾸고 있다.”

    기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사업으로 화두를 돌렸다. 박 시장은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을 방문한 자리에서 철거 예정인 이 고가도로를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처럼 공중정원으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서울시는 11월부터 고가를 통제해 공원화 사업을 강행할 태세다. 반면 최 구청장은 여러 차례 ‘공원화 사업은 안 된다’고 반발했다. 두 시간여 인터뷰 동안 구정(區政)에 대해 해박한 입담을 자랑하던 최 구청장이 딱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댄 것도 이 질문을 했을 때다.

    “서울역 고가 공원은 흉물 될 것”

    “수도의 중심에 역사와 문화를 입힌다”

    최창식 중구청장이 독거노인에게 위문품을 전달하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해도 고가를 철거하겠다던 박 시장이 지난해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보행도로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서울역 고가는 조망도 나쁘고, 인근에 서점이나 도서관도 없다. 여름과 겨울에는 날씨 때문에 걷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사업을 강행한다면 대체도로부터 먼저 만들어야 한다. 서울역 고가는 교차로를 넘나드는 고가가 아니라 중요한 교통축이다. 45년간 이용하던 차도가 폐쇄되면 공덕·아현·청파동 쪽과 남대문시장 등 도심 지역은 단절될 수밖에 없고, 지역경제 타격과 상권 침체도 피할 수 없다. 주민들과 충분한 논의도 거치지 않았다. 공원화라기보다는 새로운 다리를 설치하는 것이다.”

    ▼ 새로운 다리를 설치한다니….

    “그동안은 서울역 고가를 철거한 뒤 서울 관문이자 사적(284호)인 서울역 경관을 개선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런데 공원으로 만들려면 수명이 다한 고가도로 상판을 완전히 재시공하고, 교각도 전면 보강하는 등 사실상 신설에 준하는 투자를 해야 한다. 또한 고가도로에 시민이 오를 수 있도록 최대 25개의 접근교량을 설치해야 한다. 이건 신규 프로젝트다. 당초 도심 재생사업의 기본 개념을 저버리고, 4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들여 새로운 도시 흉물을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거다. 노숙자들이 모여들고, 고공 시위 장소가 되고…. 나는 (박 시장과) 당이 달라서가 아니라 서울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

    ▼ 박 시장은 왜 생각이 바뀌었을까. 최 구청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서울시 공무원 후배들도 반대했을 것 아닌가.

    “박 시장 주변의 외부 사람이 건의했겠지. 도시 사업은 시장이나 주변 사람이 한쪽 말만 듣고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당선됐을 때도 외부 사람을 많이 데리고 (서울시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쪽 사람들 말만 듣지 않았다. 자신의 의중을 말하지 않고 공무원들과 토론을 시켜 한참 동안 들은 뒤에 결정했다. 공무원들은 시장이 말하면 찍소리를 못한다.”

    ▼ 청계천 복원사업 하면서 삼일고가를 철거할 때도 대체도로를 만들었나.

    “5.6km에 이르는 삼일고가는 공기(工期)를 한 달 줄인 60일 만에 철거했고, 철거에 앞서 반포대교 북단~용비교 북단으로 이어지는 두무개길을 앞당겨 개통했다. 그에 앞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 설득했고. 당시 청계천 사업은 모두 안 될 거라고 했다. 중앙정부도 비협조적이었다. 제대로 하려면 평화시장까지 다 들어내야 하는데, 거의 불가능했지만 도시 구조 틀은 유지하는 범위에서 부분 복원으로 해법을 찾아갔다. 박 시장에게도 이런 식의 ‘해법 찾기’가 필요하다.”

    “3無가 아니라 4無네…”

    ▼ 서울시 부시장까지 한 사람이 왜 굳이 구청장을 하느냐는 질문도 받을 거 같다.

    “가끔은. 30년 넘게 공직생활을 하면서 쌓은 능력과 경험을 묵혀두는 게 아까웠다. 그런데 강남처럼 뭐든 잘 정리되고 갖춰진 곳은 내키지 않았다. 재능 봉사하는 마음으로 중구를 역사·문화도시로 재창조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발전 잠재력이 있는 곳은 곧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 도시계획 관련 부서는 민원과 비리 등이 많은데, 큰 탈 없이 공직을 마무리했다.

    “3무(無) 공무원이라 그런 것 같다(웃음). 내게는 3가지가 없다. 하나는 재산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서울로 이사하기까지 5년간 똥장군(인분을 담아 나르는 통) 지게 지고 산에 나무하러 다니던 기억이 내 정서를 지배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헌책방에서 책을 사서 공부하는 것뿐이었다.”

    그는 1952년 충북 영동에서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까지는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경찰이던 아버지가 사업을 벌였다가 크게 실패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는데, 1967년 서울로 이사 오기 전까지 5년의 기억은 배고픔 그 자체였다고 한다.

    ▼ 나머지 2가지는 뭔가.

    “특별한 재주도, ‘빽’도 없다. 정확히 말해 어떤 능력이 있는지 확인해볼 기회도 없었다. 수줍음이 많아 남 앞에 나서는 것도 피했다. 그러다보니 혼자 하는 학교 수업에 집중한 것 같다. ‘빽’이라는, 가느다란 인맥조차 없다보니 인정받으려면 업무를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으려고 그랬는데, 결과적으로 선후배들의 신망을 받을 수 있었다.”

    ▼ 서울시 공무원 시절, 동생에게 신장을 떼 줘 화제가 됐다.

    “아, 그럼 ‘4무’인가보다. 신장이 하나 없다. 지하철건설본부에서 일할 때 일본 유학 중이던 동생이 신부전증이 악화돼 귀국했다. 신장 이식을 안 하면 살 가망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신장을 떼줬다. 지금도 궂은날에 몸을 잘못 비틀면 약간 통증이 오지만 사는 데 별 지장은 없다. 그 일을 계기로 가족과 건강의 소중함을 알았고, 사후 장기기증 서약도 했다. 산 몸으로 기증해도 멀쩡한데, 죽고 나서 기증하겠다는 약속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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