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부자와 미술관

텍사스 ‘시골’의 작은 ‘루브르’들

킴벨 · 포트워스 · 아몬카터 미술관

  •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텍사스 ‘시골’의 작은 ‘루브르’들

3/3
텍사스 ‘시골’의 작은 ‘루브르’들

리처드 세라, Vortex, 2002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은 머더웰의 작품을 50여 점 소장하고 있다. 머더웰이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첫해(1941)부터 죽기 1년 전(1990)까지의 작품을 망라한다. 그중에 ‘스페인 공화국에 대한 애가(Elegy to the Spanish Republic)’와 ‘스페인 공화국에 대한 애가 No. 171(Elegy to the Spanish Republic No.171)’은 그의 대표작에 해당한다. 머더웰은 검은색과 하얀색을 대비시키고, 수직 막대기와 계란형 모양을 대비시키는, 이런 유형의 그림을 수백 점 그렸다. 여기서 ‘애가(Elegy)’는 스페인 내전(1936~1939)과 공화주의자들의 비극적 패배를 나타낸다. 애가는 장례식 때 부르는 진혼곡이라고 볼 수 있다. 생과 사를 대비시키고 잔인한 죽음을 잊을 수 없다는 머더웰의 염원이 담긴 작품이다.

머더웰은 워싱턴 주에서 태어났지만 학창 시절 대부분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다. 그는 스탠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 대학원에 가서도 철학을 공부했다. 이후 컬럼비아대 박사과정에서 미술사를 전공했고, 곧이어 전업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194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추상표현주의의 토대를 닦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944년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같은 해 MoMA가 그의 작품 한 점을 구입했다. MoMA는 그의 작품을 구입한 1미술관으로, 이로써 그의 앞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MoMA가 인정한 작가였으니.

1940년대 중반에 오면 머더웰은 미술계 아방가르드 운동의 주요 대변자가 된다. 1958년에는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여류화가인 헬렌 프랑켄탈러(Helen Frankenthaler)와 결혼하는데, 그의 세 번째 결혼이었다. 그러나 이 결혼도 1971년까지만 이어졌다. 1991년에는 포트워스에서도 그의 회고전이 열렸다.

추상에서 구상으로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에는 필립 거스톤(Phillip Guston)의 작품도 많다. 주로 전성기이던 1950~70년대 작품이다. ‘불빛(The Light)’은 1964년 작품인데 유난히 눈길이 갔다. ‘저것도 그림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추상이라는 것이 본래 그렇긴 하지만 내게는 그저 ‘물감으로 된 낙서’였다. 3개의 물체가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는데 무엇인지 통 알 수가 없다. 마음속의 심상이라 생각하고 각자의 상상에 맡겨 해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제목 때문인지 바탕으로 그려진 분홍색은 물체 뒤에서 비추는 불빛 같기도 하다.



거스톤의 ‘페인터스 폼스(Painters´s Forms)’는 매우 괴기스러운 그림이다. 입에서 온갖 잡동사니가 쏟아져 나온다.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은 다리, 구두, 담배꽁초, 손톱, 재떨이 뚜껑 등이라고 하는데 그림에서 식별해내기는 쉽지 않다. 작가 자신의 입이라고 가정하면, 이 그림은 그의 자화상이 될 것이다.

필립 거스톤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나 어릴 때 가족이 모두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부모는 우크라이나계 유대인인데, 거스톤이 캘리포니아에서 자랄 때 유대인은 흑인과 마찬가지로 심한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어려운 유년 시절을 보낸 것이다. 게다가 그는 열 살 무렵 아버지가 목매 자살한 모습을 직접 목도하는 비극을 겪었다.

거스톤은 14세 때 LA의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거기서 나중에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가가 된 잭슨 폴록을 만난다. 둘은 친구가 됐다. 학교가 미술보다 체육을 강조하자 둘은 이 정책에 반대하는 글을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둘 다 퇴학 처분을 받는데 폴록은 나중에 복학해서 졸업했다. 거스톤은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거의 독학으로 공부했다.

22세 때 거스톤은 뉴욕으로 갔다. 그 후 이곳저곳 대학에서 그림을 가르쳤고, 드디어 1950년대에 들어 추상표현주의 1세대 작가로 크게 성공을 거두며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970년대 와서는 추상에 점점 실망감을 느끼고 방황하며 구상 쪽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미국 미술사의 현장

포트워스의 세 번째 명품 미술관인 ‘아몬카터 미국작품 미술관’은 이름 그대로 미국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기 위해 아몬 카터(Amon G. Carter·1879~1955)가 만든 미술관이다. 아몬 카터는 자기의 수집품을 기준으로 미술관을 만들라고 유언을 남겼고, 딸 스티븐슨(Ruth Carter Stevenson)이 1961년 미술관을 정식 출범시켰다.

초대 관장 윌더(Mitchell A. Wilder)는 미국 미술사의 현장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안고 미국 작가의 작품을 시대별, 유파별로 균형 있게 수집했다. 그 결과 미술관은 1830년대의 풍경화부터 20세기 현대 작품까지 미국 미술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미술관으로 발전했다. 유명 작가는 물론 웬만한 미국 작가의 작품은 모두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은 미국 사진작가 400여 명의 작품 3만여 점도 갖고 있다. 명실 공히 미국 미술 역사의 메카다. 미술관은 2001년에 대대적인 확장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아몬 카터는 13세 때 어머니가 죽자 가출해 뜨내기 외판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기차에서 샌드위치를 파는 등 온갖 일을 다 했다. 외판원으로 타고난 기질이 있었든지 샌드위치 사업으로 크게 성공해 언론사를 인수했고, 이 회사를 지역의 최고 언론사인 ‘Fort Worth Star-Telegram’으로 키웠다. 이 언론사는 텍사스는 물론 인근의 뉴멕시코와 오클라호마까지 영역을 넓혀나갔다. 나중에는 라디오와 TV까지 운영하는 종합 미디어 회사로 발전했다.

텍사스 ‘시골’의 작은 ‘루브르’들
최정표

1953년 경남 하동 출생

미국 뉴욕주립대 박사(경제학)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 건국대 상경대학장

저서 : ‘재벌들의 특별한 외도’ ‘한국재벌사연구’ ‘공정거래정책 허와 실’ ‘한국의 그림가격지수’ 등

現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공동대표


아몬 카터는 포트워스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많은 회사와 학교를 포트워스에 유치했고, 미국 전역에 포트워스를 홍보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언론사를 운영한 만큼 홍보의 귀재이기도 했다. 그런 아몬 카터가 포트워스에 미술관을 남긴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신동아 2015년 11월호

3/3
최정표 |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jpchoi@konkuk.ac.kr
목록 닫기

텍사스 ‘시골’의 작은 ‘루브르’들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